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31회 하늘위의도시들 Ch 50. 낡은시대와 새로운시대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5.18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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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들은 우주선을 타고 옮겨졌고 열일곱 번째 텀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선교팀은 배후 사정을 알 턱 없었지만, 이미 그 무렵 인류 초월 프로젝트인 ‘낡은 시대와 새로운 시대’는 최종단계 중에서도 막바지까지 도달해있었다. 초인들은 본격적으로 자신들 손으로 권능의 혜택을 누려보기 전에 꼭 필요한 베타테스트로써 실험, 곧 무수한 식민지 사회에 벌여놓은 일련의 실험을 거의 다 끝마쳐 수익 및 데이터 회수까지 마무리한 상태였다. 과연 데이터를 종합해보니 경이롭고 흡족한 결과가 얻어졌다. 칼리드와 더불어 뒤에서 프로젝트를 주도한 흑막인 제왕은 상당한 소득을 얻게 되었다.
하늘도시들이 휴면기간–개방기간 사이클을 총 일곱 번 거치는 동안, 이 프로젝트는 인고의 세월을 통과해 완성 단계에 다가갔다. 완전한 숫자로 여겨지는 일곱, 이 숫자는 우연이 아닌 카이젤의 의도였다. 수억 개의 하늘도시가 일곱 번의 모의시험을 거친 끝에 초능력 생성을 위한 신(新) 만물이론은 퍼즐처럼 정교하게 짜 맞춰졌다.
처음 계획했던 것 이상의 완벽한 결과물이 획득되었다. 이제 인간 초능력의 기저가 될 정신적 알고리즘이 완성되었으니 테서렉트 아키텍쳐나 퀘이사 엔진 같은 궁극의 물리 원동력만 설립해 덧붙인다면 거대한 효과를 창출하리라.
“의도치 않게 동생 녀석에게는 좀 민폐 끼치게 됐군.”
속 생각으로 카이젤은 내심 동생과 그의 친구들이 소꿉장난을 포기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 아이의 성격을 보아 쉬이 낙담할 것 같지는 않았으나 이 정도까지 확실히 궁지에 몰렸으니 무력감을 느끼리라 믿었다. 사실 어차피 이번 판만 끝나면 초능력은 회수할 예정이었는데, 그것을 못 참고 낙심하여 중도에 하차한다면 모험자들로서는 아쉬운 일이 되기는 하겠다.
“뭐 이대로 포기하면 그릇이 여기까지라는 뜻이겠지.”
다만, 그도 한 가지 격언을 간과하였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찌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잠 24:16)
윤혁과 그 친구들은 세상 권세자들의 예견 안에 끼워넣어지지 않는 기이한 규격의 영혼을 소유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자기들의 머리로도 승산이 측량되지 않고 대책이 계산되지 않는 가운데서도 우직한 태도로 몸을 내던졌다. 순수한 정석적 전술만을 품에 안은 채.
일행이 다시 하늘도시에 진입할 때쯤 이미 대부분 식민지에서는 인간 권능 개화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건설하려는 운동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인간의 감각이 어찌나 탁월한 경지에 이르렀던지 선교팀은 착륙하자마자 현지 여러 사람들의 레이더에 포착되어 시선을 끌 위기에 처했다. 그들이 건너온 틈, 차원의 틈새가 갈라지는 순간의 미세한 변화마저 감지해낼 정도로 예민한 능력자들이 무수히 포진해 있었다.
이 지역에 처음 발 디디는 선교팀으로서는 현지인들의 반응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가늠할 수 없었기에 몸을 사려야만 했다. 자칫 일부 주민은 그들의 기원을 보고 외계의 존재, 천사, 또는 신적 영역에서 파견된 초월자로 취급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도 한 번 이방 땅에서 그런 취급을 받았었지. 네 팀원 모두 그런 불상사는 사절이었다.
반대로 현지인들이 선교팀을 외계의 위험 요소로 판단해 공격할 주민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었다. 이 역시도 장차 여정이 무리 없이 순탄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해야 했다.
“인형 몸체로 들어온 나, 그리고 산전수전 경험이 많은 스테판 씨가 돌아다니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너희 둘은 사람들의 이목 집중이 희미해질 때까지 잠시만 숨어지내.”
