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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216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8. 인터미션 II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9.02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먼저 그는 구조되었던 정황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우주선의 주인……, 철인왕이라고 자칭하는 그 관리자가 내 몸과 내 표식의 상태를 점검하였소. 또한 그는 내 기억을 역추적하였소. 과거에 내게 있었던 일들과 내게 남겨진 접촉자의 흔적을 살폈소. 가상 현실 프로그램을 통해서 나를 몇 차례나 심문하기도 했지. 하도 오래 시달렸는지 지금은 기운이 없소.”

   “너무하네요.”

   윤혁은 속으로 진을 타박했다. 그러나 정작 유념해야 할 점은 스테판이 수색받느라 고생했다는 부분이 아니었다. 진은 왜 그토록 스테판에게 관심을 보이는 걸까? 혹시 그가 이레귤러적인 존재라서 그런 걸까? 그가 걸어온 궤적이 일반 주민들과는 전혀 달라서?

   “설마 그자가 당신의 과거를 밝혀냈나요?”

   조급한 마음에 윤혁이 먼저 물어보았다.

   “전부는 아닐 것이오. 하지만 대강 그도 뭔가 감을 잡은 듯하오. 내 무의식 속에서 나조차 잊었던 수많은 정보를 탐색해낸 모양이오. 정작 내게는 숨기던 눈치였지만, 그래도 몇 가지 사실 정도는 알려주었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희에게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루디아가 정중히 여쭤보았다. 스테판은 아직 두통 기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다소 두서없이, 그러나 꽤 유용한 정보들을 털어놓았다. 진이 심리 탐색으로 추적해낸 바에 의하면 스테판은 원래 식민지 출신, 곧 하늘도시의 주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아마도 진과 같은 후기 세대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시점, 곧 하늘도시라는 시스템이 정립된 지 얼마 안 된 초기 세대쯤의 주민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나.

   “나는 현세대 우주 인류보다 신체 개량이 덜 된 상태요. 그래서 우주 적응력은 다소 떨어지오. 당신들과 별 차이가 없다고 봐야겠지.”

   조금 무서운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 갔다.

   “그리고 내가 내 출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서……, 나는 애초에 주민 가운데 뽑혀 나와 특수한 목적으로 선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소. 주민이었던 시절의 정체성을 망각했던 건 그 이유 때문일 것이오. 선발 과정에서 기억을 재정립 당하거나 했겠지.”

   “특수 목적이요?”

   놀란 리온이 의아해하자 재빨리 윤혁이 대신 부연했다.

   “휴먼 솔져라고, 하늘도시 주민 중에서 따로 선별해낸 특수 군인들을 모아놓은 인류연합 공식 체제가 있어. 그리고 내가 듣기로는 식민지 출신의 초인들도 선발된 후보군을 후천적 교육을 통해 각성시켜낸 결과물이라 하더라. 미리 천재성의 싹이 잘 보이는 아이들을 대량 선발해서 모아둔 뒤, 경쟁을 통해 각성시키는 방식으로 알고 있어.”

   물론 윤혁이 아는 ‘특수 목적 선발’의 예시는 휴먼 솔져와 초인 후보자 단 두 종류뿐이었다. 하지만 다른 목적의 후보 선발이 전혀 없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스테판을 옭아맸던 선발 프로그램은 전혀 다른 제삼의 목적이었거나 휴먼 솔져 제도가 확립되기 이전의 징병 제도일지도 모른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스테판은 헛기침하며 화제를 넘겼다.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점……, 내 인생에 간섭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녀’에 대해서는 일절 듣지 못했소. 반복해서 질문했는데도 함구하는 것을 보면 철인왕조차도 경계해야 하는 자일 가능성이 높소.” 

   “아마도 그럴 거예요.”

   진은 트리플 스페셜 클래스의 초인. 반면 ‘그녀’로 추정되는 ‘크레센트의 선지자’는 에드레이의 증언에 의하면 카테고리 분류 불가, 진보다 한 수 위의 격을 지닌 존재. 마땅히 진 입장에서는 경계할 만하다.

   “그나저나 윤혁 당신은 뭔가 아는 게 많은 모양이오.”

   스테판이 기이해하는 기색으로 질문의 화살을 돌렸다.

   “아, 그게, 의도치 않게 거물들과 안면을 트게 되었거든요.”

   윤혁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기회 되면 자세히 이야기해드릴게요.”

   “알겠소.”

