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23회 [1부] 23화. 정치 목사의 아들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8.07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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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세월이 흘러 아이는 나이를 먹어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몸이 자라난만큼 그의 삶에도 내적으로, 외적으로 적잖은 변화가 생겼다.
그의 인생은 타인의 기준에서 충분히 부러움을 살만했다.
불과 서른 살의 젊은 나이로 인도 최고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전 세계의 석학들에게 인정받는 빼어난 학자가 되었다.
전문가로서 당당하게 명성을 떨치며 업적들을 무수히 남겼다.
여기에 더해 가정을 이루어 자녀들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로서, 동료로서, 스승으로서 여러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이런 변화들도 아비타브 카푸르라는 한 존재의 개인적 역사에 적잖은 여파를 남긴 터닝포인트들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변화의 물결은 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용솟음쳤다.
그 핵심은 그의 내적 세계의 성장과 재정렬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아미타브는 단순하게 탐구욕만을 따라가는 과학자도 아니었다.
사리사욕이나 명예욕에 목 매는 소인배는 더더욱 아니었다.
지금의 그는 올바로 사색하는 태도가 바르게 잡힌 지식인이었다.
책상 위에서 탁상공론에 몰두하는 것이 아닌, 현실 세계와 직접 맞부딪히며 오감과 육감으로 모든 것을 탐색하고 정직하게 바라보는 인물이었다.
넓은 관점에서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며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와 대의가 무엇인지를 탐색할 줄 아는 자였다.
그리고 자신이 탐구하고 관찰하여 내린 결론에 힘을 다해 몰두할 줄 아는 사내였으며 뜻을 다하여 내린 결정에 대해 책임 의식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령 이제 그는 세계의 안보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참전하지는 않았어도 청년기의 초반을 대전쟁이라는 역사적 폭풍을 목격하는 가운데서 보냈기에 그의 사고관에 모종의 변곡점이 발생하는 현상은 지극히 필연적이었다.
사고관의 변화로 인해 아미타브는 세계 시민들을 지키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하는 결의를 다지게 되었고 진심으로 그 비전에 열심을 품게되 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에만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자신의 삶을 옮겼다.
자신에게 허락된 재주와 전공들을 활용하였고 인류의 보안 문제 해결에 보탬을 베풀려는 소원을 적극적으로 현실화하였다.
그리고 모름지기 안보 원칙에는 반드시 체제에 대한 기준이 필요했다.
좋든 싫든 전쟁 이후의 세계는 브리튼이라는 기치 아래 통일되었다.
그러므로 더 이상의 피 흘림을 막기 위해서는 남겨진 이 체계를 올바르게 경영하고 지킬 필요성이 절실했다.
여전히 주변의 동료들과 친구들 중에는 브리튼이라는 세계 유일의 극초강대국을 날카로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두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미타브는 이제 비판만을 위한 비판은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아울러 이제 그는 아버지가 왜 세간의 편견에 거스르는 발언을 하면서까지 제국의 정당성을 옹호했는지도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지구 상에 나타났던 모든 국가들 가운데 오로지 제국과 그 지도자들만이 두 가지 토끼를 잡아내었다.’
두 가지 토끼라 함은 어떤 의미에서는 양립 불가능해보이는 두 목표.
하나는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적인 가치 속에 담긴 보화들을 활용하여 천륜을 지키고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와 동시에 다른 종교를 차별하지 않고 개인의 양심의 자유와 더불어서 신념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수호자의 사명.
두 일을 온전히 함께 해낸다는 것은 간단한 목표가 아니었다.
역사 속의 많은 사건들이 그 균형점을 잃고 실패하여 나락에 떨어진 사례를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로마의 교황청은 신을 믿는다면서 저 나름대로 종교심의 기치를 내세웠으나 실상 사람들로부터 무자비하게 자유의지를 빼앗았다.
그들은 종교의 자유를 사람들로부터 박탈하였다.
반대로 공산주의는 종교의 옥죔으로부터 자유를 주겠노라고 사탕발린 음성으로 속삭였으나 결말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더 무거운 목줄로 개개인을 옥죄었다.
유럽 내륙에서는 리포메이션이라는 환기의 신선한 바람이 잠시 불었으나 결국은 대다수가 로마의 실수의 전철을 동일하게 밟았다.
오직 바다를 건너 브리튼에 귀화한 리포머들만이 해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창조주 절대신의 주권적 섭리와 인간의 자유의지.
