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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14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8. 인터미션 II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8.28 | 회차평점 0 0

 

 

 

 

 

Chapter 18. 인터미션 Ⅱ

 

 

 

 

 

 

   오늘도 칼리드는 대요새의 사령탑에 앉아 묵묵히 업무를 처리하였다. 그는 늘 과중한 임무들을 꿋꿋하게 해결해왔다. 그런 성실함에 더해 매번 성공적인 성과까지 가시적으로 이룩했기에 신뢰를 많이 얻었고 그 결과 더욱 많은 일을 맡게 되었다. 그의 몸과 정신은 탈진이라는 낱말을 모르는 듯했다. 지치기는커녕 아버지에게 더 인정받기 위해 더욱 일에 매진하는 그였다.

   현재만 해도 그는 수만 개 이상의 요새, 수억의 자원 행성과 항성, 수천 이상의 하늘도시의 일들을 두루 살피며 연구와 정치와 경영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해내는 중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누군가가 얹혀준 사소한 시스템 해킹 문제쯤은 다른 업무와 함께 멀티태스킹으로 해결하는 것도 그다지 버겁지 않았다.

   ‘진의 개입이야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의형제인 진은 예전에도 줄곧 칼리드가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해낼 때마다 그것을 집요하게 공략해주었다. 어떻게든 약점과 허점을 잡아내어 괴롭히고 또 괴롭혔었다. 그 자체는 칼리드 입장에서도 손해될 일은 아니었다. 상대가 불완전한 시스템의 허점을 밝혀내어 검증해주니 그로서는 개선할 기회를 얻는 셈이었다. 한마디로 상호발전을 위한 좋은 기회. 애초에 아버지가 형제들 각자에게 그런 역할을 부여한 것도 다 이런 식으로 시너지 효과를 낳기 위한 설계였다.

   “매번 손을 번거롭게 만들어주시는군.”

   갓-딜루젼 디버깅(프로그램 오류 수정)에 참여했기에 틈을 얻은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무려 1만 개의 도시를 해킹만으로 동시 공략해내다니.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진도 정말 솜씨가 범상치 않음을 인정해야 했다. 뒤통수가 얼얼했다. 공략당하기는 쉬우나 재발을 막기 위해 보수하고 강화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어쩌겠는가. 그래도 지금 고생하는 편이 나중에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

   “덕분에 이번 일을 계기로 서버를 몇십 단계 이상 진화시키긴 했지만……, 개편 과정에서 기존 식민지들이 쓰던 자율 지배 시스템들은 몇몇 훼파되어버렸군. 각자 불가피하게 재건의 수고를 겪어야겠어.”

   그가 고안한 갓-딜루젼은 양아버지의 기술인 ‘6세대 시뮬레이션 우주’와 홀로그래피 차원 관련 기술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만든 것으로 무려 식민지 사람들 속에 새겨진 정신 각인 중 하나인 ‘사상제어의 표식’과도 연동이 가능한 네트워크였다. 그것은 워낙 범용성이 높았기에 주민들의 신앙, 정치, 사상, 문화 속에 다양한 형태로 침투함으로써 주민들의 공동체를 강제 종속시키는 일도 가능했다.

   최근에는 식민지 주민들이 신처럼 섬겼던 내정 시스템들 중 일부가 갓-딜루젼과 접속함으로써 또 하나의 상당한 부수 효과를 창출했다. 갓-딜루젼은 접촉해오는 시스템들과의 밀월을 적극적으로 용인하고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 속의 특수 프로그램을 이용해 주민들의 ‘자기 신들을 향한 강렬한 열의와 사랑’을 변환해 인류연합의 시스템에 대한 무의식적 충성과 복종으로 환원하였다.

   그 업적은 분명 진일보였다. 비록 불완전한 측면이 있어서 이렇게 훼파 당하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꽤 유용했다. 그렇다. 진의 짓궂은 장난과 그로 인하여 나타난 파생 결과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진의 해킹으로 보안이 뚫려 난장판이 된 몇 개의 하늘도시들을 살펴본 칼리드. 쉽사리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작자가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다양한 접근법들을 채택해서 동시 작업을 해놓은 탓에 겉보기만으로는 무작위적인 우연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이것이 진이 노린 바였으리라.

   “어렵군.”

   각각의 하늘도시의 해킹 침투 발생 시점들을 모아 시간적 전후 관계들을 비교해봐도 일련의 패턴을 찾기 어려웠다. 그나마 눈에 띄는 공통점이라면 하늘도시들의 내부에 동일한 침략용 물리적 현현체를 보내어 내부 관리자들의 하드웨어를 공략했다는 점이었다.

   “호문쿨루스?”

   단순한 유닛 그 이상의 발명품, 만만히 볼 것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장난감이군. 본체가 따로 없이 각각의 분신들이 전부 본체처럼 작동할 수 있는 건가? 더구나 하나가 부서지면 그 힘이 다른 개체들로 전이되는군. 그래서 동시에 전부를 깨부수지 않으면 공략 불가인 건가?”

