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34회 아벨의 후예 Ch 4. 이레귤러 (5)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2.24 | 회차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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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앙.
공간이 수십 조각으로 찢어졌다. 중력파, 시공간파동, 그리고 불규칙성이 극도로 증폭된 양자 확률파동, 그리고 실체화된 사념파가 극고농도, 초고압 상태로 전 방위로 방출되었다.
이것은 현대 과학을 활용한 첨단 병기의 효력도, 혹은 초능력에 의한 효과도 아니었다. 그 모든 괴이 현상은 그저 신체와 신체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순수한 물리력의 극한과 극악의 집념이 충돌함으로 형성된 기괴한 결과물이었다.
현자의 눈으로도, 최첨단 초광역 우주 관측 장비는 물론, 미래예측 시스템마저 감지할 수 없는 물리적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다섯 물체. 그것들은 현란하게 공간을 도약하며 충격의 파동으로 온 영역을 수놓았다. 그들은 물리학과 수학과 철학이 정해놓은 상식적 한계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현상의 한도를 벗어난 충돌을 일으켰다. 상대성 이론을 비웃는 속력, 양자 역학을 비웃는 정밀성의 위치와 벡터, 초끈 이론을 조롱하는 광범위한 차원 침습력, 심지어 21세기 중반 이후에야 확립된 최첨단 기초물리학을 무효로 만들어버리는 압도적인 파워까지.
놀랍게도 그들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었다. 초능력이 응집된 에너지 덩어리도 아니었다. 퀘이사 엔진과 같은 무시무시한 화력의 비밀 병기도 아니었다. 그들은 살아 숨 쉬는 인간 개체였다. 피와 살과 뼈를 지닌 인간.
그들은 수많은 권능들을 보유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힘을 전부 봉인한 채 순수한 육체의 물리력으로만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힘을 담는 그릇인 육체야말로 가장 강력하한 힘이었다. 이들은 이미 육체의 리미터가 파괴된 상태였고 자연계의 한계를 초월하여 성장한 개체들이었다. 그렇기에 단순한 체술만으로도 최종병기 급의 결전이 펼쳐낼 수 있었다.
전장을 지진으로 수놓는 자들 중 네 명은 인류가 보유한 단일 개체 유닛 중 최강급이라고 일컬어지던 자들이었다. 일명 얼티밋워리어(Ultimate warrior)라고 불리는 자들로 역대 최강의 바이오닉 솔져들이었다. 그들은 이전에도 이미 이종족과 기계들 전부를 상회하는 괴물이었으며, 초능력이 발명된 이후로도 초능력을 쓰는 초인들마저 모두 포함하여 전투력 순위에서 최상위권에 드는 전사들이었다.
지금까지는 이들에게 전력을 내어 싸울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한 개인으로서 너무도 강한 탓에 개체 대 개체로는 겨룰 적수 자체가 없기 때문이었다. 유닛끼리의 전투가 아닌 거대 규모의 군대와의 전쟁이라면 모를까. 그러나 애당초 인류연합 외에 다른 세력은 이 물리계에 존재치 않기에 군대와의 대결이라는 가정도 실질적으로는 무의미했다.
그나마 얼티밋워리어들이 전력을 발휘할 일이라면 넷끼리 서로 겨루는 친선 경기 정도였는데, 이마저도 항상 안전을 위해 많은 제약이 따르는 상태로 시행되었다. 혹여 격한 대결로 한 명이라도 다칠 경우 인류 차원의 문화재급 자원에 손실이 남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그러했다.
이번 대련에서는 달랐다. 네 전사 모두가 자신의 온 힘을 쏟아내어야 할 당위성과 기회가 주어졌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가능케 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최근 생각지도 못한 한 존재가 전투력 순위를 뒤집고 역전을 일으켰다. 바로 지금 대련을 벌이는 다섯 인간 중 하나로 얼티밋워리어들이 아닌 그들보다 높은 인간이었다.
놀랍게도 얼티밋워리어 넷이서 전력을 다해 그 한 명을 공격하고도 겨우 싸움이 성립하는 그림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아직은 미숙하구나.”
“크윽.”