그 둘을 조화시켜서 이해하게 해주는 세계관.
오로지 그 올바른 세계관을 소유하는 것만이 해결점을 찾아내는 비결.
오늘날의 변화된 브리튼 제국의 모퉁이돌을 놓았던 16세기의 왕들은 그 세계관의 정체를 올바르게 간파하였고 그 본질을 소유한 리포머들을 하나로 결속하여 더욱 정돈된 진실 속으로 인도하였다.
그들은 이 혁명을 종교적 차원에만 가둬둔 것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와 문화 등 모든 사회 영역 속에 고스란히 녹여내었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 신을 향한 공경, 그리고 절대 가치를 향한 온유한 순종심을 인간들 속에 온전히 함양할 수 있도록 새 문명을 차근차근 닦아나갔다.
이러한 근대사의 흐름을 상세히 공부하면서 아미타브는 비로소 자기 아버지보다도 더 깊이 역사의 섭리를 인지하게 되었다.
아울러 소위 말하는 정치 문제니 역사관 문제니 하는 것들이 신앙의 문제와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신을 경외하는 마음과 태도가 어려서부터 잘 닦아진 그였기에 한번 진리를 깨닫고 난 뒤로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세계관 전체를 기껍게 수용하였다.
그 후의 그는 청출어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버지보다 더 열심히 진리를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영적 가치관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역사에 있어서도 어떤 목소리가 진실이고 어떤 것이 왜곡인지를 통렬히 드러내고 고발하였다.
목회자로서가 아닌, 명망 높은 사회적 지도자이자 영향력 높은 학자로서 그렇게 담대히 목소리를 내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음성을 높이는 일은 적잖은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부담스러움이나 비난에 대한 두려움과도 싸워야만 했다.
하지만 이 일은 그에게 있어서는 안보에 기여하는 가장 중요한 방책이었다.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사상적인 국민 계몽 문제와는 또 별개로 그에게는 또다른 측면의 소명이 있었다.
바로 인프라의 측면에서 안보를 보강해야 할 사명이었따.
다행인지 부담인지 그에게는 그것을 이룰 지혜 또한 있었다.
브리튼의 안보 문제란 대단히 복잡하게 뒤엉킨 실타래와 같았다.
딱 잘라 명료하게 적과 아군이 누군인지를 정의하기가 어려운 탓이었다.
여기에는 전쟁 이후의 세계가 공식적으로 제국 아래에 통일된 영향이 컸다.
혹자는 이것이 고통스러운 전쟁 시대의 완전한 종결이라고 평하였지만, 아미타브를 비롯한 다수의 깨어있는 지식인들의 관점은 달랐다.
적의 실체는 여전히 존재했으나 그것들은 더 이상 외부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브리튼이라는 시스템 내부에서 기생충처럼, 암세포처럼 암약했다.
역사라는 폭풍우의 필연적 강요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모든 세력을 급히 삼켜버린 20세기의 브리튼.
이제 21세기가 이르러 세계를 통일한 그들은, 삼킨 기생충들이 뱃속에서 자신을 완전히 갉아먹기 전, 모든 위험 요소들을 소화 효소로 녹여버려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제국의 안녕과 안위를 위한 임무이기에 앞서 인류의 사상적인 안정을 지키기 위한 책임이요 사명이었다.
적들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거명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중동을 필두로 들끓는 테러리즘의 움직임은 가장 지독한 기생충이었다.
한편, 보다 온건하게, 그러나 더 지독하고 교활하게 사상정 선전 선동을 일삼는 문화 내부의 ‘진지전 세력’은 한 층 더 골치아픈 적이었다.
좀 더 멀리 내다보면 브리튼 황가의 근본적 가치를 허물려는 자들의 암약 또한 문제였다.
이를테면 오랜 원수였던 교황청이나 정재계에 포진한 귀족 계층 사탄숭배자들의 무리가 대표적인 예였다.
후자의 두 무리야 아미타브가 건드릴 영역이 아니었다.
그런 과업은 차기 황제나 그의 친구들에게 양도할 문제였다.
그러나 테러리즘 쪽은 분명 아미타브에게도 손을 얹을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무슨 방도로 테러리즘의 창궐을 근절한단 말인가.
‘절대적인 치안 유지 체계를 만들면 감시하고 관리하는 데는 수월하다.’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전 인류의 전산 통제였다.
