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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19회 아벨의 후예 Ch 1. 섬에서 일어난 참극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1.10 | 회차평점 0 0

 

 

 

 

 

Chapter 1. 섬에서 일어난 참극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회색 머리의 중년 신사가 테이블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짧은 흑발의 젊은 여자가 마주 앉았다. 그녀는 이제 겨우 소녀티를 벗은 앳된 모습이었으나 지혜로 충만해 보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목표한 바를 반드시 이루어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의와 기백이 깃들어있었다.

   “음, 그래서 당신이 그 어르신의 직속 제자란 말씀이군요.”

   신사는 자신의 자녀뻘보다도 어린 그녀를 향해 정중히 말하였다.

   “직속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르침을 받은 것은 분명 사실이죠.”

   “인연이 깊군요. 딸 아이가 그분께 신세를 졌다고 들었는데.”

   젊은 여자는 잠시 기민하게 신사의 표정을 살폈다. 이번 임무는 그녀에게 있어 통과의례나 마찬가지였다.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얼마나 지혜롭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지 평가하는 자리였다. 밤낮 기도하며 씨름한 결과 그녀는 이 신사를 시작점으로 해서 본진에 파고들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받았다.

   “사실 제가 찾아뵌 이유도 따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 딸이요?”

   “명망 높으신 레이디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었으면 합니다.”

   “이런, 아나스타샤 양, 그녀는 낯선 이의 다가옴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답니다. 심지어 바깥 세계의 높으신 분들마저도 그녀를 어려워하지요. 그녀가 자기 울타리 안에 들어오도록 허락한 이가 아니라면 섣불리 그녀를 설득하거나 움직일 생각은 시도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그 점은 아나스타샤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신사의 딸은 한때 세상에서 가장 유력한 실력자 중 하나였다. 정쟁을 포기하고 후방으로 물러선 지금조차도 여러 초인의 스승으로 위명을 떨치는 중이었다. 그런 거물에게 다가가려 한다? 쉬이 생각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기지를 발휘해서 중년 신사 레우벤과의 대화를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이끌어나갔다.

   “아버지인 당신께서도 그녀를 어려워하시는군요.”

   “이보쇼, 젊은 숙녀분. 나는 그저 그 아이의 어린 시절 보호자에 불과합니다. 이미 세 살 때 그 아이는 내 지성으로는 닿을 수 없는 범주에까지 이르렀어요. 이후로는 내 품으로부터 독립해 줄곧 스스로 배우고 성장했죠. 그리고 일곱 살 때는 넓은 세상으로 날아가 버렸지. 흡사 파랑새처럼.”

   “어린 시절 보호자라……, 친딸이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진실을 향해 아나스타샤가 가까이 비집고 들어오자 레우벤은 머뭇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자랑하며 드러낼 일도 아니지만 숨길 일도 아니었다.

   “맞아요. 나는 딸아이와 아무런 유전적 연결고리도 없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사연인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음, 결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연이 상당히 복잡하죠.”

   아나스타샤는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그녀는 순수하게 호기심을 품는다는 인상을 주면서 중년 신사의 긴장감을 무장 해제시켰다. 비록 반쪽짜리 초인에 불과하지만, 그녀에게도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는 비상한 재주가 있었다.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고 이에 맞춰 합당한 반응을 제공한다면, 그리고 대화의 하모니를 간파하고 리듬만 맞추어준다면 다루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이 한 가지 주제에 온갖 골치 아픈 이야기들이 얽혀있답니다.”

   “저는 경청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흠, 아나스타샤 씨가 불편해하지만 않는다면야.”

   그제야 레우벤은 힘겨운 내적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그는 먼저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이 섬에서 벌어졌던 사건부터 시작하였다. 정확히는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자신이 거쳐왔던 인생 여정부터 이야기했다.

 

 

 

 

 

 

 

 

*

 

 

 

 

   레우벤 몰데카이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자라났다. 그의 소년 시절, 온 세상은 혼돈의 시대라는 진통을 앓고 있었다. 20세기 무렵부터 갈등의 중심지였던 이스라엘은 혼돈의 여파를 더욱 심하게 맞았다. 불과 30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50차례가 넘는 소규모 전쟁이 고향 땅을 덮쳤다. 사회 질서는 엉망진창이 되었고 나라 내부에서는 분열의 징조가 팽배했다.

   내우외환이 겹친 와중에 이스라엘의 종교적 구조에도 격변이 발생했다.

   분쟁의 씨앗은 혼돈의 시대 이전부터 이미 심겨 있었다.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혈통을 함께 물려받은 위버멘쉬, 그가 거느린 초인적 인재들, 그리고 위버멘쉬가 세운 인류연합. 온 지구가 칼튼 유스토의 지배 아래 놓였던 시절, 이스라엘에서는 위버멘쉬를 메시아처럼 숭배하는 풍조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반면 기독교인들이 믿던 예슈아를 메시아로 받아들였던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경계심에 휩싸였다. 대다수 국민이 현세의 지도자를 메시아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메시아닉 유대인 사회에서는 은은한 영적 경각심이 돌았다. 덕분에 그들은 영적으로 깨어났고 전보다 더욱더 신약 성경을 깊이 상고하였다. 점차 그들의 종교관은 율법주의적 성향이 짙었던 과거의 종교 관습에서 탈피해 온전한 복음주의적 형태로 재정립되어갔다.

