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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12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7. 신들의 전쟁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8.22 | 회차평점 0 0

 

 

 

 

 

 

 

Chapter 17. 신들의 전쟁

 

 

 

 

 

 

   바깥으로 빠져나온 과정은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몸이 자동으로, 정확히 말하면 외골격 형태로 입혀진 비빅이 자율적으로 기동하고 있었다. 비빅은 매뉴얼에 기록되지 않은 별도의 형태로 변신하더니 능수능란하게 전투를 수행하였다. 내부에 탑승한 두 인간으로서는 머리가 어질거리는 정신 없는 경험이었다.

   로봇의 무시무시한 전투력으로 인해 괴물들의 시신이 산처럼 쌓여나갔다. 괴물화된 영웅들은 뒤에서 으르렁거리며 채찍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지형이 깎여나갈 정도의 충격파가 발생했지만, 로봇은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도주했다. 만일 인격체로 추정되는 존재를 해하는 일을 제약하는 율법만 없었다면 적을 모두 도륙할 수도 있었으리라.

   수 시간 이상 추격전을 벌인 끝에 저 멀리서 희미하게 희망의 햇빛이 들어왔다. 태양이 아닌 인조 광채로 지탱되는 카뮈네라인지라 햇빛이라고 표현하긴 무리가 있었으나 윤혁의 눈에는 그것이 여명의 빛으로 인식되었다. 스테판과 윤혁은 지하 세계에서 벗어나 드넓은 상공으로 도약하였다.

   “헉헉!”

   “위험했소.”

   밝은 구역에 이르자 지금껏 어두워서 안 보였었던 자신들의 외골격 갑주가 선명히 보였다. 비빅의 제한된 모듈로는 물리적으로 구현할 수 없는 특수 장비였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진이 비밀 장치의 발동을 허락한 것 같았다. 다시금 인류의 기술력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괜찮으세요, 스테판?”

   “나는 상관없소.”

   둘은 숨을 돌리기 위해 지하 세계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산 위로 이동한 후 몇 분간 휴식을 취했다. 스테판은 한참 후에야 힘겨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에게서 오랜 세월을 산 노인의 한탄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역시나……, 당신 말대로 나는 오만했소.”

   실망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마치 꼬리를 축 늘어뜨린 개의 모습이 떠올랐다. 잠시 윤혁은 스테판의 의중을 몰라 의아해했다. 그러다가 문득 처음 스테판을 만났을 때 그가 직접 가르쳤던 내용이 떠올랐다. 참된 신을 추구하던 스테판에게 먼저는 오만을 극복해야 한다고 경고했었지.

   “거짓 신들의 그늘에서만 벗어난다면, 그것들의 족쇄만 깨트리면 참 신께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소.”

   힘없는 목소리에서 어딘가 모르게 참회의 향기가 묻어났다.

   “하지만 그 무덤 속에서 일그러진 영웅들을 만나고 난 뒤에야 깨달았소. 저들의 모습도 나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발견했소. 만약 당신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도 똑같이 이용만 당하다 비참히 끝났을 거요.”

   “스테판 씨…….”

   “그도 아니면 현월을 섬기던 그녀가 나를 이용했겠지. 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진리를 향해 갈 수가 없는 운명이었소. 나는 너무도 미혹 당하기 쉽고 마음도 깨끗치 않소. 신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고 믿었던 생각부터가 오만이었소.”

   윤혁은 묵묵히 상대의 말을 경청해주었다.

   “이런 내가 어찌 절대자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겠소. 그분께서 먼저 나를 찾지 않는다면 나 혼자서는 죄와 종속의 사슬을 결코 깨트릴 수 없다는 그 말은 진정으로 올바른 말이었소.”

   스테판은 고심 끝에 힘겨운 질문을 솔직히 끄집어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소?”

   윤혁은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한 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당신이 무언가를 행함으로써 그분과의 관계가 이뤄지는 게 아니에요. 당신께서 누구인지도, 그 옛 정체성도 영향을 미치지 못해요. 중요한 것은 그분께서 당신에게 어떤 일을 하셨느냐, 그리고 그분이 어떠한 분이시느냐에요.”

   그는 마음이 지친 사내에게 물을 건네며 대화를 계속했다.

   “제 처지 역시 마찬가지예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못 찾아요. 아니, 발견해도 나아갈 수가 없어요. 그게 ‘죄인’이라는 현실의 비참함인걸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열어주셔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어요.”

   “하나님이자 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목이란 뜻이오?”

   “네, 맞아요.”

   단순한 신학적 명제 이상의 무게를 지닌 진리.

