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339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2. 크로스솔져 II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6.06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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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은 권능을 광역 발산해서 네 영웅의 갑옷을 통째로 찢어버리려 시도했다. 그러나 아머가 원자 단위로 분해되려던 차에 미리 깃들어있던 기술이 발동되어 아머를 원상 복구시켜버렸다.
-생체 갑옷인가? 기계와 생체를 완벽하게 융합시키다니! 게다가 기술 염동력까지 새겨넣은 것인가. 설마 확률왕의 그 기술을…….
골리앗은 갸우뚱거리며 상대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뭐, 상관없어. 신의 부름을 입은 용사니 뭐니 큰소리를 떠들어도 결국 너희도 물리적 무장에 의지하는 건 똑같군.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뭐든 평등해. 내 물리력으로 몸을 통째로 찢어주지. 목숨만 붙어있으면 징계받을 일은 없을 테지.
골리앗의 신체가 다시 변형되었다. 놈은 전신에 장착된 초공간 도약 장치를 가동했다. 이후 살벌하게 사방을 날아다니며 포격과 물리 공격, 특수 공격을 날려내었다. 영웅들은 바짝 긴장한 채 신중히 협력하면서 방어, 후원, 공격 역할을 번갈아 가며 맡았다.
쉽게 제압하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골리앗은 비겁한 전술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고전적인 수법, 곧 시뮬레이션 우주를 매개체로 식민지 인류를 인질로 삼는 전략. 실체화된 시뮬레이션 우주 위에 식민지 몇 군데의 국소 구역이 덮어씌워 졌다. 영락없이 평상시처럼 일상생활을 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너희처럼 고지식한 놈들을 상대하는 데는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지.
골리앗의 손바닥에서 강력한 빔이 분출되었다. 리빙스턴이 재빨리 고속 이동하여 검으로 공간을 휘어 빔을 분산시켰다. 빈틈을 발견한 골리앗이 리빙스턴을 섬광 사슬로 묶으려던 찰나!
키깅! 골리앗의 관절부를 신해의 철퇴가 가격했다. 이어서 케리가 신수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대응했다. 그는 골리앗의 꼬리에서 다중 포격이 분출되기 직전, 공간 간섭형 특수 창으로 꼬리를 일제히 꺾어버렸다.
-크아아악!
크로스솔져들은 마치 하나의 몸이 된 양 움직였다. 지금껏 다른 영웅들을 상대하면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협동력이었다. 단순히 다른 팀원들의 전략을 빠르게 읽어내어 최적의 대응 전락을 끌어낸다는 식의 개념 이상이었다. 마치 가상의 전략 참모가 존재하여 이들을 통솔하는 것만 같았다.
더욱이 신해의 팀은 비겁한 전략이나 잔인한 방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찌 보면 바보 같을 정도로 정직한 전술만 사용했다. 아주 뻔히 보일 정도로 우스운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무모하고 성공 확률도 지극히 낮아 보이는 과감한 전략을 넷이서 별도의 사전 합의도 없이 즉석에서 수행한다는 점은 놀라웠다. 더 기가 막히는 일은 그렇게 시행한 즉흥 전략마다 절묘하게 성취된다는 점이었다.
-이 녀석들은 대체 뭐지?
골리앗이 제아무리 어려운 도덕적 딜레마를 유발하건,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건, 비겁한 전략으로 괴롭히건 영웅들은 타격을 받지 않았다. 골리앗은 혹시라도 보이지 않는 제5의 멤버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리번거렸다.
“잡았다.”
“체크메이트.”
격전 끝에 무디와 리빙스턴이 급소를 가격해 치명타를 입혔고 이어서 신해와 케리가 봉인 장비를 겹겹이 발동해 골리앗을 묶었다. 신해는 괴물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관절부에 특수한 에너지 구체를 박아넣어 무력화시켰다.
“인격체니까 존엄 있는 대우는 해줄게.”
-크윽, 그냥 죽여라! 너희도 다른 영웅 놈들처럼 네놈들 욕망에 순응하여라. 우리를 해부해서 스킬과 아이템, 테크놀로지와 보상품을 추출해.
“관심 없어. 그런 것들.”
신해는 오른팔을 변형하여 골리앗의 정수리를 관통했다. 신수는 비명을 질렀다. 잠시 후 신해는 기나긴 초정밀 수술 끝에 마침내 암 덩어리를 찾아낸 신경외과 의사처럼 통쾌한 기분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골리앗의 뇌에서 무언가 작은 물체를 꺼낸 뒤, 번쩍 높이 들어 올려서 동료들에게 보여주었다.