   이후 초대째 위버멘쉬가 죽고 세계 전체가 혼돈에 빠지면서 이스라엘 내부의 종교대립은 한층 더 깊어졌다. 칼튼은 결국 메시아도 적메시아도 되지 못했다. 위버멘쉬 숭배자들과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은 위버멘쉬가 재차 등장하리라고 믿었고 실제로 훗날 인류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었다. 세속적인 유대인들은 위버멘쉬들의 연쇄를 메시아 계보의 연결로 이해했고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그것을 도리어 잠정적 위협으로 이해했다. 그렇게 종교 갈등은 점차 첨예해져 갔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레우벤은 나라 안팎이 어수선해지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자라왔다. 아랍국가들은 틈만 나면 이스라엘을 파괴하려고 애를 썼고, 위버멘쉬 칼튼의 유지를 잇는다며 새로 등장한 2세대 초인들은 끝없는 우주 진출 경쟁과 군벌 전쟁을 벌임으로써 지구를 불바다로 만들었으며, 국내에서는 메시아닉 유대인이 대대적인 핍박과 테러의 표적물이 되던 마당이었다.

   그런 와중에 레우벤은 삼십 대 초반에 레아라는 여인과 결혼을 했다. 어수선한 배경 속에서도 그는 나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했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의학적 소견을 확인해보니 문제는 남편 쪽에 있었다. 하지만 둘은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자족하는 마음으로 현실에 순응하였다.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 덕에 흠을 용납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레우벤은 직업 특성상 해외로 나가 근무하는 일이 잦았다. 어떤 경우는 최소 몇 달 이상 아내와 떨어져 지내기도 했다. 사건이 일어난 그 시절에도 아마 업무상의 이유로 출장을 갔던 것 같다. 후술하겠지만 그는 모종의 사건으로 이날과 관련된 기억의 많은 부분을 잃었고 한참 뒤에야 되찾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34년 전. 레우벤은 과거 미합중국이라 불렸던 국가에 소속된 섬인 하와이를 업무차 방문하였다. 당시 지구촌 전역은 기계의 반란, 바이오 테러리즘, 인공 장비로 인해 발생한 자연재해, 초인 군벌들의 세력 다툼으로 혼잡한 상황이었다. 한때는 위대한 난세의 영웅이 하나 등장하여 군벌과 세력가들을 제압하고 3년 만에 질서를 정립하나 싶었더니 나중에는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다시금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할까 두려워했다. 이런 와중에도 하와이는 바깥과 단절되기라도 한 양 잠잠했다.

   업무를 대강 정리한 레우벤은 귀가 전에 잠시 며칠간 휴식을 즐길 겸 바닷가로 내려가 작은 여인숙에서 신세를 졌다. 그곳은 어느 젊은 부부가 운영하던 곳이었다. 워낙에 붙임성 좋은 분들이어서인지 스쳐 가는 손님인 그도 부부와 금세 친해졌다. 레우벤은 바깥의 흉흉한 소식을 들려주었다. 지난 수십 년간 재난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던 부부는 생생한 재난의 묘사를 듣고 매우 놀랐다.

   “우리는 그나마 축복받은 셈이었군요.”

   “그렇습니다. 내 고향 이스라엘은 지금도 난리가 끊이지 않는답니다.”

   아무래도 사는 시대가 시대인만큼 그들은 주로 불안한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대화의 장을 펼쳤다. 그래도 마냥 괴로운 대화만 나눈 것은 아니었다. 새 생명이라는 희망도 있었다. 여인숙을 운영하던 그 부부에게는 불과 몇 개월 전 태어난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시대의 여걸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출생한 아이였다. 부부는 아기를 품에 안고 레우벤에게도 보여주었다.

   “정말 예쁜 아이네요.”

   “호호, 그렇죠? 신께서 어떻게 이런 천사를 보내주셨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는 아직 갓난아기였음에도 티 하나 없이 순수하고 귀여운 외모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사파이어 빛깔 눈동자에는 총명한 기운이 어려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숙녀로 자라날지 저절로 기대되었다.

 

   떠나기 하루 전, 레우벤과 부부는 아기를 데리고 야외로 소풍을 나왔다. 그들은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좋은 추억을 남기기에는 충분했다. 레우벤은 부부가 잠시 단둘이서 꽃구경하러 다녀올 수 있도록 아이를 맡아주었다. 아기는 울음 한 번 터뜨리지 않고 새근새근 레우벤 품에서 잠들었다.

   “내게도 아이가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문득 아쉬움이 들면서 이스라엘에 남은 아내에게도 미안함도 들었다. 부족한 남자인 탓에 소중한 새 생명도 안겨주지 못하다니. 평화로운 섬에서 오붓하게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두 부부가 몹시 부러웠다.

   “그래, 갖지 못한 것에 집착해봐야 무슨 소용이랴.”

   부질없는 고민은 털어버리는 편이 나았다.

 

   해탈한 심정으로 고개를 젓던 그때, 갑자기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는 섬칫한 기운이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생기로 충만하던 섬 전체가 빙하기를 연상케 하는 한기에 휩싸였다. 물리적인 기온 변화는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폭발음이나 연기도 보이지 않았다. 자연 풍경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공습을 알리는 신호보다도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섬 근처에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 비이성적인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흡사 사람의 생기를 흡수하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도망쳐야 해.’

   그러나 그것은 불가항력의 힘, 도주는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잠시 후 소스라치게 소름 끼치는 비명이 섬 전체에 울려 퍼졌다. 사람 목소리라기보다는 짐승의 울부짖음 같았다. 사람들이 내는 소리가 아닌, 모든 방향에서 흘러들어오는 뇌성이었다. 어찌나 끔찍한 음조로 공기를 찢어놓던지 귀를 틀어막아도 머리가 터질 듯 아팠다.

   이내 경악할 일이 발생했다. 레우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절규하면서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마치 생명 에너지를 흡수당하기라도 한 마냥 몸이 바싹 마르더니 미라처럼 변하며 죽어갔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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