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21회 [1부] 21화. AI 공방, 팀 아르다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7.31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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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피스트 박사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구대륙에서만 활동하던 토박이인지라 아직 커버넌트 그룹 본사의 임원들을 자세히 알지 못하던 로빈은 문득 호기심이 생겨났다.
“흠, 다른 때보다 유독 관심이 많으시군요. 마침 생각해보니 그는 당신과 나이가 똑같으니 친구 뻘이로군요.”
“로보틱스 분야에서는 워낙 전설이시다보니 과문한 저도 익히 명성은 들어보았습니다. 삼십대 중반에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임은 잘 압니다.”
“하기야 비슷한 또래의 인물에게는 별다른 접점 없이도 괜히 비교 의식이 드는 게 일반적이죠.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을 살아오되 내가 얻지 못한 기회들을 누려온 사람,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뤄낸 사람, 그런 이들을 바라보면서 묘한 감정들이 드는 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에요.”
정곡을 찔린 붉은머리 사내는 아주 살짝 입술을 비죽였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 대단한 분과 일개 저는 애당초…….”
“농담입니다, 농담. 설마 상처받은 건 아니겠죠?”
알렉시스는 호쾌하게 싱긋거리며 넓은 손으로 친구의 등을 격려하듯 두드렸다.
“뭐, 박사도 제게는 친구이긴 하지만 그와 가까이 지내기를 권고드리고 싶진 않네요. 당신에게 좋지 않은 물을 들이고 싶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당신이 더 소중한 친구이다보니 조심스러운 마음이 드는군요.”
의외의 평가에 로빈의 호기심이 더욱 자극되었다.
“과분한 평가이긴 하지만, 영광입니다.”
“천만에요.”
“그렇다면 실버피스트 박사는 전하께서 평하시기에도 인격적으로 그리 바람직한 인물은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그렇다기보다는……, 흐음, 한 마디로 똑 부러지게 표현하기 애매하군요.”
알렉시스는 습관대로 양복 셔츠의 맨 윗 단추와 제복형 코트의 칼라 부위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맨 윗줄까지 빈틈 없이 채워 그야말로 흐트러짐 없는 철인의 정석을 과시했던 그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옥죄임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철갑처럼 두텁게 짜여진 체격으로 인한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뇌는 과학자로서의 사명 의식과 윤리성보다는 순수한 탐구욕과 호기심에 의해서 작동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물론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처럼 윤리 체계가 훼손된 상태는 아니고 정상인의 정신 기전을 소유했죠.”
그는 어떻게 평가해야 적당할지를 몰라 난처해하는 기색이었다.
“다만, 지적 욕구 충족을 향한 열정과 미지의 영역으로의 도약을 추구하는 열망이 사실상 광기에 가까워요. 물론 인간적인 따뜻함도 느낄 수 있고 사회적 교류도 할 수 있는 인간이죠. 하지만 탐구와 성취를 향한 허기가 그런 일반적인 정신 욕구를 아득히 압도하죠.”
“극단적으로 각성된 천재의 모습이군요.”
비서는 은근 속으로 탄식하였다.
정녕 한 인간이 어떠한 지식의 영역에서 광적인 집념으로 극한에 도달하면 어찌할 도리 없이 결국에는 그러한 모습으로 귀결되는 것인가?
마냥 틀린 가설은 아닌 것도 같았다.
실제로 알렉시스가 거느린 수하들 혹은 그와 친분을 맺은 친구들도 보면 적당히 우수한 수준의 인재들이 아닌, 정점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괴물들은 하나같이 뭔가 인격 체계를 구성하는 신경 회로가 일반인과는 달랐다.
나사가 묘하게 어긋났다고 묘사해야 하려나?
그 중에는 분명 좋은 의미의 뒤틀림도 있었고 부정적인 뒤틀림도 있었다.
하지만 정상인의 사고 체계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궤도임은 동일했다.
극한에 다다른 규격의 천재 중 인격적 결함이 없이 한없이 완전무결에 가까워보이는 성품의 인물이라고는 주군 외에는 보지 못했다.
