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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09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6. 괴물 영웅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8.14 | 회차평점 0 0

 

 

 

 

 

 

 

Chapter 16. 괴물 영웅

 

 

 

 

 

 

   얼마 후 두 팀은 한자리에 합류하였다.

   다시 만나기까지 제법 우여곡절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성지에서 벌어졌던 사태로 리온의 인형 몸체는 수일간 정지 상태로 머물렀다. 비빅은 리셋 이후 금세 정상 작동을 개시했으나 기껏 해킹해놓은 데이터는 많은 부분 소실되었다. 윤혁은 자신이 부린 무리한 욕심 때문에 친구가 위험에 처했다는 생각에 자책감으로 불편했다. 그래서 그는 그 즉시 위험한 모험을 그만두기로 했다. 로봇들에게 친구의 인형 몸체를 경호하도록 지시한 뒤 윤혁은 집합하기로 약속된 곳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스테판과 루디아는 윤혁에게서 리온의 일을 전해 듣고는 걱정하였다. 내내 깨어있었던 루디아는 잠시 접속을 끊고 지구에서 깨어나서 리온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동료들로부터 확인했다. 일행은 한시름을 놓았다. 다만 리온 본인은 모종의 업무를 처리하는 중인지 지구에서도 두문불출 상태였고 루디아와 유대인들도 직접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세 일행은 아무 일이 없기를 기도했다.

   다행히 접속이 끊겼던 리온은 넷이 한자리에 모인 지 이틀 만에 깨어났다. 그는 약간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제외하면 건강해 보였다. 두뇌나 정신에 손상은 없어 보였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널 휘말리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윤혁은 후회감 가득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괜찮아. 어차피 내 의지로 합류했는걸.”

   리온은 셋이 궁금해하는 전후 사정을 해명했다. 접속이 끊긴 직후, 리온은 하늘도시로 되돌아가기 위해 윤혁의 후원자인 진과 간접 대면을 해야 했다. 거만한 진은 자신의 본체는 직접 드러내지 않은 채 홀로그램을 통해 선교팀 본부와 소통을 했다. 그때 그는 제법 날이 선 예민한 목소리로 하대하며 선교팀을 몰아붙였다. 마치 하찮고 한심한 무리를 대하는 태도로. 리온은 대표로서 겸손히 고개 숙여 사과했고 자존심을 전혀 내세우지 않았다. 진은 못이기는 척 생색을 내며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뭐, 재접속 정도는 어렵지 않지만……, 누구 씨 덕분에 제가 뒤치다꺼리할 일이 조금 많아지겠군요. 다른 녀석들이나 타 파벌이 해킹 발생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덮어야 하니 말입니다.”

   그렇게 진은 의미심장한 혼잣말을 했었다.

   “역시 나 때문에 곤란해졌구나.”

   전후 사연을 전해 들은 윤혁은 숙연하게 자성하는 마음가짐으로 반성했다. 이번 일로 그는 호기심이나 혈기 넘치는 호승심이 생길 때, 그것을 무작정 해소하려 덤벼들기보다는 절제를 택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성령님의 열매 가운데 엄연히 자기 절제도 있거늘 어째서 나는 이리도 무모했을까?

   “나는 괜찮다니까. 자책하지 마, 윤혁.”

   도리어 리온 쪽이 더 담담함을 보였다.

   “그리고 수익도 있었어. 비빅의 데이터가 리셋되는 과정에서 내 인형 몸체 CPU와 클라우드가 일시적으로 엉켜버렸거든.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아무튼 그 덕분에 비빅이 마지막에 채취해놓은 자료의 파편이 내 기억 속에 남았어. 바람이 쓸려간 연기처럼 희미한 흔적뿐이긴 하지만 말이야.”

   이에 루디아와 스테판과 윤혁의 표정이 일제히 밝아졌다.

   “그게 정말이오?”

   “자료라니? 무슨?”

   반가운 소식에 들뜬 동료들 앞에서 리온은 침착함으로 응수했다. 그는 기억 체계 속에 남은 흔적을 찬찬히 되새김질했다. 접속이 끊길 때부터 그는 그 자료를 잊어버리지 않고자 재접속하는 순간까지 되뇌고 또 되뇌었었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거짓 신들의 실체를 나타낼 증거’와 직접 맞닿아있는 것이었으니까. 신중 위에 신중을 기한 끝에 그는 베일에 싸인 천기를 누설했다.

   “대륙 중앙에 있는 호수……, 그 한가운데에 섬이 있어.”

   사람이 살지 않는 카뮈네라의 중심 섬. 그곳에는 고대의 유적이 있었다. 지역을 막론하고 카뮈네라의 모든 주민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로부터 한가지 공통된 금지 명령을 받았다. 호수 중앙의 섬으로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아라. 들어가게 되는 날에는 필히 죽는다. 그 명령의 엄중함 때문에 지금까지는 누구도 섬에 얼씬거리지 않아왔었다. 신들이 두려웠기에.

   “하지만 우리는 그 명령에 속박될 이유가 없지.”