리온은 이렇게 계획을 짜내어 공지했다.
“필요한 정보를 현장에서 얻으면 즉각 전송해줄게.”
그렇게 리온과 스테판이 세계 전반의 정보를 모아오는 동안 루디아와 윤혁은 둘을 호의적으로 맞아줄 가정을 찾아 돌아다녔다. 한동안 은둔에 가까운 상태로 머무르려면 의탁이 필요했다.
‘우선은 기다리자.’
그 후에 동료들의 조사가 진행되어 충분한 정보가 모이면 이에 발맞추어 전략을 재정립하고 회심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인구집단 위주로 검색하며 최단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전도를 시행한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 전략, 부디 잘 먹히길.’
한참 몸을 맡길 곳을 찾으며 헤매던 중, 윤혁과 루디아는 운명의 인도를 받기라도 듯 도시 외곽에 세워진 어느 커다란 외딴 저택에 발걸음이 닿게 되었다. 그 건물은 카멜레온과 비슷하게 본체의 모습을 숨기는 기능을 보유했기에 주변 환경에 완전히 녹아들어 외부에서 볼 때는 감찰하기 어려웠다. 이유는 몰라도 그 집을 꼭 들려야 할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마치 누군가의 혼이 수 년 동안 그들을 간절히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나그네들입니다. 죄송하지만, 잠시 며칠간만 머무를 수 없을까요?”
단번에 거절당하리라 각오했으나 집주인은 의외로 흔쾌히 허락했다.
“들어오시죠.”
“감사합니다.”
그곳의 거주자라곤 로봇 하인들을 제외하면 여주인 한 명뿐이었다. 번화가나 주거지역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저택임으로 미루어 보아서 그녀는 외부와의 소통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것만 같았다. 여주인의 이름은 레이허브, 30대 중후반 나이로 보이는 제법 아리따운 숙녀였는데 어딘가 모르게 깊은 고민에 짓눌린 듯 보였다. 그것과 별개로 레이허브는 손님들을 친절하게 대우했다. 베풂과 대접의 습관이 자연스레 몸에 녹아있는 여인이었다. 레이허브는 윤혁과 루디아더러 원하는 만큼 묵고 가도 좋다고 허락하며 두 사람 모두에게 숙소를 빌려주었다.
“좋은 사람 같아 보이는데?”
“응, 하지만 표정에 미약하게 슬픔이 녹아있어.”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레이허브라는 그 여인은 상시 웃는 상이었기에 주의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숨겨진 깊은 슬픔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윤혁은 루디아가 상대의 감정을 얼마나 면밀히 이해하는지 익히 보아왔기에 그녀의 말을 의심치는 않았다.
“고민이라도 있는 걸까?”
“글쎄? 단순히 이곳 환경만 보자면 활기도 넘치고 풍요로워 보이는데 말이지.”
과연 둘이 보기에도 이번 하늘도시는 인간들이 늘 자력으로 이룩하고자 했었던 환상 속의 ‘유토피아’의 모습에 근접해 보였다. 일단 직전 여섯 번의 세계에서 본 문명의 이점들만을 추출해 하나로 합친 뒤 곱절로 증폭시킨 수준의 탁월한 문명이었다. 또한 강압적인 종교나 법도도 없었고 각 개인은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비록 연합에 의해 인공적으로 지어진 다중우주라지만 그 넓은 영역을 정복하여 누비는 초고도 문명, 화려한 문화, 풍부한 철학과 과학의 지식, 심지어는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풍습까지, 모든 게 완벽해보였다.
“겉보기에는 전부 다 완벽해 보이는 세상이라 해도, 설사 사람들이 진정 행복해 보여도,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어려움과 갈급함이 존재하기 마련이거든.”
루디아기 이렇게 말하자 윤혁도 얼핏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것이 어쩌면 그들이 찾아야 할 단서이자 틈새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숨겨진 어려움이 무엇일까? 당장 그것을 발견하기란 상당히 어려웠다.
“레이허브 씨와 직접 고민 상담을 하는 것이 어떨까?”
