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29회 아벨의 후예 Ch 3. 지구 교회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1.31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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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혁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걱정하며 질문하였다.
“형은 괜찮으세요?”
“무엇이 말이지?”
“그런 큰 힘을 짊어지면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요?”
“아, 걱정해줘서 고맙군. 하지만 전혀.”
자기 신변에 극도로 신중한 그가 정말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니 안전성이나 안정성에는 정말 문제가 없는 듯했다. 하긴 초인의 육체에도 만족하지 않고 기어코 불로불사를 성취한 그가 자기 몸을 조금이라도 해할 가능성을 무시했을 리는 없으리라.
“애초에 내가 쓰도록 내 몸에 맞게 설계된 것이라서 말이지.”
윤혁은 왜 조금 전에 형이 자신을 꼬드길 때 ‘내가 특혜를 주면 너도 초인들보다 강해질 수 있다’라고 말했던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나마 윤혁은 형의 본색을 잘 알기에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다. 신앙의 길을 걷지 않는 보통 사람이었으면 손쉽게 넘어갔을 것이다.
“약학보다는……, 마술(魔術) 같아 보이네요.”
마술은 헬라어로 ‘Pharmakeia’. 이 낱말은 ‘약학(Pharmacy)’과 어원이 같다. 윤혁은 카이젤이 만들어낸 발명품이 인류를 위한 선한 문물이라기보다는 신에게 도전하기 위한 발판이라고 여겼다. 마음 같아서는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형을 말리고 싶었지만, 고집스러운 그는 도무지 경청할 것 같지 않았다.
“약물과는 달리 의존성조차 없는 좋은 기술인데도?”
“설령 자체적인 중독성은 없다고 해도 거대한 힘은 소유자에게 취기를 일으키기 마련이죠. 인간은 누구나 초월적인 힘을 받으면 마음속의 악한 본성과 탐욕을 제어하기 어려워지니까요.”
“그러나 이 힘은 초자연의 간섭으로부터 독립할 기회이기도 하지.”
“글쎄요. 과거 마술을 쓴 주술사들은 악령에게 의존했지만, 지금의 초인들과 인류는 형에게 의존하게 되었잖아요. 의존 대상만 바뀌었을 뿐인걸요.”
“흠, 내가 그렇게까지 미덥지 못한 존재였나?”
솔직한 대답은 ‘그렇다’였다. 지금의 카이젤의 성장은 태양을 향해 도약하는 이카루스처럼 위험천만해 보였다. 그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전하여 위험한 경지에 다다르는 것이 선명히 느껴졌다. 너무 늦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만 할 텐데. 이런 추세라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대적하거나 교회를 직접 핍박하는 일이 전혀 없이도 단지 지나친 탁월함 하나 때문에 적그리스도가 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일반인에게까지 힘을 전수하는 일은 그만두면 안 될까요?”
“억지로는 안 하겠지만, 내가 제안하면 대다수가 받아들일 텐데?”
대꾸할 말이 없었다. 틀림없이 사람들은 선뜻 힘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더불어 힘의 주인에게 적극적으로 복종하고 고개를 조아리겠지. 몹시 답답했다.
“그래서 천재현씨를 노리시는 건가요? 일반인이었던 그가 특수한 이능력 탓에 초능력을 신체에 축적해버렸으니 이제는 그를 실험체로 삼으실 생각이신가요? 일반인에게도 초능력을 통용하는 방법을 찾아내려고요?”
이것을 물어보는 것이 오늘 윤혁이 찾아온 진짜 이유였다.
“너도 엿들었군. 그가 아버지 댁에 찾아왔던가?”
“네. 이 문제 말고도 이것저것 많은 것을 알려주셨죠.”
윤혁은 눈을 부릅뜨고 눈매에 힘을 준 채 형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카이젤은 날이 갈수록 대담해지는 동생의 성장을 제법 흥미진진하게 느꼈다.
