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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8회 초인들의 세계 Ch 18. 세력 격돌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09.02 | 회차평점 0 0

 

 

 

 

 

***

 

 

 

  정리를 마친 룩은 땅에 내려와 부서진 잔해들을 회수했다.

  “약하네. 너무 시시해.”

  그는 아공간 틈새의 격납고에 그 잔해들을 넣었다. 그리고 로봇 몇 기의 머리통을 들어 올려 자세히 살폈다. 전부 불법 개조된 것들인데다 링크에도 암호가 걸려 있었다. 당장 배후에 있는 자들을 모두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다행히 몇 개는 전투 중에 해킹에 성공했다. 덕분에 본체 쪽에 대한 정보 및 단서를 아주 조금 얻을 수 있었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어쨌건 주인의 바람대로 원로 의회의 불순분자들을 수색할 단서가 될 것이다.

  “킹(KING), 정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곧장 그가 모시는 주인에게 연락 보고를 했다.

  “수고했다. 뒤처리도 깔끔하게 부탁하지.”

  차갑고 이지적인 매혹적인 목소리가 답했다.

  “한국과 근방 모든 국가의 대기권 내에 있는 탐색 장치, 드론, 인형들은 모조리 삭제했습니다. 해킹 프로세스를 계속 진행하면서 추적하겠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해. 수고했다. 남은 일은 내가 처리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덕분에 귀찮은 녀석들을 몰아붙이기 편리하겠어.”

  룩은 묻고 싶은 것은 많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주인 앞에서 얌전히 위치를 지켰다. 번견은 제 위치를 자각해야 귀여움도 받을 수 있는 법이다. 적당히 가까운 행세를 하는 것은 허락되지만 상하 관계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일부러 이렇게 되도록 유도하신 겁니까?”

  “어느 정도는. 덕분에 불순한 의도를 가진 어른들께서 움직여주셨지.”

  “역시나 그랬군요.”

  “네가 나선 덕분에 판을 좀 더 확실하게 키울 수 있었지.”

  그의 주인은 행운이든 불운이든, 어떤 조건이든 항상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재창조해내는 재주가 있었다. 주인은 심지어 가장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것들마저도 주의 깊게 살펴봄으로써 최적의 용도를 끌어내는 분이었다. 그런 사람이기에 버려질 뻔했던 그와 그의 동족도 지금처럼 거두어들였으리라.

  “그 아이를 잘 살펴줘. 제로원에 데려올 때까지는 옆에서 챙겨줘라.”

  “강윤혁을 말입니까?”

  “그래. 확실하게 보호해두는 편이 낫겠지.”

  “저를 경계하던 눈초리던데요.”

  “뭐, 네가 알아서 잘 설명해주고 이해시켜 줘야겠지.”

  “저를 무서워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킹과는 달리 평범한 사람입니다.”

  “살가운 동생 흉내라도 내면 금방 경계를 풀걸? 정이 많은 친구거든.”

  퍽 그러겠군. 룩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며칠 뒤에 함께 오도록 해. 안내 메시지는 따로 보내주도록 하지.”

  주인은 말을 다 마친 후 통신을 종료했다.

  ‘냉철한 것 같아도 쓸데없이 정이 많으신 분이군.’

  과거 룩은 뒤틀린 실험체로 태어나 버려질 뻔했었다. 자신이 태어난 이유도 잘 알지 못했으며, 태어날 때부터 불안정한 정신과 육체를 갖고 있었다. 그저 파괴와 전쟁에 이용되는 비참한 삶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랬던 그가 인류로부터 인간 개체로 규정 받았던 것은 킹의 자비 덕분이었다. 킹과의 계약을 통해서 룩은 일반인과 동등한 권리를 얻었다. 더 나아가 온전한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의 안보와 안정을 지키는 수호자의 책임을 지는 대가로, 안정화된 육신과 더욱 강력한 힘과 막대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말하자면 킹은 그의 주인이자 은인이었다.

  룩을 비롯한 생체병기들은 그분에게서 하사받은 권리들을 선명히 기억하였다. 그렇기에 바이오닉 솔져들은 늘 주인의 모든 명령에 고분고분히 복종했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 우주와 지구 곳곳에 파병되어 다양한 임무를 맡았다.

  이들 생체병기 출신 인간 중에는 초인이 딱 네 명 있었다. 이들은 유전자 조작과 각종 생체 실험을 통해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인간성을 지니고 있었다. 더욱이 그들 넷은 SSS 클래스, 곧 최상위 초인이기도 했다. 자연스레 그들은 인류의 생체병기 중 가장 강력한 히든카드가 되었다.

