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컨
리모컨
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100회 발레리안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3.22 | 회차평점 0 0

 

 

 

응접실로 플레먼을 초대한 발레리안. 그는 추위를 녹이도록 따스한 음료를 대접하였다.

 

 

“저에 대해서 알고 계셨나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플레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궁금하십니까?”

 

 

그 훤칠한 사내는 여유로운 자태로 싱글벙글 웃는 표정을 건 채 답했다.

 

 

“저는 먼 지역에서 온 사람이고, 그리 유명한 사람도 아닙니다.”

 

 

“제가 당신을 알고 있어서 기분이 불쾌합니까?”

 

 

“그, 그건 아니지만…….”

 

 

발레리안의 능청스러운 받아침에 플레먼은 당황하며 말끝을 흐렸다.

 

 

“소극적인 성격이라서요.”

 

 

“낯선 대면에 두려움을 잘 느끼시는 타입인 모양입니다.”

 

 

“말하자면 그런 셈이죠.”

 

 

두려움이라. 플레먼은 속에서 떠오른 정직한 생각을 감추고자 했다. 자신이 정말로 남과의 대면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과의 충돌에 질린 나머지 피하여 숨은 자가 된 것일까.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게……, 솔직히 말해서 두렵습니다.”

 

 

“전면이라면?”

 

 

“그러니까, 중장님처럼 실력도 뛰어나고 영향력도 큰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는 세계 말입니다.”

 

 

“호오.”

 

 

발레리안은 흥미로운 생명체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과는 다소 반대 성향이 아니던가. 발레리안은 헌터로 개조되기는 했으나 천연 인사이더(insider)였다. 중요한 자리 한복판에 들어가 실력을 인정받고 업적을 쌓기를 기뻐하는 타입.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안 괜찮고, 그 친구는 괜찮다 이겁니까?”

 

 

“그 친구라면.”

 

 

“라이텔바흐 벤 키르헤른스트. 그 자식이랑은 친하지 않습니까.”

 

 

그 지적에 플레먼은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라이텔바흐와 친한 걸 알고 있었다니. 아니지, 어쩌면 라이텔바흐를 주시하다가 자신에 대한 정보까지 발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는 말씀드리기에 곤란해서.”

 

 

“괜찮습니다.”

 

 

호쾌하게 대답하는 발레리안.

 

 

“내가 당신을 알게 된 건 당신의 특별함 때문입니다, 플레먼 에이비슨 씨.”

 

 

발레리안의 말에 플레먼은 눈을 크게 떴다.

 

 

“당신은 ‘면역자’이지 않습니까.”

 

 

그제야 뜻을 이해한 플레먼은 한숨을 쉬었다.

 

 

“하긴 헌터님들은 저희의 명부를 관리하고 있었죠.”

 

 

“중요한 협력자들이니 완벽하게 파악하는 건 마땅한 덕목이죠.”

 

 

발레리안은 비록 직접적으로 면역자들의 동선과 거처를 관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라이텔바흐보다 직위가 높은 ‘총회장’이다. 당연히 헌터 사회 내에서의 그의 권력이라면 이런 정보를 충분히 마음대로 얻을 수 있으리라.

 

 

“면역자들 모두를 다 알고 계시는지요?”

 

 

“다는 아닙니다. 아무리 헌터라도 컴퓨터 같은 기억력을 갖지는 못해서요. 그래도 내 기준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대강 알고 있죠.”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며 플레먼의 긴장된 어깨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아직은 자세한 내막까지는 모르시는 모양이네.’

 

 

플레먼은 알게 모르게 드는 긴장감으로 인해 이 자리가 불편했다. 발레리안이라는 사람이 인간적으로 맘에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묘하게 느껴지는 압박감이 있다고 할까나. 다른 헌터들이 주는 육체적 우월성에서 나오는 위압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그렇다고 속을 꿰뚫어 보며 취조하는 것도 아닌데, 뭔가 모르게 마음을 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플레먼은 낯선 위화감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당신들, 그러니까 면역자들은 왜 세계 정부 측과 좋지 않은 관계에 있는지, 내게만 귀띔해 줄 수는 없겠죠?”

 

 

이렇게까지 빠르고 직설적으로 예민한 역린에 다가간 상대는 처음이었다. 예리한 라이텔바흐조차도 이렇지는 않았다.

 

 

“중장님.”

 

 

“이런, 미안해요, 미안해.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였어요.”

 

 

말은 그렇게 예의로 포장된 공손한 모양새였으나 진정성이 전달되지는 않았다. 퍽이나 미안하겠다. 다소간에 의도적인 접근임이 분명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라이텔바흐 그 녀석이 관리하는 명부 가운데 일부를 직접 추적해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헌터들이 경영하는 일이니 이 몸도 알고는 있어야겠다고 판단이 서서 말이죠. 세계 정부 측과의 곤란한 일도 만들지 말아야 하고요.”

 

 

“그렇군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바늘방석에 앉은 듯한 감각이 된 플레먼.

