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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5회 초인들의 세계 Ch 17. 초인들의 사회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8.29 | 회차평점 0 0

 

 

 

 

 

***

 

 

 

  수상한 두 사람이 방문한 이후로 며칠이 더 지났다.

  눈에 띌 사건이나 탈은 없었다. 하지만 윤혁의 마음은 썩 편하지 않았다. 다행히 여느 때처럼 일상은 잘 흘러갔다. 그는 학교에 다니며 연구실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틈틈이 시간을 내어 체육관에서 운동하였다. 체육관에서 찬영을 종종 마주쳤는데, 이제는 제법 가까워졌다.

  랩 동료들과 기계 공학과 동기들은 제각기 바쁜 일정을 보냈다. 시험, 진로 탐색, 공부, 연구 프로젝트로 인해 정신없는 것 같았다. 물론 윤혁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상에 집중하니 복잡한 생각이 줄어들어서 차라리 한결 낫긴 했다.

  매체들은 연신 혁신적인 발명, 우주 정복 이야기, 세계 통합을 향한 흐름, 그리고 곧 도래할 우주 시대 소식들을 전했다. 혹자는 ‘미래는 이미 도래했지만 단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말이 했다. 그 말은 온당하다. 아마 현재 대중이 아는 건 이미 도래한 문명의 극히 일부분이리라.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일부는 기대감을 부풀렸고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지금껏 변화가 도래할 때마다 항상 이런 일이 있어왔으니 새삼 새로운 것은 없었다. 누군가는 적응해 살아남고 누군가는 도태될 것이다.

  ‘거스르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지.’

  어차피 문명의 무서운 발전 속도와 그 변화의 여파를 벗어날 길은 없다.

  노동력은 기계들의 손에 넘어간 지 오래다. 여러 항성계들이 자원 기지로 개척되었고 그 덕에 경제 체제도 대대적으로 격변했다. 게다가 이미 우주에서 살아가는 주민들도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이 모든 일을 주도하는 진짜 주역, 무시무시한 초인들.’

  현재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진정한 실세는 그들이리라. 그들은 앞으로도 더욱 빠른 속도로 변화의 흐름을 가속할 것이다. 문득 삶이란 변화와 불확정성의 연속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하리라. 확실한 것은 단 한 가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 뿐이었다.

 

 

 

 

 

 

***

 

 

 

  윤혁의 건강 상태는 제법 좋아졌다.

  그동안은 여러 번의 부상에 더해 사고의 충격이 겹쳐지는 바람에 잠을 충분히 못 이루어 몸 상태가 나빴었다. 다행히 며칠 사이에 예전 생활 패턴을 되찾아 회복했다. 빠른 회복력과 적응력은 그가 자랑하는 장점 중 하나였다.

  윤혁은 종합평가시험을 마친 후 오래간만에 여유로워진 태헌과 만났다. 그는 아직 트라우마의 기억으로 인해 회복이 불완전한 윤혁의 상태를 제법 빠르게 눈치챘다. 만나자마자 그는 후배를 위해 이런저런 걱정의 말을 꺼냈다. 그리고 이어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가져왔다.

  “저번에 말했던 대로 조사한 케이스 리포트야.”

  홀로그램 논문이 쭉 펼쳐졌다.

  “엔진 폭주 사고란 게 대개 무인화 시설에서 벌어져서인지, 찾을 만한 케이스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어. 대부분은 일반 화상에 준한 치료를 받았다더라고. 방사선 피폭이란 문제가 있긴 하지만 앞으로는 분자 단위의 조작도 가능하니까 크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

  그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의학 용어들을 풀어 설명해주었다.

  결론만 요약하면 당장 현 의학 수준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고 한다.

  “시험 준비하느라 바쁘셨는데도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뭘 이런 것 가지고.”

  기뻐하는 윤혁에게 태헌이 한 마디 덧붙였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케이스가 있긴 했는데 말이지.”

  케이스 리포트 목록 중 질병이 발생한 건 아니지만 조금 이상한 변화를 겪은 케이스가 있었다. 생물학자보다는 물리학자가 더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였다. 특수한 에너지에 노출된 피해자 중 신체를 구성하는 원소가 소립자 단위로 성질 변화를 일으킨 경우가 있었다고 하였다.

