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603회 아벨의 후예 Ch 46. 방주 프로젝트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4.27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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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들의 위용은 흉흉했다. 동시에 지극히 아름다웠다. 겸손하고 소박했던 노아의 방주와는 너무도 달랐다. 이 우주의 교만함이란 교만함은 죄다 끌어모아 응축시킨 것만 같았다. 어찌나 거대했는지 이제껏 윤혁이 보았던 우주 건축물들은 귀여운 아기처럼 느껴졌다.
“저것들이 다 조립되어 완성되면 우리 손을 떠나게 되겠군.”
“아쉽지만, 우리 역할은 방주를 최종 조율해 주는 단계까지다.”
“그 뒤의 운명은 오롯이 파파께서 주관할 거야.”
세미온과 야르베스와 하르무트가 한 마디씩 감상평을 쏟았다.
“자, 그러면 이제 알트루즘을 써먹을 차례가 되었군.”
가장 기다리던 순간이 다가오자 야르베스는 참을성을 내려놓고 조급히 본 게임으로 들어갔다. 그는 초능력을 발산하여 윤혁을 짓눌렀다. 이미 솟구치던 심장의 고통과 몸의 속박, 거기다가 정신적 붕괴까지 더해지니 사면초가였다.
“끄윽.”
“간략하게 설명해 주지. 하늘도시의 하데스 챔버에 봉인된 이들 중 일부는 너희도 보았듯 외계행성에 방출되어 환경 적응 실험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실상 대부분은 따로 보관된 상태지. 가시우주 너머로 보내기 위해서 말이야.
네가 희생해서 완성해 준 피코머신 네트워크의 최신판 모듈을 업데이트 받으면 그들의 우주 적응 능력은 완성된다. 그 즉시 방주로 옮겨질 거다. 30억 기의 방주 각각에 동면 중인 인간들이 탑재되는 거다.
이후 그들은 신체적으로 완벽히 소생, 재생, 회춘 되는 동시에 우리의 ‘종족 단위 자아기제’를 통해 기억과 관념과 사상과 정체성까지 완벽히 리셋될 거다.”
야르베스의 장황한 설명에 이어 하르무트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그 뒤로는 하늘도시 때와 마찬가지로 타임필드 안에서 증식될 거야. 타임필드 기술이 꽤 발달한 덕분에 이제는 거의 플랑크 단위 시간에 수억 년을 압축하는 것마저 가능하지. 모든 방주들 속에서 가동되는 타임필드는 거의 상시 그런 비율을 유지할 거다.
게다가 이 방주들에는 자체적인 은하계 잠식 능력, 거리 무제한 워프 능력, 자체 무한 확장이 가능한 은하 간 게이트를 건설하는 능력,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재생산해내는 완전 복제 기능이 있어. 정확히 말하면 방주에 의해 은하계의 블랙홀 핵이 변형되어 데이터 복제 장치로 재탄생하면 그것이 자신을 개조했던 방주와 똑같은 것들을 양산해 내지.”
이어서 세미온도 덧붙였다.
“즉, 이렇게 무한 증식하는 인간과 무한 증식하는 방주를 통해 인류는 바이러스처럼 가시우주 너머의 모든 은하계들을 정복할 거야. 너도 알다시피 ‘누벼 이은 우주’란 게 실존하거든. 빛으로 관측되는 영역 너머에도 무수한 은하계들이 존재하지. 나중에는 그 정복을 기반으로 상위 차원의 정복까지 더 활발히 이뤄질 거야.”
윤혁은 그저 대답 없이 그들의 야망 가득한 탐욕을 듣기만 했다.
“인류의 멸종은 이제 불가능하게 된다. 설령 우주적 사태가 벌어져 지구가 속한 은하계가 사라지더라도 종족의 존속에는 큰 타격이 없겠지. 파파께서는 인류의 영속을 원하시거든. 더불어 자신이 그 모두를 다스리기를 원해. 그래서 통일시스템을 창안했지. 거리와 무관하게 아무리 먼 곳이라도 지배력이 닿도록 말이야.”
이제 윤혁은 참담해하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고 치죠. 당신들이 내게서 원하는 건 뭐죠?”
“훌륭한 질문이야. 이제부터 그걸 시행할 예정이거든.”
하르무트는 손짓으로 명령어를 발동했다. 곧 방주의 형태가 변형되더니 중심부로부터 거대한 구조물이 튀어나왔다. 마치 수억 개의 각양각색의 시계들이 톱니바퀴들이 이어 붙여진 듯 결합한 모양이었다. 시계라 불리기엔 너무도 정교하고 복잡한 다차원 프랙털 구조물이었지만, 굳이 언어를 사용하자면 시계들의 연합체보다 적절한 표현이 없었다.
