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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08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5. 주관적인 증거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8.13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경보음에 리온과 윤혁은 당황하였다.

   “무, 무슨 일이지?”

   “나도 잘 모르겠어.”

   섬뜩하고 불길한 예감이 둘의 뇌리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기계들의 율법 제 4,209 – 2,092,110 – 990,657 조항의 제타(Ζ) 타입 응용 규칙의 분석 결과, 현재 취합한 정보를 ‘예측 시스템’을 기반으로 재해석해보니 시스템의 룰에 어긋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음.}

   비빅의 목소리가 몹시 거칠고 불안하게 변하였다. 해킹 모드를 위해 변형되어있던 비빅의 기계 부위들이 부르르 진동하였다. 로봇의 동공 색깔도 바뀌었다. 마치 전기 고문을 당하는 사람마냥 꼼짝도 못 하는 형국이었다.

   {룰의 적용.}

   {본 개체의 작동을 일시 정지 후 강제 리셋 시행.}

   {동일한 자료를 공유하려 시도했던 다른 개체에도 포괄 적용.}

   비빅은 힘이 빠져나가면서 맥없이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리온은 평형 감각이 흐려지며 어질거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뭔가가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빌린 인형 몸체의 CPU를 공격하고 있었다. 직접 신체 본체에 타격이 가해지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인 고통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리온!”

   곁에서 당황한 친구가 다급하게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미 의식은 서서히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이 순간, 리온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쓰러지기 전 기도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가까스로 안전히 눈을 떴을 때 그의 몸은 하늘도시 속 신전이 아닌 다른 곳에 뉘어 있었다. 익숙한 장소, 인형과의 접속을 끊을 때마다 으레 되돌아오는 곳, 지구의 본부였다. 지구에 있던 그의 본체가 다행히도 큰 탈 없이 깨어났다.

   “휴!”

   잠시 어안이 벙벙했지만, 몇 초가 지나자 현실 감각이 되돌아왔다.

   ‘잠시만! 윤혁은 어떻게 되었지?’

   의료 장비의 도움으로 점검해보니 자신의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접속이 급하게 끊어지는 바람에 친구를 오지에 내버려 두고 온 꼴이 되었다.

   그는 차분히 조금 전의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해킹의 최종 단계가 진행되던 마지막 순간, 신전 시스템의 간섭으로 인해 인형이 타격을 입었고 그 영향으로 자신의 정신은 지구로 반송되었다.

   ‘다시 인형과 연결할 수는 있을까? 윤혁을 혼자 내버려 두면 안 될 텐데.’

   그때 상황을 파악한 선교사 동료들이 접속실에 들어왔다. 리온은 그들을 재빨리 안심시킨 뒤 저편에서 겪었던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이에 동료들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걱정을 터놓았다.

   “괜찮을까?”

   “너도 꽤 타격이 있을 텐데 잠시 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나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리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저쪽에 아직 내 친구들이 있어. 어떤 위험에 놓여있을지 모르는 일이지. 나 몰라라 떠날 수는 없어. 지금의 임무는 내팽개칠 수 없는 막중한 일이야. 끝까지 책임을 완수해야 해.”

   “하지만 무슨 수로 되돌아가려고?”

   “재연결이 가능할까?”

   사실 리온에게도 확실한 해답은 없었다. 자기 실수로 엎질러 버린 물을 어쩌겠는가.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시도해봐야 하는 법. 영 꺼림칙한 상대라지만 급한 대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윤혁의 후원자라는 사람에게 요청할게.”

   그러자 동료들의 얼굴이 걱정으로 굳었다.

   “괜찮을까? 위험인물이라고 하지 않았어?”

   “어쩔 수 없지. 어서 비상 연락 장치를 통해서 그자에게 연락을 줘.”

   부담스러워도 감당해야 할 건 감당해야 한다.

   “그를 설득하는 일은 내가 할게.”

   별수 없이 팀원들은 리온의 부탁을 따랐다.

 

 

 

 

 

 

*

 

 

 

   스테판과 루디아는 ‘송곳 마천루’ 앞에 당도했다.