  “난 물리학 전문은 아니야. 아마 이 분야는 네가 더 잘 알지도? 참고로 이 사람의 경우 전신 입자의 속성이 일제히 개변됐어. 초끈 진동수에 반전이 생겼다고 해. 웬만한 천재가 아니면 이해하지도 못하는 내용이더라.”

  태헌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파일을 펼쳐보았다.

  윤혁도 그 파일을 찬찬히 보았으나 역시 잘 모르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그 사람은 외부의 물질을 흡수했을 때, 그러니까 호흡이나 섭취를 통해 물질을 흡수했을 때 기존 물질과 외부 물질이 전혀 충돌을 빚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이게 물리학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모르겠어.”

  윤혁도 태헌도 그 의미를 골똘히 궁리해보았으나 알 도리가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질적 물리계의 존재로 반전된 게 아닌가 싶어.”

  “신기하네요.”

  “다시 말하지만 난 이 분야에는 별로 조예가 깊지 않아.”

  “사실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일단 지금의 윤혁은 건강상으로는 별다른 문제 없이 잘살고 있다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이상 케이스와는 상황이 다르리라. 태헌은 윤혁이 쓸데없는 걱정하지 않도록 마무리를 지었다.

  ‘잠깐, 태헌 선배가 알려준 케이스, 조금 낯익은 개념인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약간 유사한 개념을 어디선가 들어본 듯했다.

  ‘다중 우주 속에서 인간이 생존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였지?’

  인간이 사는 현 우주는 모든 물리적 법칙이 인간 생존에 적합하도록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만약 현 우주와 법칙이 다른 우주들이 여럿 존재한다면? 과연 그 우주들의 물리 법칙은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조건일까?

  만일 임의의 모든 우주들이 ‘우리 우주’와 동일한 법칙 및 물리 상수를 갖는다면 별로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각기 다른 법칙과 상수를 갖는다면? 그때에는 오로지 우리 우주만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리라.

  그런데 만일 미묘한 법칙 차이가 존재하되 인간이 생존할 수는 있는 우주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곳에 인간이 건너간다면? 그때는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도 바뀔까? 바뀐 물질들은 새로운 법칙에 적응하게 될까? 그게 가능하다면 그 몸은 화학적 구조는 동일하되 구성 입자 개개의 물리 속성만이 반전된 상태가 되려나? 공상 과학에 가까운 이야기긴 해도 나름 흥미로운 주제여서 자세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재미있는 이야기이네요. 어쨌건 고마워요, 선배.”

  “그래. 그럼 이왕 만났으니 같이 식사나 가지?”

  태헌은 저번에 챙겨주지 못한 걸 갚겠다며 좋은 식당으로 데려가 저녁을 대접했다. 윤혁은 여러 번 얻어먹기 미안해 거절하려 했지만, 몸보신이라도 하라며 설득하기에 하는 수 없이 따라갔다. 다행히 만찬은 제법 괜찮았다.

  그리고 그 시각, 저 멀리 대기권 바깥에서 그들을 관찰하는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는 위성 이상의 관측 장비가 달린 눈으로 윤혁을 내려다보았다.

  “저 형인가? 생각보다 평범하게 생겼는데?”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대기권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뭐 직접 만나보면 알겠지?”

  그는 아무 보호 장비도 교통수단도 없이 대기 권역을 가로질렀다.

 

 

 

 

 

 

***

 

 

 

  야경이 밝게 비쳤다. 빛의 향연이 도시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사람이 만든 인공의 빛들이 자연의 별빛들을 가린 탓에 밤하늘의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사실 지구 대기권 전체는 실드와 배리어의 캡슐로 둘러싸여 있기에, 저 별빛마저도 인공으로 만들어낸 것이긴 했다.

  저 별들을 아름다움이나 경탄의 대상이 아닌 에너지 채굴 대상이나 자원 덩어리로 여기는 이도 있으리라. 자연에 대한 경탄은 사라지고, 탐욕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이미 지금도 우주는 그렇게 개간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친 뒤 산책 겸 한적한 도심을 거닐었다.