아니, 알렉시스는 또 다른 의미에서 비정상적인 존재였다.
인격체로서의 완성도가 지나치게 높다고 해야 하나.
지나치게 거대한 재능과 동시에 완벽함까지 품은 탓인지 되려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저분이 고평가하는 인물이라면, 확실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 불가겠군.’
조금 후 있을 미팅에 대해 기대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들었다.
“실버피스트는 팀 아르다의 멤버 중 유일하게 제가 개인적으로 발굴한 사람이었요. 다른 이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도움을 거쳐 맺은 인연이었거나 자발적으로 뜻을 세워 제게로 모인 이들이었죠.”
알렉시스는 옛 인연을 처음부터 찬찬히 회상하였다.
“발굴이라기보다는, 그래, 주워왔다는 말이 옳겠군요.”
실버피스트 블레이즈소울은 여러모로 알렉시스와는 배경이 달랐다.
밝은 양지에서 주목과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찬란한 소년과 달리 비천한 음지 출신, 직설적으로 말하면 길거리 출신이었다.
그 소년은 고아였으며 양육자가 되어줄 이도 없었다.
그리고 본국의 가장 중심부에 거하던 귀한 황태손과 달리 전쟁 후 황폐화된 뒤 제국령으로 복속된 변두리에서 태어난 촌뜨기였다.
그러나 하늘은 악동에게 놀라운 생존의 능력을 선물하였다.
더불어 보통 인간은 감히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지도 못할 지적 능력도.
또한 그는 숱한 고생을 통해 후천적으로 영악함과 영민함을 단련해왔다.
비록 행색은 초라하고 비천해보여도 그는 그 어떤 여우보다도 치밀했으며 누구보다도 발빠르고 신출귀몰했다.
“어떤 교활하고 악독한 어른도 그 부랑배 천재 꼬마의 상대가 되지 못했죠.”
다른 아이가 그의 세상에 던져졌다면 그들은 소리 없이 객사했으리라.
그러한 지독한 환경 속에서 당당히 살아남은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두뇌가 가장 중요한 이유이긴 했으나 특유의 성격이나 교활함, 약삭빠름도 중요한 한 몫을 하였다.
그는 많은 무법자들과 피상적인 거래를 맺었고 요령 있게 약속들을 적재적소에 어기며 상대를 호되게 골탕먹였다.
자신을 이용하려던 못된 어른들을 역으로 마음껏 이용하였다.
복수하려는 일당들을 요리조리 잘 피해 기막히게 잘 살아남았다.
내기이든, 도박이든, 사기든 어떤 일에서도 손해보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물론 실버피스트의 이전 삶은 낭만적으로 ‘생존력이 탁월한 아이’로 표현하기에는 불법으로 점철된 넝마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정글 같은 세상 속에서 자기 안위를 지켜야 하는 미약한 자로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동정의 눈으로 볼 이유도, 참작의 여지도 많긴 했다.
그럼에도 소년 실버피스트가 악명 높은 불한당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다만, 두뇌만은 정말 진품이었죠.”
그 악동은 불우한 배경 탓에 정규 교육 과정을 밟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로지 독학만으로 수학과 과학과 공학을 마스터했다.
윤리학과 인문학 같은 분야는 등한시한 채 이공계 계열의 지식과 기술만 편식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교육자의 부재 탓에 달리 도리는 없었으리라.
그가 알렉시스를 만나기 전까지 어떤 식으로 배움의 길을 걸었는지는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분명 그는 단신으로 전문 연구원 수준의 지식까지 완벽하게 터득한 상태였다.
“14살 쯤에는 이미 실전 공학을 창의적으로 응용하는 경지에 이르렀죠.”
“벌써 그 시절부터 광기의 싹이 보였군요.”
“적절한 표현이군요. 때로는 광기와 탐구욕이 종이 한 장 차이인 경우가 많죠.”
신들린 듯한 재주는 두뇌만이 아닌 손 솜씨에도 깃들어 있었다.
당시 실버피스트는 손을 통해 공학적 능력을 실질적으로 발휘하였고 이를 자신의 생존 사업에도 요긴히 활용하였다.