“부정하진 않으마. 천재현은 확실히 유용한 케이스이긴 해.”
순간 윤혁의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아, 동생 쪽도 그 못지않게 흥미롭지. 형제의 죽음이 매개체가 되어 한계치를 넘어 클래스 승격을 이뤄내다니, 이례적이야. 잘만 연구하면 인위적으로 일반인을 초인으로 각성시키거나 초인의 단계를 진화시키는 방법에 대한 단서를 얻을 텐데.”
“형!”
이제 검은 눈동자가 의분으로 이글거렸다. 자신의 부하마저도 필요하면 실험체로 이용하려는 카이젤의 과한 욕망을 더 이상은 괄시할 수 없었다.
“어떻게 사람이 되어서 그런 발상을 하실 수 있죠?”
“실제로 시행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호기심일 뿐이야.”
“마음으로만 탐욕을 품어도 잘못된 건 마찬가지예요. 게다가 형에게는 언제든지 그런 일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무제한의 권력이 있잖아요.”
이에 카이젤은 잠시 멈칫했다. 진지하게 화를 내는 동생의 모습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적당히 달래줘야겠다는 불편감과 함께 아주 미약한 양심의 가책이 전해졌다. 결국 그는 못 이기는 척 백기를 들었다.
“불쾌했다면 미안하다. 본인 허락 없이는 손대지 않으마.”
그러나 윤혁의 의분 찬 불만족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하늘도시 주민들의 표식은……, 그들의 허락이 동반된 것이었나요?”
이번에는 카이젤의 미간이 미약한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 이야기는 삼갔으면 좋겠구나, 윤혁아.”
대기 중에 녹아든 패기에 반격당한 윤혁은 순간 대꾸를 멈췄다.
“난 그들에게 받아내야 할 빚이 있거든.”
동생은 잘 절제된 분노로 미약이 일그러진 형의 얼굴에 뿌리 깊고 짙은 불쾌감이 스며든 것을 발견하였다. 분명 윤혁 자신을 향한 분노는 아니었다. 자세한 사정은 잘 몰라도 자신이 상대의 불편한 역린을 자극한 듯했다. 더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죄송해요.”
“나도 미안하다.”
어른답게 감정을 온전히 누그러뜨린 재혁은 다정한 형의 모습으로 돌아와 동생의 머리를 상냥히 쓰다듬었다. 사제(師弟)라는 공적 관계를 잠시 멈추고 형제라는 편안한 사적 관계로 돌아가 주겠다는 신호였다. 그제야 윤혁을 잔뜩 짓누르고 조르던 분위기의 압박감이 느슨해졌다.
“천 씨 형제는 안 건드리마. 그들이 먼저 거래를 원하지 않는 이상은.”
찝찝한 뒷말이 붙은, 약속 아닌 약속.
“그들이 거래를 원한다면?”
개운치 않았는지 윤혁이 조심스레 되물어보았다.
“그러면 그때 가서 계획을 다시 세워봐야겠지.”
“그냥 모른 척하고 그들을 놔주면 안 될까?”
‘이미 그토록 많은 것들을 소유했으면서 뭐가 그리 아까워서…….’
윤혁은 뒷말을 삼키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상의 논변으로 형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재혁은 씁쓸히 웃었다. 저 아이로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겠지. 하지만 동생도 결국 평생 형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변혁을 이뤄내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을 쳐야 하는 지도자의 입장을. 한 점의 욕심도 없는 동생은 자신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되겠지.
“형한테 귀여움이라도 보인다면 좀 너그러이 생각해보지.”
재혁은 쓸쓸한 마음을 감추고는 일부러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됐어. 무슨. 애교라면 나중에 연인한테서나 실컷 받아.”
윤혁은 농담을 거절하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아니지. 아예 빨리 결혼이나 하지.”
뼈 실린 말에 재혁은 곧바로 시무룩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형한테 너무하는군.”