   “그리고 그분은 한 죄인이 스스로의 무력함과 거짓됨을 겸손히 인정하고 주님께 항복한다면 그 과거의 죄질을 막론하고 값없는 은혜를 베푸세요. 우리에게 값을 요구하시지 않죠. 그 무한히 값지고 고귀한 희생을 말이죠.”

   내면의 어두움에 잔뜩 짓눌리던 스테판의 표정이 그제야 한켠 환기된 듯 편안해졌다. 그는 해방의 터널에서 과연 무엇을 깨달았을까? 그는 과연 세 친구가 모시는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을 만났을까? 윤혁은 그 대답을 기다렸다. 그의 심령이 올바른 향방을 찾기를 소망하며.

   “나는……, 당신들이 섬기는 분이 진정한 절대자이자 내 주인임을 마음으로 인정하오. 아니, 부정할 방법이 없소. 그리고 내가 구제 불능이자 무력하다는 것을 인정하오.”

   지식과 이성의 굴복.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이 내 의지와 자아의 항복이라면, 힘겹지만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소. 아니 그분께 붙잡히는 길을 택하겠소. 그분이 나를 온유하게 빚어서 소유해주시기를 바라오. 또 내가 온전해지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그분께서 이미 대신 이루어주셨음을 믿소.”

   의지와 감정의 굴복. 윤혁은 그 고백을 듣고서야 미소로 후련함을 나타냈다. 과연 상대의 표정에서는 진심 어린 절실함이 느껴졌다. 그 심정에 공명했는지 감격 어린 마음이 윤혁의 속에서도 흘러나왔다. 스테판과 자신을 가로막던 보이지 않는 최후의 격벽이 눈 녹듯 흐드러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비로소 주 안에서 하나가 된 자들만이 느끼는 하나됨의 마음이 그에게서도 전해졌다.

 

 

 

 

 

 

*

 

 

 

   짧은 휴식을 마친 둘은 다시 중앙의 섬 쪽을 향해서 이동했다. 기쁨도 잠시, 적들에게서 들은 기밀에 의하면 여전히 동료들의 위기는 미해결 상태였다. 곧 저 멀리에서부터 검은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서서히 영역권 전방을 향해 팽창하는 광경이 선히 보였다.

   “저것이 바로……, 흑색 하늘?”

   “위험하오. 빨리 두 분을 데려와야 하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둘은 현재 인형 몸체이고 지구 시민이니 정신 간섭이 안 통할 가능성이 높다만……, 그래도 물리 공격에 피격당하면 위험하겠죠?”

   마침 반대편 하늘에서도 두 물체가 고속으로 움직이는 것이 관찰되었다. 리온과 루디아를 업은 채 날아오는 쿠앤크와 스크류였다. 그들은 호숫가에 멈춰 섰다. 스테판과 윤혁을 감쌌던 비빅의 몸체도 다시 둘에게서 분리되어 하나로 합쳐져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내 세 로봇은 공중으로 날아올라 사방을 정찰하였다. 그 사이에 네 일행은 재합류하였다.

   “다행이야.”

   “너희도 무사했구나.”

   간략한 안부를 나눈 뒤 넷은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했다. 무덤에 갇힌 영웅, 네필림, 흑색 하늘, 사상제어의 탑의 옛터와 그곳의 유적물과 실패작, 신정 통치 시스템, 그리고 정체불명의 검은 그림자에 대해서까지도. 리온과 루디아도 바벨탑을 본뜬 그 유적지에서 본 각종 흔적들에 대해서 증언하였다. 단서들이 모이자 퍼즐 조각이 모이듯한 시너지가 일어났다. 카뮈네라 한정의 유용성을 띤 정보겠지만 조금만 잘 확대해보면 더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 거짓 신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문득 윤혁은 적들이 신속히 움직일 것이 걱정되었다. 무덤 속 영웅들도 이방인들의 존재를 알아차렸으니 이제 상부에서도 움직임이 있으리라. 우호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을터.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기다릴 수는 없었다.

   “유적지에서 촬영한 영상들을 각 지역에 파견할게. 사람들에게 진리를 일깨워야지. 떠날 때 떠나더라도 우상 숭배의 진에는 흠집을 내야 하지 않겠어?”

   리온은 오랫동안 즐겨 써먹던 전법을 다시 응용하기로 했다. 드론을 이용한 대량 정보 배포. 윤혁의 말대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어쩌면 곧바로 이 하늘도시에서 탈출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빈 손으로 떠나지 않으려면 뭐라도 건져야 했다.

   “고마워.”

   ‘역시 리온답게 확실하네.’