보통은 해킹을 하거나 불법 드론을 제작하거나 변조된 전자 장치를 제작하는 데 그런 재능을 사용했다.
그때부터 이미 그는 좋지 않은 의미로 유능한 사이버 전사였고 범죄자들이 쓰기 좋은 새싹이었다.
아이는 별다른 악의 없이 순수히 자기 자신의 안위와 생존만을 위해 온갖 어른들의 부정부패와도 기꺼이 얽혀들었고, 누구도 믿지 않은 채 자신만을 위해 모두를 이용하고 갈취하였다.
때로는 악당들이 된통 그에게 당하는 일도 있었다.
중요 사회 시스템이 아이의 장난으로 인해 손실을 입는 경우도 잦았다.
“범죄 조직들끼리 무력 분쟁을 벌일 때마다 그가 제작한 장난감들이 의외의 유용성을 보였습니다. 당대의 반국가 단체들도 종종 그 아이의 발명품과 연루되기도 했죠. 물론 아이의 눈에 거슬린 탓에 도리어 뒤통수를 맞고 된통 망가진 무법자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망나니였군요. 진작 그 능력을 건강하고 유익한 목적으로 사용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련만.”
소망도 없이 눈앞의 사익(私益)만 바라보던 불쌍한 꼬마.
귀한 능력들을 불법 행위에나 소모하던 인생의 낭비자.
반듯하기 이를데 없는 알렉시스와는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입대하기 직전에 그 아이를 발견했죠. 당시 그는 사춘기를 눈앞에 둔 건방진 청소년이었는데 그때도 지금처럼 맹랑하기 그지없었죠.”
불법 조직들의 난잡한 일에 이리저리 복잡히 연루된 탓에 실버피스트는 큰 곤경에 처해있었다.
가만히 놔뒀으면 길거리에서 비명횡사하는 슬픈 결말을 맞았을지도 모르지.
사복 차림으로 신분을 감춘채 어느 길거리를 지나던 알렉시스는 절묘하게 우연으로 위장된 필연에 휘말려 아이의 곤란과 얽혀들었다.
그저 방치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열아홉 살의 그는 동정심을 발휘하였고 구더기와 같은 인생을 살던 불쌍한 부랑배를 총살의 위기로부터 건져주었다.
“그 일에 얽혀있던 무법자들을 모두 체포한 뒤 아이는 경찰로부터 따로 넘겨받았습니다. 일종의 사법 거래 겸 교화 목적으로 제가 거둬들였죠.”
“특출한 능력이 아쉬웠기 때문입니까?”
“그런 이유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보다는 안쓰러웠거든요. 자신만을 위해 낭비되는 삶이라는 게 말이죠. 또 기회를 누리지 못한 진주가 수렁 속에서 십년 이상을 썩어왔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했고요.”
그리고 사회적 책임감도 선택에 한 몫을 거들었다.
비록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기치로 싸워왔다지만 엄연히 브리튼 제국도 두 번의 세계 대전의 주요 참전국이었으니까.
더욱이 최종 승자라는 위치는 곧 패전국들에게 쓰라린 아픔과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불명예이기도 했다.
아무리 선제 공격이 아닌 외세의 야욕과 침략에 대한 방어로서 겨뤘다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제국이 패전국들을 잡아먹은 모양새가 되었다.
실버피스트도 그런 족적의 여파로 남겨진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운 마음이 알렉시스를 괴롭혔었다.
결국, 알렉시스는 꼬마 무법자를 자신의 휘하에 거두었다.
명목상으로는 교화하는 감시자를 자처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보호자였다.
동시에 교육의 책임자이기도 하였다.
배울 기회가 없어 홀로 그릇된 방향으로 지식을 편식한 바람에 비뚤어진 그 아이에게 모든 균형 잡힌 학식과 책임감을 요하는 성숙한 학문과 더불어 올바른 철학적 사고와 지혜를 전수하였다.
“참전하시던 시절에 말입니까?”
