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3회 [1부] 13화. 인도의 아들들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6.27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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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지역이 배출한 인재 가운데는 세계 수위 권에 드는 걸출한 자들이 수두룩했다.
정치인, 기업인, 혁신가, 예술가, 과학자, 공학자, 의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세계의 변화를 선도하는 상위급의 괴수들이 이 땅을 요람으로 두었다.
그 중에서도 뇌과학, 정신의학, 컴퓨터 공학, 전산학, 인공지능 및 가상현실 엔지니어링 분야를 동시에 석권하여 학계의 선봉에 자리한 라지쿠마르 샤르마는 유달리 돋보이는 보석 같은 인간이었다.
흔히 탁월한 실력으로 성공하여 정상에 선 사람을 ‘세상을 바꾸는 주역’이라고 한껏 추켜세우는 것이 일반이라지만, 보통의 경우 그것은 과장의 표현이다.
대부분은 세상의 흐름이라는 관성 앞에 굴곡되어 순응해버리거나, 잘해야 그 관성의 기틀에 미미한 흠집을 내는 것이 전부이다.
역사를 변경한다는 것은 실력 말고도 운명적인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 그런 걸까?
당대에는 한 인물이 나름 위대한 자로 평가 받았으나 후대의 평가 속에서는 그가 무미건조하게 잊히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라지쿠마르는 문자 그대로 ‘세상을 바꾼다’는 표현이 적합한 특별한 사내였다.
막내로 태어났던 그는 형제들이나 자매들보다 배는 영특했다.
부모는 그가 거대한 재능과 가능성을 개화하여 마음껏 뜻을 펼치기를 바랐다.
때마침 제국은 세계 전역의 최상위 영재들에게 다양한 석학의 기회를 베푸는 중이었고 라지쿠마르는 전적인 국가적 후원에 힘입어 흔치 않는 배움의 장에 뛰어들 기회의 문을 얻었다.
그렇게 그는 까마득하게 어린 시절, 고작 여섯 내지는 일곱 살 정도에 가까운 나이에 세계의 중심이라고 불리던 북부 신대륙으로 배움의 길을 떠났다.
그가 태어난 인도 지역은 브리튼 제국령이었고 북부 신대륙은 그 중심지였다.
라지쿠마르에게 있어서는 넓은 세상의 본 모습을 미리 체험할 기회를 누린 셈이었다.
생활비, 기숙사, 학자금 전액을 제국의 지원으로 해결받으며 그는 오로지 배움, 경험, 연구, 학술적 경쟁에 온 힘을 기울일 수 있었다.
유아 시절에는 영재 교육원, 열 살 무렵에는 고등 교육기관, 십대 초반에는 다분야 동시 전공으로 국립 칼리지 및 연구원을 복학하였고 십대 후반에는 학계에 뛰어들어 석학들과 동등한 조건 하에 경쟁하였다.
이런 와중에 그는 세계 전역에서 모인 탁월한 아이들과 접점을 얻었다.
브리튼 제국 시민 출신은 물론 커뮤니스트 연방에서 나와 귀화한 이들, 심지어 두 진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소수의 약소국에서 온 이들까지.
각기 다양한 재능, 전공, 진로, 비전, 포텐셜을 소유한 미래의 주역들.
라지쿠마르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후원을 받는 새싹들.
그들과의 교류는 어린 신동에게 있어서 무한한 흥미를 일깨우는 경험이었다.
비슷한 분야에 뜻을 둔 이들과는 선의의 라이벌로서 경쟁을 나누었다.
다른 분야나 다른 영역에 속한 이들과는 협력의 관계를 맺었다.
나이나 출신 지역의 차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저 한 개인으로서의 실력과 자질만 중요할 뿐.
‘장차 저들과의 친분이 필요할 때가 오겠지.’
그는 딱히 사교성이 매우 풍부한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분류하자면 개인주의적인 성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뜻 있는 인재들과의 연결점의 중요성을 잘 인지했다.
연줄 혹은 인맥을 구축해서 출세한다는 식의 속물적인 사고방식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한 인간이 자신의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모든 가능성을 쏟아붓기 위해서는 강력한 협력자들과의 협동 관계가 필수불가결함을 알기에 그에 부응하고자 하는 뜻이었다.
결과적으로 십대 중반이 될 무렵, 샤르마 군은 북부 신대륙, 남부 신대륙, 오세아니아와 태평양, 일본, 아프리카, 유럽 등지에서 모인 장래의 최정상들과 얼굴을 익히게 되었다.
그 가운데는 태생부터 귀한 그 소년도 있었다.
