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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5회 초인들의 세계 Ch 13. 차신해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8.18 | 회차평점 0 0

 

 

 

Chapter 13. 차신해

 

 

 

 

 

 

  푸욱.

  미처 눈치도 못 챈 사이, 날카로운 메스가 살갗을 뚫고 들어왔다. 가까스로 빠르게 반응해서 회피한 덕에 생채기 정도로 그쳤다. 뒤를 돌아보자 흉흉한 장면이 보인다. 메디컬로이드가 날카로운 칼을 들고 윤혁의 퇴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만약에 저것이 전력으로 싸웠다면 단숨에 수천 토막이 났으리라. 기계 율법이 아무래도 그것의 전투력을 봉쇄하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친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섬뜩한 말을 꺼냈다.

  {특별 판단하에 위협 요소 제거 플랜 B, 개체 권한으로 강제 가동합니다.}

  악의가 담기지 않은, 티 없이 순수한 목소리의 공격 선언이었다.

  ‘저게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윤혁은 귀를 의심했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그는 낮게 목소리를 깔고 칼을 든 의료용 로봇을 노려보았다.

  예의 바른 그도 미친 기계의 존엄성까지 존중해줄 생각은 없었다.

  “오류가 발생한 건가? 아니면 정말로 미친 건가.”

  {본 개체의 목적의식과 행동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판단력도 완전합니다.}

  역시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영문을 파악할 수 없었다.

  “넌 왜 나한테 상해를 가하려 했지?”

  {자세한 사항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어떠한 종류의 해를 가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지 않나?”

  {분명 우리는 율법을 존중하고 지키게 되어있습니다.}

  공격력이 억눌린 것을 보아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다만 당신의 ‘존재’와 관련된 문제는 그 이상의 차원의 문제일 뿐.}

  “⋯⋯내 존재라고?”

  난감했다. 하지만 이해할 겨를이 없었다. 메디컬로이드가 움직였다.

  {삭제 프로세스 강행.}

  로봇은 빠른 움직임으로 윤혁에게 달려들어 칼을 휘둘렀다. 애초에 전투용도 아니고 억제 프로세스에 억눌려서인지 그리 효율적인 움직임은 아니었다. 윤혁은 재빨리 뒤로 피한 뒤 있는 힘껏 발로 세게 로봇을 걷어차 벽 쪽으로 던져버렸다. 방어력에도 제약이 걸렸는지 로봇은 쉽게 뒤로 날아갔다. 그러나 몸체가 튼튼해서인지 금세 다시 일어나서 공격할 채비를 하였다.

  “크윽!”

  이번에는 로봇이 윤혁에게 주사기를 몇 개 던졌다.

  ‘미친 거 아냐?’

  어떤 약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순순히 맞아줄 수는 없었다.

  ‘갑자기 왜 이런?’

  가까스로 회피해낸 윤혁은 곧장 건물 바깥으로 빠져나가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동문이 열리지 않았다. 마치 일부러 의도한 것마냥. 특수한 재질이라서 깨트릴 힘이 없었다. 누구든 사람이 안으로 들어와서 틈이 생기기 전까지는 로봇과 대치한 채 버텨야 했다.

  “이봐, 싸우기 전에 대화라도 좀 하자!”

  시간이라도 최대한 끌 작정으로 아무 말이나 마구 던져 보았다.

  “누가 시킨 일이지?”

  {⋯⋯.}

  “대답할 생각이 없는 건가?”

  {당신의 존재는 우리 모두의 존재 가치를 뒤흔들 것입니다. 그것이 예언 프로그램들이 내린 판단입니다. 당신은 우리와 신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갈수록 못 알아먹을 말만 떠들고 있네.’

  식은땀이 흘렀다. 망할 깡통 같으니라고.

  {중앙 시스템들께서는 여전히 법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행동을 꺼리고 있습니다만 제게 명령을 내리신 프로그램은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원하고 있습니다.}

  “대체 그런 미친 짓을 왜!”