*
아크삼형제는 그 시계 덩어리 복합체 같은 물건의 본질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앞서 말했듯 본래 카이젤도 방주를 30억 기씩이나 만들 계획은 없었다. 인류 전체의 경제력과 기술력이 너무 성장하는 바람에 여력이 남아돌아 계획을 확장하긴 했지만, 원래는 서른 기가 전부였다.
그는 서른 기 각각을 조금씩 다른 구조로 디자인했다. 실패를 대비한 일종의 분산투자 식 처사였다. 그런데 No.1 모델부터 No.30 모델까지 실제 운행을 시행해 본 결과, 나머지 29개는 실패하였고 오로지 No.1 모델만 성공작으로 밝혀졌다. 이후 카이젤은 29기를 모두 No.1 모델과 똑같은 형태로 재조정했다. 그 과정에서 No.1 모델은 나머지 모두를 컨트롤하는 지휘기가 되었다.
이후로 30억 기가 추가 건립되었는데 그것들도 기본적으로 No.1 모델을 본떴고 최초의 No.1을 지휘기로 모셨다. 물론 이후로도 방주들은 테서렉트 아키텍쳐와 퀘이사 엔진의 도움을 받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되긴 했다. 그러나 그런 확장 공사에도 불과하고 지휘 체계는 여전히 유효했다. 그래서 여전히 No.1은 나머지 30억 기의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중추로 자리매김했다.
이번에 아크삼형제가 소환한 물건은 No.1 기체의 중심 부품이었다. 거기서 튀어나온 시계 덩어리 복합체는 다름 아닌, 나머지 30억 기 방주 전체와 공명을 이루는, 일종의 ‘통합형 연결고리’였다.
이 연결고리가 중요한 이유의 맥락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카이젤은 우주 인류 프로젝트의 1단계와 2단계에서는 아직 아크삼형제가 제안한 파격적 주장, 곧 ‘전통적 가족 개념의 해체’를 허락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아예 배격한 건 또 아니었다. 그는 그들에게 ‘그 계획은 잠시 보류하겠노라’라고 선언했다.
그 보류란 3단계 프로젝트까지 차분히 기다리라는 의미였다. 카이젤은 3단계 프로젝트, 곧 이번 방주 프로젝트에서는 기존 가족 개념 대신에 새로운 양육 제도를 도입하는 사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물론 전적으로 택한 것은 아니고 중립적인 입장으로 미온적으로 대했다. 그는 여전히 전통적인 가족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그리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크삼형제는 달랐다. 그들은 간절했다. 완전히 새롭게 혁명 된 방식으로 인류의 종족 보존 알고리즘을 재정립하고 싶었다. 그 구체적인 지향점은 삼형제 내에서도 조금씩 추구하는 바의 차이가 있었으나, 공통 분모는 뚜렷했다. 인류는 더는 가족을 통해서만 생육하고 번성할 필요는 없다. 이 결론에서는 셋이 일심동체가 되었다.
이것마저 이제는 실현 불가능한 판타지 소설이 아니다. 이미 현 인류연합은 규격 외 수준의 기술력, 유례없는 초고도 문명을 보유했다. 인공적으로 난자와 정자를 수정해 수정란을 인공 자궁에서 키워내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전에는 몇 가지 기술적 한계가 있었으나 이제는 그마저도 극복해 냈다. 순수 생물학적 차원으로만 볼 때 모성을 통한 수태에 대한 열등성이 전혀 없다. 몇 가지의 보완만 갖춰진다면, 이를테면 사회문화적, 심리학적, 도덕적 약점만 새로운 대안으로 해결해 낸다면 이 제도를 당장에라도 시행할 수 있었다.
아크삼형제의 이 계획은 단순한 ‘가족 해체’를 넘어서 더 깊은 의의를 담고 있었다. 인류연합이라는 국가 시스템이 전통적 가족이 맡던 자리를 완전히 집어삼키겠다는 의미를 내포했다. 어머니의 역할, 아버지의 역할, 형제의 역할까지도. 그렇게 되면 새로 태어난 세대에게 가치와 정체성을 심어주고 훈육을 시행하고 미래를 정해주는 일까지 세계 단일 정부의 손아귀에서 이뤄지게 되는 일이 확정되는 셈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의견 차이로 인한 갈등이 발생했다.