분기당천한 비숍은 여유로움을 즐기는 대결 상대의 등 뒤로 이동하여 발차기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맞았음에도 흔들림조차 없었다. 시공간 일대가 붕괴할 정도의 충격파가 발생했으나 부서진 쪽은 비숍의 다리뼈였다. 비숍은 가볍게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빼내어 발을 재생할 시간을 벌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덤벼봐라.”
그 도발에 이번에는 나이트가 연타를 가격했다. 그녀의 주먹이 일시적으로 수천억 개로 늘어난 듯한 잔상이 발생하며 공간이 천수(千手)로 수놓아졌다. 무(武)라는 현상의 극한이 연발하며 한 점 위에 겹치고 겹쳐고 또 겹쳐졌다. 그 중첩에 반응하여 블랙홀과 동일한 원리의 특이점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대련 상대는 적의 기술의 틈새를 간파하였다. 그는 시공간 이변 현상의 흐름을 강제로 끊고 나이트의 목덜미를 손날로 찍었다. 그녀는 당구공처럼 튕겨 나가 멤브레인 차원 위에 박혔다. 거대한 크레이터가 형성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퀸이 돌격해 상대의 양팔을 세게 붙들었다. 처음에는 퀸이 우세한 듯했지만, 차차 상대가 전세를 역전하였다. 퀸은 엄청난 압박감과 괴력에 부들거리며 떨었다. 상대는 박치기로 그녀의 머리를 가격하였다. 뒤쪽에서 룩이 지원 사격을 했다. 그는 자기 팔꿈치를 창처럼 이용해 대련 상대의 척추를 공격했다. 하지만 금강불괴의 몸에는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이게 무슨…….’
‘제복의 보호를 받는 것도 아닌데.’
룩과 퀸은 당황했다. 현재 상대의 몸을 보호하는 장비라고는 반만 갖춰진 제복뿐이었다. 그마저도 기능 대부분이 봉인된 터라 특수 기능은 작동하지 않는 중이다. 게다가 맨몸 상태로 드러난 상반신 쪽은 제복은커녕 방어 장구도 없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도 단순히 육체 스펙만으로 저런 괴이한 방어력을 선보인다니. 이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키나 한 일이란 말인가.
“최선을 다해 나를 죽일 생각으로 임해라.”
현 대련 상대는 그들이 상대하기 부담스러운 상관. 네 전사는 킹과 대격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러나 봐주거나 져주는 태도는 일절 없었다. 오히려 싸움은 서로를 진심으로 죽일 기세로까지 가열되었다. 어찌나 격렬했는지 이 무대가 미리 특별한 용도로 가공해놓은 준-무한 공간만 아니었다면 싸움의 여파만으로도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을 기세였다.
넷은 계급장을 떼고 최선을 다해 분투했다. 4대 1로 한꺼번에 덤벼야 겨우 맞상대할 수 있는 전력 차였기에. 그나마도 전사들은 죽을힘을 다하고 있었으나 왕은 연습 경기하듯 매우 여유로웠다. 전사들은 수치를 느꼈다. 킹은 네 시간 가까이 합을 맞춰주며 부하들과 격투를 벌인 뒤 일할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게임 종료를 선언하며 넷을 한꺼번에 제압했다.
“다들 그만 일어나.”
따분한 표정으로 카이젤이 큐오즈린, 한즈, 헥터, 아키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최근 그는 육체 대련의 용도로 네 부하를 요긴하게 써먹는 중이었다. 체술을 키우는 데는 강한 상대와 대결만 한 것이 없다.
“이젠 우리 도움도 딱히 필요 없는 것 아닙니까?”
“쳇, 더럽게 힘만 세서는.”
룩과 비숍이 툴툴거렸다.
“너무 불만 가질 것 없어. 우리도 혜택을 입었잖아.”
“그래, 설마 이런 효과까지 생길 줄은 몰랐지.”
퀸과 나이트가 말한 효과란 초능력과 육체의 동화였다.
초능력 시스템은 애당초 기대했던 것 이외에도 전혀 다른 방향의 이익을 추가로 가져다주었다. 본래 그 힘은 정신을 그릇 삼아 담는 것이었는데, 일부 사용자들에게서는 정신뿐 아니라 육체도 그릇이 되곤 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이들 중 몇몇에서는 초능력과의 상호작용으로 말미암아 신체를 구성하는 원소들이 초능력의 원리를 학습하여 물리적, 정보적 한계를 뛰어넘는 현상이 발생하곤 했다.
