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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77회 [1부] 77화. 호크마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2.22 | 회차평점 0 0

 

 

 

아이들이 무사히 집에 돌아간 것을 확인한 후 알렉시스는 발걸음을 뗐다.

 

 

쓴소리를 잔뜩 듣긴 했지만, 속은 오히려 후련했다.

 

 

 

 

 

‘잘 해보라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되겠지.’

 

 

 

 

 

한편으로는 자신 혼자서 고민하며 짊어지던 자책감이 덜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지난 일들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고칠 수 없다.

 

 

차라리 내일과 오늘의 일들에 집중하는 편이 생산적이리라.

 

 

 

 

 

‘그나저나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좀 혹독하군.’

 

 

 

 

 

알렉시스에게도 십계명 가운데서 유독 올바른 습관이 잘 형성되지 않는 조항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네 번째 계명으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보내라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매주 주일 성수를 대충 행한 적이 없습니다만.”

 

 

 

 

 

책망하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반문했을 때 그는 이런 소리를 들었다.

 

 

 

 

 

“주일 성수는 주일 성수고, 안식일은 안식일이란다, 아들아.”

 

 

 

 

 

“하지만 일주일 중 이틀은 무리입니다.”

 

 

 

 

 

“넌 어차피 일요일에도 공예배 시간을 제외하면 일과 공부에 몰두했잖니. 그러니 토요일까지는 무리라면 차라리 일요일을 네 휴일로 삼아서 그날만큼은 안식일을 기념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영을 돌아버려무나.”

 

 

 

 

 

워커홀릭에게는 가장 가혹한 부탁이자 계명이었다.

 

 

 

 

 

“제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곳들이 많습니다.”

 

 

 

 

 

“그거야 그렇겠지. 그러게 누가 그렇게 거대한 기업을 일궈놓고 그런 많은 사업과 연구들을 벌려놓으라고 했더냐.”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요.”

 

 

 

 

 

“그만두라는 게 아니다. 너 없어도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라는 뜻이지. 공산주의자들이 망한 이유가 무엇이더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의 섭리를 믿지 않고 인간의 힘만으로 질서를 재창조하려고 과욕을 부렸던 탓이지. 아들아, 너는 그들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니?”

 

 

 

 

 

사실 알렉시스 본인도 알고 있으며 양심의 가책을 많이 받아왔던 바라 할 말이 없었다.

 

 

 

 

 

“안다. 네가 최상급 천재 백 명 이상 분량의 역할을 해낸다는 사실은. 하지만 그런 자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어야 성공한 체제다. 인간 규격 이상의 철인에만 의존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필연적으로 무너질 운명을 내포한 셈이야. 네가 아니라 하나님 한 분이 경영한다는 믿음이 확고하다면 너 또한 때때로 손을 내려놓는 결단의 용기를 낼 수 있겠지.”

 

 

 

 

 

모순적이게도 알폰스 황제는 구대륙들과 오대양 전체를 황태자에게 맡긴 동시에 반드시 주일에는 모든 일을 내려놓으라는, 심지어는 연구나 세상 학문 공부마저도 잠시 쉬라는 명령을 주었다.

 

 

 

 

 

아버지의 명령이니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원체 쉬는 게 익숙하지 않다 보니 아직도 좌불안석이었다.

 

 

 

 

 

“뭐, 이번 기회에 인재들을 많이 추수했으니 잘 흘러가겠지.”

 

 

 

 

 

그렇지 않아도 언약의 부가 혜택으로 인해 이번 세대 들어서 제국의 인적 자원은 유례 없는 풍년을 누리던 차였다.

 

 

그런 상황에 마인드 퓨리파이어들의 효과가 더해져 인재 각성이 더욱 가속되었다.

 

 

서서히 일곱 세트의 온전한 조합으로 인한 장기적인 효력이 나타날 기미가 보였다.

 

 

추가적인 교육 개혁까지 더해진다면 최소한 한두 세기는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지.

 

 

 

 

 

‘하지만, 목사님들마다 내게 전한 말은 내 기대와는 맥락이 달랐다.’

 

 

 

 

 

알렉시스에게 대언했던 목회자들은 하나 같이 말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대언자였고 그 어떤 측면에서도 정치 목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비록 브리튼 황실이 맺은 언약의 실질성과 진실성을 의심치는 않았고 그 개량을 지지해주기는 했으나 거기에 소망을 두지는 않았다.

 

 

정직한 선포자들은 항상 진실을 직면시키기를 개의치 않았다.

 

 

브리튼은 결단코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이 될 수도, 아니 그 천년왕국의 도래를 돕는 밑바탕이나 발판조차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죄송하지만 인간은 그리스도의 왕국 건설에 조금도 기여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그런 말들을 듣다 보면 알렉시스도 은근 빈정이 상하곤 했다.

 

 

아니, 그러면 그간 브리튼 제국의 여러 위인들이 헌신해온 노력들은 뭐란 말인가.

 

 

그들 가운데에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며 빛과 소금이 되어온 이들이 많았거늘.