  넷에겐 지구와 우주를 비롯한 인류 전 영토에 걸쳐 중요한 전략적 임무들이 맡겨졌다. 내부자 견제, 불충한 자들의 심판, 외적의 관측과 전쟁 수행, 기계와 시스템의 폭주에 대한 대응 등 온갖 시나리오의 대비가 그들에게 맡겨졌다.

  룩은 바로 이들 네 명의 최강 전사 중 하나였다.

  넷 중 하나인 룩에 맡겨진 특수 책무는 인류 내부 견제 기능이었다. 그는 인류 통합을 어지럽히려는 세력들을 감시하고 함부로 킹 이외의 개인이 지구 바깥에 영향력을 확대하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수년간 임무들을 수행하면서 한 번도 주인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주인은 신뢰의 표시로 더 막중한 책임들을 맡겼고 번견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주인에게 충성하였고 그 대가로 명예와 존엄성을 선물 받곤 했다.

  그런데 조금 전 룩에게 새로운 임무가 맡겨졌다.

  ‘고작 사람 한 명 돌보는 일이라.’

  지금껏 해왔던 거창한 일들과는 사뭇 다른 부류의 일이었다.

  ‘생긴 건 닮은 것도 같은데, 척 보기에도 성향은 정반대로군.’

  강윤혁은 룩이 보기에는 그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초인은 고사하고 천재조차도 아닌, 그저 그런 일반인.

  ‘킹의 동생치고는 비슷한 점이 거의 없네.’

  룩은 결계를 거둔 후 확보한 데이터를 챙겨 들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

 

 

 

  그날 밤 사건 이후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주에 있었던 격돌에 대해서는 뉴스에서도 사람들의 풍문에서도 전혀 언급이 없었다. 윗선에서 정보 통제를 했던 것인가? 설령 그렇다 해도 아무런 낌새나 증거도 남지 않았다는 건 분명 석연치 않은 점이었다. 생각해보니 애초 그날 그 자리에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도 이상했다. 룩이라는 자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결계를 펼친 원리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완벽하게 지워버렸네.”

  이럴 때마다 아무 힘도 없는 소시민은 허탈한 감정을 느끼기 마련.

  봉변을 당했는데 원인도 모르고 도움을 호소할 만한 곳도 없었다.

  생체병기니 기계들의 이변이니 하는 이야기를 공론화시킨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분명 사람들 사이에서 큰 파문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윤혁 자신이 더 많은 주목을 끄는 리스크도 있다.

  ‘초인이라 불리는 높으신 분들께서 만사를 컨트롤 하는 모양이네.’

  그 초인들이 자기 일생에까지 간섭하는 일은 극구사양이었다.

  ‘일단 현장에서 같이 목격한 사람은 태헌 선배가 유일해.’

  그래서 윤혁은 일단 현장 목격자와 상의를 나누었다.

  “지아에게 부탁해서 과거 기록을 조사해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동기인 지아는 현재 준 프로급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아직 학생임에도 거침없이 사건을 파헤쳐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내는 고수 저널리스트가 된 그녀는 이미 전문가들에게도 크게 뒤지지 않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그녀라면 도움이 되겠지.”

  태헌 역시도 윤혁의 제안에 동의했다. 사실 생체병기에 대해서는 지금껏 공식적인 기록 자체가 없다시피 했으니까. 윗선은 몰라도 최소한 대중에게는 상상 속의 이야기였다. 과거 정보를 파헤쳐 정리해줄 조력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지는 모르겠네.”

  “하긴 조금 위험해 보이긴 하네요.”

  “우리가 이걸 들쑤시고 다니는 게 과연 지혜로운 선택일까?”

  “그래도 당장 우리가 휘말릴 뻔했던 일인데, 알아볼 필요는 있겠죠.”

  태헌은 동의하면서도 불안을 떨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사실 난 내심 더 복잡한 사정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

  그래도 그는 알아볼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한 번 도와주겠다고 했다.

  “생체 실험과 관련된 의학은 워낙 기밀이라서 찾기 어려울 거야. 하지만 데이터베이스를 뒤지면 관련된 근거 자료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 내 나름의 방법으로 공부한 뒤 알려줄게.”

  한편, 윤혁은 지아에게는 메시지를 통해서 연락했다. 자세한 사정은 생략하고 생체 실험 관련 이슈만 질문했다. 다행히 그녀는 뭔가를 아는 듯했다.

  “2040년대쯤에 관련 이슈가 한 번 있었어. 당시 언론이 통제되어서 지금은 의외로 유명하지 않았지만, 어쨌건 꽤 무게가 큰 이슈라고 볼 수 있지.”

  당시에는 아직 네오 오더가 건재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과 맞서 싸웠던 위버멘쉬의 세력은 네오 오더의 뿌리 깊은 악행들을 하나씩 파헤쳤다. 세계 금융 시장을 통해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려 했던 수 세기간의 사기 행위, 생물학 테러, 핵무기 테러, 교묘한 살해 방법으로 강제로 인구 제어를 하려던 시도. 그리고 갖가지 가지 유형의 생체 실험까지, 이렇게 온갖 혐의들이 있었다.