 

 

“당신들 중 누구도 국가에 위협이 될 위치에 있거나 위법적인 행동을 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범부들과 소시민들. 그렇다고 라이텔바흐 녀석이 여기저기 구애를 내미는 ‘반정부 주의자’들과 같은 부류도 아니고.”

 

 

금발의 미남자는 골똘히 궁리하며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해 추리를 펼쳤다.

 

 

“예컨대 이렇게 선량하고 성실한 시민이 국가 측에 위협이 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발레리안이 자신을 선량하다고 부르는 그 가식적인 투의 평가가 플레먼의 내면에는 참기 힘든 불편감을 불러일으켰다. 상대가 싫어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마음속에서 발생하는 왜곡된 거짓 정죄감 때문이었다.

 

 

늘 플레먼은 의문을 품어왔다. 우리가, 아니 내가 왜 이런 처지에 처해야 했던가. 왜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런 잘못 없이 고난을 받아야만 했지. 너무도 억울했다. 의롭게 살다가 핍박 받기라도 하면 영적인 만족감이라도 있지. 또한 징벌로서 받는 고통이라면 납득이라도 되지. 플레먼은 발레리안의 말마따나 겉으로 드러내놓고 위협적인 규모의 선행을 한 것도, 반대로 징벌받을 악을 행한 적도 없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설명되지 않는 고통이다.

 

 

게다가 자신의 근심은 영적인 것이지 물질적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하지도 못한 채 자신만 끙끙 앓아야 하는 짐인 것이다. 차라리 실제적인 가난이나 질병이 고통의 근원이었다면 보편적인 동정심이라도 끌어모을 수 있겠다. 양심에 의한 불편한 난도질은 공감을 나눌 사람조차 없다.

 

 

발레리안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말한 건 아니겠지만, 그의 말을 듣다 보니 플레먼은 이런 피해의식이 생겼다. 너희가 정말로 그렇게 깨끗하다면 왜 세계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느냐. 마치 그 메시지는 ‘너희에게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정죄를 함유하는 것 같아 미묘하게 따끔거렸다. 그런 정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인정할 마음도 없지만, 불편감은 가시지 않았다.

 

 

 

 

 

“플레먼 에이비슨 씨.”

 

 

“네.”

 

 

“당신은 혹시 신의 존재를 믿습니까?”

 

 

대화의 주제가 전혀 다른 쪽으로 튀었다. 상관없는 전환 같았으나 플레먼은 왠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직감을 느꼈다. 발레리안은 대체 어디까지 아는 것일까.

 

 

“혹시 왜 그걸 물으시는지요?”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플레먼.

 

 

“그냥 궁금해서 말이죠.”

 

 

이 상황이 주는 불편감은 이제 새로운 차원으로 돌입했다. 플레먼이 이 순간 체감하는 고통은 양심이었다. 그는 성경에서 늘 옳은 길을 배웠다. 믿음을 담대히 선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것은 그와 그의 동료들이 가장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가르침이었다. 지금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절망적일 정도로 실패하는 영역을 하나 고르자면 이것이 아닐까.

 

 

이 자리에서 플레먼이 정말 그리스도인답게 행하려면 그는 담대하게 자신이 믿는 존재를 선포해야 한다. 발레리안은 정부 관계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플레먼은 당당하게 나아가지 못하고 움츠러들었다. 오랜 세월 해온 습관이 몸에 배었기에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도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장님께서는 어떻죠?”

 

 

기껏해야 낸 용기라고는 되받아치는 것이었다. 그럴 용기가 있다면 진작 신앙의 선포자가 될 것이지. 그러나 ‘인간적 용맹’과 믿음의 사람으로서의 용맹이란 성질이 다른 것이다. 가장 열정적이었던 사도마저도 자기 자신의 육신적인 능력으로는 가장 작은 소녀 앞에서조차 겁에 질려 믿음을 부인해 버리기 일쑤다.

 

 

“나는 말입니다.”

 

 

발레리안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한 절대적 실체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리라 기대합니다.”

 

 

“어째서 그렇게 믿으시죠?”

 

 

“흥미롭잖습니까. 현 세계의 이데올로기대로 ‘모든 것은 우연의 산물이다’라고 믿자니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의미도 없죠.”

 

 

그는 아무래도 ‘의미’를 찾으려는 구도자 부류 같았다.

 

 

“왜 그것이 재미있을까요?”

 

 

플레먼이 질문을 던졌다.

 

 

“무겁지 않을까요?”

 

 

“무겁다라면?”

 

 

“만일 그와 같은 절대적인 창조자 또는 주인, 그러니까 신이 존재한다면 피조물은 그분 앞에서 무한한 책임을 감당해야 하니까요.”

 

 

“호오.”

 

 

그의 입가에 호선이 그어졌다. 뭔가 감을 잡기라도 했을까.

 

 

“나는 그 존재를 ‘인격적인 존재’라고 가정하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 말에 플레먼은 뜨끔하며 함구하였다.

 

 

“긴장하지 말고 다과와 차라도 드시죠.”

 

 

발레리안은 이 새로운 흥밋거리를 향해 친절의 가면을 보였다.