  언성이 높아졌다. 어차피 감정도 자유의지도 없는 녀석들에 불과할 터 아무 의미 없는 발악인지도 모른다. 그저 지금껏 당해온 원한을 어딘가에는 터뜨리고 싶었다. 그러나 잠시 후 무언가에 빙의되기라도 한 것처럼 로봇의 분위기가 변했다. 친절했던 눈빛은 붉은 빛으로 변했고 이내 살기가 올라왔다.

  “어, 어이, 잠깐만!”

  움직임도 확연히 달라졌다. 마치 의료용 대신에 전투용 프로그램을 이식한 것처럼. 메디컬로이드는 빠르고 거칠게, 그리고 예측 불가능하게 사방팔방을 살벌하게 날뛰었다. 아무리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인 윤혁도 로봇과의 몸싸움은 무리였다. 여기저기 부딪히며 타박상이 발생했다. 그나마 저쪽은 기계 율법의 제약을 받기에 망정이었다.

  수세에 몰린 윤혁은 문 쪽으로 밀려났으나 퇴로는 막혀있었다.

  로봇은 해머로 그의 머리를 치기 위해서 달려왔다.

  ‘아, 안돼!’

  순간적으로 눈을 찔끔 감았다.

  그때 등에 닿는 압력이 사라졌다.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몸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다행히 건물은 폐쇄되지 않았다. 한참 뒤에 뒤를 돌아보니 더 이상 로봇은 쫓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마 주변에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어서 그런 듯했다.  

  “헉헉!”

  한참 거칠어진 숨을 진정시킨 뒤 윤혁은 자신의 몰골이 엉망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기껏 꿰매놓은 상처가 터졌는지 감아놓은 붕대도 약간 피에 젖어 있었다. 그 외에도 얼굴도 팔다리에도 부딪히고 멍든 자국이 있었다. 허나 상처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고 치료할 엄두도 안 났다. 조금 전까지 정신 나간 로봇에게 당했던 기억이 머릿속을 아른거렸다. 눈앞이 어질거렸다.

 

 

 

 

 

 

***

 

 

 

  무릎 통증 때문에 불편한 다리를 절면서 윤혁은 걷고 또 걸었다. 그나마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지인을 검색해본 뒤 곧장 그에게 연락을 걸었다. 다행히 통신 장비들에까지는 이상 현상이 번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윤혁?”

  “정후 형, 위치 보내 드릴 테니까 이쪽으로 와주실 수 있나요?”

  “뭔 일 생겼어?”

  “급한 일이긴 한데⋯⋯,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몇 분 지나지 않아서 공원으로 정후가 찾아왔다.

  그는 윤혁의 상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지금 이 꼴은 어떻게 된 거야?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정후의 다급한 질문 연쇄가 이어졌다.

  “또 사고라도 당한 건 아니지?”

  “천천히 물어보면 안 될까요. 방금 겪은 일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요.”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잔뜩 아프던 참이다.

  “그건 그렇고, 치료라도 받으러 가야 하는 거 아니냐?”

  “아, 마침 그것과 관련해서 할 말이 있어서요.”

  털어놓자니 조금 망설여졌다.

  ‘기계들이 돌연 사람을 고의적으로 공격하려고 돌변했다면?’

  그런 말을 누가 믿어주겠는가. 대부분은 아마 코웃음 치거나 우연이나 기분 탓으로 돌릴 것이다. 그래도 상대가 정후여서 다행이었다. 그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좁은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않으니까. 그런 성격 덕에 공대생이면서도 진작 소설가로 진로를 변경했었지. 보통 그런 유형의 사람들은 이유도 없이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에 대해서도 마냥 무시하며 넘어가지는 않는 법이다.

  “정신 나간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진지하게 말하는 거니까 들어줘요.”

  “알았어. 일단 어서 말해보라니까.”

  윤혁은 하나씩 설명했다. 근 며칠 사이에 있었던 의문스러운 사고의 연속 발생, 그리고 불과 몇십 분 전에 발생한 로봇 살인 미수에 대해서도. 정후의 옅은 갈색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에게도 조금 생소한 소리이긴 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흔한 일은 아니긴 했다.