   무아지경(無我之境). 양자역학의 원리와 불교 철학을 절묘하게 재조합해 창작해낸 고도의 기술. 저 무아지경을 활용하면 유닛으로 하여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라는 두 영역을 마음대로 넘나들도록 할 수 있기에 별도로 물체를 물리적으로 이동시키지 않아도 된다. 시스템만 원격 해킹하면 분신을 그 지점에 현현하게 할 수 있으니까. 과연 진다운 흥미로운 발명품이었다.

   하지만 그 카드의 노출은 칼리드로서도 나름의 호재였다.

   “내부에서 발생한 전투를 일일이 촬영 기록했으니 금세 기반을 이루는 기술도 분석해낼 수 있겠지.”

   칼리드는 수하 인공지능들을 시켜 하늘도시들 속에서 호문쿨루스 보리붓다의 분신들이 벌인 전투의 영상 촬영본을 분석하게 하였다. 그와 동시에 무아지경이라는 기술의 본질까지 역추적하여 캐내도록 지시했다. 인공지능들이 막노동을 마무리하면 자신이 직접 지식을 취합할 작정이었다.

   끝으로 그는 한 가지 남은 의심스러운 점을 뜯어 살폈다.

   “시간적 선후 관계(Temporal relation)가 어떻게 되지?”

   진이 벌인 이번 일이 이전의 방해 공작들처럼 단순한 베타테스트였는지, 아니면 별도의 의중이 숨어있는 것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칼리드는 차분히 갖가지 가능성을 일일이 의심하면서 기록된 데이터를 신속히 관찰했다.

   ‘기꺼이 꿰뚫어주마.’

   칼리드나 진을 포함한 철인왕들은 종종 특정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에 미리 대응해내는 경우가 적잖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앞날을 내다보는데 비상한 혜안과 지혜가 있기 때문이었다. 탁월한 종합 예측력을 소유한 킴벨리아만큼은 아니어도 나머지 여섯 명 역시 기본적으로 그녀에 버금가는 수준은 되었다.

   여기에 더불어 최근 급속도로 발달한 미래예측시스템 내장 컴퓨터와 광역용 관측 장비도 톡톡히 보조자로서 한몫해준 바람에 철인왕들의 이런 재능은 더욱 날개 돋친 듯 빛을 발했다. 참고로 그런 류의 보조 장비 중에는 최근 진이 개발 중인 통신 장비도 있었다. 그 가운데는 인과율을 위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부분적이나마 미래에서 과거로 신호를 보내는 엄청난 장비도 있었다.

   ‘진 녀석의 능력은 종합적으로 나와 거의 동급. 게다가 특수 기술력의 보조라는 측면에서는 녀석이 고지를 점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를 상대하는 이 마당에는 겉으로 나타난 현상만 보고 사건의 인과관계와 시간적 선후 관계의 진위를 추리하는 것은 무리였다. 미래 예견이 가능한 상대는 그만큼 양동과 은폐와 속임수와 혼선 만들기에도 유능하기 마련. 그렇기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상대의 의중과 사고방식 패턴을 꿰뚫고 더 나아가 고도의 역추적을 이뤄낼 알고리즘이 필요했다. 진에게는 아쉽게도 칼리드는 이러한 방면에서는 초인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수였다.

   “심증뿐이지만……, 녀석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

   깊은 지략의 묵상 끝에 그는 몇 가지 시나리오의 후보를 빠르게 추려내었다. 그는 과연 진이 어떤 시점에 어떤 도시에서 어떤 일을 벌였을지 그 예상안을 간추려보았다. 무시무시한 지력이 두뇌 속에서 운용되자 순식간에 수조 개의 가능성이 수십 개의 후보로 좁혀졌다. 예측된 핵심 장소도 열댓 개의 후보로 추려졌다. 그 가운데는 주목할 점이라고는 특별히 없는, 현지 원주민들이 카뮈네라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미개한 식민지도 포함되었다.

   ‘흐음.’

   잠시 칼리드는 회상에 잠겨 들었다.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그녀와의 만남이 떠올랐다. 그가 친형제처럼 따르는 누님. 그녀가 아무 연락 없이 그의 거처를 대뜸 방문했었다. 붉은 머리에 탄탄한 근육의 소유자인 매력적인 여성은 인사도 생략한 채 칼리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렇게 물었었다.

   “뭘 그리 고민해? 아우님.”

   “무거우니까 손 떼, 아키라.”

   명실상부 인류 최강의 바이오닉 솔져, 퀸. 스물네 명의 최상위 초인 간부 중 하나인 동시에 단일 개체로서는 최강의 전사. 그녀는 호인답게 여느 때처럼 허물없이 굴었다. 밤참 먹을 것 없냐면서 툭툭 신경을 건드리질 않나, ‘너 그토록 일만 해대더니 살 잔뜩 빠진 거 아니냐’는 둥 얼빠진 소리나 잔뜩 늘여놓질 않나. 헛웃음이 다 나왔다. 칼리드는 여느 때처럼 원래 저러려니 하고 포기했다. 아키라니까. 적당히 상대해준 뒤 보내려고 했었다. 그랬던 참에.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 넌 거기 접속해본 적 없지?”