   윤혁은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한 기대감으로 희망의 끈을 삼았다. 신들에게 배척당할 일은 걱정되었으나 성과가 남으리라는 생각이 들자 통쾌함이 들었다.

   “저번 여행지에 비교해서 회개한 사람의 수가 너무 적어.”

   한편 루디아는 서운함을 표했다. 그녀로서는 카뮈네라의 전 지역에 복음을 전하지도 못한 채 돌아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신들이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시스템이었으니 불가항력적이었다지만 언제 이곳을 다시 밟을 수 있겠는가. 영혼의 속박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떠나자니 불쌍한 마음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실망하지 마시오. 당신들의 헌신은 헛되지 않았소.”

   그때 스테판은 리온과 루디아 앞에서도 자신이 주님을 향해서 회개하고 돌아선 일을 간증하였다. 덧붙여 이제는 전력을 다해 일평생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참여하겠다는 다짐도 함께 전했다. 이는 두 사람에게 큰 감동과 위로가 되었다.

   ‘하필 상황이 이렇게 긴급하지만 않았다면.’

   ‘이 자리에서 같이 진지하게 기뻐하며 축제를 벌였을텐데.’

   ‘아쉽네.’

   크게 기뻐할 일임은 분명했다. 다만, 스테판이 이런 긴장감 넘치는 위기 상황에서 일행과 함께 떠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반지의 코드가 없이는 하늘도시 안과 밖을 넘나들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암울한 전망이 예견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만히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넷은 각자 남은 계획을 점검하면서 분주하게 일을 처리할 채비를 했다.

   ‘어떻게든 스테판 씨와 동행하고 싶은데…….’

   그저 한 영 안에서 한 믿음을 공유하게 된 연합체가 된 것으로 만족한 채 헤어져야 하려나? 선교사 일행은 마음속으로 깊이 번뇌하였다.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허무하게 흩어지기에는 미련이 남았다.

 

 

 

   그러던 바로 그때.

   쿠우우우웅.

   사방에서 장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는 동서남북 사방에서 각기 다른 주파수와 음색을 머금은 채 들려왔다. 소음이 점점 거칠어지면서 온 땅이 뒤흔들렸다. 넷은 일제히 귀를 막았다. 나중에는 음파뿐 아니라 지진과 바람까지도 일었다. 갑작스러운 대반전. 예상을 못 한 상황은 아니었으나 막상 눈앞에 닥치니 얼을 빼놓을 듯한 긴장감이 일었다. 일행 모두는 마비 독을 묻힌 화살촉에 찔리기라도 한 듯 얼어붙은 자세로 멈춰 섰다.

   “자, 슬슬 과잉대응이 시작되겠군.”

   동일한 시각, 진은 커피를 홀짝이며 하늘도시 내부를 촬영한 홀로그램 지도들을 흘깃 살펴보았다. 진 그가 여기저기서 벌여놓은 해킹은 필연적으로 시스템을 범우주적으로 들쑤셔놓아 시스템 내부의 자체적 대응 프로세스를 유도해낼 것이다. 생체 조직 내에 어떤 이물질이 들어가면 필연적인 면역 반응이 일어나는 법이듯 유기성을 지닌 시스템들도 마찬가지의 대응을 보이리라.

   “탈출할 문부터 열어둬야겠군.”

   약속대로 출입 담당 책임은 다했다.

   “알아서 잘 버티시길, 모험가들이여.”

   이제 진은 마지막까지 안배해두었던 비장의 카드를 움직였다.

   “너희들도 싸울 준비해.”

   텔레파시로 명령을 전달받은 호문쿨루스들.

   -중생들을 윤회로 영도하겠소이다.

   -드디어 몸을 풀 기회로군.

   보디붓다와 미후왕이 몸을 꿈틀거렸다.

   한편 카뮈네라에서는 하늘과 땅이 진동하며 섬광과 불과 번개가 사방으로 솟구치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드넓은 카뮈네라의 대륙과 바다를 지배하던 신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거운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어내었다. 그것도 분신체가 아닌 본체로서. 시스템이 의문의 세력에게 공략당하자 그 반응으로 ‘검은 그림자’가 대응 명령을 내렸다. 뜻밖의 나비 효과에 신들은 말려들었고 그들로서는 거부할 권한이 없었다.

   {위험 요소들을 수색해서 제거하라.}

   제일 먼저 열네 개의 대권능 성지가 뒤흔들렸다. 성지 주변에 빛으로 된 마방진이 생성되더니 귤껍질이 벌려지듯 시공간 틈새가 벌려졌다. 그렇게 열린 아공간의 문을 통해서 거대한 섬광 덩어리가 솟구쳤다. 빛의 덩어리는 형태를 갖추더니 사람의 모양을 입었다. 그것들의 입에서는 화염이 폭포수처럼 흘렀다.