“찾았어.”
“좋아, 계속 모아두자고. 증거물로 이용될 테니까.”
케리가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골리앗은 자신에게서 신체 일부분만 떼어내고는 아무 짓도 하지 않는 영웅들이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영웅들을 해쳐서는 안 되니 이대로 묶어놓겠다.”
무디가 쓰러진 골리앗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버려 두면 보상에 눈이 먼 영웅들이 알아서 처리하던가 하겠지. 어찌 되었건 신수로서는 딱한 처지가 되었다. 인간들을 해치려 들었으니 전혀 불쌍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결국, 네놈들도 똑같아.
“최소한 인격체로 대우해준 걸 감사히 여겨라.”
무디는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설마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너희에게 영혼이 있다는 착각 말이야.”
케리는 경멸스러워하는 냉정한 표정으로 골리앗을 응시하며 말했다.
“참고로 우리는 너희 신수들이 자신들이 영혼을 지녔다고 믿는 그 특징이야말로 타락 천사의 활동과 연루된 결과라고 의심하고 있어. 너희는 살아 움직이는 우상이야. 주님께서는 악령의 활보를 원치 않으신다.”
이렇게 한술 더 붙인 후 신해는 골리앗의 심장부에 봉인장치를 박아넣었다.
*
다시 2개월이 더 지났다. 영웅들 대부분은 초능력을 수용했다. 신수들에게도 초능력이 이식되었다. 무기의 규모가 커지자 자연히 던전 싸움의 규모도 점점 더 확대되었다. 이런 유행 가운데도 여전히 새로 개발된 초능력 시스템을 수용하지 않고 기존 무장과 전술만 고집하는 영웅들이 있었다. 자신들을 ‘히어로’라는 교만한 칭호 대신 ‘크로스솔져’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열두 팀의 자율 부대. 이들의 기이한 행보는 계속 이어졌다.
다른 팀들이 보기에 이들은 일종의 우둔한 미련쟁이 같았다. 애써 일해서 남들에게 수익과 소득을 퍼다 주는 것은 다반사에, 쉽게 강해질 방법이 있음에도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고집불통들. 그런 주제에 잔인한 행위나 비겁한 전략은 극도로 싫어해서 항상 정직한 방식만 고집했다.
그러면서도 수시로 의외성을 선보여 적의 허점을 찌르고 승리를 거머쥔다는 점은 다소 놀라웠다. 그들이 진정한 바보가 아닌, 일부러 속세적 원리에 대해 어린아이가 되기로 선택한 자들임을 알리는 방증이었다.
던전 공략전 및 시뮬레이션 우주 수비전이 거듭 펼쳐지면서 크로스솔져들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거나 은혜를 입은 영웅도 차츰 늘어났다. 이는 그들을 향한 평가를 급속도로 높였다.
크로스솔져들은 신비로운 해결사들이었다. 특별한 능력이나 우월한 강함은 없었다. 하지만 도덕적 딜레마와 난관과 시험 앞에서 절대 굴하거나 패하지 않았고 늘 해답을 발견하였다. 어려움 앞에서 힘들어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아무리 일이 험난해도 회피부터 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크로스솔져들은 모두가 꺼릴 불리한 임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그 가운데 빠른 정신적 성장했을 이룩했다.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위대한 힘이 함께하는 것 같습니다.”
크로스솔져들의 지원을 받았던 영웅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증언했다.
“바보 같긴 하지만, 저런 바보들이 늘어난다면 세상이 좋아지겠죠.”
이런 류의 평가도 심심찮게 나오곤 했다.
이렇듯 영웅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되었으나 정작 대중에게는 크로스솔져들의 활약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초능력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고집 때문에 거대 규모의 전장에 투입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화려한 대규모 전투 쪽으로만 기대와 이목을 집중시켰다. 물리적 힘이 강한 영웅들은 쉽게 인기를 더 끌어모았고 이내 더 교만해졌다.
반면, 크로스솔져들은 달랐다. 이들이 타 영웅과 신수들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강해서가 아니었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요소, 그리고 남들과 다른 원리의 삶을 나타내게끔 만들어준 요소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이들은 부와 명예, 힘과 권능을 누리기를 단호히 거절했고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이런 것들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롯이 사람들을 구하고 타 영웅들을 돕는 것이었다. 물론 신수에 관한 모종의 의혹을 파헤쳐서 지구 시민들을 미혹하는 세력을 약화하는 것도 그들이 활동하는 주요 목표 중 하나였다. 이 부분은 크로스솔져들만의 비밀이긴 하지만.