  “전부 발각되었지. 그걸 기점으로 인류연합이 심판 플랜에 들어갔지.”

  압도적 기술력과 정치 전략을 통해 네오 오더를 뿌리째로 제거했다지.

  “핵전쟁 시도도 충격적인데 비밀 생체 실험이, 기가 막히네.”

  같이 현대사 자료를 조사하던 윤혁이 중얼거렸다.

  “그렇지. 실제로 연합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데도 생체 실험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해. 덕분에 많은 과학자들이 그들 편에 붙었지. 악한 자들을 심판해야 한다나 뭐라나.”

  지아는 다른 루트로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윤혁에게는 메일로 몇 가지 추가 자료를 더 보내주었다.

  거기엔 역사책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할 좀 더 심도 있는 사건 기록이 담겨 있었다. 읽어보니 도움이 되었다. 다만 네오 오더 이후 생체 실험이 자행되었다는 기록은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들의 전멸 이후로는 생체 실험이 없었어야 할 터. 실제로 과거 인류연합은 인간을 제조하는 생체 실험을 금지했었다. 그렇다면 그때의 룩이란 사람은 뭐란 말인가.

  ‘연합이 분열되었던 혼돈의 시대 때는 이 규칙이 깨어졌을지도?’

  혼돈의 시대 자료들은 일부러 누가 조직하기라도 한 듯 뒤죽박죽이었다.

  ‘이걸 알아볼 방법은 없으려나?’

  이후 의외의 출처에서 단서를 얻게 되었다. 리온이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정보를 알려주었다. 리온 역시 다른 이로부터 잠깐 스쳐 가듯 전해 들은지라 정확히 아는 사항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윤혁에게는 충분했다.

  “이런 걸 누구한테서 들은 거야?”

  “사부. 내가 어릴 적 이집트에서 살았을 때 만난 분이야. 그때 우리는 국지적 전쟁의 폐허 속에서 힘겹게 살고 있었어. 둘러싼 환경은 척박했고 엉망이었지. 그때 사부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봉사와 구제 활동을 하고 계셨거든.”

  에이든의 친형이란 사람도 리온과 함께 사부라는 자에게 발탁되어 최소 몇 년을 사사받았다고 했다. 철학, 언어학, 수사학과 화술 등 여러 분야의 학문을 말이다. 리온이 선교 여행 시 활용하는 여러 수단과 기술들 역시 사부에게서 배운 지식과 기술들이 다량 함유하였단다.

  리온은 사부에게 들은 극비 정보의 본론을 꺼냈다.

  “혼돈의 시대 때에도 비밀리에서 수많은 생체 실험이 자행되었다더라. 인류연합 붕괴 후 남은 세력 중 몇몇이 그 일에 참여했지. 워낙 철저하게 은폐되어 있어서 일반 대중은 이런 사실을 전혀 알 길이 없었겠지.”

  리온이 현 대륙 정부들과 인류연합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의 생각에 그들은 인류 전체의 번영과 평화라는 근사한 명분을 내세우면서, 모순적이게도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자들이었다.

  “현재의 그들이 과거의 악한 잔재를 제거하고 평화의 시대로 인류를 이끄는 것처럼 보이지. 하지만 잘 모르겠어. 인간의 힘과 야망만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오만한 시도가 과연 그 끝이 좋을 수 있을까?”

  윤혁 역시 리온의 우려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분명 인류의 부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기술 발전 속도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중이었다. 과거에는 심각했었던 여러 문제가 우주 개척과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류는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지 않았다. 도리어 피 바람의 폭풍이 불기 직전 태풍의 고요한 눈 가운데 서 있는 듯한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하긴 현세대는 별들을 인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소유물로 여겼고,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간과했으며, 노동의 가치는 기계들의 압도적인 물량을 내세워 휴짓조각으로 전락시켰지.’

  리온의 말대로 인류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그렇다 한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게 있을까?”

  윤혁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 최소한 가치관을 어디에 둘지는 결정할 수 있겠지. 무한한 성장과 탐욕에 전력을 쏟는 세상에 합류할 것인지 아니면 참된 가치를 위해 행동할 것인지.”

  리온은 전 세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길을 택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려주고, 마지막 때가 가까움을 사람들에게 경고하여 올바른 길로 돌이키도록 촉구하는 일. 그는 그 일을 이루기 위해 핍박을 맞상대해야 했다. 이제 윤혁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일원으로, 마땅히 지금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후회 없는 선택을 내려야 한다. 심정이 사뭇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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