알렉시스 벨레로폰 엘 죠셉 브류나크.
제국 모든 아이들 가운데 가장 똑똑하다고 자타의 인정을 받던 괴물.
모든 재능을 소유하되 그 모든 분야를 두루두루 적당히 잘하는 것이 아닌, 해당 분야의 가장 뛰어난 전문가를 상회하는 잠재력을 소유한 소년.
만인의 사랑을 듬뿍 받던 그 예의바르고 인물 좋은 꼬마는 한편으로는 어떤 이들에게는 묘한 위화감과 불편감을 불러일으키는 유형이었다.
아니, 그 감정의 정체를 올바르게 정의하려면 ‘시기심’이라는 표현이 적당하겠지.
정상에 올랐노라고 생각한 자의 착각을 무참히 깨부수는 불가항력적 존재감에 대한 질투.
라지쿠마르 샤르마의 마음도 솔직히 그 시기심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재수 없이 잘난 녀석.’
한 분야의 정상이 되려면 부단한 노력과 긴 시간이 필요하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천혜의 재주와 잠재력이 요구된다.
그렇게 선천적 힘과 후천적 연단 모두를 취해 정상이 된 자는 자부심을 맘껏 누릴 자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알렉시스는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분야조차도 손쉽게 정상에 올랐다.
이 얼마나 반칙에 가까운 신의 특혜인가.
물론 그도 남들과 동일하게 몸이 하나뿐이고 시간은 24시간뿐인지라 모든 재주를 완벽하게 활용할 수는 없었다.
시간을 투자하지 못한 채 뒷순위로 밀려난 분야에 있어서는 그도 전문가보다 낮은 실력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분야들조차도 조금만 시간을 내어 관심을 쏟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최정상을 추월할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실력과 전문성이란 배부른 선택의 문제였다.
무엇이든 택하면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이름을 남길 수 있다.
몸의 개수와 인생의 시간 총량이 한정되어서 모두 취하지를 못할 뿐이지.
더욱이 그런 천재 주제에 사교성마저도 대단했다.
자기 자신보다 능력 면에서 못한 사람들에게,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지만, 거만함을 일점도 나타내지 않았으며 그들 모두를 동등하게 대했다.
재능과 저력이 특출한 자들을 매우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연약하고 무력한 자의 존엄성을 낮게 취급하지도 않았다.
공과 사를 나누는 데 칼로 자르듯 철저했다.
인품도 흠없는 옥과 같이 고귀하여 신경질을 내거나 짜증을 부리지도 않았다.
라지쿠마르는 알렉시스와 얼굴 정도는 아는 인연이었으나 구태여 적극적으로 친분을 구축하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그의 뜻을 장차 마음껏 펼치도록 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어줄 든든한 지원군일텐데도 그럴 마음이 선뜻 들지 않았다.
그래서 십대 시절까지는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알렉시스를 멀리서만 바라보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은은한 질투심이 속에서 꿈틀거리긴 했으나 그것을 일부러 의식하지는 않았고 조용히 외면하고 억눌러두었다.
한편으로는 동경심이 들기도 했고 그의 훌륭한 면들에 호감도 느꼈기에 마음 한켠에서는 응원하는 마음, 부러워하는 마음, 그의 향방에 대한 궁금증 등이 뒤섞였다.
어쩌다 같은 분야에서 경쟁하는 기회와 계기가 생기면 항상 알렉시스는 근소한 차이로 라지쿠마르의 윗선에 섰다.
사실 이는 여러 의미로 자존심을 일그러트리는 일이었다.
한 분야에서 온 힘을 다해 전력을 다하는 라지쿠마르와 달리 알렉은 수많은 일과 의무들을 감당하는 와중에 자신의 저력의 극히 일부만을 그 분야에 투자했으니까.
이런 격차를 알기에 라지쿠마르는 감히 그 ‘근소한 차이’에 대해 질투심을 느낄 자격조차도 체감하지 못했다.
‘하여간 되는 놈은 뭘 하든 된다니까.’
더 기분이 착잡해지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항상 알렉시스는 그를 향해 최고의 찬사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라이벌로서의 잠깐의 인연 말고는 별다른 친분조차 형성하지 않은 남인데도.
알렉시스는 라지쿠마르를 향해 확답하듯 말해왔다.
네 능력으로 언젠가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을 확신한다면서.
너야말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진짜배기 중의 진짜배기라면서.
그런 순수한 격려들은 괜히 자격지심에 위축되었던 그의 옹졸함을 더욱 부끄럽게 했다.
