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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7회 초인들의 세계 Ch 18. 세력 격돌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8.31 | 회차평점 0 0

 

 

 

 

 

Chapter 18. 세력 격돌

 

 

 

 

 

 

  {“인간도 아닌 생체병기 따위가 감히.”}

  금색의 단발머리를 한 소녀 형태의 인형이 부르르 떨며 외쳤다.

  “같은 초인들 사이에서도 인종 차별이라니. 평범한 인간의 미개한 사고력을 뛰어넘었다고 자부하면서 정작 편협함은 인간과 다를 게 없네. 참 우습지.”

  힘도 뒤떨어지는 주제에 생물학적 기준으로 차별하는 구세대 놈들. 룩이 자신을 만들어낸 족속 다음으로 혐오하는 무리였다.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말이야.”

  침착했던 표정이 점점 험악함을 띠기 시작했다.

  “킹께서 당신들을 쓸어버리려는 것도 이해가 가.”

  룩은 슈트의 손 부분을 고열로 데운 다음 금발 인형의 머리통을 곧바로 잡아 뜯었다. 딱히 룩의 움직임이 빨라서는 아니었다. 마치 자기장에 이끌린 것처럼 인형이 그의 손에 강제로 끌려왔다.

  “나를 만든 것도 당신들 같은 2세대들의 욕망이었지.”

  룩은 인형의 머리를 붙잡고 눈을 강제로 마주쳤다.

  양쪽 눈에 동일한 문양이 나타나면서 빠르게 데이터를 스캔했다.

  이 순간 룩은 강제 접속과 해킹을 동시에 진행하는 중이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아, 케레스 딜런? 보잘것없어서 잊어버릴 뻔했어.”

  {“빌어먹을!”}

  “당신도 예전에 그 일에 연루되었던 것 같은데, 용케 잘 피해 갔네.”

  {“생체병기 주제에!”}

  콰드드드득.

  룩은 금발 인형의 머리통을 악력만으로 부수며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 형이랑 의사 형씨? 이제 좀 놀 생각인데 되도록 멀리 떨어지는 게 어떨까? 배리어(Barrier) 있으니까 안전 걱정은 말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다른 놈들이 들러붙을지도 모르니까 조심하라고.”

  룩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두 사람 쪽으로 벌레 무리 같은 것이 빠르게 날아왔다. 그것들은 둘 주위를 빙빙 두르더니, 격자 형태의 배리어 필드를 원형으로 펼쳤다. 아마도 초소형 로봇에 배리어 발생 장치를 압축해놓은 것 같았다.

  {“기고만장하지 마라. 비무장 상태로는 당해낼 수 없다.”}

  소의 뿔을 하고 있는 인간 형태의 인형이 중얼거리자 룩은 혀를 내밀며 손가락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내 뒤쪽으로 다섯 기의 전신 갑주를 입은 기사 형태의 로봇이 덤벼들었다. 그들은 형태와 길이가 자유자재로 변형되는 냉 병기를 들고 있었다. 냉 병기는 검의 형태에서 변하여 채찍처럼 길게 늘어져 휘어지더니 룩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무언가에 부딪힌 듯 몸을 뚫지 못하고 검이 재가 되어 바스러졌다.

  “실드도 없는 데도 못 뚫네? 다들 그 정도밖에 안 되나 봐?”

  룩의 얼굴에 용 비늘 같은 것이 투명하게 덮여 있었다.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진 피부 생체 갑옷이었다. 충격파가 발생할 정도의 타격에도 전혀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아, 단순히 단단한 것이 아니라 물리 작용을 상쇄하는 듯했다. 로봇들은 도주하려고 발악했다. 하지만 룩이 그들을 앞질렀다.

  “비무장이라서 안 된다고? 뭔가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순식간에 로봇들의 상반신, 하반신이 분리되었다.

  베거나 때리는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쪽은 휴먼 솔져 나부랭이들이랑 달리 본체 자체가 강하거든.”

  끈적거리는 점액이 로봇들의 상반신과 하반신에서 뿜어져 접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접합이 진행되려던 차에 무형의 고속 검날이 수십, 수백, 수천 번을 가르며 로봇들을 덩어리도 안 보이도록 잘게 쪼개었다.

  “게다가 정보력도 형편없네. 낡은 세대라서 그런가?”

  그는 지구 상공에 띄워진 오비탈 링, 구형 보호막을 미세 조종하였다.

  “킹의 기술력을 발톱의 때만큼만 파악했더라도 도전하진 않았을 텐데.”

  이내 룩은 자신을 포함한 그 자리에 있던 로봇 전부를 상공으로 띄웠다.

  마치 지구의 중력이 역전되기라도 한 양 일제히 모두가 치솟았다.

  “안전한 데 가서 이야기하자고.”

  {“결국, 너는 네 주인의 개가 되기로 작심했군.”}

  보라색의 건장한 성인 남성 형태의 인형이 말을 했다.

  “아, 나름 은혜를 입었기에 따르는 것뿐이야. 계약도 있고 말이지.”

