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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119회 전쟁 개시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8.09 | 회차평점 0 0

 

 

다음날이 밝자마자 침묵의 대치는 끝났다. 신속히 전쟁에 돌입한 헌터들. 흉흉히 하늘을 향해 뻗은 오만한 탑은 격분하며 화염과 검은 구름을 내뿜어 태양을 가렸다. 고통스러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짙은 농도의 다크포스가 땅과 대기를 침식하였다.

 

그러나 면역자인 플레먼은 물론 아퀼라나 게오르그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이는 라이텔바흐가 미리 입혀둔 고주파수의 백색파동 때문이었다.

 

“진 뒤편에 머물러 계십시오.”

 

라이텔바흐는 완전히 무장한 채로 일반인들을 향해 경고했다.

 

“싸움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인근 지형이 파괴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곳은 그래도 제가 사건의 지평선으로 도금해 두어서 좀 더 오래 버틸 것입니다.”

 

 

 

그는 석궁처럼 생긴 기괴한 헌터웨폰을 꺼냈다. 전체적인 모양만 석궁과 닮았을 뿐 세부 구조는 대단히 복잡하며 첨단 공학의 산물들로 입히진 괴병기였다. 길쭉한 탄환이 장착되었다. 라이텔바흐가 저번처럼 해킹 기술을 사용해 바벨탑의 침식 능력을 강제로 견인하자 검은색으로 물든 공간은 얇게 말아져서 가느다란 줄처럼 꼬아지더니 고무줄처럼 길게 늘여져 석궁의 뾰족한 끝자락에 연결되었다.

 

“선전포고를 해드려야지.”

 

탄환에는 목표물을 향해서 끌려들어 가도록 안티-게이팅 에너지로 입히진 술식이 깃든 상태였다. 일단 발사되면 그것은 중력이 아니라 바벨탑을 향해 당겨지는 인력에 힘입어 가속될 것이다. 그것도 뉴턴의 고전 물리 법칙대로가 아니라, 가속도 상수가 일종의 ‘곱’을 가하여 속도를 지수함수적으로 증폭하는 식으로.

 

라이텔바흐는 대량의 안티-게이팅 에너지를 체내에서 끌어올린 뒤 그것으로 백색파동을 생성하여 탄환 속에 응축하였다. 대부분의 병기가 그의 힘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는 데 반하여 이번에 가져온 이 특수제품은 거의 무제한 용량이다. 시간을 들여 충분히 담으면 그 위력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저걸 막을 수 있는 헬게이트란 존재하지 않아.”

 

라울이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설령 SSS 랭크 헬게이트라고 해도 말이지.”

 

 

 

콰아아앙.

 

 

 

예고 없이 가속의 탄환이 석궁 내부에서 다중 예열을 거쳐 사출되었다. 그것은 포물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미리 라이텔바흐가 끌어당겨 확보한 검은 경로를 레일 삼아 달리며 미친 듯이 가속되었다. 어느 순간에 이르러 그것은 통일장 이론의 한계마저 벗어났고 물질을 탈피하여 괴이한 운동체가 되었다. 헬게이트의 힘이 사방을 침식한 이 땅 안에서이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탄환은 그대로 모든 방어벽을 찢고 바벨탑의 허리춤을 향해 진격하였다. 그대로 탑 본체를 꿰뚫은 그것은 마치 도끼처럼 나무줄기를 반쯤 베어버렸다. 굉음과 함께 하늘과 땅이 일제히 격하게 흔들렸다. 헌터들의 진영은 무사했으나 큰 두려움이 모두에게 임했다.

 

-말도 안 돼.-

 

북쪽 탑의 주인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부르르 떨며 이를 갈았다.

 

-한계를 벗어난겐가.-

 

얼마 전까지의 라이텔바흐는 탑 안으로 들어가서 초토화할 능력은 충분했으나 바깥에서 탑을 요격하여 유효한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탑을 정복하려면 반드시 우회로 없이 안으로 들어가서 겨루어야 한다는 규칙, 그조차도 그 규칙에서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계의 시스템에 간섭하는 능력과 새로운 품질의 힘들을 연마한 그는 이제 그 규정마저 발로 밟고 나아간다.

 

 

 

“이렇게 되면 정복이 생각보다 더 간단해지지.”

 

탑은 반드시 아래층을 정복한 다음에야 위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허락되는 구조이다. 아무리 강력한 헌터라고 해도 지름길을 취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방금 입힌 타격은 북쪽 탑의 허리를 잘라내었다. 이로 인해 탑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규칙 중 다수가 훼손되었다. 즉, 얼마든지 아래층을 건너뛰고 중간부터 공략하는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입장뿐 아니라 퇴장도 얼마든지 중간층에 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북쪽 탑 주위에 포진한 공략대는 라이텔바흐 일행만이 전부가 아니다. 탑이 휘청거리자 기다렸다는 듯 수백 명의 헌터들이 개인별로, 또는 크루를 이루어서 탑의 내부로 침투하였다. 한순간에 사냥개들에게 물어뜯기는 사슴 신세로 전락한 바벨탑.