다른 던전.
폭주를 일으킨 신수, 시스라가 혀를 날름거렸다.
-그렇군. 너희들이 최근 소문을 타고 있다던 그 호구 영웅들인가.
놈은 소문의 크로스솔져 팀을 직접 마주하는 중이었다.
“영웅은 아닙니다만.”
-응?
“저희에게는 영웅을 칭할 자격이 없어서요.”
버벡과 언더우드, 두 히어로가 시스라를 상대로 태연하게 대꾸했다. 무슨 말장난인가 싶은 시스라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크로스솔져 둘은 진지해 보였다. 사실 이들은 아저씨의 전도로 그리스도를 알고 회심한 이후로는 스스로를 높이려는 마음을 모두 내다 버린 참이었다. 이들은 사람들 앞에서 ‘영웅’ 혹은 ‘히어로’를 자칭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교만이라고 믿었다. 이미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했던 이들에게 있어서 교만이란 선택지에 없었다.
‘진정으로 영웅으로 칭해지기에 합당한 분은 오로지 주님뿐이지.’
이들은 주님이야말로 ‘죄’라는 진정한 인류 최악의 적에게서 온 인류와 자신들을 구원하신 참 영웅이라 확신했다. 나아가 자신들은 단지 그분의 일꾼이자 심부름꾼, 그것도 기여도를 내세울 수 없는 심부름꾼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찌니라(누가복음 17:10).]
크로스솔져들은 이 명령을 성실히 지켰다. 그들은 마땅히 지금껏 받아온 달란트를 활용해 그분께서 시키는 일을 수행했고 성과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고백할 정도이니 사람의 칭찬을 거부하는 것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이 당연했다.
-상관없다. 앞서 처리한 녀석들과 똑같이 혼내주지.
-야빈, 녀석들이 허튼짓을 못 하도록 단번에 처리하자.
-물론이다, 시스라.
신수 야빈과 시스라, 둘은 2인조 팀을 이루어서 버벡과 언더우드를 향하여 돌진했다. 싸움은 세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이미 인류의 초능력 기술은 상당한 수준까지 발전했기에 신수들은 자신들이 그 이점에 힘입어 크로스솔져들을 단번에 패퇴시킬 줄로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승부는 교착 상태에 머물렀다. 예상 밖의 자원의 존재 탓이었다.
-크윽, 하필이면 무장왕(武裝王)의 지원이 있을 줄이야!
그렇다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가.
크로스솔져들이 힘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괄목할만한 성과들을 내보이며 전황을 뒤바꾸기 시작하자 성운과 크리슈나는 이들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였다. 끝내 크리슈나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크로스솔져들의 행동, 판단, 언행 패턴을 분석해서 다른 히어로 팀들도 공유할 수 있도록 ‘표준 정신훈련’ 체계를 만들기로 작정하였다. 과거에 크리스천들이 근현대적 인권 개념 확립에 크게 이바지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신자들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솔선수범이 세상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성운은 새롭게 발명된 권능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이 정결 추구자들에게 큰맘 먹고 다른 지원을 해보기로 했다. 초능력의 유무로 인한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무장의 위력을 업그레이드해주는 식으로 접근했다. 이 방면에는 성운보다 뛰어난 전문가가 따로 있었다. 때마침 무장왕 쿠에시가 이번 냉전 때 일라이저에 대적하는 성운 쪽에 지원을 해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감사합니다, 쿠에시 씨.”
“뭘 이 정도 갖고. 네 발상이 조금 발칙하긴 하지만, 나름 그들의 행보를 끝까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아서 말이지. 신념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패배할지. 결말을 못 본다면 아쉽잖아.”
쿠에시는 자신 휘하의 뛰어난 대장장이 셋을 보내주었다. 셋 다 A 클래스 초인이었고 특수 무기를 제조하는 데 특화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마침 양산형 병기보다는 소수 정예 부대에 특화된 커스텀 병기가 필요했던 차라 크로스솔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무기들은 본인들의 정신력과 자질에 비례해 잠재력을 달리할 것입니다.”
무기를 제작해낸 장인들은 성운에게 무기 특성을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무기의 진정한 실효성을 끌어내려면 영웅의 창의력, 지혜, 굳건한 도덕성, 그리고 영성이 필요했다. 한 마디로 이는 크로스솔져들에게 특화된 병기였다. 뜻하지 않은 지원 덕에 크로스솔져들의 약점들은 상당수 개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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