이에 윤혁은 조금 미안함을 느꼈으나 일부러 매몰차게 굴었다.
“홀아비로 늙기는 싫을 거 아니야. 이왕이면 인간답게 살라고.”
“나는 늙지 않아.”
농담처럼 가벼운 대꾸. 그러나 내용은 농담이 아닌 사실이었다. 재혁은 가뜩이나 초인 중의 초인인지라 태생적 노화 속도도 현격히 느렸다. 1세대 및 2세대와의 생물학적 비교를 바탕으로 추산하면 예상 수명만 수십만 년으로 추정되는 판이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그러하거늘 자신의 몸을 실험체 삼아 피코머신까지 발전시켜 스스로를 궁극체로 완성하는 바람에 영구적으로 노화가 차단되고야 말았다. 어차피 늙지도, 다치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다면 구태여 유전자 보존을 위해 종족 번식에 목을 맬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너도 알듯이 나는 아이를 만들지 못하는 몸이지.”
자학적인 형의 농담에 동생의 미간이 불편감으로 일그러졌다.
“그럼 제대로 치료라도 받던가!”
심통이 난 윤혁은 더 예리하게 형을 찔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술력을 개발할 여력이 있으면 말이야.”
재혁은 얄밉다는 듯 장난스레 윤혁의 볼을 꼬집었다.
“얄궂군.”
“아니, 형은 자기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해.”
말은 모질게 던져도 속으로는 괜히 안쓰러웠다. 스스로를 벌하기에 바빠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다 보니 저렇게 뒤틀린 방향으로 강해진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일 테지. 언제쯤 저 솔직하지 못한 인간이 따뜻함과 인간미를 함양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잔소리를 잔뜩 쏟긴 했으나 동생으로서 심히 우려되었다. 물론 억제자로서도. 형제의 영이 병드는 모습을 보는 것은 사양이었다.
*
며칠 지나지 않아 리온의 메시지를 통해 초대를 받은 이들이 지구촌 곳곳에서부터 모여들었다. 대략적인 수효는 삼천. 하지만 막상 오프라인에서 몇 차례 경고를 공지해주자 다수가 떨어져 나갔다. 먼저 핍박이 임할 것을 경고해주자 두려움 때문에 약 천여 명이, 다음으로 풍요의 혜택을 잃을 수 있음을 경고해주자 세상을 사랑한 천여 명이 다시 자진 탈락했다. 남은 숫자는 1천 명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 이것이 현 지구의 그리스도인들의 민낯이었다.
어쨌건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역사상 최초로 ‘지구 교회’ 멤버가 선별되었다. 오랜 세월 분열과 배교를 겪으며 쇠퇴와 약화 일로를 겪었던 지구의 교회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우주 시대가 개막하여 극소수의 입장이 되고 나서야 온전한 화합을 성취하였다. 거짓된 자들을 배제한 채 오로지 성경적 진리에 삶의 기초를 둔 자들끼리만 연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지구 교회는 어느 낡은 건물을 하나 빌려 예배를 시작하였다. 교회 조직은 중앙 본부와 대륙별 하나씩 배치된 위성 교회로 구성되었는데 대체로 지역 교회에 모이는 이들이 3백 명, 중앙에 모이는 이들이 7백 명 남짓이었다. 이름은 거창하게도 지구 교회였지만 실상 규모는 대단히 조촐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아직 사람의 영혼을 살려낼 생명력이 남아있었다. 그들은 딱히 비밀결사의 형태를 취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공개적으로 신앙을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전도를 하였다. 온라인을 통해서든 오프라인을 통해서든 외부인을 초대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반응을 보이는 자는 극히 드물었지만, 전도를 멈추지는 않았다.
그들은 세상과 화합할 생각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세계단일정부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사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가르쳤고 충실한 시민 역할을 독려했다. 훗날 이는 현명한 선택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러한 모범적인 모습에 반하여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의 뜻이 있는 몇몇 외부인들이 성도들의 훌륭함에 반하여 지구 교회의 초청에 응하였다. 비록 손에 꼽을 만큼 극소수였지만.