   “대권능들께서……, 여신들께서 진노하셨다.”

   “신들께서 직접 강림하셨어!”

   “아아!!”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탄식하였다. 그러나 대권능들은 사람들이 다치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공중으로 이륙하였다. 그리고 빛의 잔흔을 남기면서 맹속으로 하늘을 가로질러 비행하였다. 열네 개의 서로 다른 색상의 빛덩어리들이 공중에 굵고 선명한 자취 선을 그려내었다.

   한편 아이코사헤드런은 햇빛을 흡수하였다. 이내 건물 위에 그려진 희미한 기하학 문양이 강렬한 섬광을 내뿜었다. 거대한 건축물은 순식간에 다중 큐브가 해체되듯 흩어졌다.

   이내 지하에 감금되었던 왕과 왕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기괴한 석상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을 수호하는 거신 병정들도 출현했다. 끝으로 신들의 본체들도 솟았다. 낮을 밤으로 바꿀 듯 거대한 날개, 산을 연상시키는 우락부락한 몸체, 여러 짐승을 섞어놓은 괴이한 형상이었다.

   “피해!!!”

   “아아, 어찌하여 이런 참담한 일들이.”

   사막 도시들의 주민들은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사태가 일어났다. 공중섬도 제 형태를 스스로 개변하였다. 그 구조물은 녹색 불꽃을 사방팔방으로 내뿜으면서 흉흉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이윽고 제복을 입은 사람 형체의 물체들이 수백 기 이상 섬에서 방출되었다. 특이하게도 그것들의 피부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빚어서 만든 듯했다.

   -왜 우리까지 나서야 하지?

   -시스템이 리셋을 선언했다. 명령어 ‘RAGNAROK’가 개시되었어.

   -성가시게 되었군.

   공중섬의 신들은 날개의 도움도 없이 유유히 공중을 날더니 호숫가 근처의 광야로 방향을 돌렸다. 몸집은 인간만 했으나 내뿜는 패기는 여느 상위 신 못지않았다. 오색의 불꽃과 뇌전이 그들이 날아가는 경로를 수놓았다.

   송곳 마천루에서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곳은 아예 맨 꼭대기부터 층들이 하나씩 하나씩 뜯어져 나갔다. 분리된 층들은 원격 조종 원반마냥 자율적으로 움직였다. 1,080개의 원반이 제각기 춤을 추면서 회전하는 모습. 참으로 살풍경했다.

   이후 각각의 원반, 아니 성채들로부터 형태와 크기와 색채가 제각기 다양한 온갖 형상들이 튀어나왔다. 그 형상들은 대기권을 자신들의 힘으로 충만하게 채우며 하늘을 번개로 물들였다. 살의와 악의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재앙처럼 떨어졌다. 신들은 비웃음 소리를 내며 징그러운 소리로 키득거렸다.

   호숫가에서부터 도망쳐 숲속으로 몸을 피하려던 윤혁 일행은 하늘 위에서 벌어지는 이변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황급히 대피할 곳을 찾았다. 지금 저 괴이한 현상을 일으키는 근원들, 그것들은 지난번 칼티엔뉴르에서 본 그 어떤 마법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소유한 존재들 같았다.

   “설마……, 토속신들인가?”

   리온이 광야 쪽으로 집결하는 거대 형체들을 보고 중얼거렸다.

   “인공생명체라고 하기에는……, 이미 거의 상식의 영역을 초월했어.”

   윤혁은 1년 전에 형의 자택 수영장에서 보았던 신수들의 모습을 떠올려보고 지금의 것들과 비교해보았다. 지금 나타난 저것들은 이미 그때 본 신수들의 수준마저도 아득히 뛰어넘은 규격을 지니고 있었다.

   제아무리 그 물속의 신수들이 관상용에 불과했다지만, 일개 식민지 전용 유닛들이 전에 본 제왕의 소유물들보다 강력하다니. 설명할 방도는 하나뿐이었다. 그 사이에 과학의 힘이 그만큼 비약적으로 증대되었다는 것. 불과 얼마 전 과거의 위대함이 현재에는 그저 값싼 소모품으로 쓰일 정도로.

   ‘인류의 기술 발전 속도는 대체……, 어느 경지까지 이른 것이지?’

   그 격차가 의미하는 바에 섬뜩한 공포를 느낀 윤혁은 몸서리를 쳤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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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전도 소설이기도 하지만 원래의 장르는 엄연히 SF(science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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