 

 

더욱이 자신의 조상들은 신으로부터 ‘국경의 금제’마저도 면제받는 대가로 세계의 복음화에 신실하게, 이타적으로, 희생적으로 헌신할 것을 맹세하지 않았던가.

 

 

 

 

 

내심 선대가 쌓아온 이 아름다운 영적 유산에 자부심을 품어온 알렉시스였다.

 

 

적어도 그 노력들과 열매들이 신의 섭리를 이뤄나가는 도구 정도는 되리라 믿었다.

 

 

침례 요한처럼 메시아께서 오실 길을 단장할 위대한 일꾼으로써 쓰임받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정직한 목사님들은 늘 브리튼이 언젠가 무너져야만 한다는 투로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극악’의 등장을 필연적으로 유도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당연히 그런 악의 횡행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왜 그렇다면 그 악을 적극적으로 막아서는 안 된단 말인가?

 

 

아니면 그들은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이 패배할 것을 미리 알았단 말인가?

 

 

그들은 숙명론적인 칼빈주의적 사고 방식에 젖어 패배주의에 빠진 것인가?

 

 

 

 

 

아직 젊고 혈기 넘치는 알렉시스로서는 목사님들의 조언을 존중하면서도 가슴 속 깊이 오기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교만해서는 안 되겠지만, 주님께서 선물하신 지금의 내 능력이라면 충분히 이 세상의 주된 거악(巨惡)들을 전부 적출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과대평가가 아니었다.

 

 

당장 최근에만 해도 한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교세와 가장 포악한 흉포성을 자랑하던 종교가 썩은 나무처럼 무참히 꺾였다.

 

 

알렉시스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공산주의도, 그 바리에이션들과 자녀들도, 음란의 문화 혁명도, 악마숭배자들도 무참히 토벌할 것이다.

 

 

그것들을 모두 다 꺾고 나면 세상에 과연 ‘거악’이라 불릴만한 존재가 남을 것인가?

 

 

적어도 알렉시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를 경쟁에서 이길 위협적 악성 세력이 나타날 가능성이 없는 것이 자타가 인정하는 현실이었다.

 

 

 

 

 

‘내 이후에 세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의미인가?’

 

 

 

 

 

만일 그런 관점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받아들이자면, 그는 후대를 얻지 못할 자.

 

 

살아 생전에 브리튼의 정치의 틀을 안정적이고 새로운 형식으로 고쳐놓고 떠나지 못한다면 확실히 다음 세대는 붕괴한다.

 

 

목사님들은 바로 그 과정에서 혼란 변수가 개입하여 세계가 무너질 것을 예언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희망적인 관점의 해석.’

 

 

 

 

 

정말 알렉시스의 심리에 거슬리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대언자들은 어떤 경우에는 종종 알렉시스의 대에 세계의 황혼이 임할 듯한 뉘양스로 말하기도 했다.

 

 

지금의 황태자를 꺾는 존재가 발생한다면 도대체 그 위협은 어떤 규모란 말인가.

 

 

 

 

 

혹은 그게 아니라면, 황태자에게서 나온 요소들, 혹은 황태자 자신이 위협이란 뜻인가?

 

 

 

 

 

‘머리가 아프군.’

 

 

 

 

 

개인적으로 알렉시스는 신의 통치를 바라기도 했지만, 자신의 조국도 사랑했다.

 

 

이것은 그의 장점인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했다.

 

 

애국심과 신앙심 사이에서 확실하게 선을 긋고 우선순위를 잡기 어려워하는 성정.

 

 

그런 성정의 알렉시스이기에 둘 중 하나만을 택하도록 강요되는 이런 예언들은 마음에 심히 거슬리고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이왕이면 브리튼 제국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왕국으로 전이되면 안 된단 말인가?

 

 

어째서 자신들이 철저히 무너진 잿더미 위에서만 하나님의 왕국이 건국되어야 한단 말인가?

 

 

고민해봐도 풀리지 않는, 고통스러운 딜레마였다.

 

 

 

 

 

“이 숙제를 해결해줄 지혜가 필요하다.”

 

 

 

 

 

언뜻 맥락을 모르고 타인이 들으면 역정을 낼 소리였다.

 

 

세상 누구보다도 지혜와 지식이 풍부하기로 자타가 공인한 그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자이기에 그는 자신의 부족함에 더 민감했다.

 

 

그리고 그는 그 빈 공간을 채우는 데 누구보다도 갈급했다.

 

 

 

 

 

 

 

 

 

 

 

 

 

 

*

 

 

 

 

 

 

 

 

이왕 쉬어가는 날, 의미 있게 보내려는 심정으로 알렉시스는 공원을 거닐며 산책했다.

 

 

혼신을 다해 몇 바퀴 뛰다보니 혼잡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는 가라앉았다.

 

 

 

 

 

“헉, 헉!”

 

 

 

 

 

육상 선수들도 탈진할 정도의 운동량을 단 기간에 폭발적으로 발산해낸 그.