“일종의 종자(從者)로서 데리고 다녔죠. 물론 전선에 직접 데려가진 않았고 제가 후방에서 일할 때 곁에서 보고 배우도록 시켰습니다. 그렇다고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간의 방탕함에 대한 훈계도 겸할 겸 명분은 충분했죠.”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리라.
결과적으로 오늘의 닥터 실버피스트는 과거의 그 볼품없던 악동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성정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는 확인할 길 없겠지만, 적어도 사회지위적 위치와 명예에 있어서는 완전한 재탄생이나 다름없었다.
확실히 과거와 달리 그는 훌륭한 멘토 밑에서 건실하게 자라났고 세상과 인류의 유익을 위해 수많은 업적들을 남겼으며 지금도 남기는 중이었다.
지난날의 불명예들은 까마득히 잊혀질 정도로.
“승전 후 저는 그 아이를 켈리온 부부의 문하로 데려갔습니다. 로보틱스 공학에 능통했던 그는 곧 자르바나 선생님과 아올레아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셨고 그 밑에서 경탄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일취월장하였죠.”
하지만 본성이란 게 아주 달라지지는 않는 것일까?
먹고 사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자 소년은 이제 자신 속의 가장 깊고 강렬한 욕망에 눈을 돌려 집중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재능들을 하찮고 무익한 용도를 섬기는 데 낭비했지만, 이제는 얼마든지 그 재능들이 영광스러운 섬김을 받을 수 있었다.
실버피스트는 과학자로서의 본분에 사로잡혔다.
정확히는 사람들을 위한 선하고 이타적인 열매를 낳는 사명이 아닌, 미지의 영역을 정복하고 지식이라는 금단의 열매를 삼키려는 본능에 말이다.
“그는 언제나 팀원들 중 정점이자 전설적인 실력자였던 두 선생님을 뛰어넘고 싶어했습니다. 자신이 더 위대한 업적에 도달했음을 증명하고자 했죠.”
지금까지는 그런 그의 광적인 열망과 경쟁심, 그리고 지식을 정복하려는 탐닉과 광기가 알렉시스라는 주군의 조율에 의해 잘 통제되어 왔다.
그 덕분에 실버피스트의 모든 연구는 제국의 번영과 유익을 위해 쓰였고 사람들에게 상당한 행복 증진과 삶의 개선을 가져다주었다.
“뒤틀린 그의 면모도 활용하기 나름입니다. 독도 용량에 따라서 약으로 사용되는 마당에 사람의 성정이라고 다를 것은 없죠. 중요한 점은 얼마나 적재적소에 이용되느냐라고 생각합니다.”
본래 과학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 탐구자의 인격적 상태는 과학의 속성과 본질을 변개하지 않는 법이다.
직접 악의를 품고 휘두르지 않는 한,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건 진정한 선량함에서 비롯되었건, 과학으로부터 만들어진 결과물의 유익 자체는 오로지 재주의 정밀성이나 사고의 창조성으로부터만 영향을 받는다.
마음이 따뜻하되 무능한 의사보다는 성품이 더럽지만 완벽한 수술 솜씨를 자랑하는 신경외과 의사가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다. 지금까지는 무리 없이 온전히 다스려져 왔다.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지는 사용자인 알렉시스의 책임이다.
‘비전과 스피릿은 아미타브 카푸르 교수의 것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할 기술력은 실버피스트와 그의 동기들로부터 빌린다.’
인격을 통제하기 힘든 실버피스트에게는 스스로 AI 연구의 방향성을 결정하도록 키를 내주어서는 안된다.
그는 어디까지나 꿈을 현실로 바꿀 도구, 가치중립적인 도구로만 남아야 한다.
자신의 사고나 이념을 절대 투영시키지 않을 순수한 도구로 말이다.
대신 꿈 그 자체를 생성하는 역할은 상식인에게, 인격자에게 맡긴다.
팀 아르다에도, 커버넌트 그룹에도 소속되지 않아 온전히 알렉시스 자신의 강제력과는 분리되었으나 친구로서는 의지를 모으기 좋은 상대.
그러면서도 팀 아르다의 멤버들에 버금가는 재능을 갖춘 능력자.
아미타브 카푸르는 그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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