   리온은 즉시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카뮈네라의 중심부에 있는 섬 유적지를 탐사하자. 그리고 그곳에 숨겨진 비밀을 발견하자. 분명 신들이 숨기려 하는 비밀이 그곳에 있으리라.

   “왜 그들이 그 흔적을 남겨둔 것인지는 모르겠어.”

   그 부분은 다소 의아했다. 어쩌면 신들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증거가 될지도 모르거늘. 자신 같았으면 증거 인멸을 위해 샅샅이 파괴했을 터이다. 전략적으로만 보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선교팀 입장에서는 거짓된 토속 신앙을 파훼할 절호의 찬스를 얻었으니 좋은 일이지만 의문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마……, 파괴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윤혁이 자신의 어렴풋한 추측을 제시했다. 만약 그 유적이란 것이 인류연합과 관련이 있다면 어떨까? 윗선 측에서 아직 유적의 이용가치가 남아있다고 판단했다면? 그래서 일개 대리인이자 하수인에 불과한 카뮈네라의 신들로서는 감히 그것을 건드릴 권한이 없었다면?

   “일리는 있네.”

   선교사들은 그 계획을 놓고 민주적으로 토론하였다. 이내 유적을 탐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리온이 이미 한 번 일을 당했던 터라 걱정은 되었지만, 오히려 당한 본인이 강력하게 앞장서서 주장하는 통에 의견의 향방은 확고히 기울어졌다. 그는 이번이야말로 적절한 기회임을 강조했다.

   “나도 따라갈게.”

   윤혁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아니, 이번에는 나와 루디아만 갈게.”

   뜻밖의 리더의 냉담한 거절.

   “너는 스테판 씨와 뒤에 남아줘.”

   “하지만 리온!”

   “잊었어? 너는 앞으로도 우리의 선교 여행 전반에 걸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역할을 담당할 주축 멤버야. 너만큼은 끝까지 안전하게 남아있어야 해. 나나 루디아는 본체가 지구에 있으니 무사히 빠져나올 방도가 있지만, 네가 오지에서 일을 당하거나 표류하면 곤란해.”

   “그, 그렇지만!”

   반론해보려 했으나 윤혁도 저지른 실수가 있었기에 별말은 하지 못했다.

 

 

 

 

 

 

*

 

 

 

   다음 날, 리온과 루디아는 신속히 팀을 꾸려 움직임을 개시했다. 둘은 스크류와 쿠앤크의 도움을 받아 호수 중앙의 섬을 향해 날아갔다. 떠난 자리에는 후방 멤버 두 명만 남았다. 호승심과 호기심이 풍부한 혈기 넘치는 청년이었던 윤혁은 끝내 미련을 지우지 못한 채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래, 내 욕심대로만 할 수는 없지. 자기를 부인해야지.’

   그 무렵 스테판이 윤혁에게 한 가지를 제안하였다.

   “둘만 남았으니 편히 말할 수 있겠구려. 이제 끝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소. 그 탐색을 마친 이후에 당신들과 함께 합류할지 말지를 결정 내리겠소. 부디 양해 부탁드리오.”

   갑작스럽고 은밀한 부탁. 윤혁은 잠시 긴장하였다. 아직 스테판은 회심의 결정을 내리지 않은 미결정자.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주고는 있지만 아직 온전하게 선교팀의 동료라 부르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런 그의 제안은 덥썩 물기에는 다소 조심스러웠다.

   “어떤 일 말씀입니까?”

   “당신과 탐방하고픈 이곳의 비밀 지대가 있소.”

   영민한 스테판은 동료들과의 탐험에 합류하지 못한 윤혁의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활용하였다. 스테판은 카뮈네라 대륙 남쪽에 있는, 산맥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토굴에 대해 알려주었다.

   “토굴이요?”

   “그렇소.”

   사실 그들이 이방인이라 그렇지 이곳 주민들에게는 그다지 낯선 개념이 아니었다. 원래 카뮈네라에는 곳곳마다 지하 던전과 토굴이 위치해 있었다. 대개는 신들에게 패하여 봉인 당한 괴수, 마물, 거인들이 서식하는 곳이며 실제로 그곳에서 그러한 류들이 나온 일도 많았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는 지하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소문까지 도는 특별한 악명을 지닌 토굴도 있었다.

   “지하세계?”

   “죽은 영웅들이 봉인된 세계 말이오. 사후세계라고도 하오.”

   “지나치게 이교도적인 개념이네요.”

   “나야 그 말을 믿지는 않소. 다만 한 가지 확인해야 할 일이 있소.”

   스테판은 수개월 전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때 그는 이 세계에서 한 거인을 만났다. 외관상으로는 거인의 형상이었지만 나름대로 인간과 유사한 모습과 인격을 보유한 생명체였다. 그 존재는 스테판을 협박하여 반강제로 자신의 여정에 동참시켰다. 여행 중 스테판과 거인은 대륙 여러 곳의 음지를 답사했다. 그중 비밀스러운 신비의 동굴에 다다를 때마다 거인은 동굴 밑에 파묻힌 자신과 비슷한 유형의 또다른 거인을 깨웠다. 그렇게 열 명의 거인들이 차례차례 합류했다. 이후 그들은 스테판을 데리고 어떤 사화산에 찾아갔다.