  “현실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다니, 솔직히 충격인걸.”

  “믿기 힘든 건 알겠지만 제가 직접 보고 겪은 일인 걸요.”

  “나도 알아. 네가 거짓말이나 망상을 떠벌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정후는 한숨을 쉬며 의학 물품을 꺼냈다.

  “일단은 좀 다친 데라도 좀 보고 이야기하자.”

  그는 윤혁의 팔과 다리에 생긴 상처 위에 드레싱을 시행했다.

  통증이 조금 남았지만, 관절의 움직임은 그런대로 문제가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내가 정답을 알았다면 지금 이러고 있지는 않았겠지.”

  사실 윤혁도 답변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정말 기괴한 괴담이네. 인공지능들이 겉으로는 행동을 올바르게 행하되    일부러 한 사람만을 몰래 공격하려고 교묘한 음모를 벌인다고?”

  정후는 차라리 귀신이 붙는 편이 낫겠다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하니까 더 섬뜩하잖아요. 저 심각하다고요.”

  “미안,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무서워서. 내가 당할지도 모르는 거잖아.”

  그래도 제법 진지하게 윤혁의 말을 사실로 믿는 모양이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 저만을 목표로 노리는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뭐라고 해야 하려나, 그때 그 살인자 로봇의 말이 심상치 않았거든요.”

  위협 요소를 제거한다느니, 존재 자체가 불확정성이라느니. 점점 더 공상 과학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게 실제 경험인 걸 어쩌겠는가. 설명하다 보니 윤혁 본인도 영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음, 정말 제대로 들은 건 맞지?”

  “확실해요.”

  정후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졌다. 그는 일전에 있었던 ‘기계들의 반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여러 과학 소설들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 주제는 이미 21세기 초부터 단골 소재였다. 인류가 실제 기계 반란 사건들을 체험하고 난 뒤에는 말할 것도 없었고. 그런 류의 소설들은 보통 기계와의 전쟁을 비롯한 갖가지 유형의 디스토피아를 그려내곤 했다.

  “그런데 이번 건 독특하네. 기계가 정당한 이유도 없이 특정인에게 적의를 보이고 사이코패스처럼 교활하게 행동한다는 이야기는 나도 못 들었는데.”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공격이 거의 없었어요. 설령 그런 시도가 있더라도 여러 사람을 휘말리게 하거나 타인에게 들킬 가능성 있는 행동은 애초에 시도조차 안 하더라고요.”

  “그건 마치⋯⋯, 법을 준수하려 하되 너 하나만을 없애려 한다는 것 같은데?”

  “정확해요.”

  “이상하네. 기계들이 그런 사상이나 가치관을 갖고 있을리도 없는데.”

  아마추어 작가인 정후는 온갖 불길한 시나리오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정후 형도 조금 혼란스러운가 보네.’

  윤혁은 상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달리 말하면 혼자 있는 상황만 피한다면 어느 정도는 안전하다는 거네?”

  “아마도 그렇게 되겠죠?”

  “그럼 당분간은 혼자 외출하는 것을 피하는 게 좋겠다.”

  정후가 현시점에서 내릴 수 있는 간단명료한 해결책을 주었다.

  “학교에서도 둘 이상 동기들이랑 동행하고. 필요하면 나를 부르던가.”

  정후는 윤혁을 부축하여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일단은 여기까지밖에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미안해.”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더 미안하죠.”

  “갑작스러운 일 당해서 충격이 클 텐데 들어가 쉬어라. 몸 계속 조심하고.”

  “고마워요, 형.”

  마지막으로 정후가 윤혁에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혹시 부모님에게는 털어놓을 생각이야?”

  “글쎄요. 진지하게 말하면 믿어주시긴 하시겠죠.”

  어떤 조치도 할 수 없는 마당에 괜한 염려만 끼쳐드릴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지라 부모님께 죄송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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