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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22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47. 니르바나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4.27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듣는 이들은 그 말에 거대한 혼란을 느꼈다. 승천이라니! 초차원 육체라니! 그게 가능키나 한 일인가.

   ‘영적 현상인가? 아니면 초고도 문명의 산물? 뭐지?’

   하여튼 자기 말에 의하면 굴레에서 해방되어 승천했다는 한나는 이후 점점 더 이종족의 본능적 성질을 많이 자각해나갔다. 동시에 그녀는 보이지 않는 ‘어떤 대상’에게 깊은 끌림을 느꼈다. 정확히 표현하면, 전부터 은연중 느껴왔던 끌림의 감각이 구체화되었다고 해야 하리라. 해방 이후 감당 못 할 성장을 거듭하던 그녀는 그 끌림의 대상을 찾아서 헤맸다.

   “한참을 더 진보한 뒤에야 마침내 그것을 만나고야 말았수.”

   “대체 그것의 정체가 뭐죠?”

   “우주상에 존재하는 이종족 전부를, 그들의 정신과 의지와 감정을 하나로 묶어두고 지배하고 조정하는, 그래, 일종의 초월체(Overmind)였지.”

   당황한 두 선교사는 숨쉬기마저 잊고 침묵 상태로 경청하였다. 한나의 증언에 따르면 문제의 ‘초월체’라 불리는 그것은 이종족에게는 궁극적 존재 이유요 신적 존재와 같다고 하였다. 물론 한나는 초월체의 모양을 육안적으로 명료하게 보지는 못했다. 그저 꿈속에서 잠시 만나서 어렴풋하게 그 존재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더 깊은 정보는 모르시고요?”

   “이름은 들었소. 들은 게 아니라 정보가 뇌리에 강제 주입되었다고 해야겠지.”

   그 말에 리온은 알리엔과의 대화를 곁에서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혹시라도 그 이름……, ‘조율 프로그램’이던가요?”

   “아니요, 달랐소. 어디 보자, 그래, ‘보이지 않는 마음’, 초월적인 중심체의 참된 본명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었소. 내 분명히 기억해왔지.” 

   보이지 않는 마음과의 대면을 통해 한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이종족들이 당했던 것처럼 자신의 정신도 그 보이지 않는 마음이란 것에 종속되고 말았다는 비참한 진실을 말이다. 하지만 깨닫고 난 뒤에도 되돌이킬 의지는 전혀 생기지 않았다. 도리어 그것을 향한 구속에 가까운 열망은 이전보다 더욱 심해졌다.

   이후, 한나는 인간을 향한 거부감을 이기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칩거하게 되었다. 인간이지만 동시에 이종족이나 다름없게 된 삶. 그녀가 스스로의 본질과 자신의 자신 됨을 부인하고 행위로써 업보를 축적해 본질을 쌓아나가려고 시도한 끝에 나타난 비극적 결과물이었다.

   한나는 괴물이 되었다. 인간 사회와 분리되었다. 자신의 정체성과도 분리되었으며 삶의 이유와도 분리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마음’의 명령 외에는 아무것도 추구할 수 없게 되었다.

   오랫동안 외로움 가운데 홀로 지내며 한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보이지 않는 마음’에 옭아 매인 속박 현상, 그 굴레는 한나가 법도를 배우기 전부터 이미 그녀의 내면에 씨앗으로 잠재되어 있었음을 말이다. 사실 그 강력한 속박력은 그녀 외에도 모든 니르바나 주민에게 심겨 있었다. 깨달음을 얻느니 굴레에서 해방되어 초차원의 영역에 도달하느니 하는 일들은 속박의 탄성을 더 강화하여 질기게 만드는 작업에 불과했다.

   “이 세계의 인간들에게는 공통적으로 ‘하나의 존재’를 향한 강한 애착과 본능적 충성심이 심겨져 있었수. 사실 연마를 통해 승천하기 이전부터 이미 나는 그 본성을 어렴풋이는 감지하고 있었지.” 

   한나의 고백에 스테판은 별안간 무언가가 기억하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충성의…, 표식…, 인가?”