그렇게 된다면 확실히 테러리즘을 포함한 반국가 권세는 억눌려 힘을 잃는다.
하지만 최첨단 유비쿼터스 시스템의 범람을 유발하여 세계를 묶어 궁극의 네트워크로 연결해버린다는 해법을 과연 황태자가 생각지 못했겠는가.
실제로 지금 당장 그 전략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그 강력한 권력자가?
그렇지 않다.
간단해보이는 해법 뒤에는 항상 치명적인 부작용이 뒤따르는 법이다.
아미타브 역시 쉬운 해결책의 유혹에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만일 강력한 통제 체계로 반란 분자들의 발생 가능성을 막는다면?
훗날 그 통제 체계 자체가 변모하여 감시와 강압의 시스템으로 바뀌리라.
인간의 부패함을 생각할 때 권력의 크기와 정부의 몸집을 비대하게 만드는 일은 지극히 불합리하고 위태로운 선택이었다.
이 진실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아는 무리가 브리튼의 황가였다.
그들 속에 세워둔 신과의 언약 안에도 그런 항목이 있지 않았던가.
‘우리는 우리 스스로 통치 권리를 제한하겠다.’
그런 기치를 내세웠던 마당에 지금 와서 그에 상충하는 정책을 내세운다?
그것은 언약에 대한 반역으로밖에 해석될 여지가 없다.
황태자라면 틀림없이 다른 방향의 해결책을 간구할 것이다.
그 사람을 존경하는 아미타브 역시 마찬가지.
그는 처음부터 ‘통제성과 연결성’과는 다른 패러다임에 몰두하였다.
어쨌건 이러한 올바른 인지가 밑바탕이 된 덕일까?
자연스레 과학자로서 아미타브가 그려낸 인공지능 발전 향방에 대한 청사진 또한 타 개발자들의 꿈과는 확연히 차별화된 윤리적 탁월성을 지니게 되었다.
‘완전무결하게 연결된 인공지능들의 네트워크는 위험해. 그 끝은 반드시 빅브라더 시스템으로 귀결된다.’
고도로 진화되어 스스로 학습하며 발전하는 인공 정신체들이 촘촘한 연결 사회를 이룬 뒤 통제 권한의 범위를 스스로 확장해나간다?
그런 방향으로 인공지능들을 발전시켜 사회 인프라를 그들에게 맡긴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디스토피아가 임박하는 시나리오는 시간 문제이리라.
사람에게 주어진 권력을 제한해야 마땅하듯, 그 사람들이 사용할 가장 무시무시한 도구인 인공지능의 권능에도 제한을 두어야 마땅했다.
이 점을 올바로 인지하고 깨달았다는 점이 차세대 팀 아르다 멤버들과 아미타브 카푸르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대안책을 제시해야 한단 말인가.
그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문제점을 향해 위선적으로 돌을 던지며 비판에만 몰두하는 무책임함은 아미타브의 성정에 맞지 않았다.
그에게는 분명 현실적 실현 가능성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되, 유의미한 패러다임 변화를 세상 속에 가져다 줄 뚜렷한 청사진이 있었다.
다만, 그것을 구체화하여 완전한 그림으로 빚어내는 데는 최소 수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온전해진 모양새를 갖춘 그 아이디어를 학계에 공표한 바로 당일, 곧바로 그가 목표했던 한 사람이 냅다 미끼를 물고 수면 위로 준동하였다.
학자들과 정치인들이 모두 눈이 멀어 그 비전의 가치를 깨닫지 못했다.
그와 친분이 깊은 사람들은 그의 계획에 동조하고 응원했으나 여전히 가장 깊은 속내까지는 인지하지 못했다.
오로지 한 사람, 아미타브와 몇 다리 건너서 알뿐 개인적인 친분도 없었던 그는 즉각 그 프로젝트의 의미를 감지하였고 심지어는 아미타브가 감지했던 가능성 이상의 것을 포착하였다.
그리고 그 사람이 미끼를 물어준 사실에 젊은 공학 교수는 깊이 감사하였다.
자신에게는 오랜 동경의 대상이자 희망의 상징과도 같은 깃발.
그와 동시에 아직은 채워지지 않은 미완성품으로 자신이 그 완성을 이루는 데에 한 몫을 기여해야 할 작품이기도 했으니.
그 사람이 자신을 필요로 해준다는 사실은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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