구체적으로 효과 발현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신체의 기존 원소와 피코머신 군집, 이 두 집단이 서로서로 상대방의 특징을 학습하면서 동화되었다. 이에 피코머신 특유의 초월적 학습 능력 역시 육체 속에도 동기화되었다. 이 학습 능력은 초능력에 대해서도 해석 작용을 일으켰다. 그러다 보니 기존 원소와 피코머신의 합으로 조성된 육체는 학습과 개화를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승격하여 마침내 물리법칙을 무시하게 되었다.
연구 결과 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님이 밝혀졌다. 그럴 일도 없으려니와, 초능력 시스템이 설령 통째로 사라지더라도 육체의 개화는 비가역적인 도약이기에 초능력의 존재 여부와는 무관하게 영구적으로 효과가 유지될 것이다.
주로 얼티밋워리어들에서만 이런 특수 현상이 자주 발생했는데 이는 이들의 특수 고유 재능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한편 고유 재능을 복제하고 흡수할 수 있는 ‘학습의 괴물’을 담은 카이젤도 같은 수혜를 누렸다. 그는 워리어들의 고유 재능을 해석함으로써 육체 원소에서 일어나는 초능력-물질 일체화의 원리를 이해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를 안전하게 자기 자신에게까지 적용하고 응용해 얼티밋워리어들 이상의 유익을 얻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스케일. 카이젤은 파워소스부터 리셉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초능력 시스템의 모든 채널과 그 모든 단계와 더불어 혼이 일체화되어 있었기에 몸을 순환하는 권능 역시 압도적으로 거대했다. 그 몰상식한 초거대 규모의 힘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얼티밋워리어의 고유 재능을 활용하자 그의 신체는 초능력들에 최적화된 상위 차원급 육체로 도약하고야 말았다. 결과적으로 단순 물리력만으로도 초월적 파괴를 일으키는 수준에 도달해버렸다.
“역시 신체 개조 같은 것 무의미해.”
비숍이 다시 투덜거렸다.
“타고난 초인의 육체가 다 해 먹잖아.”
그의 불평에도 일견 일리는 있었다.
개조로 인한 괴이한 우수성을 지닌 네 전사. ‘초인의 육체’라는 측면에서 더 우수성을 점한 왕. 지금까지는 분명히 이 두 우수성이 명료하게 장단점이 나뉘어 있었기에 한쪽과 다른 한쪽을 비교하기가 힘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개조 육체가 더 강했고 다른 면에서는 초인의 육체가 편리했으니까.
“쳇, 원래는 그냥 타고난 건강이 좀 우수한 정도였는데.”
무한한 지적 성장 잠재력과 초지능이 담긴 ‘초인의 정신’과 달리, 재생력과 노화 저항력과 무궁한 환경 적응력이 담긴 ‘초인의 육체’. 이러한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초인의 육체’의 중요성은 은연중 간과됐다.
그 증거로 초인 사이에서의 클래스 구분은 오로지 초인의 정신만을 기준으로 이루어져 왔다. 정신과 육체는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았기에 육체라는 요소는 클래스를 나누는 변수 가운데 포함되지 않았다. 실제로 육체가 강하면서 정신은 약한 경우, 또는 육체가 약하면서 정신만 강한 경우도 꽤 있었다. 물론 그와 별개로, 위버멘쉬는 정신에서도 육체에서도 각각 독보적인 최우수성을 지녔지만.
그러나 이렇게 간과됐던 장점인 ‘초인의 육체’가 이제는 말도 안 되는 반전의 장점으로 밝혀지고 말았다. 설마 초인의 정신 이상의 잠재력이 담겨 있었을 줄이야. 카이젤의 놀라운 우수성은 끝내 그 잠재력을 ‘육체-초능력 일체화’라는 단계로 승화시키는 데 이르렀다.
물론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초인 같았으면 초능력 시스템 채널 단 하나도 육체에 녹여내지 못했을 것이다. 위버멘쉬인 그였기에 무수한 시스템들에 동시 적응하는 일이 가능했다. 그에게도 이러한 육체의 초월화는 전혀 예측지 못했던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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