 

 

체력도 남아돌고 스태미너를 해소할 출구도 막혔기에 운동에 자주 매진하던 그였다.

 

 

이렇게 힘껏 뛰거나 근육을 혹사시키고 나면 머릿속에 득실거리는 온갖 아이디어, 연구, 사색, 고민, 잡념, 나랏일, 회삿일 등이 체계적으로 안정화되며 자리잡곤 했다.

 

 

 

 

 

“휴우!”

 

 

 

 

 

숨을 고르고 있던 차에 뭔가 허전한 감이 들었다.

 

 

 

 

 

“모자를 떨어뜨리셨는데요?”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이에 알렉시스는 허전함의 근원을 알아차리고는 자기 머리를 매만졌다.

 

 

신분을 숨길 용도로 가져온 캡 모자가 만져지지 않았다.

 

 

 

 

 

‘이런.’

 

 

 

 

 

알렉시스는 마스크를 올려쓴 채 상대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한 젊은 남자가 알렉시스의 모자를 손에 쥔 채 서 있었다.

 

 

흑발에 가까운 짙은 남색의 짧은 머릿카락에 중간 정도의 체격을 지닌 남자였다.

 

 

몸은 전체적으로 호리호리하면서도 나름 잘 단련되어 보였다.

 

 

 

 

 

“정신 없이 뛰다보니 놓쳤네요. 감사합니다.”

 

 

 

 

 

알렉시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상대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 상태로 손을 내밀었다.

 

 

상대는 뚱한 표정으로 대답 없이 모자를 그의 손에 건내주었다.

 

 

혹시라도 상대가 유명인인 자신을 알아볼까봐 알렉시스는 조금 신경이 쓰였다.

 

 

 

 

 

‘그냥 조용히 넘어갔으면.’

 

 

 

 

 

그렇게 뒤 돌아서 무사히 넘어가려던 차에.

 

 

 

 

 

“저희, 예전에 뵌 적 있었죠?”

 

 

 

 

 

느닷없이 귓가를 때리는 사내의 뜬금없는 말.

 

 

 

 

 

“······네?”

 

 

 

 

 

알렉시스는 순간 상대가 자신을 알아보고 무슨 수작이나 장난을 벌이는가 싶었다.

 

 

하지만 사내의 표정을 잘 관찰해보니 딱히 그런 기색은 아니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기억력이 좋은 줄 알았는데, 얼굴 알아보는 건 좀 늦는 편인가보네요.”

 

 

 

 

 

상대가 황태자임을 눈치챘더라면 나오기 어려운,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는 긁는 어투.

 

 

되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알렉시스는 묘하게 안도하며 경계의 끈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구면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누구지?’

 

 

 

 

 

알렉시스는 그 곱상한 얼굴의 젊은 남자를 면밀히 살펴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나잇대는 약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였고 노화가 느린 자신과는 액면가가 비슷해보였다.

 

 

즉 동생도 한참 동생이라는 뜻인데, 최근에는 저런 사람을 보았던 기억이 없었다.

 

 

 

 

 

‘저 사람이 지금보다 어린 시절에 보았더라면 충분히 헷갈렸을지도?’

 

 

 

 

 

바로 그 순간, 엉켰던 실타래가 풀리는 감각이 뇌리를 스쳤다.

 

 

무언가 무의식 가까이 파묻어두고 있던 오랜 기억이 두더지처럼 튀어나왔다.

 

 

 

 

 

“잠깐만요!”

 

 

 

 

 

저도 모르게 알렉시스는 마스크를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무표정했던 사내의 입가에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가 걸렸다.

 

 

알렉시스는 얼굴을 드러냈다는 사실에 당황하며 작게 아차 소리를 내었다.

 

 

 

 

 

“반가워요, 오랜만이네요.”

 

 

 

 

 

사내는 온유한 톤으로 눈웃음을 지으며 알렉시스를 향해 악수의 손길을 내밀었다.

 

 

 

 

 

“사, 산달폰?”

 

 

 

 

 

“한 번 듣고도 이름 기억해주셨네요. 기억력 나쁘단 말은 취소할게요.”

 

 

 

 

 

딱 한 번 스쳐갔던 만남.

 

 

12년 전의 그 기이했던 만남이 다시 부메랑처럼 눈앞에 돌아왔다.

 

 

어색함 넘치는 기분에 알렉시스는 잠시 어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 난처했다.

 

 

 

 

 

“그간 무탈하셨네요.”

 

 

 

 

 

“덕분에요.”

 

 

 

 

 

항상 모든 관계에서 대화를 적극적으로 리드해왔던 상남자.

 

 

그런 그에게 상대방에게 휘둘리는 듯한 이 묘한 분위기란 익숙치 않았다.

 

 

최면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 알렉시스는 마지못해 악수의 손을 받아주었다.

 

 

 

 

 

‘산달폰······, 호크마(Hokma)······.’

 

 

 

 

 

참으로 난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의미심장한, 시의적절한 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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