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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11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6. 괴물 영웅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8.19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본래 어느 지역이건 신화 속에는 늘 영웅이 등장하는 법. 반인반신, 신들에게서 신비한 성물을 받아서 강력한 힘을 얻은 인물, 비범한 출생의 영웅,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높은 경지에 다다른 자 등등. 지구에서도 그랬듯 카뮈네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수천, 수백 년의 역사에 걸쳐서 카뮈네라에서는 숱한 걸출한 영웅들이 나타났다. 주로 그들은 신들이 내린 과업에서 성과를 거두거나 괴물을 물리쳐 사람들을 구해내던 자들이었다.

   자연히 그 영웅들은 신들과 접할 기회가 잦았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신들의 은밀한 비밀에도 조금씩 접근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탓에 영웅들은 신들이 숨겨온 민낯을 꽤 알아차렸다. 이는 영웅들의 마음에 경멸과 불신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그들은 신들의 지배 방식에 의문을 품게 되었고 은근슬쩍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일부는 중대한 선을 넘었다. 그들은 영구 금제 구역으로 지정된 ‘마음의 탑’, 그 유물이 놓인 옛터를 기어이 찾아갔다. 그곳에서 더욱 놀라운 비밀을 알아차리고야 말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탑의 옛터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어. 유적지로 위장해두기만 했었지, 기능과 구조의 철거는 없었어. 아마 지금도 그러할걸?”

   -“그래서 그곳에 들어가면 지금의 신들이 도입되기 이전 이 세계를 다스렸던 ‘지배 장치’의 영향을 받게 돼. 그러면 현재의 지배력과 과거의 지배력이 뒤엉켜 둘 다 깨어지게 되지.”

   여하튼 진실도 알게 되고 지배력에서도 벗어난 영웅들은 이때다 싶어 신들에게 반기를 들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숨겨진 또 다른 올무가 그 호재를 무참히 짓밟아 재난으로 뒤바꾸어버렸다. 관리 측에서 탑의 터를 일부러 남겨둔 것은 함정이었다. 그 유적지에는 사람에게 최면을 거는 ‘흑색 하늘’이 있었다. 유적지에 발을 디딘 자에게는 예외 없이 그 흑색 하늘이 힘을 발휘했다. 그렇게 흑색 하늘의 최면에 걸린 영웅들은 무의식적 최면술에 빠져 구덩이로 끌려오게 되었다. 제 발로 진창으로 떨어진 셈이었다.

   -“그 구덩이가 바로 이곳이지.”

   -“흑색 하늘은 진실을 눈치채고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자들을 걸러내어 벌을 주려고 만든 시스템이야. 하늘을 향해 가까이 다가간 영웅들은 뜨거운 재앙의 열기에 날개를 잃고는 이곳 구덩이 안으로 추락했어.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이 끔찍한 만마굴(輓魔窟, Pandemonium) 속에 말이야.”

   추락한 영웅들은 고초를 겪었다. 일부는 굴속에서 떠돌다 상처를 입어 신체 일부를 잃었고, 일부는 마음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무너졌으며, 죽음 직전에 이른 이도 있었다. 그 이후의 여정은 더 비참했다. 신체를 잃은 이의 몸은 괴물 신체와 융합되었다. 정신적으로 무너진 이들은 강제로 개조되어 꼭두각시의 인생이 되었다. 죽음을 직면한 이들은 관 속에 보존되었고 그 중 몇몇은 의식만 데이터로 추출되어 괴물의 몸체에 삽입되었다.

   -“그런데 그 후 흥미로운 일들이 생겼어. 그렇게 오랜 세월 망가져 괴물이 된 인간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생식 기능을 얻게 된 거야. 변형된 정체성 그대로 스스로를 복제해낼 능력을 얻은 셈이지.”

   -“그리고 그 복제된 것들끼리도 서로 융합하거나 자신의 씨앗을 뿌리면서 다양한 형태로 확대재생산을 거쳐 종족적 차원의 변모를 거듭해갔어. 그러다가 끝내는 인간도 괴물도 아닌 새로운 종족이 탄생했지.”

