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32회 아벨의 후예 Ch 4. 이레귤러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2.24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아무리 무소불위의 인류연합이라 해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마음대로 꺾지는 않는다. 이런 조건 하에서는 지구에서 하늘도시들로의 인구 이주가 일어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하늘도시에 살던 사람들을 다시 외계 행성으로 이주시키는 일도 강제성 없이는 이뤄내기 힘들다. 안정된 터전을 떠나 잠정적 위험이 우글거리는 외계 행성으로 선뜻 이주할 자가 누가 있겠는가.

   카이젤이 절대 권력을 남용해서 사람들의 의지를 꺾어 강제 이주를 명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그가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는 실리뿐 아니라 명분도 중요시하는 사람이니 윤리적 명분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강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내린 ‘정당한 처방전’은 무엇이었을까? 진이 지금 준 암시가 흐릿하게나마 힌트가 되었다.

   ‘그래, 동면 상태의 사람을 쓰면 해결되겠군.’

   그들은 어차피 한 번 죽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이니까. 물론 엄밀히 말하면 정말로 물리적으로 죽었던 적은 없긴 하지만 동면 당한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죽었었노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런 그들에게 인류연합 측이 소생 치료를 통해서 두 번째 인생을 선물해주겠다면서 손을 내민다면? 그러면 그 대가로 새 삶을 시작할 터전을 테라포밍 외계 행성으로 옮겨버린다고 해도 할 말이 궁색하리라. 내버려 두었으면 죽었을 자신을 소생시켜주겠다는 셈이니 잠자코 감사히 받아들이는 선택지 외에 무슨 선택지가 있겠는가.

   ‘형은 하늘도시를 처음 만들 당시에는 대체 씨앗 인구를 어디서 어떻게 마련했지? 그때도 지금처럼 윤리적으로 걸림이 없는, 얄미울 정도로 정교한 명분을 획득했을까? 하지만 대체 무슨 방편으로?’

   윤혁이 깊은 고뇌에 빠져가는 모습을 본 진은 다시금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제는 계약 관계가 청산되긴 했지만 여전히 윤혁을 부추기는 일은 흥미로웠다. 삼촌이 만일 아버지가 벌이는 계획의 깊은 실상을 더 깨닫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2단계 프로젝트의 목적이 진짜 무엇인 줄 아십니까?”

   “인류의 거주지를 넓히는 것 아니었습니까?”

   “뭐, 그런 측면도 있지만, 그 부분은 4단계 프로젝트 때 가서야 진정으로 완성될 예정입니다.”

   “그러면 인구 증가율을 감당하기 위해서인가요?”

   “그것뿐이었다면 하늘도시를 더 만들었겠죠. 물론 외계행성도 차세대 거주지로서 손색은 없긴 하지만, 아버지가 계획하는 중인 장래 인구 증폭률을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비효율적입니다.”

   ‘아니, 그러면 대체 뭘 어쩐다는 거지?’

   진은 잠시 뜸을 들이며 윤혁을 애 닳게 했다.

   “2단계 프로젝트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인류의 완전한 진화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폭탄 발언에 윤혁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지, 진화요?”

   “쉽게 말해서 지구라는 제한된 환경에서만 적응이 허락되었던 나약한 인간 본연의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어 모든 물리적 조건에서 활동하고 생존할 수 있는 궁극적 육체 모델에 도달한 뒤 이를 우리 종(種)에 속한 모든 개체에 보편화시켜 대대손손 영속화하는 것입니다.”

   진은 그 세부적 목표치들 몇 가지를 글로 적어주었다.

 

   1) 생리학적 부작용이 전혀 없는 완전 조화와 항상성의 구성.

   2) 피코머신과 인간 세포의 온전한 비가역적 생물학적 융화.

   3) 시간적 제약의 탈피, 이른바 노화의 소멸 및 노화 치유.

   4) 공간적 제약의 탈피, 이른바 물리적 환경을 망라하는 생존력.

   5) 구조 훼손이나 신체적 조화 파괴를 즉각 원상복구 할 회복력.

   6) 이능력이나 초능력을 안정적으로 무제한 수용 가능한 적응력.

   7) 위의 모든 특질을 영구적, 안정적으로 대물림할 완전 유전성.

 

   어찌나 어처구니가 없던 나머지 입을 다물어지지 못했다. 문자 그대로 생명나무 열매를 먹은 상태와 똑같은 완전한 육체를 얻겠다는 발칙한 선언이 아닌가. 인류의 노화를 극복하겠다는 재혁의 계획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목표치가 이렇게까지 과할 줄은 윤혁도 몰랐다. 대체 인류를 무엇으로 빚을 작정이란 말인가.

   “저걸 다 해낸다고요? 그 과정에서 발생할 엄청난 수의 희생자는요?”

   “바로 그런 윤리적 이유 때문에 일부러 원래대로라면 자연사나 사고사나 병사로 죽었어야 했던 사람들만 골라서 살린 뒤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너무도 뻔뻔한 해답인지라 머리가 터질 듯 복잡했다. 이 사안에 대해 윤리적, 신학적으로 논쟁을 벌이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것이 분명했다. 일부러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이런 교활한 술책을 사용하다니.

