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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30회 하늘위의 도시들 Ch 50. 낡은시대와 새로운시대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5.15 | 회차평점 0 0

 

 

 

 

 

Chapter 50. 낡은 시대와 새로운 시대

 

 

   배타적인 관점을 좋아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기에 타인의 칭찬과 긍정적인 평가에 목을 매는 이들은 최대한 자기 자신을 관용적이고 포용적이고 이해심이 많아 보이는 모습으로 포장하기 마련이다.

   아직 어렸던 그 시절의 윤혁은 TV를 시청하다 우연히 어느 근사한 신사가 연설하는 장면을 발견한 바 있었다. 아직 올바른 신앙관이 굳건하지 못했던 일곱 살의 윤혁은 신사가 전하는 평화와 포용의 메시지에 깊은 매력을 느꼈다.

   “나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지지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우리 인류에게는 올바른 성취를 이룩할 여러 종류의 길이 열려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길을 통해서 선을 이룩하려고 할 테고, 다른 이는 다른 길을 통해서 이룩하려 할 겁니다.”

   그의 입에서는 청산유수처럼 연설이 흘러나왔다.

   “중요한 건 선을 추구하는 마음 그 자체입니다.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차별을 하거나 함부로 비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모로 가도 목적지로 가면 그만이라는 격언도 있지 않습니까. 선을 추구하는 인생관은 결국 하나의 목표지점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신사는 신뢰감을 주는 외모를 지녔다. 말투에서도 부드러움과 인자함이 절로 묻어나왔다. 더욱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저명인사였기에 그의 말을 들은 청중과 시청자들은 칭찬 일색이었다. 어린 윤혁도 마냥 그것이 좋게만 느껴졌다.

   그때 어린 아들을 먹이기 위해 과일을 깎아 들고 온 어머니 이유진은 윤혁이 듣는 방송을 보더니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잠시만 엄마와 단 둘이서 대화를 나누며 간식을 먹자고 제안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려냈다. 그녀는 슬기롭게도 화제를 자신이 반드시 전해야 하는 교훈쪽으로 맞추었다. 그녀만의 아들을 훈육하는 탁월한 노하우였다.

   “아들은 오늘 본 방송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그때 윤혁은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윤혁아, 잠언 말씀에는 이런 말이 있단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6:25).

 

   아직 겁이 많고 귀여운 어린이였던 윤혁은 ‘사망’이라는 섬뜩한 말에 깜짝 놀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유진은 아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주며 왜 선과 악을 겉보기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신중하게 구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오늘 윤혁이가 영상에서 본 신사분께서는 일전에도 대형 교회에서 연설하셨던 분이란다. 안타깝게도 그분은 종교 통합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셨어. 그리고 오늘 네가 들은 말들도 그쪽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연설이란다.”

   아직 엄마의 말을 이해하기에는 아이의 지혜가 충분치 못했다.

   “하지만……, 착하게 보였는걸요.”

   “그래, 실제로 착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겠지.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구원받은 사람은 아닐걸.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만을 유일한 구원의 길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물론 우리 눈으로 사람의 영혼을 완벽히 판단할 순 없겠지만, 본인이 말하는 바를 그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구원과는 무관한 분이겠지.”

   “어, 이상해요. 저분은 예수님에 대해서도 좋게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그래? 저분이 어떻게 예수님을 설명했나 한 번 볼까?”

   유진은 직접 자료를 검색하여 그 신사가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 견해를 밝힌 연설을 들려주었다. 과연 신사는 예수를 “인류에게 좋은 본보기를 가르쳐주고 ‘그리스도 의식’을 일깨워주기 위해 오신 분”이라고 소개했다.

   “그리스도 의식이란게 뭐에요?”

   “음, 세상 사람 모두가 사실은 그리스도, 즉 잠재적인 신적 존재라는 믿음이야. 스스로 자신 안의 신성을 일깨워낸 사람은 누구든 신적 존재로 각성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상이지. 다시 말해 자신이 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도덕적으로 뭔가를 깨우치기만 하면 예수님과 똑같은 신이 된다는 생각이지.”

   이렇게까지 풀어서 말하자 어린아이마저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건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과 전혀 다르잖아요!”

   “그래, 맞아. 예수님께서는 자신만이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요 14:6)이라고 선언하셨지. 우리는 자기 힘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어. 우리 자신이 신과 같다는 말은 더더욱 틀렸지. 오로지 겸손하게 스스로가 죄인임을 시인하고 주님께 구원을 맡겨드린 사람만이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은혜를 입을 수 있단다.”

   윤혁은 어머니의 정성 어린 가르침을 마음속에 간직했다.

 

 

 

 

 

 

 

*

   

 

 

 

   열다섯 번째 하늘도시인 갈라켐페라투스로의 여정은 이제 종료되었다. 팀원 모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기쁨보단 소리 없는 탄식과 버거운 심정이 마음 속에 차올랐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순전히 전하는 복음 전파자의 책임, 분명 너무도 중요하고 소중한 임무이건만, 벅찬 것도 사실이었다. 이토록 무거운 임무인 줄은 전에는 온전히 실감하지 못했다.

   예전에도 완악한 사람들은 자주 맞상대했으나 그 가운데도 중간중간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직접 목도했기에 기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들 앞에 등장한 장애물인 ‘초능력 종교’ 시스템은 그러한 기쁨마저 강탈할만큼 당혹스러운 상대였다. 끝을 보이지 않는 거듭된 등장과 고속의 발전. 전에는 그저 지엽적인 난관과 마주했다면 이번 방해물은 인류연합의 범우주적 계략. 작은 무리가 정부의 움직임과 대적하기란 심히 버거운 일이었다.