  {“병기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자율성, 자아, 자유, 권리, 존엄성은 챙기지도 못한 채 그저 시키는 대로 파괴나 자행하는, 책임감조차 없는 쓰레기들!”}

  인형의 입을 빌려 원로들이 험악한 말을 던졌다.

  “음, 할 말 다 했으면 진도 나가도 될까?”

  룩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그는 첨단 군용 기계들조차 내기 어려운, 관성을 초월한 변칙적 움직임을 보이며, 수십 기의 인형들의 심장과 사지를 주먹만으로 으깨버렸다. 이어서 초소형 드론 무리가 접근해 해킹 및 게릴라 공격을 시도했으나 이내 룩은 모기 잡듯 손바닥으로 격추시켰다.

  {“결국, 너는 필요성이 다하면 버려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여기던가. 그런데 당신들보다는 오래 버틸 것 같은데.”

  키메라 형태 사이보그형 로봇과 인형 서른 기가 양동 공격을 펼쳤다. 이번에는 조금 전 쓰러졌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에 실드와 고성능 병기까지 탑재한 개체였다. 대기권 안이라서 양쪽 다 제힘을 다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룩 같은 소형 유닛을 요격하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그러나 룩은 그 개체들이 방출하는 빔 공격, 입자탄 공격, 중력파 공격을 손쉽게 피하거나 경로를 왜곡시켰다. 그리고 생체 장갑으로 모든 공격을 받아내면서 한 기씩 접근해 본체 급소를 정확히 부숴버렸다.

 

 

 

 

 

 

***

 

 

 

  그 무렵 윤혁 일행은 도주 중이었다. 그들은 한참을 도망친 이후 추격이 없음을 확인하고 안심하였다. 주변 배경의 빛의 색채도 원래대로 회복되어 있었다. 그제야 숨을 돌렸다. 하늘 위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격전이 벌어지던 것 같았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 아마 처음부터 룩이라는 남자가 일정 공간 전체를 보호하는 결계 같은 것을 미리 설치해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의 결계가 펼쳐지면서 빛이 어두워지고 색채가 변한 것이었으리라. 전자기파의 성질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면 상당히 고위의 법칙 간섭 기술이겠지.

  “선배는 집으로 빨리 돌아가세요. 아마도 이 도시 주변에 온갖 감시가 쏠릴 것 같은데 계속 여기 머물러 있어봤자 좋을 게 없을걸요. 저는 남을게요.”

  “괜찮겠어? 아까 말하는 걸 들어보니 네가 표적이던 것 같던데.”

  “어차피 피한다고 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윤혁은 각오를 굳히고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선배는 휘말리지 마세요.”

  “알겠어. 조심해라.”

  태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윤혁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는 최대한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 이후 해당 지역을 벗어났다.

윤혁은 제일 먼저 집안을 확인했다. 다행히 누군가가 침투한 흔적은 없어 보였다. 부모님의 안부를 확인한 그는 집에 무슨 사고가 생기거나 수상한 자가 들어오지는 않았는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걱정하던 일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다만 성한이 단서 하나를 알려주었다.

  “한 1시간 전쯤 신해가 급한 일이 생긴 양 바깥으로 뛰어나갔더구나.”

  윤혁은 즉각 신해에게 통신을 시도했다.

  “강윤혁, 내가 보내준 위치로 나와.”

  거친 신해의 음성이 전달되었다.

  “알았어요. 즉시 나갈게요.”

  약속 장소에 도착해보니 신해는 엉망진창의 슈트를 입은 상태였다.

  옆에는 못 보던 사람이 둘 있었는데 둘 다 전신 슈트를 착용 중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기습해온 인형들과 충돌이 있었어. 하급 인형 ‘서큐버스’들이었어.”

  신해가 숨을 고르며 땀을 닦았다.

  “벨 그 인간이 인형 군단을 준비해왔거든. 의도치 않게 부딪혀버렸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근방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바람에 놈의 잠복 세력도 자취를 드러내 버렸어. 덕분에 나하고는 한바탕 격돌이 벌어졌고.”

  듣고 보니 방금 마주했던 룩이 끌어낸 사태의 여파인 듯했다.

  “쓸 만한 무장이 없는 상태에서는 나 혼자서 상대하기 어렵거든.”

  조금 전까지 신해도 인형과 대결 중이었단다.

  ‘잔뜩 애를 먹은 모양이네.’

  신해가 당할 정도면 굉장히 강력한 인형들이었으리라.

  “이기셨나요? 아니면 달아나신 건가요?”

  “열세였지만, 다행히 근처에 동료들이 가까이 있었지.”

  그는 곁에 있는 두 동료 쪽을 가리켰다.

  “즉각 SOS를 요청했지. 협동한 덕에 가까스로 이기긴 했어.”

  왼쪽에 있는 남자는 유진호, 오른쪽에 서 있는 여자는 이리아였다. 신해처럼 이국적인 외양을 한 것으로 보아 그와 마찬가지로 지구 출신이 아니라 우주 쪽에서 온 모양이었다, 동료라고 말한 걸 보아 신해처럼 전직 솔져 출신으로 추측되었다. 입고 있는 슈트가 그 증거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네가 말했던 그 친구로구나.”