   ‘정말 잔머리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게다가 책임자는 진이 아닌 카이젤이니 여기서 더 논쟁을 해봐야 의미는 없을 듯했다. 윤혁은 근심은 뒤로 제쳐놓고 원래의 화제로 되돌아갔다.

   “어쨌건 스테판 씨 말고도 백십 명의 이레귤러들이 추가로 존재한다는 뜻이군요. 그러면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아니, 애초에 발견은 어떻게 했죠?”

   “하데스 챔버에 보관되었던 스테판 이전 세대의 인류를 일괄적으로 테라포밍 행성에 심어 넣은 재배치한 후 오랜 시간 타임필드 속에서 관찰했습니다. 표식이 흐트러진 패턴이 자연스레 드러나더군요. 스테판처럼 말입니다. 이레귤러들은 자기 어느 정도는 마음대로 표식 스위치를 제어할 수 있으니까요.”

   우주 인류는 누구든 태어날 때부터 표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 보편적 표식 체재는 기반 기술력이 새로이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일일이 개체별 수정을 가할 필요도 없이 저절로 인류 전체의 표식이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유전성’ 혹은 ‘완전한 재현성’이라 불리는 특성이다.

   이렇듯 표식의 굴레에 놓인 우주 인류의 운명은 크게 네 가지이다.

   첫 번째, 초인으로 각성하여 U-society에 가입하는 길. 이 경우에는 성공 시 표식 그 자체가 원천적으로 삭제된다. 초인은 지배 계층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휴먼 솔져와 같은 공공직에서 종사하며 공로를 쌓아 시민권을 얻는 길. 이런 경우는 성공 시 표식의 스위치가 완전한 OFF 상태로 전환된다. 시민과 동등한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표식 그 자체는 남아있기에 스위치가 ON으로 전환되도록 조작될 가능성은 남아있으며 그렇기에 늘 인류연합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세 번째 선택지는 대다수의 우주 인류가 겪는 운명이었다. 이 부류에 속한 이들은 1단계부터 4단계까지 장황히 연결되는 우주 인류 프로젝트의 보편적 재료로 사용될 운명이었다. 적절한 시기에 이르면 시민권이 주어지긴 하겠지만 역시 표식 자체는 없어지지 않도록 설정된다.

   그런데 네 번째 운명은 상당히 이질적이고 이례적인 경우로 여기에 속한 이들을 따로 떼어 속칭 이레귤러(Irregular)들이라 칭하였다. 이 네 번째 길은 인류연합이 계획해놓은 행로가 아닌 일종의 오류였다. 이레귤러들은 법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불순분자들로 인류연합 측에서는 없애거나 특별관리해야 할 심각한 변수들이었다. 이는 이들이 반역자의 손길이 닿은 존재들이기 때문이었다. 놓쳐서는 곤란한 위험 샘플들. 다행히 최근 하데스 챔버를 샅샅이 뒤진 결과, 인류연합은 크레센트 선지자의 손이 닿았던 111명을 모조리 색출해낼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전부 스테판처럼 기독교 신자였다. 최소한 외관상으로는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이었다. 이로써 영적(초자연적)인 현상이 이레귤러의 최종적 발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 어느 정도 근거 있는 정론으로 입증되었다. 또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스테판처럼 자신의 표식 스위치를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서 제어할 수 있었다. 게다가 표식 자체도 훼손되어 있었기에 카이젤의 제어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하지만 스테판은 완성형 이레귤러였기에 나머지 미완성형 110명과는 차별화되는 특징이 딱 한 가지 있었다. 그에게는 원 특성이 왜곡된 표식, 즉 이레귤러 표식을 후손에게 유전시킬 수 있는 특이 특성이 있었다.

   “다른 110명은 자녀를 낳아도 이레귤러 표식의 특질을 유전시킬 수가 없습니다. 즉 그들에게서 만일 아이들이 태어난다면 일반적인 우주 인류와 완전히 똑같은 완전형 정상 표식을 물려받게 되죠.”

   “실제로 그분들이 아이를 낳기도 했었나요?”

   “네. 우주 인류 프로젝트 2단계 초기 진행 단계 중 확인됐죠.”

   현재 2단계가 진행되는 중인 핵심 모판인 테라포밍 외계행성들, 그 모든 곳들에는 타임필드가 장착된 거대 콜로니 세워져 있었다. 우주에 적응 가능한 신체를 구축하려면 최소한 수 세대에 걸쳐진 적응 실험이 요구되기에 번식과 적응을 동시에 담당할 특수 실험장과 타임필드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이미 지난 1년간 그 콜로니들의 타임필드 내부에서는 장장 400년의 세월이 지나갔고 앞으로도 더욱 긴 세월을 농축하여 활용할 예정이었다.