 

-전략을 유연하게 교정할 필요가 있으려나.-

 

탑의 주인은 자신이 만들어낸 ‘낮은 층의 주인들’을 헌터들 앞으로 파견했다. 규율 체계가 파손된 바람에 탑 쪽에서도 ‘층의 주인들은 반드시 자기 층에 머물러야 한다’라는 속박에 묶이지 않아도 되었다.

 

아직 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기하던 고위 헌터들 앞으로 매우 강력한 어비씨언들이 나타났다. 한 마리 한 마리가 SSS 랭크 헌터를 넘어서는 실력을 소유하였다. 원래 이런 전력이라면 헌터 측이 밀려야 되겠지만, 싸움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 한번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보여봐라, 베타테스터들.”

 

라이텔바흐가 플레먼의 머리 위에 살며시 손을 올려두자 저번처럼 거리를 무시하고 전달되는 힘의 이식이 허락되었다. 이번에는 게오르그나 아퀼라가 아니라 라이텔바흐 자신의 유대감을 매질 삼아 헌터들에게 전달되었다. 페이즈 2의 섬멸물질이 타오르는 황금빛 불꽃처럼 되어 다른 팀의 헌터들의 몸에 입혀 졌다.

 

탑의 인근에서 곧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본신의 능력으로는 탑의 주인들보다 헌터들이 약하지만 새로이 입은 힘이 그 차이를 메꿔주었다. 헌터들이 직접 섬멸물질 페이즈 2를 사용할 수는 없지만 그저 몸에 두르는 것만으로도 조건이 상당히 바뀌었다. 상대의 모든 공격이 백 배 이하로 감쇠되고 반대로 아군의 모든 공격과 방어는 백 배 이상으로 증폭되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발레리안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그 힘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였다. 그는 아무 도움 없이 혼자서 80층의 주인과 맞붙었다. 도끼를 휘두르는 그 화염의 악마는 인간보다 열 배 이상 키가 큰 존재였으나 금발의 미남자는 조금도 밀리지 않고 상대를 황금 채찍으로 밀어붙였다. 그도 역시 다른 SSS급 헌터들과는 실력 면에서 격이 다른 인물이다.

 

 

 

“한 발 더 갈까?”

 

라이텔바흐는 이번에 커다란 금속 창을 들었다. 극고주파의 백파가 그 위를 흐르며 마치 번개가 입힌 듯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고대 이교도 신화의 주신들이 휘두르는 뇌전의 창이 연상되는 모양이었다.

 

지상 최강의 헌터는 아무런 발사 장치의 지원 없이, 오롯이 자신의 압도적인 근력과 사건의 지평선의 효력만으로 창을 투척하였다.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 중 그것이 단순 운동이 아닌 ‘고유의 스킬’임을 간파한 자는 창술사인 재석뿐이었다.

 

‘무시무시하군.’

 

창술은 분명 라이텔바흐의 주 전공은 아니다. 하지만 타 헌터들과 달리 뇌 신경계 내에 이터널셀 네트워크가 임계점 너머까지 발달한 그는 즉석에서 창술에 특화된 스킬을 창작해 낼 수 있었다.

 

“이번에는 탑의 주인을 직격해주마.”

 

섬뜩한 섬광과 함께 동편에서 서편까지 가로지르며 날아간 그 뇌전 창은 탑의 최상부를 겨냥하였다. 만일 중간에 훼방자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그대로 탑의 주인을 직격했을지도 모른다.

 

콰아앙.

 

그러나 이번 공격은 저번만큼 효과를 내지 못했다. 바벨탑의 바로 앞에 칠흑같이 검은 결계형 구체가 생성되더니 번개의 창을 산산조각 냈다.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군. 쪼들린 건가.”

 

라이텔바흐는 긴장감을 머금고 입가에 냉소를 걸었다. 자신만만하던 그도 식은땀을 흘렸다. 만만하지 않음을 그가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렇다.

 

 

 

-오만하고 건방지구나, 인간.-

 

세나케립이 탑을 가리는 거대한 암흑의 권능과 함께 나타났다. 전에 기습했을 때는 다크포스의 영향력이 없는 공간에 나타났기에 평범한 물리적 규격의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탑의 영향력이 존재하는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게 저놈의 본모습이었던 건가.”