“과연 그녀가 외지인인 우리에게 쉽게 마음을 열어줄까?”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다가가서 마음의 벽을 허물어야지.”
“그게 잘 먹힐까?”
확실히 루디아의 의견대로 사람과 사람의 문제에서는 대화야말로 정답에 다가가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는 하다. 하지만 정석은 늘 어려운 법. 타지의 낯선 사람에게서 신뢰를 얻기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해볼 수 있겠어?”
“음…, 진심만 통한다면 레이허브 씨도 대답해주지 않을까?”
윤혁은 루디아의 천진난만함과 긍정적인 사고가 부러웠다. 자신에게도 그녀처럼 탁월한 공감 능력과 소통 능력이 있었다면 형을 상대로도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으려나. 그는 자꾸 어른거리는 무의미한 가정을 애써 떨쳐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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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온과 스테판은 며칠간 여러 사람을 만나 다양한 정보를 획득했다. 인형 몸체에 내재된 편리한 영상 기록 기능이 제법 도움을 주었다. 아울러 스테판이 근래에 불완전하게나마 하늘도시 세계관 정보 획득 능력을 회복시켜낸 덕에 해당 세계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얼추 개략적으로나마 빨리 파악할 수 있었다.
이곳 하늘도시의 주민들은 자신들 세계를 ‘네오테라’라고 불렀는데, 이는 참고로 초차원 구조물을 기반으로 형성된 하늘도시 내부의 인공 다중우주를 지칭하는 개념이었다. 특성 면에서는 이전 세계들과 공통점도 제법 있었으나 훨씬 더 다양한 종류의 종족들이 편견 없이 섞여 살며 공생하는 양태가 보였다. 흡사 티아라가 변화시켜 놓았던 혼합된 하이테로 대륙의 모습을 소규모 은하계 스케일까지 확대한 듯한 모양새였다. 그래서 처음엔 리온도 혹시 사부가 배후에 숨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찝찝한 감이 들 지경이었다.
네오테라에는 종교 혹은 철학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하나의 신앙 비슷한 체계가 있었다. 이 신앙은 네오테라 주민들이 자유롭게 초능력과 권능을 사용하도록 도와준 원천이기도 했다. 그러나 ‘권능의 법도’나 요가플레임의 신적 존재들의 수련 체계, 어려운 과학적 철학을 함유한 갈라켐페라투스의 학문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결정적인 특성이 하나 있었다. 네오테라의 신앙은 극도로 자유로웠다. 한마디로 모든 요소를 포용했다.
이는 ‘모든 종교는 하나의 신에게로 향한다’라는 21세기, 22세기 지구의 종교 통합 철학과 맥락을 함께했다. 굳이 차이점을 들자면 네오테라의 신앙은 종교뿐만 아니라 갖가지 정신 활동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이 가능했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에는 나름 하나로 통하는 길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각 개인이 자신을 구속하는 법칙이나 규율에서 자유로워지면 그때야 비로소 초월자의 영역에 도달하며, 그 후에 자신만의 고유한 ‘현실’을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핵심이었다. 그래서인지 유독 네오테라의 신앙은 ‘상위 차원’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사실 과학적으로 보면 상위 차원의 존재 자체는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인류연합을 필두로 현 우주 인류의 지도층 역시 상위 차원에 대해 나름대로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해 관측함으로써 체계적인 이론을 정립해놓았다. 물론 그들조차도 최고의 차원, 만물을 아우르는 영역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직 티끌만큼도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현재까지의 성과는 제법 고무적이었다.
어느 시대나 더 높은 범주의 우주, 더 나아가 ‘궁극 우주(ultimate universe)’에 대한 질문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곤 했다. 인류연합의 초인들도 그러하였으니 그들은 상위 차원을 연구 대상인 동시에 기술 개발의 근원으로 여겼다. 개척해야 할 신대륙처럼 여기기도 했지만, 동시에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어 나아가야 할 ‘정신 진화’의 성역처럼 여기며 야망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초인들보다는 지적 수준이 원시적이긴 해도 네오테라의 주민들 사이에도 유사한 낭만이 유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3차원을 넘어 더욱 아름다운 고등 차원의 생명체로 승격되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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