   “저곳이 바로 중앙 대륙의 세 축조물 중 하나요.”

   “세 축조물이라면…….”

   “아이코사헤드런, 공중섬, 그리고 바로 저곳 송곳 마천루까지요.”

   “저곳도 그러면 신들이 거주하는 곳인가요?”

   “그렇소. 물론 우리가 이미 다 논의했듯 전부 다 거짓 신이겠지만 말이오. 다만 그것들이 정말로 당신들이 말한 지구라는 행성과 그곳에 자리를 둔 세계정부와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려면 아가씨네 동료들이 증거를 찾아와야 할 것이오.”

   송곳 마천루. 그것은 수천 층의 도시들이 샌드위치처럼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규모의 탑이었다. 바깥에서 보면 마치 커다란 산이 솟구친 것 같았는데 워낙 불안정한 모양으로 치솟은 첨탑이었기에 일명 ‘송곳’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정말 당장에라도 붕괴할 것만 같네요.”

   저러다 자신들 쪽으로 무너지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그렇소.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지난 수백 년간 무너지지 않고 저 모양으로 불변했소. 혹자는 저 구조물이 이곳의 신들의 힘보다도 훨씬 더 오래되고 강력한 능력에 의해 유지된다고 보고 있소.”

   스테판은 계속해서 자신이 들은 현지 정보를 알려주었다.

   “여하튼 사람들은 송곳 마천루의 신들에게 대단한 경외감을 보이고 있소. 그 경외는 폭정에서 비롯된 감정이오. 저곳의 신들은 폭군들이오. 오랫동안 인간들을 착취해왔던 사악한 자들이오.”

   “착취라니요?”

   “내가 들어온 바로는 사정이 이렇다고 하오.”

   송곳 마천루는 총 1,080개의 층이 겹겹이 쌓여서 만들어진 축조물이었다. 층을 나누는 격벽은 공간 분리와 특수 결계에 의해 나누어져 있었다. 각 층에는 신들의 도시가 하나씩 세워져 있었고 다양한 유형의 신들이 성주 노릇을 하고 있었다.

   송곳 마천루 주변 지역 주민들은 직접 그 신들을 자기 눈으로 목격하지는 못했다. 대신에 그 신들은 인근 인간들과 모종의 거래 관계를 맺어 공생 상태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신들은 인간들로부터 노동력을 취하는 동시에 인간들의 힘을 자기들의 성장을 위한 양분으로 사용하였고, 그 대가로써 인간들은 신들의 은총을 공급받았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주고받은 거래였을까요?”

   “신들이 인간들의 ‘꿈’을 빼앗았소.”

   “꿈이라니요?”

   “비전이나 희망 말고, 잠들 때 꾸는 그 생리적인 꿈 말이오. 깨어있을 때도 빼앗을 수 있었으니 정확히 말하면 사고 활동을 착취했다고 하는 편이 낫겠군.”

   스테판의 추가 설명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 이 지역에 태어난 주민들은 보통 출생 시부터 송곳 마천루의 신들과 계약을 맺는다. 대체로 가문과 가계를 매개체로 대대손손 계약이 확대 승계된단다.

   이렇게 종속된 자들은 매 밤 꿈을 꿀 때마다 일시적으로 신들의 몽중 노예가 된다. 꿈속 세계에 들어온 인간들은 정신노동을 시행한다. 이때 그들이 창출하는 창의력, 연산력, 창조성, 감정, 신의, 의지 등의 가치는 모조리 자원으로 환산되며 몽마들은 그것들을 추수하여 제 주인인 신들에게 공물로 바친다.

   “신들은 그 보답으로 인간들에게 계약을 통해 힘을 선물해주었소.”

   “힘이라면, 마법과 비슷한 건가요?”

   “흐음, 어떤 마법을 말하는 것인지……, 범주가 모호하구려. 얼추 비슷하긴 하오. 다만 그 힘은 주로 신들의 분신체를 소환해서 부리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인 색깔이 있소.”

   “그랬군요.”