카이젤은 전통 방식과 새로운 방식 사이에서 방황했다. 그는 어느 한쪽을 완전히 내버리기보다는 양쪽 모두의 잠재력을 고려하여 이득을 취하는, 양방향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을 원했다. 결단력이 뛰어난 그답지 않게 우유부단해보이는 방식이었으나 이 사안은 단순히 ‘효율성’과 ‘성장’만을 변수로 고려해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초자아’라는 형태로 아직 양심 체계가 남아있었다. 실제로 그의 속에 내재된 가치 판단 메커니즘은 인류연합 시스템의 Constitution set를 형성하는 기초석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인위적 기준을 우주적 자연법과 분리해 별도의 완전한 도덕 체계로 승화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속에 남은 자연법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진작에 인간성을 내다 버리고 새 정체성을 구축해 낸 아크삼형제와는 달랐다.
“양쪽 모두의 가능성을 열어주도록 하지.”
그의 결단은 이러했다.
특별히 알지 못했던 아버지와 가족을 만난 이후로는 이러한 그의 우유부단함이 더욱 심해졌다. 아크삼형제와의 맹약이 있었기에 새로운 인간 증식 체제를 단호하게 버리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가족 제도를 없애버릴 만큼 냉혹해지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절충안을 냈다. 그는 자신 소유의 30억 기의 방주 하나하나를 여러 내부 구획으로 나눴다. 그가 만든 방주들은 너무도 거대했기에 세부 분획을 적절히 쪼개어 권역을 잡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 후, 그는 두 종류의 제도, 즉 혁명적 방안과 전통적 방안 둘을 위한 사회적, 기술적, 경제적 기반을 각기 방주 속에 마련했다. 그 뒤 두 제도 중 하나를 양자역학적으로 선택하도록 방주 속 시스템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단, 자기 스스로의 판단 책임을 포기하면 자칫 무책임한 지도자가 될까 염려했던 그는 방주 시스템들이 선택권을 행사할 때 완전히 랜덤하게 행하지는 못하도록 간섭력을 걸어두었다. 즉 일종의 ‘확률 프로그램’을 시스템들과 연계시킨 뒤, 자신의 초지능체들에 확률 프로그램에 대한 최종 통솔권을 부여했다.
그렇게 하여 그의 속에 담긴 양심과 초자아는 3단계 우주 인류 프로젝트의 향방을 저울질하는 ‘정의의 양팔 저울’이 되었다.
방주의 각 구획마다 이런 선택권들도 주었다. 전통 방식과 신규 방식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 만일 중립을 취한다면 두 제도를 몇 퍼센트씩 가져와 섞을 것인지, 신규 방식을 택하면 세부적 제도적, 기술적 변수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도, 이런 부분도 결정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점점 당초보다 계획이 점점 부풀었고 방주의 규모가 커졌다. 또한 우주 인류의 규모도 예상보다 거대해졌다. 이에 고려해야 할 방정식과 알고리즘과 변수도 지나치게 많아졌다. 즉 카이젤의 양심 처리 기제에 과부하 되는 연산량 부담도 점점 늘어만 갔다.
그래서 그는 계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방주 내부 우주 인류의 운명을 세팅하는 방식에 개선을 가했다. 먼저, 그는 기존에 가졌던 네 개의 메이저급 초지능체에 두 개를 더 첨가한 뒤 그중 하나인 ‘이터널바이탈’에 최종적인 통솔권을 모조리 넘겼다.
이터널바이탈은 애초에 설계 단계부터 아크삼형제의 협동 메커니즘을 어느 정도 참조한 물건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자아-초자아-본능’의 삼중 구조로 되어 트리니티 구동 방식을 띠었다. 인간 이외의 존재들을 다루는 데 특화된 기존의 네 메이저급 초지능체들과는 달리 인간의 생사와 번식과 생활을 결정하는 책임을 맡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다음으로 그는 방주들의 지휘기이자 오리지널 모델인 No.1 안에 ‘열쇠’를 하나 설치했다. 이 열쇠는 나머지 30억 기의 방주 모두와 공명이 되는 물건이었다. 카이젤은 이 열쇠를 매개체로 하여 카이젤 자신의 가치 판단을 방주 내부에 담길 인류의 미래에 투영하도록 하였다.
나아가 그는 이 열쇠를 매개로 아크삼형제의 의사도 반영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아무래도 전통적인 가족과 신체제 사이에서 가치 판단을 하고 세부 사항을 결정하려면 대단히 복잡한 철학적, 과학적 연산이 필요했다. 그 책임을 자신 혼자서만 지기에는 큰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마침내 이터널바이탈을 둘로 분리하는 묘수를 두었다. 본체인 에고이즘은 자신이 보유했다. 분리된 알트루즘은 의외로 아크삼형제가 아닌 제삼자에게 심어졌다. 이렇게 결정한 데는 아크삼형제의 지나치게 편향된 사고방식을 나름대로 견제하여 균형을 이루려는 카이젤의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하필 그 주인으로 강윤혁을 택한 건 반쯤 충동적인 선택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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