   듣기에 심히 거북한 이야기들.

   “그게 바로 당신들, 그러니까 네필림들이오?”

   -“네필림이라……. 우리는 원본에 가까운 존재고 그 녀석들은 몇 세대인지 기억도 안날만큼 엄청나게 희석된 열화판이지. 사실 우리도 지금 우리의 몸이 진짜 육체인지, 지금의 영혼이 원본 그대로인지 구분하지 못해.”

   -“우리의 원본인 ‘인간 영웅’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 정체성의 지극히 작은 파편과 편린을 희석하고 불순물과 혼합시켜 만들어진 존재인 우리로서는 그저 추측만 할 따름이야.”

   -“자아의식도 없는 네필림보다는 훨씬 더 나으려나? 아니지, 어쩌면 더 비참한 신세인지도 몰라. 차라리 옛 정체성과의 연결 고리가 없었다면 덜 괴로웠을 텐데 말이지.”

   기나긴 설명을 듣는 내내 윤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것이 대체 무슨 망발인가? 이것이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의 이야기인가? 구역감과 불쾌감이 뇌리를 사로잡았다. 영웅들의 무덤에 담긴 추악한 비밀. 진정 이것이 인간이 겪을만한 일이 맞는지도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본래 그것이 이 타락한 세상의 불편한 실상. 혼란스러운 마음이 밀려오는 와중에도 한 가지만은 선명히 기억났다.

   ‘바이오닉 솔져. 실험체와 실패작.’

   엄밀히 따지면 지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없진 않았다. 인간의 몸과 생명을 재료로 이뤄진 비인도적인 실험들과 그로 인해 남겨진 결과물들. 그 와중에 수많은 실패작이 죽어 나갔었다고 했던가. 인간으로서의 속성을 부분적으로나마 가까스로 유지한 몇몇 개체들만이 복원되어 바이오닉 솔져로 재탄생했었다지. 이것이 인류의 죄악과 기술력이 만나 발생하는 화합 반응의 실상. 이런 마당에 어찌 도덕성을 기대하겠는가.

   ‘설마 지구에서의 일이 이곳에서도 재현된 건가?’

   혹 인류연합이 다시 그 일을 몰래 주도한 걸까? 혹 형이 그 일에 연루되었을까 두려워진 윤혁. 하지만 이성적으로 따져보니 가능성은 적었다. 바이오닉 솔져들을 탄생시킨 실험들은 분명 과거의 무질서한 세상의 죄악에서 비롯된 불상사들이었다. 분명 오늘날은 인간의 생명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은 금기시되어 있다. 윤혁은 그 사실을 여러 차례 초인들에게 증언으로 들었다.

   ‘게다가 이런 건 절대로 형의 방식이 아니야.’

   그가 비록 대단히 오만하다지만, 인간과 인류의 가치를 숭상하는 자임만은 분명하다. 신학적인 접근법은 다를지언정 인간의 존엄성만큼은 집착에 가까울 만큼 철저히 지키려는 자가 바로 카이젤 라흐블뤼크. 방식은 달라도 그리스도인들 못지않게 생명에 대한 열정이 강한 자가 그 사람이다.

   ‘이런 더러운 짓을 누가 기획했는지는 몰라도 분명 다른 누군가의 음모와 획책이 접목된 스타일이야.’

   그 범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몹시 소름 끼치는 끔찍한 인격을 지닌 자임은 분명해 보였다. 어쩌면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사악성을 지닌 선천적 범죄자인지도 모르겠다.

   -“자, 대화가 너무 길어졌군.”

   긴 대화의 맥이 마침내 끊어졌다.

   -“이제 너희도 평가를 받아야겠지.”

   -“생포할 테니 너무 아프게 하지는 않으마.”

   괴물 인간, 아니 영웅들의 변이체들과 파생체들, 그들 혹은 그것들이 자신의 무장을 꺼냈다. 그들로서는 따로 무기를 휴대할 필요가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가 전부 무기였으니. 팔과 다리와 무릎과 복부와 흉부와 등과 두피에서 온갖 형태의 기괴한 무장들이 사출되었다.

