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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21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47. 니르바나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4.24 | 회차평점 0 0

 

 

 

 

 

 

*

 

 

 

 

 

   끈질긴 노력에도 니르바나에서는 회심의 열매가 거의 맺히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종교적, 철학적인 성향이 매우 강했다. 주민의 대다수가 최소한 기본 이상 경지의 ‘법도’를 섭렵하였고 반 이상은 일정 수준 너머의 초능력을 각성했다. 사제 단계까지 오른 이들은 지식과 경험은 물론 철학적 사고력도 출중했다. 즉 그들 중 누구도 기독교적 변증에 쉬이 혹하지 않았다. 복음을 향해 적대적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성경을 유일무이한 절대적 진리로 수용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기독교 교리도 그저 많고 많은 진리의 파편 중 한 측면이요 코끼리의 여러 신체 부위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곳을 사로잡는 미혹의 수준은 너무도 높아. 지극히 선하고 완벽해 보이는 종교, 그것도 나름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와 깨달음을 추구하는 ‘중용의 종교’가 지배적이야. 원시 종교가 지배하는 구역이라면 모를까, 이런 경우는 논리적인 변증만으로 해답을 주기가 힘들어.”

   숱한 시도의 실패 끝에 리온은 자신의 재능인 변증법적, 이성적 복음 전파가 이곳에서만큼은 무용지물임을 겸허하게 인정했다. 그래서 그는 유독 변수를 잘 일으키는 팀원들에게 질문했다. 다른 뾰족한 수가 없을까 하는 기대로.

   “하지만 우리에겐 열두 사도들 같은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없잖소.”

   “그래. 오히려 기적은 오히려 저쪽에서 활발하게 선보이고 있지. 더욱이 칼티엔뉴르나 카뮈네라 때와는 아예 비교조차 무색할 만큼 높은 수준의 기적이야. 하나님께서 저들이 입을 다물도록 압도적인 능력을 종들에게 베푸신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건 역사 속에서 항상 보편적으로 허락되는 방식은 아니지.”

   스테판과 윤혁에게도 딱히 시도해볼 만한 반전의 묘수는 없었다. 그가 탄식 섞인 감탄대로 ‘권능의 법도’는 마법이나 성좌와의 계약 따위와는 비교를 불허할 만큼 막강했다. 이제껏 본 이능력들은 어디까지나 해당 하늘도시 내부에서만 발동이 가능한 국소적인 능력이었다. 그것도 현지 시스템이 사람들을 대행해서 이상 현상을 일으켜주는 눈속임에 가까운 것이니 능력이라고 보기에도 어설펐다. 하지만 권능의 법도에는 지역적, 공간적 제약이 없었고 정말로 우주적, 보편적 속성을 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틀림없이 이 힘은 이전처럼 인류연합이 눈속임으로 식민지 주민들을 노예화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야. 그보다는 훗날 직접 자기 손으로 부릴 유익을 미리 테스트해볼 목적으로 세운 프로토타입 쪽에 가까워.’

   윤혁이 이렇게 추리한 데는 근거가 몇 가지 있었다.

   첫째, 권능의 법도 속에는 니르바나 주민으로부터 착취를 끌어내는 요소가 거의 없었다. 하다못해 성좌 시스템만 해도 퀘스트라는 형태의 거래 방식으로 계약자들이 성좌의 발밑에 복종하게끔 하는 종속 요소가 있었거늘, 니르바나의 법도는 그런 요소는 일절 포함하지 않은 채 오로지 깨달음을 통해 사용자 개인에게 유익과 능력을 주는 데만 초점이 있었다. 외부 세계가 식민지를 지배할 목적으로 설계된 것은 아님이 분명했다.

   둘째, 권능의 법도는 오직 정신적 활동, 이를테면 수련과 명상을 매개로 힘을 제공할 뿐 인체실험과는 연관된 고리가 없었다. 셋째, 그렇게 초능력을 각성한 자들의 몸에는 별다른 유해 작용이나 후유증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타임필드의 가동으로 인해 생성된 수천 년 이상의 역사 속에서 이미 무수한 실험이 지속되었을 텐데도 죽거나 불구가 된 사례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요약하자면 이런 특성은 그야말로 초인들이 자신들의 소유물로 탐내기에 적합한 능력이었다. 이러한 달콤한 유익을 굳이 식민지 주민들더러 시범적으로 체험하도록 한 이유가 무엇인가. 시범을 선보여 데이터를 충분히 획득한 뒤 후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저들이 활용할 작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니르바나 여정 35일째에 이르러 일행은 소귀에 성경 읽는 행위를 잠시 멈추었다. 거룩한 진주를 거듭 돼지에게 던져 낭비할 여력은 없었다. 대신 그들은 수수께끼의 근본에 다가가 보고자 했다. 네 사람은 현재 니르바나 내에서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명망이 알려진 인물들을 만나 조사하기 위해 두 팀으로 나누어져서 행동을 개시했다. 하늘도시 진입 때 반입해온 에어바이크 덕분에 이동 시간은 그리 많이 소요되지 않았고 그 덕에 여유분의 시간은 충분했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으나 약간의 하례를 할 가치는 있었다.

