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6회 초인들의 세계 Ch 13. 차신해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8.19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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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갈색에 가까운 주황색 머리를 한 남자가 문 앞에서 주저하였다. 며칠간 그는 무언가를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평범한 음식점을 운영하는 어느 평범한 가족, 이 집 부부에게는 외동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외동아들이 바로 지금 그가 감시해야만 할 대상이었다.
‘특별한 구석도 없는 친구 같은데? 왜 굳이 이런 일을 맡겼지?’
고급 인력인 자신을 엄한 일에 부려 먹는 그 작자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빚진 일들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수년간 인류연합 소속 휴먼 솔져로 살아오면서 온갖 가상 전투와 임무를 전전하던 고달픈 삶. 그런 생활을 끝마치고 지구 시민권을 받아 이제야 정착하는가 했더니 또다시 이런 용역 노릇이라니.
‘두 번 다시는 안 받아준다.’
마침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식당 안에는 사람이 많았다. 실내 공간으로 들어가자 인상이 좋은 한 아주머니가 활짝 웃으면서 주문을 받아주었다. 주방 안에서 분주히 일하는 남자는 그녀의 남편으로 보였다.
‘남편 쪽이 상대적으로 너무 젊은데?’
상식적으로 두 부부는 결혼할 만한 연령 조합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설마 초인들과 같은 부류?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만일 그랬으면 고작 이런 데서 일하고 있지는 않았으리라.
‘하긴 알 게 뭐야. 나도 참 오지랖만 넓어서 탈이지.’
그는 일부러 비싼 메뉴를 시켰다. 미식가인 그는 원래 음식점에 들어갈 때마다 맛이나 조리 상태를 철저히 평가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는 직업병 때문이었다. 그는 솔져를 관두고 지구에 정착한 후로는 본래 좋아했던 요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내 천재적인 실력으로 승승장구하여 지금은 제법 촉망받는 인재가 되었다. 현재는 잠깐 일을 쉬고 있지만, 조만간 돈을 모아 정착한 후 이곳 근방에서 자기만의 레스토랑을 차릴 계획도 있었다.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젊은 청년이 식판을 실어 날라 그의 탁자 위에 놓았다. 부모님 가게 일을 돕는 그 아들 녀석이었다. 아버지와 외모가 비슷하긴 한데 초절정 미남인 부친과 비교하자니 꽤 뒤처지는 편이었다. 연령은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손님, 혹시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청년이 주황머리 사내, 차신해에게 질문했다. 아마도 신해가 자신을 자꾸 주시하는 것을 은연중에 눈치챈 모양이었다. 자신이 프로답지 않게 실수한 것을 깨달은 신해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별일 아닙니다.”
“네, 그럼 맛있게 드시죠.”
청년이 밖으로 나가자 신해는 조용히 뒤를 살폈다. 기계 장비를 이용한 도청이나 감시는 안 된다고 지시받았기에 가급적 집 근처에서만 행동반경을 살필 생각이었다. 그래서 며칠간은 그를 감시하기 좋게, 일부러 등하교 시간에 맞춰 식당을 방문했다. 최대한 손님으로만 보이도록 주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후 수업 다녀올게요, 엄마.”
“그래, 길 조심하렴.”
감시 대상자인 강윤혁은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바깥으로 나갈 채비를 마친 채였다. 신해는 식사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윤혁을 따라 나갔다. 청년은 굉장히 주변을 경계하는 것 같아 보였다. 지나치게 신경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미행하다가는 들킬 것 같은데. 아니야, 그래도 뭐라도 건져야 해.’
신해는 최대한 신중히 윤혁을 뒤따라갔다.
윤혁은 길을 갈 때 의식적으로, 아니 강박적으로 주변에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 쪽으로만 이동하는 것 같았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일단 주의집중을 놓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였다.
그때 신해는 수상한 기운을 느끼고 멈칫했다.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정확히는 경찰관 로봇들이 행인들 사이를 자연스럽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인파 속에 적당히 섞여 있었는데 점차 그 수가 늘어나는 중이었다.
‘저건 액체 금속을 통한 변신 기능을 갖춘 녀석들인데?’
본래는 잠복근무를 위한 능력.
무장 수준은 그리 높지 않지만, 일반인에게는 위협적인 존재들이다.
그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계속해서 모습을 시나브로 바꿔가며, 윤혁 주변에 몰려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럿이서 미행하는 듯한 기색을 안 보이려고 일부러 불규칙하게 주행 방향을 바꿔가며 이동하고 있다. 어찌나 교묘한지 미리 간파해두지 않으면 깜빡 속을 정도였다.
더욱이 신기하게도 점차 청년 주변에서 사람들이 줄고 있었다.
마치 자동 항법 장치들이 일부러 청년을 피해가도록 유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강윤혁, 대체 뭐 하는 녀석이지?’