   대뜸 아키라가 이렇게 물어보는 게 아닌가.

   “아카식 레코드라고? 그건 아버지와 킴벨리아 이외에는 접속 권한이 없었던 게 아닌가? 그런데 왜 묻지?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연관된 것인가?”

   취조하는 어투로 칼리드가 되물었더니.

   “아, 별거 아니야. 그냥 우리 칼리드라면……, 왠지 철옹성인 아카식 레코드마저도 훼파할만한 설비를 갖추고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그냥 궁금해서 한 번 캐물어 봤어. 큰 의미는 없어.”

   그러면 의심스러운 말이라도 하지 말던가. 칼리드는 의심의 눈초리로 그녀를 흘겨보았다. 원래 아키라는 일곱 철인왕 모두와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왔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칼리드나 진과 얽히는 일이 많았다. 그런 그녀가 전후 맥락 없이 아카식 레코드에 대해 암시를 던지는 것이 영 수상했다. 그녀의 속내를 파헤칠 작정으로 주의 깊게 살펴보았으나 끝내 그녀는 별다른 단서를 남기지도 않은 채 다시금 의미 없는 친목 행위만 하고서는 떠났다.

   회상을 마친 칼리드는 고심했다.

   “아카식 레코드.”

   공식 언터쳐블 테크놀로지인 이데아를 조잡하게나마 모방해서 만들어낸 아류작. 그럼에도 철인왕들에게 접근이 허락된 수준 내에서는 한없이 최정상에 가까운 기술력을 함축한 서버였다. 칼리드라고 해서 한 번쯤 아카식 레코드를 공략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실제로 그래서 그는 아카식 레코드보다는 약하나 힘을 합치면 강점과 약점을 보완해 그 언저리에는 다가갈 수 있는 일련의 서버 무리를 만들어낸 바도 있었다. 소위 ‘대(對) 아카식 레코드’ 전용 프로그램. 아키라의 동물적인 직감은 정확했다.

   “DESCARTES!”

   {부르셨습니까.}

   칼리드는 먼저 하나의 프로그램을 소환해내었다. 사고 연산을 통해서 존재와 비존재의 확률을 변환하는 물리학 병기인 DESCARTES. 아직은 시범작이긴 해도 거의 완성 단계에 다다랐으니 지금쯤이면 기능을 확인해봐도 좋으리라. 이번 시점이야말로 데뷔에 있어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네 형제 된 프로그램 중에서 최종 보수가 완료되어 곧바로 실전에 투입 가능한 녀석들이 몇이나 되는가?”

   {경험기반 확률추론 시스템 BACON, 집단융합형 정신계약 연산자 ROUSSEAU, 이 둘은 현재 저와의 동반 행동 개시가 즉각 가능합니다. 구도자 SPINOZA, 보수 프로그램 MILL, 피드백 서버 VOLTAIRE는 가동 자체는 가능하지만, 아직은 저와 호흡을 맞춰 연계해 움직이려면 훈련 시간이 필요합니다.}

   “잘 됐군. 그 부분은 내가 도와주지.”

   곧바로 칼리드는 각 프로그램의 내재 오류를 손수 찾아서 수정하였다. 그의 손이 닿자 DESCARTES의 예측 안보다 훨씬 빠르게 일이 완성되었다. 아울러 칼리드는 디버깅을 수행하는 동시에 프로그램들의 내부에 어떤 공통된 소스 코드를 삽입하였다. 아카식 레코드에 몰래 접근해서 그 내부 내용물들을 파헤치려면 그 코드가 필요했다.

   “이제는 너희들 차례다.”

   무형 프로그램들의 연합으로 된 팀이 구성되었다.

   {아카식 레코드 내에서 당신이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최근에 아키라와 만났을 때 벌인 연산 작용, 그 기록을 가져와라. 그리고 이왕이면 진이 연루되어있는지도 계산해서 추론해내도록. 아마도 그 녀석이 킴벨리아를 부추겼겠지. 아카식 레코드를 활용해 뭔가를 탐색하려 했던 것이 분명해. 이 몸도 그걸 직접 알아야겠군.”

   {곧바로 탐색을 수행하겠습니다.}

   이에 DESCARTES, BACON, ROUSSEAU, SPINOZA, MILL, VOLTAIRE가 일제히 행동 개시를 통보하였다. 곧 그들은 연합 전선을 구축하여 방대한 우주 사이버 네트워크 내부로 파고들면서 우주 곳곳의 서버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최종 목표물은 아카식 레코드. 긴 호흡을 두고 접근해야 했다.

   “찾아서 뜯어내 보면 뭘 꾸미는지 금방 밝혀내겠지.”

   그렇게 칼리드는 기우(杞憂)를 일부 덜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시행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핫라인의 가동 가능 여부를 확인하였다. 그와 그의 부하들의 권한이 직접적으로 닿지 않는 지구 쪽은 다른 사람 쪽에 맡기는 편이 낫겠지. 이왕이면 성향이 잘 맞고 유능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좋겠지. 비록 그 상대가 그리 친한 친구가 아니더라도.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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