네 명의 성실한 원로 목사가 지구 교회의 성도들을 가르치고 목양하였다. 이들은 평생 종교통합 운동과 배교의 흐름에 저항하며 십자가의 복음만을 정직하게 전해온 일꾼들이었다. 리온은 겸손한 자세로 이들을 섬기며 전도자의 신분으로 수련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원로들이 리온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던졌다.
“자네도 3년 이상 현장에서 일해왔고 1년 동안 충분히 배웠으니 정식 사역자로, 지구 교회의 다음 세대 후계자로 일해야 하지 않겠는가?”
겸손한 리온은 처음에는 이를 수용하지 않으려 했다. 아직 그는 자신에게서 부족한 점을 많이 발견했다. 그는 자신이 더 수련과 연단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원로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어온 노련한 자네만 한 적임자는 없다고 생각하네. 드넓은 우주 전역에 기적적으로 복음이 전파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분께서 자네와 동료들을 사용하신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네.”
“더욱이 현세대가 얼마나 완악하고 주님께 적대적인지는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는가. 물론 예전이라고 그러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과학기술을 포함한 문명의 모든 영역이 지나친 속도로 발전한 탓인지 더욱 가속화되었어.”
“자네의 용맹한 활약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네. 세상을 지배하는 권세자들 앞에서도 옳은 일을 행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지. 지금의 권세자들과 정부는 역사상 그 어느 시대와도 비교를 불허할 만큼 막강한데도 말이야.”
원로들은 리온을 독려하고자 히든카드를 꺼냈다. 옛 우주 식민지였던 Upol 행정구역에 세워진 우주 교회들에서 송신된 편지들을 보여주었다. 드문드문 지워진 것으로 보아 메시지 정보 중 다수는 통일시스템이나 기타 시스템들의 검열의 칼날에 당한 듯했으나 몇 개는 다행히 가까스로 검열을 통과했다. 내용은 우주 교회들이 당면한 현실에 대한 것이었다. 각 지역 교회가 어떻게 부흥을 이룩하였고 현재 직면한 영적 위기가 무엇인지에 관해 상세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우주 교회들도 큰 풍파 앞에 놓여있군요.”
“그래, 시간이 촉박해. 대대적인 종교개혁 없이 내버려 두면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지구 때처럼 몰락의 기로를 걷게 될지도 모르지. 그들은 절박하게 우리의 도움을 갈구하고 있다네.”
리온은 조금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동료들을 사용하셔서 개척해낸 우주의 교회들. 그 지역의 성도들이 이단 교리의 풍파와 세상 권세의 영향으로 뿌리뽑히고 훼손되는 모습은 상상하기조차도 싫었다. 겸손하게 몸을 낮추고 싶었지만, 마냥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때 한 원로가 파격적인 제안을 하였다.
“필요하다면 우리는 자네의 이름을 빌릴 생각이네.”
“제 이름이라니요?”
“자네의 명성 말일세. 바울이 자기 사도권을 변호했던 것은 자신을 뽐내려는 목적이 결코 아니었다네. 그는 이단에 맞서 순수한 기독교를 보호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주님께서 주신 권위를 무기로 썼던 것일세. 그래야 확실한 기준점을 세워서 성도들이 거짓 가르침에 휩쓸리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을 테니까.”
리온은 분명 광활한 우주 식민지에 복음의 씨앗을 처음 건네주었던 우주 선교의 선조 중 하나. 원로들은 그런 그의 위상을 무기 삼아 가까운 시일 내에 그를 파견할 생각이었다. 리온을 구심점으로 우주 교회들이 타락의 풍조를 물리치고 자정작용을 시행할 수 있도록. 이를 위해서는 먼저 리온 자신의 결단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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