   마지막으로 스테판은 소위 ‘표식’이라고 불리는 미지의 실체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돌려 정보를 전해주었다. 계속 언뜻 언급만 들어왔던 일행으로서는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몹시 궁금했다. 참고로 이 정보는 스테판도 진에게서 들은 게 아니라 우주선에 돌아온 이후 무의식 속에 파묻혔던 지식을 꺼냄으로써 알아낸 것이라고 한다. 저절로 깨달은 것인지, 세계관 정보를 주입 당할 때 안 것인지, 아니면 ‘그녀’ 혹은 다른 누군가가 알려준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소위 ‘표식’이란 본질적으로 모든 하늘도시들의 모든 주민의 운명을 보편적으로 속박하는 최첨단 기술. 그것은 사람을 구성하는 모든 원소 하나하나에 새겨지는 장치이며 그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철학적 원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히 베일에 꽁꽁 감싸여있다고 한다.

   “그중에는 정신에 간섭하는 것도 존재하오.”

   칼티엔뉴르에서부터 대강 추정만 했던 것을 스테판이 확인 사살해줬다. 과연 인류연합은 사람의 사상과 정신을 제어하는 장치를 지니고 있었다. 모골이 송연해지며 소름이 끼쳐왔다. 두려운 세상의 현실을 마주하니 불편감이 밀려왔다. 특히 윤혁은 필요 이상의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나의 경우는 이미 깨진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말이오.”

   “그나저나 스테판 씨, ‘그중에는’ 이라면 설마…….”

   심상찮은 기분을 무릅쓰고 리온이 지적했다.

   “표식이 한 종류가 아니라는 뜻인가요?”

   “그렇소.”

   즉각적인 답변에 세 일행은 당황했다.

   “주거 영역의 자유를 속박하는 표식도 있소. 특정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소속된 ‘세계’, 그러니까 당신들의 용어를 빌리면 ‘하늘도시’ 내부에만 존재하도록 제약하는 장치요. 그것도 특정한 한 하늘도시에서만. 따라서 외부에서 의도적으로 소속을 바꿔주지 않는 한 주민은 자기가 소속된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오.”

   “편법은 안 먹히는 겁니까? 워프나 게이트도 안 통하나요?”

   “물론이오. 그것들을 포함해 세계의 안팎을 넘나드는 모든 종류의 공간계 기술은 일체 주민의 신체에 적용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소. 앞서 말했듯 윗선에서 조정해주지 않는 이상 말이오.”

   ‘워프마저도 차단하는 기술이라고?’

   도대체 표식이란 게 얼마나 기묘한 테크놀로지이길래? 형은 그러한 섬뜩한 고등 기술력을 몰래 운용해왔단 말인가? 윤혁은 기가 찼다. 그러나 정작 더 주목해서 들어야 할 부분은 다음 대목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레귤러라 그런지 조금 다른 듯하오. 나는 내 표식에 입력된 ‘소속 세계 좌표’를 내 의지대로 자유로이 전환할 수 있는 것 같소.”

   세 청중의 입이 동시에 떡 벌어졌다.

   “네?”

   “너무 놀라지 마시오. 사실 이 부분은 나도 최근에 알게 되었소. 이틀 전에 강윤혁 군을 데리고 하늘도시를 탈출할 때 처음으로 내가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아니, 어쩌면 그 순간부터 가능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과연 그런 게 가능키나 한 건가요?”

   허탈해진 윤혁이 의구심을 표했다.

   “인류연합 시스템이 그리 허술하지는 않을 터인데요?”

   “흠, 의심 가는 원인이 몇 가지 있소. 나는 지난 세월 ‘그녀’에게 모종의 조작을 꾸준히 당해왔던 것 같소. 그 영향이 있을 거요. 물론 그것만으로는 전부 설명되긴 어렵다만…….”

   스테판은 머뭇거리며 시선을 윤혁 쪽으로 옮겼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강윤혁 군이 소유한 그 반지……, 돌원숭이가 그 물건에 손을 대면서부터 확연히 내 안에서도 다른 느낌이 들었소. 그것을 보아 저것도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오.”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윤혁의 반지 쪽으로 향하였다. 그러고 보니 저 물건은 항상 윤혁의 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원숭이도 물리력으로 그것을 훔치는 데 실패했다. 우주선에서 돌아와 치료를 받을 때도 몸에 걸친 옷가지를 다 떼어낸 와중에도 반지만은 몸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왜일까?

   “하지만 결정적인 영향은 아마도…….”

   다음 대목이 반전의 분위기를 풍겨냈다.