 

 

“앞으로도 자주 만나 대화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

 

 

 

 

 

대화는 중도에 그쳤다. 노크를 하고 들어온 라이텔바흐가 플레먼을 발레리안으로부터 다시 빼앗아 갔다.

 

 

“불필요한 관심이 너무 많으십니다, 총회장님?”

 

 

라이텔바흐는 플레먼의 어깨 위에 팔을 얹으며 발레리안을 도발했다. 발레리안의 표정이 금세 험악해졌다. 눈빛에는 상대를 향한 강한 경계심이 서렸다. 다만 원수 관계라기보다는 좀 험한 악우(惡友)에 가까워 보였다.

 

 

“너야말로 쓸데없이 일을 벌이지 않았으면 하는군.”

 

 

“내가 뭘.”

 

 

이젠 상하관계를 신경 쓰지도 않을 작정인지 라이텔바흐는 대놓고 퉁명스레 답하였다. 하지만 발레리안은 그리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상대가 마음에 들진 않아도 그 위상을 인정하기는 하니까.

 

 

“질서를 어지럽히는 건 우리 방식이 아니야.”

 

 

면역자들을 모아다가 이용하는 어떤 계략, 독립운동가들과의 협치, 그리고 각종 세력과의 연계까지, 라이텔바흐의 방식이 영민한 건 사실이나 발레리안의 방식과는 다소 온도 차가 있었다. 발레리안이라면 내부에서부터 정식으로 힘을 쌓아 공식적으로 정점에 오르는 방식을 택할 것이다. 세계 정부의 도덕 문제와는 별개로 질서를 파쇄하는 방법의 혁명은 효율적이지 않다.

 

 

“네 경력에 방해가 되게 하지는 않을 거야.”

 

 

라이텔바흐가 답했다.

 

 

“설령 책임을 진다고 해도 너에게까지 닿지는 않을 거다, 발레르.”

 

 

“잘도 떠벌리는군.”

 

 

“그러니 무리해서 염려하진 마시죠, 총회장님.”

 

 

라이텔바흐는 도발하듯 손으로 발레리안의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

 

 

 

 

 

원래 예정보다 배에서의 체류 시간이 길어졌다. 헬게이트의 영향으로 오염된 에어크래프트들이 모비딕 호 안에서 정화와 교정을 거쳤는데 그 프로세스가 생각보다 길 듯하였다. 마침 원정대원 모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으니 잘된 일이었다.

 

 

배를 떠나기 전까지 몇 번의 대화할 기회가 더 생겼다. 발레리안은 라이텔바흐 일행 전체를 불러 몇 차례 정도 식사를 나누었는데 그때마다 플레먼은 헌터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묘한 설전과 신경전이 불편하여 침묵을 유지했다.

 

 

 

 

 

대화의 주축은 당연히 라이텔바흐와 발레리안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곁에서 듣다 보니 플레먼도 둘의 가치관 차이와 경향 차이를 가늠하게 되었다. 헌터들을 지도하는 강력한 주축인 둘은 어느 면에서는 공통되기도 했으나 세부적인 면모에서는 차이가 컸다.

 

 

시스템 자체를 언젠가 힘으로 혁신하거나 뒤엎으려는 의도가 라이텔바흐에게서는 은연중 관찰되었다. 반면, 발레리안은 달랐다. 그도 세계 정부를 싫어하기는 했으나 시스템 자체를 향해 파괴적 혁신을 꾀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그는 이미 갖춰진 시스템을 자신이 포식하여 차지할 생각에 가까웠다. 그렇게 해야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이런 가치관에 반대를 보인 사람은 아퀼라였다. 독립운동가인 그에게는 세계 정부를 새로운 정부로 바꿀지, 아니면 내부에서부터 개혁할지, 이런 가능성에 대한 저울질 자체가 무가치한 공론이었다. 애초에 그는 세계 단위의 정부가 소국가들을 향한 주권을 행사하는 이 현실 자체에 대해 정당성을 인정치 않았다. 그나마 라이텔바흐의 손을 들어준 것도 강압적인 국제 질서를 원래의 형태로 돌려놓을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더 있어서였다.

 

 

아퀼라는 자주 반론하였고 그런 그를 마주하며 발레리안은 묘하게 신경이 긁혔다. 하지만 둘은 직접적인 다툼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발레리안이 일부러 갈등을 회피하는, 내지는 무시하는 듯한 눈치였다.

 

 

플레먼으로서는 여러모로 더욱 가시방석의 불쾌감이 증량되는 자리였다.

 

 

 

 

 

며칠이 지나 준비는 완료되었고 발레리안 측 세력과의 용무를 마친 라이텔바흐는 갈라져 이동하기로 했다. 발레리안은 플레먼에게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제안했으며 플레먼은 말없이 고개만 억지로 끄덕였다.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
이전회

99회 발레리안 (2)
등록일 2026-03-08 | 조회수 46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101회 시베리아
등록일 2026-03-29 | 조회수 43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실시간검색어 %07.30 9:45%

Ranking Top5

더보기
1. 동행 kiro
2. 창조주 하나... 하지혜
3. 주향 버블양
4. Mission Seed 김태한 ...
5. 바이블 스토... 작은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