   “어서 피해야 하오.”

   곧 빔과 포격과 마법력과 섬광이 난무하였다. 사방에서 검격이 쏟아졌다. 즉각적인 반응으로 비빅의 신체가 둘로 쪼개어졌다. 그 두 조각은 액상 로봇이 되어서 형체를 변화시키며 잠시 흐드러지더니, 스테판과 윤혁의 몸을 각각 감쌌다. 이윽고 비빅이 변형되어 만들어진 외골격이 두 사람의 몸에 입혀졌다. 외골격은 신속 탈출과 방어에 적합한 형태로 되어 있었다.

   “달아납시다.”

   “안 그래도 그러려 했소. 최대한 빨리 가겠소.”

   외골격 형태의 슈트가 된 비빅이 엔진을 발동했다. 스테판과 윤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지상을 향해서 솟구쳤다. 그들의 심정은 조급해졌다. 당장 자신들을 공격할 괴물 인간들도 걱정되었으나 그보다는 다른 부분이 더 염려되었다.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천기누설, 그 속에서 뜻밖의 사실들을 발견하였다.

   “리온과 루디아를 찾아야 해요.” 

   동료들이 향한 곳의 정체가 어렴풋한 윤곽을 드러냈다.

   “만약 두 사람이 향한 섬의 유적지가 저들이 언급한 ‘마음의 탑’의 터와 동일한 장소라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떤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지 몰라요. 놈들의 말대로 지금도 그 함정이 작동할 가능성이 커요.”

   그때 엄청난 굉음과 함께 사방에서 광범위 파괴 공격이 난무했다. 다행히 로봇 외골격의 반응 속도가 더 빨랐다. 몇 번 더 휘말릴 위기가 다가왔으나, 그때마다 비빅은 서커스처럼 교묘히 벗어나 구덩이 위를 향해 날아갔다. 윤혁의 마음은 눈앞의 위기에 대한 경각심과 친구들에 대한 걱정, 그 양방향의 고민으로 인해 분주해졌다.

   -“잡아서 쓰러트려.”

   -“생각 외의 무기를 지니고 있었군. 외계에서 온 존재들이었나?”

   괴물 영웅들이 떠들썩하게 왁자지껄 떠드는 소음이 들려왔다. 다시금 연속 공격으로 인한 폭발의 충격파가 등 뒤에 열기로써 느껴졌다. 약간의 충격이 전달되기는 했지만, 로봇의 물리력 상쇄 기능 덕인지 통증은 없었다.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달려요!”

   “그쪽도 주의하시오!”

   스테판과 윤혁은 이를 꽉 악물고 버텼다.

 

 

 

 

 

 

*

  

 

 

   철인왕 진은 몹시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홀로그램 체스판 위에 놓인 수천 개의 말들을 감찰했다. 그는 사념파 신호 만으로 그것들을 조종해 정교하게 움직였다. 이에 대기 입자들이 열역학적인 무질서한 움직임을 자아내듯 체스 말들이 일사불란하게 자신의 좌표를 이리저리 변환하였다. 능수능란한 조종자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왕이 된양 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았다.

   “과연 숙부님께서는 아버지를 골탕 먹일 강적이 될 자질이 충분해.”

   능력으로는 누구도 꺾지 못했던 아버지를 색다른 방법으로 곤란케 할 위인. 게다가 유유상종이라더니 그와 동행하는 동료들도 과연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초인에게는 상대조차 안 되는 그 호두 같은 두뇌로도 어떻게 그런 의외성 넘치는 일들을 벌일 수 있을까? 판을 흥미롭게 만들어준 그들이 고마워서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해킹이라.’

   그 반지의 힘을 그런 식으로 활용하다니, 간덩어리가 부어도 보통 부은 게 아니로다. 자신 같았으면 무서워서라도 감히 그런 시도는 못 했을 텐데. 역시 신을 믿는 자들은 눈에 뵈는 것이 없는 걸까? 뒷배를 믿고 날뛰는 것일까? 