   루디아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있는 을씨년스러운 구조물의 위용을 지켜보았다. 비정상적이고 병적인 공생 관계를 상징하는 첨탑. 인간들의 마음을 파먹으며 그들의 정신을 노예로 만들어버리고 그 대가로 눈먼 힘을 주어 사람들을 취하게 만든다니, 과연 악마적인 창의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저나 꿈을 먹고 힘을 빌려준다는 게 대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 걸까?’

   그 원리는 이해가 되지도, 감도 잡히지도 않았다. 윤혁이라면 그 원리에 대해서 무언가 알까? 전에도 문득 뭔가 비슷한 개념을 알고 있던 것 같던데. 여러 가지로 고심이 깊어졌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궁금증 이전에 마음속 한구석이 몹시 쓰려왔다. 정말로 송곳산 신들의 배후에 인간 세력이 있다면? 인간이 같은 인간을 대상으로 그런 행동을 계획했다는 말일까? 오늘날 인간들의 행태가 점점 악마의 방식을 닮아가는 현실이 너무도 슬펐다. 물론 돌이켜 보면 과거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단지 기술력의 발전으로 그 방식만 치밀해졌을 뿐. 어쨌건 슬픈 건 매한가지였다.

   “사실 어느 곳이건 신들의 모습이란 별반 다르지 않소.”

   스테판은 상심한 루디아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전했다.

   “인간들은 자신이 바칠 수 있는 최선을 지극정성을 다해 신들에게 바치고 그에 대한 대가로 현실적인 풍요를 얻고자 하니까 말이오. 그런 기생충 같은 관계는 본질적으로 따지고 보면 어느 신들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같을 거요.”

   차가운 현실이 유리 조각처럼 가슴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당신들이 믿는 하나님은 그런 거짓된 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느껴지고 믿어지오.”

   스테판의 말에서 루디아는 짧게나마 희망을 보았다.

   “예슈아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먼저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많은 이가 여전히 미혹되어 있더라도 한 사람의 마음이 깨어난다면 그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큰 가치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소망의 마음을 재차 다지며 루디아는 자신이 확신하는 길에 대한 가르침을 이어나갔다.

   “이 말씀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구해야 할 요구사항은 인간인 우리 자신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 그분의 거룩한 의지와 통치라는 뜻이에요. 그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우리 욕망대로 조종할 수 있는 분도 아니고 우리의 지극정성에 의존해야 하는 나약한 분도 아니세요.”

   “그 말을 듣자 하니 신뢰가 가는구려.”

   스테판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진정으로 건강한 신뢰 관계가 있다면 그런 형태가 아닌가 싶소.”

   “네, 그분은 우리를 자녀로 삼기를 원하세요. 인간을 도구나 사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인격체로서 존중해주시죠. 하나님은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아름답게 빚어나가기를 원하세요.”

   “자녀라…….”

   스테판에게 있어서 어버이란 개념은 참으로 낯선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원을 알지 못했다. 그의 기억은 오래전부터 이미 강제로 너저분하게 덧칠되고 덮어씌워지고 왜곡되어 있었다. 그 탓에 자신의 종족인 인류가 시작된 뿌리도 몰랐고 지구에 대한 귀소 본능도 없었으며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 때문에 더더욱 절박한 심정으로 신 혹은 절대적인 존재를 찾는 데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마음…….”

   의심을 내어쫓는 사랑. 성경의 예언과 인류의 역사가 신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라면 사랑이라는 마음은 주관적인 증거가 된다. 이 가르침에 그의 마음은 예전에 겪어보지 못한 뭉클함을 맛보았다.

   “송곳 마천루 주변의 마을들로 가보는 게 낫겠소.”

   그는 머물러 있기보다는 삶으로 체감하기를 택했다.

   “당신이 그들에게 신을 전하는 모습을 더 지켜보고 싶소.”

   “괜찮겠어요?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할 거예요.”

   “상관없소. 적어도 이 몸 한 명은 듣고 있잖소.”

   그의 심경 변화를 희미하게 엿본 루디아는 희미하게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둘은 남은 마을들에도 마저 전도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송곳산의 그림자로 덮인 어두운 하늘도 그들의 홀가분해진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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