신해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조용히 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
윤혁은 수상한 기척을 느꼈다. 주변에 행인들은 많이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시감이 느껴졌다. 마치 비슷한 상황을 반복해서 겪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가 어렴풋이 조직적인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는 일부러 잠시 멈췄다. 그리고 주변 소리에 귀 기울였다. 얼추 상황이 명확해졌다. 누군가가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이.
‘위험해!’
곧장 그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전에 겪었던 몇 차례의 위협들을 기억하고 있는 그의 몸이 극도로 교감신경을 활성화했다. 윤혁은 생전 한 번도 내본 적 없는 엄청난 속도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퍼억.
신체적으로 윤혁보다 훨씬 더 우월한 무언가가 뒤편에서 도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둔탁한 타격음이 머리에 울려 퍼졌다. 얼얼한 통증과 함께 땅바닥이 코에 닿았다. 위에서는 짓누르는 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크윽”
방심했다. 설마 사람 모양으로 위장하고 접근하는 로봇들이었을 줄이야.
‘도대체 저런 걸 어떻게 간파해?’
곧 로봇들이 차가운 음성을 내뱉었다.
{대상 검거 완료했습니다. 주변에 인간 반응 없음을 확인.}
{특수 프로세스에 의해서 판단 작업을 시작합니다.}
{율법 조항에 저촉되지 않는 근거 하에서 무력화 혹은 처리를 시작합니다.}
{'위협 요소‘를 특수 법에 근거해 즉결 처분할 허가를 요구합니다.}
{중앙 연산에 근거한 허가 완료.}
“시끄러워! 도대체 너희들은 왜!”
분노한 인간의 목소리는 감정 없이 차가운 기계의 소리에 허무하게 묻혔다. 외양과 목소리는 인간을 모방했으나 그 실체는 악의로 가득 찬 프로그램들일 뿐이었다. 게다가 일반인을 아득히 뛰어넘는 괴물 같은 육체 능력 탓에 일개 인간은 저항할 방도가 없었다.
{처분.}
보안관 로봇 하나의 손 한쪽이 액체 금속 변환 프로세스를 거쳐 단단한 창으로 변환되었다. 창은 나노 재질의 신물질이 덮이면서 빛을 발했다. 온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이번에만큼은 대응할 틈이 없었다.
‘피할 수 없어.’
빠르게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콰드득.
그런데 다음 순간 홀연히 머리 위의 압력이 사라졌다. 대신 무언가가 부딪히는 굉음이 들리더니 풍압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로봇이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이윽고 연속적인 타격음과 함께 이번에는 폭발음까지 들렸다.
“기계들이 감히 법률을 어기고 인간을 공격해?”
뒤를 돌아보니 팔다리에 나노슈트 일부를 두르고 있는 체격 좋은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윤혁을 공격한 개체를 으스러뜨렸다. 이후 로봇들을 압도할 빠른 움직임과 무술로 여러 개체를 제압해버렸다. 마치 수십 년간 수련해온 무술 고수처럼 군더더기 없는 모션이었다.
‘말도 안 돼!’
아무리 슈트를 일부 장착했다지만 완력으로 초강도의 로봇 몸체를 부수어 버린다고? 눈으로 보고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단순히 강화 슈트의 도움만으로 해낼 수 있는 솜씨가 아니다. 전문적으로 훈련된 전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어이, 이봐!”
주황머리 남자가 날카롭게 말했다.
“네, 네? 저 말씀인가요?”
“여기 너랑 나 말고 인간이 누가 있는데?”
영문도 모르게 구조된 윤혁은 그 남자만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너 무슨 범죄 저지르거나 한 건 없는 거 확실하지?”
아마 이번에 날뛴 로봇이 범죄자 제압 용도의 경찰 로봇이라서 윤혁이 의심스러운 듯했다. 하지만 경찰 로봇은 절대로 이런 무차별적인 습격을 가하지는 않음을 신해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판단하기에도 이번 사태는 이변이었다. 윤혁에게 묻는 질문은 단지 형식적 절차상의 확인일뿐이었다.
“저는 억울합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윤혁은 확실하게 항변했다.
“하긴, 설령 범죄자라도 사살이 아니라 무력화 제압이 옳지.”
남자는 차가운 눈초리로 남아있는 경찰 로봇들을 바라보았다.
“그 말인즉, 저 금속들이 지금 미쳐 날뛰고 있다는 뜻이겠군?”
대답을 듣자마자 신해는 굉장한 속도로 도약했다. 팔 일부를 덮은 슈트가 확장되더니 전신을 둘렀다. 이윽고 신해는 달려드는 로봇들을 백정처럼 도륙했다.
‘기, 기계보다 강력한 인간이라고?’
최고의 전쟁 전문가, 솔져.
전직 군인의 무서운 전투력 앞에서 윤혁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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