   니르바나의 동쪽 끝으로는 리온과 스테판이 향했다. 세계 동녘 극지에는 갖가지 꽃들이 수놓아진 거대한 정원이 있었다. 정원 한가운데는 커다란 저택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여인 하나가 딸 한 명, 아들 한 명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인근 마을에서 그 집 여인을 두고 마녀니 괴물이니 악녀니 하는 불길한 소문이 떠도는 것을 언뜻 들었던 바람에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긴장이 감돌았다.

   똑똑.

   “뉘시오.”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잠시 머무르고자 부탁드립니다.”

   문이 열렸다. 리온과 스테판은 흠칫 놀랐다. 마녀라길래 나이가 지긋이 든 노파라도 나타날 줄로만 알았건만, 잘해야 십 대 정도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은발 여성이 서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그녀가 딸인 줄로 착각했으나 뒤이어 젊은 오누이가 튀어나와서는 은발의 여인을 두고 어머니라고 부름으로써 확인 사살을 해줬다. 오누이는 큰 키에 어두운 밤을 연상케 하는 검은 머리칼을 가진 자들이었다.

   “들어오시오.”

   어린 외모답지 않은 고풍스러운 말투를 사용하는 은발 여인. 일행은 그들 식구에게 짧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곧 오누이가 식사와 음료와 다과를 대접해왔다. 리온과 스테판은 세 식구와 더불어 한 식탁에 둘러앉아 담화를 나누었다.

   여인의 이름은 한나, 그리고 손위 딸의 이름은 유리, 아들의 이름은 에릭이었다. 세 식구 사이에는 명확한 언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긴장감 내지는 어색함이 감도는 것이 느껴졌다. 선교사들이 불편함을 함께 짊어지며 식사하던 중, 한나가 먼저 화두를 던졌다.

   “그대들은 바깥 차원의, 휠 사이클 너머의 인간들이오?”

   “네? 그걸 어떻게?”

   둘은 깜짝 놀랐다. 리온과 스테판이 입고 온 옷은 형태 변환 기능이 탑재되었기에 겉모양이나 차림새만으로는 현지인과의 차이를 눈치채기가 불가능했다. 그녀는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알아차린 것일까. 지금껏 선교사들이 먼저 알려주기 전에는 눈치챈 주민은 없었건만. 심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난 이미 이 세계에서 극의에 도달한 존재요. 깨달음에 있어서 내게 비길 존재는 이 세계에는 더 없소. 당신들에게서 범상치 않은 기색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덕분이오.”

   “당신은 대체….”

   “궁금하신 게 많은 모양이구려.”

   한나는 상대가 질문하기에 앞서 그들의 궁금증을 알아차리고 미리 나섰다. 일행은 어차피 필요했던 정보였던지라 군말 없이 귀를 열었다. 그녀는 자기가 겪어온 인생 여정, 곧 ‘법도’의 순례길을 들려주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미움과 따돌림받는 것의 연속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증오심, 편견이 한나로 하여금 고립의 시절을 겪게 했다. 자연히 그녀는 반동으로 깨달음의 추구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한나는 고통과 멸시의 기억들을 깊은 내면에서 업보로 환산시켜 축적하였다. 그리고 차츰 업보들을 갈고닦아 잘 벼려진 명검처럼 다듬었다. 그렇게 강해지던 중, 그녀는 타인과 세계가 축적해놓은 역사적 업보를 제 몸에 흡수시키는 방법을 자연히 터득했다. 이 원리를 통해 방대한 업보를 누적시킨 끝에 그녀는 권능 곧 초능력을 획득하게 되었다.

   계속해서 한나는 착실히 수련을 통해 업보를 쌓아나갔고 동시에 명상을 통해서 자타(自他)의 경계를 허무는 방법을 익혔다. 차츰 그녀의 체내에 여러 초능력이 생성되었다. 그 능력의 질과 양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더해 다른 선인과의 지식 교류 및 권능 대결은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 무수한 대련에서 거듭 승리한 한나는 ‘개변’의 경지를 넘어 ‘양극 융화’의 단계에까지 도달했다.