   입 모양만 보이는 나지막한 중얼거림이었으나 곁에서 흘깃 보던 리온은 놓치지 않고 그 낱말을 기억에 담아두었다. 잠깐 이방인의 중얼거림을 의아해하던 한나는 이내 신경을 끄고 자신이 하던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처음에는 나도 그 감정, 그 실체 없는 모호한 충성심을 불편하게만 여겼지. 그래서 그것을 벗고자 오로지 수련으로 업보를 쌓고 깨달음을 얻는 데만 정진했수. 초월자가 된다면 자유로워지리라 생각했던 게지.”

   회한으로 충만한 고백이었다.

   “하지만 웬걸, 내가 기대했던 바와 반대였수. 삼차원의 굴레에서 해방되자마자 내게 내재된 충성심이 더욱 진화하여 꽃을 피우고야 말았소. 아니, 충성 대상의 실체를 더욱 선명하게 인지하게 되었다고 해야겠구려.”

   이 설명에 의미를 스테판은 대강 추측할 수 있었다. 니르바나뿐 아니라 모든 식민지 주민에게는 보편화된 표식이 여러 종류 심겨 있다. 근 몇 달간의 기묘한 체험을 계기로 스테판은 그 표식 중 ‘충성의 표식’이라는 것이 있음을 자신의 무의식적 기억 속에서 발견해냈다. 이레귤러가 된 이후로 스테판 자신의 충성의 표식은 비활성화되었지만, 그 이외의 주민에게는 그 정신 제어 장치가 여전히 종속력을 갖는 것으로 보였다.

   스테판의 경우처럼 이레귤러가 되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충성의 표식의 정신적 영향을 완화하는 방법은 현재까지 귀납적으로 경험해본 바에 따르면 하나뿐인듯했다.

   ‘거듭나는 것(born again).’

   이는 스테판 본인의 체험이기도 했기에 분명하게 주장할 수 있었다. 한나라는 여인은 비록 수련과 명상으로 업보를 쌓고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끝내 굴레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으나 결국은 그 어떤 노력도 충성의 표식을 깨트리게 해주지는 못했다.

   ‘도리어 옛 상황보다 악화되어 더 질긴 굴레에 잡힌 꼴이 된 모양이오.’

   끝내 한나는 ‘보이지 않는 마음’에 영영 의지를 빼앗기게 되었다. 저항할 의지마저 사라져버린 꼭두각시. 결국, 그녀는 이종족이나 다를 바 없이 보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존재에게 자기 삶의 목적, 방향, 설계도를 양도하고 말았다. 또 이종족의 마음을 이식받은 탓에 인간에게는 더 이상 동질감을 못 느끼게 되었다. 그나마 동질감을 느끼는 이종족과도 끝없는 투쟁을 벌일 운명에 묶였다.

   대화를 마친 직후, 둘은 세 식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이미 권능의 법도에 깊이 물들어있던 한나와 두 자녀는 복음을 경청할 능력이 없었다. 그나마 다른 식민지 주민들 같았으면 복음을 들음과 동시에 정신적 속박이 어느 정도는 느슨해지건만, 심지어 복음을 수용하지 않는 자들도 그러했건만, 한나에게서는 그런 미약한 변화마저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영혼과 의지를 빼앗긴 불쌍한 여인. 생각할수록 안타까웠다.

   하룻밤의 긴 대화를 마친 후, 리온과 스테판은 마음속이 심란해졌다.

   “업보(karma, 業報), 굴레에서의 해방……, 지구의 종교에서 취한 개념이에요.”

   리온은 스테판에게 지구의 과거 유산들에 관해 알려주었다.

   “역시나 그렇다면 ‘법도’를 인위적으로 제작한 자들은…….”

   사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너무 명료했다.

   “네, 인류연합, 아마도 지구에 뿌리를 둔 세력인 그들밖에 없겠죠?”

   “그들이 이번에도 카뮈네라 때처럼 거짓 종교를 창작해낸 것이오?”

   어쩌면 악마들이 가장 분주하게 활동하는 영역은 폭력배들의 소굴이나 매음굴 따위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그들이 전력을 기울이는 전문 분야는 종교, 그것도 지극히 선하고 고급스럽고 고상해 보이는 종교 쪽이겠지.

   “아마도요. 전보다 고차원적이긴 하지만요. 그나저나 그건 대체 뭘까요?”

   “무엇 말이오?”

   “보이지 않는 마음, 충성의 표식……, 이런 것들이요.”