 

흡사 마왕을 연상시키는 무시무시한 모습. 검은 날개 수십 쌍이 달린 채 검붉은 이교도 사제복을 입은 그 존재는 실로 위압적인 아우라를 자아내며 인근의 모든 존재를 얼어붙게 했다. 헌터들로서는 그 존재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

 

-벌레들, 모두 이 자리에서 몰살해 주마.-

 

세나케립의 몸을 중심점으로 하여 검은 결계로 덮인 기이한 아공간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헬게이트가 보통 만들어내는 침식 공간과 언뜻 비슷해 보이나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궤에 놓인 무언가였다. 심지어 역사상 단 두 차례 등장하였던 SSS 랭크 헬게이트가 만든 공간과도 다르다.

 

그 아공간은 탑까지 포함하여 일대를 집어삼킬 기세로 스스로를 부풀렸다. 블랙홀과도 같은 그 괴이 영역의 아가리에 삼켜지면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세나케립을 완전히 소멸하지 않는 한.

 

-이걸 소환한 이상, 나 역시도 이 지역에서 이동하지 못하겠군.-

 

중간관리자로서 소유한 특권인 지역간 텔레포트 식 이동, 그것을 포기하는 대가까지 감수하고서 꺼낸 비장의 능력이다. 라이텔바흐만이 아니라 탑을 공략하려고 쳐들어온 모든 헌터를 도륙하기 위해 예비한 힘이다.

 

“이거 위험하군.”

 

라파엘 협회장은 그 광경을 보며 염려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놔두면 저곳의 헌터들은…….”

 

“모두 놈에게 죽게 되겠지.”

 

라이텔바흐도 이 상황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미 허리가 꺾인 바벨탑이 문제가 아니다. 저번에 만나봐서 알지만, 저 외계의 적은 어떤 어비씨언이나 헬게이트보다도 강력하다. 능력 면에서 뛰어난 정도가 아니라 격이 다르다. 저 결계가 공간을 삼키도록 내버려두면 그 개미지옥 안에 떨어진 헌터들은 저 적에 의해 손쉽게 죽임당할 것이다. 사람이 벌레를 죽이는 것보다 더 간단하게.

 

 

 

“놔둘쏘냐.”

 

라이텔바흐는 손을 뻗어 모든 힘을 해킹에 집중하였다. 시험 삼아 쓰던 평소와는 다르게 전력을 다한 연산이다. 세나케립이 만들어내던 아공간은 갑작스레 어마어마한 중력에 끌리듯 모양이 뒤틀렸다. 구체의 형태로 균일하게 사방을 향해 커지던 그것이 마치 밧줄에 의해 당겨지듯 납작한 모양으로 펴지더니 북쪽 탑을 향해 멀어지는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세나케립과 그의 결계 모두가 북쪽 탑으로부터 멀어져 라이텔바흐 일행이 위치한 곳과 탑 사이에 멈춰 섰다. 결계는 다시금 탑을 두르려고 꿈틀거렸으나 강제적인 인력이 그것을 차단하였다. 결국 결계는 마치 포물선의 형태가 되어 라이텔바흐의 진을 반쯤 둘러싸는 형태로 고정되었다.

 

“이것으로 헌터들의 안전은 확보했다.”

 

라이텔바흐는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본격적인 지금부터 시작이다. 자신이 지속적으로 연산력을 사용해 저 괴이 아공간을 휜 모양으로 고정해 두지 않으면 결국에 탄성에 의해 다시금 탑과 그 인근을 포위할 것이다.

 

‘오랫동안 버티기는 어려울지도.’

 

말하자면 자신이 인질이 되어 탑 공략대들을 위한 시간을 벌어준 격인데, 이 또한 장기전으로 끌면 불리해질 것이 자명하다.

 

‘놈을 없애야 해.’

 

외계의 적은 자신이, 탑은 다른 팀이 맡는다. 라이텔바흐는 경무장을 갖춘 채 자신을 향해 쓰나미처럼 천천히 접근하는 거대한 검은 결계 공간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발목이 묶였군.-

 

세나케립은 아쉬움을 달랬다. 이 결계 공간은 극도로 강력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자신의 공간적 활동 반경을 제한한다. 이것을 펼친 상태에서는 오로지 생성된 공간 안쪽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 자유를 일부 포기하고 스스로 일종의 헬게이트와 비슷한 상태로 전락하는 셈이다. 라이텔바흐가 이 공간을 자기 쪽으로 당겨오는 도중이니 지금으로써는 라이텔바흐 일행 외의 상대와 전쟁할 수 없다.

 

-하지만 묶인 건 네놈도 마찬가지이지.-

 

승리를 확신한 세나케립은 자신이 갖춘 만반의 준비를 꺼내기 시작했다. 저 헌터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이 전력을 상대로는 소용없다. 수십만 개 이상의 최상급 헬게이트를 상대로 저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선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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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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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회 제사장
등록일 2026-07-19 | 조회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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