   “겉보기에는 사화산이었지만 그 지하에는 인공적으로 제작된 듯한 깊은 토굴이 있었소. 그곳에서 나는 스스로 저들을 ‘네필림(Nephilim)’이라고 자칭하는 한 종족을 만났소. 그리고 그들의 왕과 대화도 나눴소.”

   내내 아리송해하던 윤혁이 당혹감을 표하며 반응했다.

   “네필림이라고요?”

   “뭔가 짚이는 바가 있는 거요?”

   “그야 당연하죠.”

   윤혁은 창세기 6장에 기록된 홍수 시대 이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결합했을 때 이 세상에 나타났던 어느 거인 종족에 관해 이야기. 윤혁은 그 이야기를 설화가 아닌 역사적인 사실로 상정하며 증언하였다. 언뜻 듣기에는 신화나 설화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으나 이미 성경이 이교도 신화와 본질적 궤가 다름을 경험한 스테판은 당황치 않을 수 없었다.

   “역시 기원이 따로 있었군.”

   “그럼 당신이 만났다던 네필림들은 대체 어떤 자들이었죠?”

   “말하자면 길다오. 아, 한 가지 선명히 기억나는 부분이 있소. 내가 만난 여러 네필림 중에는 카뮈네라의 여러 토속 설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전설적인 영웅들도 제법 있었소. 신에 도전해서 권익을 쟁취한 자부터 마물들을 봉인하는 데 도움을 준 이들까지, 유형이 다양했소.”

   어찌 이리도 유사할까 싶었다.

   “신기하네요. 지구의 네필림들도 그 점에서 유사했습니다. 그들은 고대에는 위대한 영웅으로 불렸거든요. 실제로 저희 행성의 역사를 공부하면 이교 민족의 신화마다 소위 ‘반신반인’으로 묘사된 영웅이 꼭 있었습니다. 그들이 네필림과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모티브가 되었을 가능성은 있겠죠.”

   “기묘하오.”

   윤혁의 증언을 들은 스테판은 자신이 겪은 모험담을 계속 털어놓았다. 네필림의 왕을 알현했을 당시 스테판은 여러 질문을 받았고 심지어는 자신들과 한 편이 되어 달라는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았었다. 의중을 당최 알 수 없었기에 당연히 거절했었고 그러자 놈들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스테판을 산 채로 잡으려고까지 시도했었다.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는 있었소. 하지만 놈들이 내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며 떠벌리긴 했는데 그날의 대화 내용의 의미를 끝내 알아차리지 못했소. 워낙 석연치 않기에 내 눈으로 다시금 확인해보고 싶은 미련이 드오.”

   “그래서 그곳에 다시 가보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위험한 모험 아니겠는가. 윤혁으로서는 걱정도 들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궁금증과 기대감도 증폭되었다. 이에 스테판답게 기대 이상의 답변이 튀어나왔다.

   “내가 찾아간 곳이 아닌, 아예 네필림들의 본거지로 쳐들어갈 생각이오. 지하 토굴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뿌리인 ‘산맥에 둘러싸인 큰 구멍’, 그곳을 방문할 계획이라오. 소문으로는 사자(死者)의 땅 곧 지하세계로 직접 이어지는 통로가 그곳에 있다고 하오. 그 소문 자체야 꾸며진 것이겠지만 비밀의 실체를 본다면 뭔가를 깨달을 수 있지 않겠소?”

   모험심 가득한 스테판은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그곳에서 비밀의 기록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죽은 영웅들이니 네필림이니 하는 것들. 그의 직감은 이러한 것들이 카뮈네라의 근본적 비밀과 맞닿아 있음을 알려주었다. 윤혁은 말려야 할 분위기임에도 말리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스테판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경향을 발견했다. 저 사람은 만류한다고 회피할 사람이 아니다.

   “정 그렇다면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아직 동행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동료를 버려놓을 수는 없었다.

   “괜찮겠소?”

   “제 안전이 아니라 당신의 안전을 걱정해야죠. 저는 당신을 보호하려 동행하는 것입니다. 비빅에게는 전투 모드도 있으니 유사시에는 인간 혼자서 가는 것보다 비빅이 동행하는 편이 훨씬 더 안전할 것입니다.”

   “하긴 그렇겠구려.”

   “그리고 정직하게 말하자면 다른 이유도 있어요. 사실은 저도 이참에 당신이 말해준 희한한 것들의 진실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요.”

   성향이 비슷했던 탓인지 둘의 의견은 금세 연합되었다. 얼마 전 윤혁의 무모한 도전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선택 역시 순수한 호기심과 선의에서 시작된 출발이기는 해도 지혜로운 선택이라 보기에는 어려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무모한 모험꾼들은 기꺼이 악의가 도사리는 오지로 뛰어들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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