  “선배가 사는 도시는 여기서 조금 떨어져 있지 않나요?”

  “별로 멀지는 않아. 내 차 타고 가면 금방이거든.”

  “저도 빨리 운전면허 따야겠네요.”

  둘 다 별 일정이 없는지라 간만에 여유를 만끽했다.

  “오늘 내가 했던 말은 별로 크게 신경 쓰지 마.”

  태헌이 툭 던지듯 말했다.

  “특이 케이스 말인가요.”

  “응. 고민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면 쓸데없이 걱정할 필요 없으니까.”

  태헌의 가장 큰 장점은 사실 뛰어난 두뇌가 아니었다. 머리도 있지만, 그보다는 상대의 심중을 잘 파악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윤혁이 고교 시절 그를 신뢰했던 이유도 그 덕분이었다. 장차 의사가 되면 그 공감 능력과 사려 깊은 성격 덕분에 잘 나가지 않을까? 윤혁은 그가 그 재주를 올바로 쓰기를 바랐다.

  “저도 크게 걱정은 안 해요.”

  “다행이네.”

  그때였다. 낯선 기운이 느껴졌다.

  둘은 뭔가를 느끼고 멈춰 섰다.

  그리고 이내, 사방을 둘러싼 야경의 빛들이 변했다. 색조도, 강도가 전부 변했다. 따뜻한 붉은 색 계통의 빛은 줄어들고 대신 차가운 빛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한적해졌다.

  ‘한 이십 분 전만 해도 행인은 간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단 한 사람도 근처에 없는 듯했다. 이상하리만큼 공기가 낯설고 싸늘하게 느껴졌다. 태헌 역시도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 표정이 굳었다. 위험한 일을 몇 번 당해본 윤혁은 가슴을 진정시키고 냉정하게 주위를 살폈다. 여차하면 빠르게 도망쳐야 하리라.

  “윤혁아?”

  “선배도 느껴지시죠?”

  “그, 그래. 어서 빨리 벗어나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때 저 위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안녕.”

  둘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위를 바라봤다. 10m 정도 상공에 한 사람이 있었다. 말 그대로 장비도 없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각도인지라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신장이 대단히 크고 어깨가 넓은 거구였다. 나이는 윤혁보다 조금 어려 보였지만 몸만 봐도 굉장히 힘이 강해 보였다.

  “헤에.”

  그는 회색 머리와 잿빛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얼굴은 조금 순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 기운은 몹시 사나웠다. 긴 코트와 정장처럼 보이는 제법 멋들어진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재질이 이질적 물질처럼 느껴졌다. 마치 우주 전용 슈트처럼 빛을 반사하며 은은한 섬광을 뿜고 있었다.

  “검은 머리 형 쪽이 강윤혁이구나?”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수상한 자의 갑작스러운 출현.

  윤혁은 긴장하며 온몸의 근육을 팽팽하게 조였다.

  ‘저 사람은 초인일까? 아니면 휴먼 솔져?’

  “워, 워, 긴장할 것 없어. 싸우거나 해치러 온 거 아니야.”

  그는 실실 쪼개면서 윤혁을 향해 미소 지었다.

  “굳이 말하면 보호해주는 쪽이지? 형 지금 엄청 곤란한 상황이거든.”

  그 남자는 태헌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내가 뭣 하러 약해빠진 형을 공격하겠어?”

  윤혁은 조용히 이를 갈았다. 분하지만, 자신은 그의 자비 위에 서 있었다.

  ‘대강 느껴진다. 저 사람, 신해 형보다도 훨씬 강해.’

  직감이 선명하게 외쳤다.

  그러고 보니 내내 남자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정신이 팔려 잊고 있는데, 그 사람은 공중에 발판도 없이 떠 있었다. 비행 능력일까? 어쩌면 아무런 추진 없이도 자연스럽게 떠 있는 것으로 보아 반중력 장비 쪽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가벼운 상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무튼 반가워. 편하게 ‘룩’이라고 불러줘.”

  그 남자는 히죽이면서 말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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