   “하지만 아버지도 강윤혁이 이런 식으로 날뛸 것을 예상하지 못하셨을 리는 없을 터, 그러면 그분은 일부러 유흥을 위해서 남겨두셨던 건가? 아니면 그 자체가 하나의 의도였던 건가? 어디까지 내다보신 것인지 모르겠군.”

   카이젤의 의중이 무엇이건 간에 어쨌건 자신은 강윤혁 일행의 후원자를 자처했으니 약속은 지켜야 한다. 딱히 관심도 없는 자이긴 했으나 강윤혁의 동료 녀석이 자신에게 고개까지 숙이며 부탁을 했으니 마냥 내치기에도 썩 그림이 좋지 않을 성싶었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받아주긴 했다.

   “끊어진 인형 링크를 재연결해준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그보다 훨씬 큰 문제는 해킹 문제 수습이었다. 그것을 덮어주려는 바람에 진이 해야 할 일이 늘어났다. 그 일행이 들쑤신 하늘도시 내부 시스템, 중추까지는 아니어도 나름대로 부속 시스템이었는데 그걸 상대로 표면적이나마 해킹을 벌였으니 일이 곤란해졌다. 칼리드가 꼬리를 밟는 것은 시간문제다. 다행히 진은 이럴 때 손쉽게 문제를 덮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내가 직접 비슷한 패턴의 해킹을 동시다발적으로 벌이면 되지.”

   소위 맞불 작전.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늘도시에는 강력한 보안 시스템이 존재하니까. 그래서 평상시에는 카이젤의 허락 없이는 진도 하늘도시 내부 시스템에 함부로 접근하지 못한다. 그러나 마침 지금은 카이젤이 칼리드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한 시국. 이런 때에 칼리드는 범 차원 서버 ‘갓-딜루젼’을 출시하여 수십만 개의 하늘도시 내부 시스템들을 동시 침식하였다. 그리고.

   ‘칼리드가 갓-딜루젼 보완 프로젝트에 날 끌어들인 게 호재가 되었군.’

   이런 작은 행운들 덕분에 진 역시 갓-딜루젼이 침식한 하늘도시들에 간접적으로나마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즉각 행동을 개시했다. 진은 즉시 강윤혁이 벌였던 것과 거의 유사한 ‘허술한 패턴’을 모방하여 해킹을 동시다발적으로 수천 개의 도시에서 벌였다. 더불어 이러한 허술한 해킹 양상이 칼리드의 의심을 살 것까지 대비해서 서로 다른 양동용 해킹 모듈을 추가로 마련하여 수만 개의 하늘도시를 동시 공략했다.

   “칼리드에게는 안보 점검 목적의 베타테스트라고 변명하면 되겠지 뭐.”

   작업은 능수능란하게 진행되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갓-딜루젼 서버를 단체로 해킹해버린 뒤, 서버에 연결된 하늘도시 기존 시스템들까지 털어버리면 마무리. 적당히 피해를 안 끼치는 선에서만 장난을 치면 큰 문제는 없겠지. 어차피 진의 평소 역할에 이런 일도 포함되었기에 염려할 이유는 없었다.

   “자, 나중에 값은 이자까지 쳐서 톡톡히 받아내도록 하죠, 숙부.”

   막 수습을 마치고 쉬려던 중, 진의 눈에 우연히 불쾌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강윤혁이 머무는 하늘도시, 그곳에 관한 인류연합 기록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어 있는 ‘ALERT(주의)’ 표시. 여유만만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불편감으로 어그러졌다.

   “음, 하필이면 골치 아픈 사고꾼이 일을 벌여놓은 곳이라.”

   일곱 번째 철인왕 그 사고뭉치 녀석. 그를 생각하려니 벌써 왼쪽 옆머리가 들쑤시듯 지끈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겠는가. 다 그런 의형제를 둔 자신이 짊어질 업보이지 않겠는가. 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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