   그렇게 니르바나라는 세계의 정점에 이른 그녀는 ‘휠 사이클’에서 건너온 여러 이계의 존재, 이종족들과 맞서 싸우며 니르바나를 수호했다. 그녀의 성장 속도는 나날이 빨라졌으나 마음속에는 더 큰 번뇌가 쌓여갔다. 결국, 거듭되는 싸움에 지친 한나는 전선에서 물러났다. 그녀는 버려진 고아인 유리와 에릭을 거두어 자식으로 키웠고 자기가 일평생 쌓아온 깨달음 일부를 전수해주었다.

   “그럼, 평화를 얻고자 했던 당신의 바람은 실현되었습니까?”

   한참 잠잠히 듣던 리온이 조용히 질문했다.

   “애매한 질문이구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꾸겠습니다. 당신은 과거의 어두운 수렁에서 벗어나 타인을 포용하고 사랑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까?”

   이에 한나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우스운 질문이구려. 아니, 그 반대요. 난 여전히 버러지 같은 인간들을 증오한다오. 나는 지금껏 증오가 묻은 업보를 통해서만 성장해왔고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소.”

   그러자 스테판의 표정과 목소리에 당혹감이 깃들었다.

   “아니, 그렇다면 어째서 증오한다던 인간들을 그간 수호해온 것이오?”

   “지켜왔다니, 천만에.”

   한나는 섬뜩한 미소를 머금은 채 충격적인 그녀만의 비밀을 자백하였다.

   그녀가 평생 정성스레 축적해온 업보, 그 업보라는 것의 상당 부분에는 놀랍게도 이종족의 속성이 함유되어 있었다. 바로 그 영향으로 한나는 업보를 쌓아 높은 경지에 다다를수록 인간을 향해 깊은 거부감과 이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반대로 아이러니하게도 휠 사이클 저 건너편에서 건너온 이종족에게는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정작 한나 자기 손으로 그 이종족들을 수없이 죽이거나 격퇴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면 왜 그 이종족들과 싸우면서까지 인간을 구하셨죠?”

   이해하지 못한 리온이 물었다.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이구려. 구한 것이 아니오. 내 적법한 소유물을 지키려 한게지. 인간들도 소유물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동족끼리도 죽도록 싸우곤 하지 않소? 하물며 온갖 다양성의 집합체인 이종족끼리야 어련할까.”

   참으로 해괴한 논리였으나 나름대로 비유는 적절했다. 다만, 이종족이 인간들을 제 소유물로 여긴다는 말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교사들은 한나에게 그 부분에 대해 재차 질문했다. 다시금 설명이 이어졌다.

   “이종족이란 육체와 정신을 잘 뜯어 해부해보면 그 근간부터 ‘인간’을 위하라는 명령이 새겨져 있소. 그것이 훈육하는 방향이건 돕는 방향이건, 아니면 견제하는 방향이건 말이야. 그렇기에 인간이 사라지면 이종족은 존재의의를 잃어버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을 자기 곁에 가까이 둠으로써 존재의의를 유지하지.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은 이종족에게는 소유물이 되지.”

   그 순간 희미한 생각이 머리에 스친 리온과 스테판은 벌어지는 턱을 가누지 못했다. 한나는 대체 어느 단계의 비밀까지 알고 있을까? 그녀의 발언은 흡사 이종족이란 존재의 진정한 정체와 기원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설마 그녀는 이종족들이란 게 인류연합의 인공생명체라는 진실까지 아는 걸까?

   “보아하니 그대들도 대강은 아는 모양이군.”

   “저희도 자세한 내막까진 모릅니다. 그보다 한나 씨는 어떻게 해서…….”

   “이종족의 본질적 속성에 관하여 상세히 알고 있느냐고?”

   한나는 어린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혀를 끌끌 차며 대답했다.

   “이종족의 업보에 융화되면서 자연스레 ‘본질 원리’에 다가갔기 때문이오.”

   한나 긴 세월 업보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차츰 이종족과 같은 본능, 사상, 정신 체계, 마음을 가져갔다. 몸과 영혼은 여전히 인간이었으나 무의식적으로 그녀 내면에는 인간과 구별되는 이질성이 점점 짙게 새겨져 갔다. 그런데도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수련과 명상에 정진하였고 더더욱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 낭떠러지로 달려가는 차량처럼. 끝내 그녀는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체험하기에 이르렀다.

   “해방……, 일종의 높은 차원으로의 승천이오.”

   한나는 그 시점에서야 자신은 비로소 삼차원보다 높은 차원 영역에서 활동이 가능한 새로운 신체를 획득하였노라고 증언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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