  신해와는 달리 유순한 겉모습을 한 흑발의 남자, 진호가 말했다.

  “신기한 일이네. 일반인은 로봇 사건에 휘말리기 좀처럼 쉽지 않은데.”

  옅은 금발 머리의 여자, 리아가 기이하다는 눈초리로 윤혁을 바라보았다.

  “거기다가 초인들까지 개입해서 일을 벌인다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이네요.’

  하긴 윤혁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참 이상했다. 일반인은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하는 일들이 최근 들어서 연달아 벌어졌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저 사람들마저 의아해할 정도니, 자신은 얼마나 더 난감하겠는가. 이런 일들도 어르신 말대로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 때문에 벌어진 일들일까?

  “일단 벨은 단순히 감시만 하려던 참으로 보였어.”

  신해는 조금 전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브리핑해주었다.

  “때마침 저쪽 결계 안에서 싸움이 벌어졌던 것 같아. 벨의 군단은 그에 맞춰서 움직이려던 것으로 보였지. 뭔가에 가로막혀서 실패한 것 같지만. 다만 이번 일로 추후 놈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모르겠어.”

  “저기, 그게 말이죠.”

  윤혁이 브리핑 중 입을 열었다.

  “제가 그 전투지 쪽에 잠시 휘말렸던 것 같은데요, 사정을 말씀드릴게요.”

윤혁은 결계 안쪽에서 돌연 벌어진 만남과 이어진 세력 격돌을 알려주었다. 신해와 리아와 진호는 상위 전투용 인형들이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다만 그들도 룩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했다.

  “짚이는 부분 있어?”

  리아가 동료들에게 질문했다. 다행인지 진호는 추론할 단서가 있는 듯했다.

  “확실치는 않지만……, 바이오닉 솔져겠지. 아마도 맞을 거야.”

  진호가 불확실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바이오닉 솔져라니! 나도 그것들은 아직 한 번도 못 마주쳤는데.”

  리아가 약간 긴장하며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바이오닉 솔져요?”

  또 튀어나온 낯선 이야기에 윤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 우리끼리만 이야기해서 미안해, 윤혁아.”

  신해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

  “우리 솔져들에게도 등급이 있다는 말은 한 번 들었지? 최소 F급부터 최대 A급까지 분류되어 있어. 지위와는 무관하게 순수하게 개인의 전투 역량에 따라서 분류한 기준이야. 휴먼 솔져 중 가장 강한 개체가 최대 A급이지.”

  “참고로 나와 이리아가 B+ 급. 여기 있는 신해 군이 A- 급이야.”

  진호도 옆에서 설명을 거들었다.

  ‘초인에 이어서 솔져들까지 등급인가?’

  윤혁도 솔져 등급에 대해서는 이미 신해에게 대충 설명을 들은 바 있었다. 전투 경험의 양, 무기를 다루는 실력, 전략과 전술에 대한 재능, 틀에 얽매이지는 않는 유연하고 빠른 사고 능력 등을 모두 종합해서 책정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태생부터 기본 S급 이상인 솔져들도 있어.”

  “네? 최대가 A급이라지 않았나요?”

  “보통 인간 출신으로는 불가능하지.”

  S(스페셜)급, SS(더블 스페셜)급, SSS(트리플 스페셜)급, Ex(초월)급.

  이것이 A를 초과한 ‘특별한 솔져’들의 등급 체계였다.

  “그들은 우리랑은 달리 생체병기거든.”

  “통상의 인간 솔져와는 차원이 다르게 강력하지.”

  신해와 진호가 말했다.

  “생체병기라⋯⋯, 그래서 그랬던 거군요.”

  윤혁은 태헌이 말했던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이해하고 불현듯 떨었다.

  “다른 표현으로는 슈퍼 솔져라고도 부르지.”

  신해 일행의 정보에 따르면 그들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개조 인간일 거야.”

  확신하지 못하는 어투로 리아가 대답했다.

  “우리 솔져들에게도 극비 정보인지라 확실친 않지만, 난 그렇게 추측해.”

  태헌은 룩을 보고 생체 에너지 패턴이 이상하다고 말했었다. 먹거나 숨 쉬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존재라고 했던가? 그럼 설마 사람 몸을 개조해서 막강한 병기로 만들어버린 것인가? 무시무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부터 무기로 만들어진 인간인가요? 아니면 후천적으로?”

  “그건 우리도 잘 몰라. 놈들은 소수 정예라서 만난 적이 없거든.”

  “게다가 아까 말했듯 바이오닉 솔져에 대한 정보는 보안 등급이 높거든.”

  전직 휴먼 솔져들의 말을 들은 윤혁은 속에서 구역이 올라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기계가 사람 상대로 월권하는 것도, 기계가 과도한 힘과 지능을 소유하는 것도 기가 막힐 노릇인데, 이젠 생체병기라고? 개조 인간이라고? 사람처럼 생겼고 사람의 자유의지와 정신을 가진 생명체에게 생체 실험이라도 자행했다는 이야기인가? 자신이 제정신으로 들은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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