   여행이 진행될수록 리온은 자신들이 혹 너무 위험한 비밀에 닿아가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되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스테판은 일단 ‘충성의 표식’에 대해 자신이 아는 부분까지만 친절히 설명해줬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에 대해서는 스테판조차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었기에 들려줄 말이 따로 없었다.

   “혹시라도 윤혁이라면 단서를 알고 있지 않겠소?”

   “음, 너무 그에게만 요구하진 않을래요. 가뜩이나 독특한 역할과 위치 때문에 여러모로 고생 많이 하는 친구잖아요.”

   리온은 동료의 이복형제를 회상하며 짙은 위압감에 잠시 몸서리쳤다.

   불편한 밤이 깊어져 갔다. 두 선교사는 한나에게 측은지심을 느꼈다. 도울 방도가 없음을 보았기에 더욱 갑갑했다. 아울러 리온은 어린 시절 숱한 학습을 통해 터득한 교훈을 다시금 회상하였다. 인간이 발명한 종교나 철학은 제아무리 논리적이고 그럴싸하고 훌륭해 보여도 진정한 평화나 자유를 가져다주지 못함을 뼈저리게 실감케 하는 실물 도감을 오늘 보았다.

   ‘참 생명을 가져다주는 건 그리스도와의 만남이지 종교가 아니야.’

   한나는 나름 선각자였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속박의 문제라는 수수께끼를 해결하고자 초월자가 되기를 추구했으며 그녀 나름대로 지식과 깨달음을 얻어 초월적 경험을 하긴 했다. 그리고 오히려 비참하게 영혼을 저당 잡히고 말았지. 평안도, 타인을 향한 사랑도 상실하였다. 한 귀신이 쫓겨난 뒤 다른 일곱이 쳐들어와서 이전보다 상황이 나빠진 사람의 비유가 떠오르는 날이었다(마 12:43).

 

 

 

 

 

 

 

*

 

 

 

 

   한편, 윤혁과 루디아는 대륙 서쪽 끝으로 방향을 틀어 대농장을 방문했다. 농장의 주인은 은퇴한 법사였는데 동쪽의 한나와 마찬가지로 니르바나 역사상 한 손에 꼽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깨우친 자로 유명했다. 현역 시절의 그는 숱한 전사들과 법사들을 단련시켰고 현장에서도 그들을 이끌어왔지만, 모종의 이유로 속세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농장 주인, ‘하르티’는 낯선 손님인 윤혁과 루디아를 보더니 대번 반기며 손을 붙잡았다. 그는 깔끔한 신사처럼 생긴 흰 머리의 중년 남자로 체격이 매우 건장하고 훌륭했다. 긴 세월 수련에 정진한 탓인지 손에는 굳은살이 많이 배겨있었다.

   “반갑습니다, 이방인들이시로군요.”

   단번에 정체를 간파하는 그에게 윤혁과 루디아는 적잖이 놀랐다.

   “아니, 저희가 말씀드리지도 않았는데 출신을 어떻게 아셨죠?”

   “그것은 내가 굴레에서 해방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낯설고 기괴한 관용어에 둘은 당황했다.

   “굴레로부터의 해방이라뇨?”

   “음, 그건 천천히 설명해주겠소.”

   대뜸 이방인을 반기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은 들었지만, 일단 둘은 하르티라는 사람을 따라가 보았다. 하르티는 두 선교사를 자기 오두막집에 데려가 신선한 채소를 조리한 음식을 대접했다. 식사 도중 하르티는 자신의 인생 수련 여정을 들려주었다. 말동무가 필요한 촌락의 노인마냥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이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윤혁은 집 주인으로부터 소위 권능의 법도라고 불리는 것과 관련된 여러 가르침, 이를테면 수련이니 업보니, 양극의 융화니 하는 개념이니 하는 개념을 전해들으면서 석연찮음을 느꼈다. 맥락 속에서 지구의 조작이 닿은 듯한 음흉한 향기가 풍겼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 힘을 한번 시현해주실 수 있습니까?”

   시험 삼아 윤혁은 떡밥을 던져보았다.

   “못할 것 없지요.”

   하르티는 건물이 무너지지만 않을 정도로, 최대한 미세한 규모의 법력을 시현해 보였다. 윤혁은 바짝 긴장했다. 소규모임에도 공간이 흔들리며 법칙이 뒤섞이는 변동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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