아직 미성숙했던 그 시절에는 그 부끄러움이 치기 어린 반항심으로 표출되었던 것도 같다.
그랬던 가깝고도 애매하게 먼 사이가 급격히 가까워진 계기는 의외의 방향에서 찾아왔다.
바로 인류의 운명을 걸고 두 세력이 충돌한 대전쟁의 삼 년.
그 해에 라지쿠마르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지한 존경심으로 알렉시스 황태손을 인정해버리고야 말았다.
“잘 부탁할게.”
다시 만나자마자 악수를 건넨 고동색 머리의 황태손.
기억 속에는 아이의 모습만 남아있었건만, 어느 새 스무살의 성인으로 자라난 그 남자는 크고 강인하고 단단해보이는 인상의 고목이 되어있었다.
키의 차이가 얼마나 벌어졌는지 이제는 어깨 위로 올려다봐야 할 지경이었다.
만약에 알렉시스가 똑바로 서 있을 수만 있었더라면 말이다.
다시 만났을 때 알렉시스는 휠체어 신세를 지는 중이었다.
그 처연한 듯하면서도 기품과 의연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모습에 라지쿠마르는 당황했다.
‘참전하셨다고는 들었는데, 대체 무슨 일을 겪으신 거지?’
황위의 계승자로서의 미련을 내려놓은 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고자 최전선에 뛰어들었다고는 들었다.
밑바닥에서부터 활약하여 경이로운 속도로 승진하였고 매 작전마다 기적적인 성취를 가져다줬었다지.
황태손으로서가 아니라, 이제는 한 명의 전사로서, 전략가로서 인정받는다 들었다.
그런데 몸을 아끼지 않은 대가가 그 철인에게라고 피해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알렉시스는 전투 중 위급한 일을 겪었고 불운 가운데 적에게 나포되었으며 그 뒤로 치명적인 수모와 고초를 겪었다.
전투와 포로 생활 중 겪은 ‘사연 모를 끔찍한 일’은 황태손의 옥체에 심각한 부상을 남겼고 그로 하여금 당분간 걷지 못하는 신세로 만들었다.
알렉시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적성 세력에 대노하였다.
그리고 그 어떤 보배보다 귀중한 제국의 장래를 급히 전역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나라의 존망이 이 한 번의 전쟁이 달린 상황에서 알렉시스는 책임에서 물러나기를 원치 않았다.
“만약 이 전쟁에서 패한다면 브리튼 제국은 소멸됩니다. 그리고 인류의 존엄성과 가치 또한 공산주의의 전횡에 짓밟힐 겁니다. 혹은 공멸로 인해 미래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한 위기를 두고 제 한 몸을 아깝게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는 언약의 승계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아요. 오히려 더 큰 의무를 감당할 몸으로써 기꺼이 책임져야 합니다.”
알렉시스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황제와 황태자를 설득했다.
그는 몸으로 싸우는 전투 대신에 전쟁의 핵심부인 전략 본부로 옮겨졌다.
탁월한 실력과 천재성으로 짧은 시간에 큰 공로를 세운 그는 정상급 지위로 승격되었고 곧 제국의 준 원수(元帥)로서 강력한 권한을 획득하였다.
이후 알렉시스는 자신과 인연을 맺은 인재들과 더불어 미리 대대적으로 조사해둔 다른 인재들을 신속히 끌어들여 특수 팀들과 알파 포스(Alpha force)들을 구성하였다.
직접 전투하는 전투원들 뿐 아니라 각종 공작원, 스파이, 과학자, 언론인, 심지어 전쟁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보이는 전문가들까지 끌어모았다.
그는 그만의 독특한 창의력에 더불어 고도의 추리력과 논리력을 동원해 적들이 알지 못하는 작전부들과 반전의 카드로서의 크루들을 교묘히 조성하였다.
라지쿠마르도 기술부의 최정예 요원으로 청빙되었다.
“내 계획을 실천으로 옮겨줄 능력자가 필요해.”
휠체어에 앉은 바람에 자신보다 눈높이가 낮아진 알렉시스가 부드러이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하자 이런 류의 친절에 대한 면역력이 전무한 인도 청년으로서는 저항할 방도가 없었다.
“모든 힘을 다하여, 목숨까지 걸고 성사시키겠습니다.”
“믿고 있었어.”
그렇게 그 시절, 알렉의 계획과 뜻을 이루고자 그의 친구들과 동료들이 한 마음으로 모였고 그들은 주군의 말도 안 되는 그 전략과 아이디어를 기꺼이 현실로 옮기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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