   저들의 주목적은 초능력의 개발이겠지만, 과연 기독교를 소멸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인류연합은 복음을 전해 들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현상, 더 정확히는 ‘표식’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지는 점진적 변화를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 때문에 이토록 교활한 대응책으로 나왔으리라.

   ‘네로 황제의 때는 학살과 핍박으로 눌렀지.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때는 이교 문화와 기독교를 융화시켜 부패케 했고. 이번 전략은 그 두 가지 전술과도 완전히 차별화되는 색다른 전략이다.’

   과연 복음의 흥왕을 용납하지 않는 사탄과 그 왕국은 이번에도 창의적이고 천재적인 대책을 찾아내었다. 네 팀원은 깊은 의분을 삭였다. 흑암의 권세를 향한 맹렬한 분노와 증오가 솟구쳤다. 특별히 그 영들에게 꼭두각시처럼 이용당하는 형을 생각한 윤혁의 분노는 금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포기한 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쩌면 그만큼 사탄도 궁지에 몰렸다는 방증일 수 있다. 역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이번 여정을 지원하시리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서 포기하면 난 동포들의 낯을 볼 자신이 없어.”

   루디아는 눈앞의 가능성과 현황만 놓고 계산하기보다는 우선 옳은 행동을 멈추지 않는 것이 해답이라고 조언했다. 그녀는 동료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확실히 그녀에게는 아나스타샤와 같은 탁월한 전략 수립 능력도, 윤혁이 소유한 유리한 정보력도, 리온이 지닌 변증의 재주도, 스테판과 같은 강인하고 용맹한 신체도 없었지만,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났다.

   ‘우린 지금껏 사랑을 원동력으로 부족한 몸을 이끌고 험한 여정을 견뎌왔어.’

   어린 시절 누구보다 짙은 고통을 자주 겪어왔기에 사람들의 아픔과 영적 갈급함에 대해서는 영민하고 탁월하게 이해했다. 타인을 향한 절박한 사랑, 곧 잃어버린 양들을 향해 직접 뛰어가는 예슈아의 사랑을 가슴속에 품어왔다.

   “원수가 세상 지도자들을 조종해도 우리에겐 더 크신 분이 계시잖아.” 

   주님을 굳게 믿었기에 그녀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네 말이 옳아.”

   “그래, 패배감에 젖는 바람에 미처 망각하고 있었어.”

   첫 여행 때 주님께서 주신 확신과 격려를.

   “분명히 그분이 함께하신 발자취와 궤적은 결코 허상이 아니었지.”

   그제야 윤혁과 리온 두 청년은 짓눌리는 낙심과 패배감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렸다. 첫 추억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앞날에 대한 눌림이 옅어지며 개운해졌다. 어른거리던 ‘불가능’이라는 낱말이 안개처럼 흐드러졌다.

   첫 여행지였던 칼티엔뉴르 순례에 동참하지 못한 탓에 그곳 일화를 잘 몰라 의아해하는 스테판을 위해 윤혁은 간증을 공유했다. 그는 신성모독으로 가득했던 망자의 도시에서 주님의 선포가 울렸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주님께서 망자를 이용해 악한 꾐을 벌이던 무리의 입을 통해서 말씀을 전하셨거든요. 우리에게는 위로의 말씀을, 사람들에게는 경고와 권고를 전하셨죠.”

   “오, 과연 대단하오!”

   “게다가 그분께서 새 동역자를 보내주신다고 말씀하셨죠. 실제로 그 뒤 얼마 안 가 스테판 씨를 만났었죠. 그토록 약속을 신실히 지키는 분께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허락하신다고 선언하셨는데 우리가 너무 쉽게 용기를 저버렸네요.”

   “어허,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 말해주시지 그랬소.”

   그들의 기쁨에 찬 증언에 스테판도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다. 그는 지난 1차 여행 막바지 때의 일을 떠올렸다. 시뮬레이션 우주 속에 잠겨 코마 상태에 빠진 우주 인류의 영을 각성시키고자 뛰어들었던 그. 신기하게도 그 순간에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셔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순교 당하는 일도 두렵지 않을 만큼 굳센 용기가 났었다.

   ‘역시 참된 용기는 내 마음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닌 모양이오. 내게 용기를 주셨던 분은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이었소.’

   그때의 강렬함만큼은 아니어도 지금 역시 그분의 임재가 은은히 느껴졌으며 그 온기는 끊기지 않았다. 팔을 뻗치면 닿을만한 거리에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마 그들이 다시금 그분을 의지하기를 바라시는 마음이겠지. 이 사실을 다시 기억해낸 선교팀은 다시금 하나님께 손을 내밀어 응답을 기다렸다. 거듭되는 패배에도 불과하고 새로운 용기가 회복되었다.

   이후로도 고된 여행은 재개되었다. 열여섯 번째 텀의 여행도 앞선 하늘도시들과 똑같은 패턴이었다. 사람들은 구원의 길로 다가오지 않았다. 권능과 초능력, 종교와 철학, 과학과 사상, 삶과 문화가 완벽하게 일체화된, 그야말로 궁극의 체계성을 갖춘 시스템. 이전에 본 세계들보다 더욱 강력했다. 사람들은 그 견인력에 이끌려 여지없이 ‘멸망으로 향하는 넓은 길’ 쪽으로 발걸음을 빼앗겼다. 

   그럼에도 이런 현실적 상황은 선교팀 멤버들에게 마음의 아픔을 줄지언정 평강과 소망은 빼앗지 못했다. 이제 그들의 희락은 가시적인 성과에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 승리의 때를 얻건 얻지 못하건, 자신들의 임무가 귀중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저 소중한 소명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백번이고 천 번이고 감사해야 함을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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