   목적은 아직 충분한 우주 적응력을 얻지 못한 인류를 강화하는 것. 이미 전면 개방 이전에 하늘도시들 내부에서 벌어진 불법적인 이종족 교배와 신체 개조의 산물을 정화하고 역이용함으로써 우주 적응력의 비밀을 풀어낼 열쇠들과 실질 소득을 제법 획득하긴 했으나 여전히 갈 길은 멀었다. 일정 기간 인간의 존엄성을 타협하는 한이 있더라도 양식장은 여전히 필요했다.

   하데스 챔버에서 발굴된 110명의 이레귤러도 이미 한참 전에 외계행성 내 콜로니로 옮겨져 벌써 수 세대의 삶을 보냈다고 한다. 이들이 낳은 자녀는 하나의 예외 없이 일반 우주 인류와 똑같았다. 스테판을 제외한 나머지 110명은 이레귤러로서의 특질을 유전시키지 못함이 확실히 드러났다. 인류연합 측에서는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혹시라도 이들이 하늘도시에 살던 시절 이레귤러의 씨앗을 대대손손 퍼뜨렸을까 봐 내심 염려했던 참에 위험 특성의 확산 위험성이 없음이 증명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웠겠는가.

   “아니, 그러면 스테판의 경우는 유전 가능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듣던 중 윤혁이 이상히 여기며 캐물었다.

   “스테판의 기억 잔해를 파헤쳐본 결과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 그 반역자가 그를 남편으로 취했더군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스테판을 성공작으로 만들자마자 수차례에 거쳐 부부관계를 나누었더군요.”

   진이 말한 그녀란 바로 크레센트의 선지자. 에드레이 어르신도, 친구 리온과 루디아도, 심지어 스테판 본인도 그녀에 대해 거듭 말했었다. 지난 여행의 말미에도 그녀가 정체 모를 방법으로 개입했었다고 큐오즈린과 한즈가 증언했다.

   “남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프라이버시를 잘도 뒤지시는군요.”

   “국가 안보가 걸린 문제인데 더한 일인들 못 하겠습니까?”

   윤혁의 비판에 진이 얄밉게 응수했다.

   ‘말이라도 못하면 원.’

   참고로 그 여인과 함께하던 시절의 스테판은 비록 성공작 이레귤러가 되긴 했으나 결정적인 요소인 ‘영적 각성’은 아직 이룩하지 못했던 상태였기에 일곱 표식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진은 그 각성 요소를 ‘초자연적 현상’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묘사했으나 윤혁은 그 현상의 정체가 ‘성령에 의한 영적 재출생’임을 신학적인 지식에 비춰 알고 있었다.

   여하튼 그 탓에 그녀와 동행하던 때에는 ‘생사의 표식’이 스테판을 향한 지배력을 일정 부분 유지하였고 그로 인해 그의 정자는 유전자를 전달하지 못하도록 봉인에 걸렸다. 인류연합 측이 스테판의 의식과 무의식 속 기억을 파헤친 바에 의하면 둘은 관계를 자주 맺었으나 아이는 잉태치 못한 듯했다. 아마 표식의 봉인 작용으로 인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아이를 몰래 숨겼을 가능성도 있잖습니까?”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생사의 표식에는 특이한 ‘자체 기억력’이 있습니다. 우주 인류로 태어난 한 인간이 자녀나 후손을 낳으면 그 자녀의 존재는 반드시 부모가 소유한 생사의 표식 위에 기록되도록 설계되었죠.”

   “거참 별 괴이한 기능도 다 있네요.”

   “참고로 그 기능은 이레귤러의 표식 왜곡에 영향을 안 받습니다. 표식의 제어력과 표식의 기억력, 그 둘은 별개이기 때문이죠. 둘 중 하나를 우회할 가능성은 미약하게나마 있어도 둘 모두를 우회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랑 비슷한 식으로요?”

   “좋은 비유군요. 대강 유사합니다.”

   하여간 지독하기 이를 데 없는 통제 시스템이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그러면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단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초자연적인 영향력으로 스테판의 표식 변질이 완성되는 바람에 수태 봉인에도 애로사항이 생겼습니다. 검사를 해보니 지금의 그는 생사의 표식의 지배에서 벗어나 정상적 수태력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정보를 들은 윤혁은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별의별 걸 다 점검하는군. 한 개인의 삶에 대한 존중은 어디 내버렸단 말인가. 불쾌했다. 어찌 됐건 그 말이 사실이라면 스테판이 후손을 만들었을 턱은 없다. 그의 이레귤러 특성의 최종 활성화는 그가 선교팀을 만나 회심함으로써 일어난 사건이니까. 스테판은 그 이후 줄곧 독신으로 살아왔고 여인을 알지 않았다. 차라리 다행이다. 만일 스테판이 아이라도 낳았다면 필연적으로 그 후예는 카이젤에게 있어서 골칫덩어리가 되었을 테니까.

   ‘형의 주목을 받아서 좋을 일은 없지.’

   담화를 마친 진과 윤혁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음 회차에 계속)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
이전회

431회 아벨의 후예 Ch 4. 이레귤러 (2)
등록일 2025-02-24 | 조회수 19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433회 아벨의 후예 Ch 4. 이레귤러 (4)
등록일 2025-02-24 | 조회수 32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