   “내가 회심을 한 것과도 연관 있지 않나 싶소. 그때 나는 나를 지배하는 모든 속박에서 자유를 느꼈소. 정신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지구의 주민들도 회심할 때 똑같은 체험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 간극의 희열이 어마어마했소. 아마 속박하던 굴레가 많아서 그랬을지도 모르지.”

   “속박이라면……, 표식에 의한 정신 간섭 말인가요?”

   리온이 되물었다. 설마 마음속에 신앙이 발생한 것이 거기에까지 실질적인 영향을 준단 말인가? 하기야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셋은 일전에 칼티엔뉴르에서도 복음을 전할 때도 기존에 주민들에 씌워져 있던 정체 모를 정신 간섭이 회심 즉시 약해지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았었다. 그때는 회심자 본인도 정확히 어떤 변화인지 설명해주지 못한 탓에 간접적인 심증뿐이었지만, 이제 스테판이 확실한 증언으로써 쐐기를 박아주었다.

   “그렇소. 당신들이 말한 영적 자유의 획득, 거기에다 여러 가지 우연적인 섭리들과 나만의 특수한 상황 조건이 겹치고 겹쳐서 지금의 절묘한 상태를 빚어낸 것이 아닐까 싶소.”

   셋은 이 일을 기뻐해야 할지 염려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저런 특수한 경우를 만약 다른 초인들이 눈치챈다면 필시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스테판을 어떻게든 지켜줘야 하건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고작 세 명의 선교사가 어찌 온 우주 인류를 지배하는 막강한 시스템에 맞설 수 있겠는가.

   그러던 참에 스테판이 폭탄선언을 꺼냈다.

   “그래서 나는 아예 이 우주선의 주인과 거래를 맺었소.”

   “네? 거래요? 무엇을 두고요?” 

   윤혁은 크게 외쳤다. 스테판이 독단적으로 진과 거래를 했다고?

   “큰 일은 아니었소. 보아하니 그자들에게도 나의 존재는 제법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사안인 듯했소. 그는 내 처리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했소. 상부에 보고해야 할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더 감시하고 두고 봐야 할지를 말이오. 그래서 나는 나를 조사할 권한을 그자에게만 한정하여 제공하기로 했소.”

   이에 루디아가 염려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시겠어요?”

   “어차피 혼자 돌아다니다가 잡히는 편보다는 백 배 낫소. 언제든 나를 조사할 수 있게 그자에게 허락해준 대신에 당분간은 당신들과 동행하도록 허락받았소. 그것이 내게 허락된 수익이요. 게다가 꼭 잡힐 염려 때문이 아니더라도 내겐 선택지가 없소.”

   비록 스테판이 ‘소속의 표식’을 본인의 의지로 다루는 법을 각성했다지만, 어디까지나 한 번에 한 개의 하늘도시에만 소속된다는 제약은 여전했다. 다시 말해서 하늘도시 바깥에서는 스테판이 오래 거주할 수 없다는 뜻. 존재 자체를 오래 허락받지 못한단다.

   “예외적으로 윤혁 당신과 동행할 때는,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의 반지 근방에 있을 때는 괜찮다고 하오. 절묘하게 일이 잘 맞아떨어졌소.”

   “그것도 그것이지만, 진이 잘도 허락해주었네요. 의외네요.”

   “그자는 당신들을 다음 식민지들에 옮겨 넣을 때마다 나를 동행자로 붙여 동참시키기로 약속했소.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이오. 말하자면 당신들을 내 감시자 겸 관리자로 정한 거요.”

   “그 말인즉…….”

   복잡한 뒷사정이야 어떻든 이제 스테판도 새로운 동료로 합류한다는 말이 아닌가? 세 명은 새로운 서막의 시작을 알리는 이 전조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간절한 기도가 마침내 하늘에 닿은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정작 감사해야 할 부분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그분은 내 생명과 운명을 건져주셨소. 하지만 아직 나는 그분께 해드릴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소. 기껏해야 내 몸을 바쳐 헌신하는 일뿐.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람을 아오. 그래도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하고 싶소.”

   이 순간의 그의 고백은 꾸밈이 없는 진솔함에 기초해있었다.

   “그래서 당신들이 이루려는 바를 곁에서 돕고픈 마음이 생겼소.”

당장 스테판 본인은 자신에게 이 이상한 마음이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분명 그것은 그의 자유의지로 기꺼이 따르고픈, 강렬하고도 신선한 열정이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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