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56회 아벨의 후예 Ch 9. 전략 회의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4.10 | 회차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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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루디아와 윤혁은 아나스타샤를 섬으로 초대했다. 이유는 참모의 조언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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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루디아와 윤혁은 아나스타샤를 섬으로 초대했다. 이유는 참모의 조언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루디아는 카이젤과의 계약 문제를 대단히 신중하게 다룰 필요성을 느꼈다. 어쩌면 영적인 문제, 세계사적 문제와 맞닿아있을지도 모르는 거사인만큼, 최대한 악의나 궤휼의 영향력을 피해 올바른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윤혁아, 네 생각도 똑같지?”
“동의해. 현재 우리가 아는 한 그리스도인 동료 중에서는 아나스타샤 씨가 최고의 브레인이니만큼 그녀의 조언을 반드시 참고해봐야겠지. 더욱이 당사자인 네가 그렇게 판단했다면야.”
어찌어찌 형을 설득하는 일까지는 부추기고 힘을 보태주었지만, 이제부터는 윤혁도 루디아가 움직이는 방향에 방점을 두기로 다짐했다. 선량한 그녀라면 하나님과의 소통과 교제를 통해 그분의 뜻을 묻고 그 뜻에 걸맞게 행동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옆에서 조언해주는 일도 이제는 지혜가 한정된 자신보다는 지혜로운 아나스타샤가 적합하다는 판단이 섰다. 루디아와 더불어 같이 논의할 상대도 일차적으로는 이방인 성도들이 아닌, 계약의 직접 수혜자가 될 유대인들이니 더더욱 자신이 주제도 모르고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잘 해보자.’
이내 아나스타샤가 도착했다.
그녀는 신중하게 논의의 장소를 폐쇄된 조용한 방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그녀는 루디아와 윤혁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녀는 카이젤이 보인 예상 밖의 움직임에 적잖이 놀랐다.
이 증언에 더하여 윤혁은 참고자료 또한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공정 계약 체결을 위해 레리엔이 커버넌트에 대한 개략적인 자료를 넘겨주었다. 참고해보고 어떻게 할지 잘 생각해보라나.
하지만 전문적인 내용이 많고 어려워서 도통 윤혁으로서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했던 차였다. 나름 타인에게 쉽게 이해시키는 교육 계열 카리스마타를 소유한 레리엔이 일부러 일반인 수준에 맞춰 쉽게 풀어쓴 자료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연히 루디아야 더더욱 알아들을 턱이 없었다.
“어때요? 아나스타샤 씨는 조금 이해가 되시나요?”
자료집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아나스타샤에게 윤혁이 물었다.
“대강은요. 하지만 저로서도 20% 정도 이해하는 것이 한계네요.”
“분명 일반인 수준에 맞춰서 요약했다고 하던데, 약간 과장을 보태서 저는 아예 한 글자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공부와 담 쌓지는 않았는데.”
부러움이 들었다. 어려운 자료를 골똘히 탐구하는 아나스타샤에게서 현명한 학자의 아우라가 물씬 풍겼다. 속으로 윤혁은 에드레이 테일란드가 저런 훌륭한 제자를 양육해 이 땅에 남겨주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나스타샤는 말없이 한참 펜을 끄적거리며 공부하더니 반 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조금……, 무섭네요.”
“네? 이 기술이 그렇게까지 위험한가요?”
덜컹 걱정부터 든 윤혁과 루디아.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의연해 보이던 아나스타샤의 동공이 미약히 떨려왔다.
“카이젤 라흐블뤼크. 강윤혁 씨의 형님분 말이에요. 그분이 무섭다고요. 영적인 관점에서 내린 평가는 아니예요. 다만……, 인간의 지적 능력이 저런 섬뜩한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경악스러울 뿐이에요.”
“에이, 새삼스럽게. 형이 천재인 건 저도 아는걸요.”
“아뇨, 그런 차원이 아니에요.”
긴장감 없는 윤혁을 아나스타샤가 손수 일깨워줬다.
“그는 초인들과는 서 있는 영역 자체가 완전히 달라요. 심지어 레리엔 로즈 같은 분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이 기술은 아마도 그런 괴물의 능력과 지성이 응축된 정수. 그래서인지 레리엔씨조차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했어요.
만일 그녀가 커버넌트라는 기술의 원리를 극히 일부분이라도 이해했더라면 그녀가 소유했다는 특유의 재능인 ‘타인의 이해시키는 능력’ 때문에라도 뭔가 희미하게 단서가 당신과 나에게 전달되었을 거에요. 하지만…….”
탁월한 지성인인 아나스타샤조차도 전혀 단서를 잡지 못했다. 레리엔도 그 기술의 피상적인 의미만 넘겨짚고 있을 뿐 본질은 전혀 깨닫지 못했음이 드러난 셈이다. 왜 언터쳐블 기술이라는 표현이 붙었는지 저절로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언터쳐블이란 경지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과장 한 스푼도 안 보태서, 아마 우주 인류 포함 현 인류 전체의 지능을 수직적으로 곱해 융합하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발끝에조차도 못 미칠 겁니다.”
“그, 그 정도인가요? 설마 초인까지 포함해도요?”
형이 대단한 줄이야 알았지만, 윤혁도 거기까진 예상하지 못했다.
“네, 맞습니다. 경계하시는 편이 좋아요, 강윤혁 씨. 당신이 맞닥트리기로 한 상대는 당신의 예상을 한참 웃도는 급의 위협이랍니다. 주님의 지혜로 철저히 무장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당신이 삼켜지겠죠.”
아울러 아나스타샤는 커버넌트에 대해서 신중하게 접근한 것을 권고했다.
“그러면 그냥 포기해버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루디아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의외로 기술 자체에 대한 아나스타샤의 평가는 부정적이지 않았다.
“저도 거의 이해는 못 했지만, 커버넌트의 본질에 대해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알겠어요. 저 기술은 영(靈)의 차원에는 닿지 않아요. 기껏해야 상위 차원, 그것도 물리계에 근접한 영역에서 작동해요. 적어도 현 수준으로는 말이죠.”
“상위 차원에도 급이 나뉘어있나보죠?”
“성경적 세계관에 대한 우리 지식을 과학계의 발견에 대입해넣자면, 영적 세계는 인류가 수억 년 이상 과학을 발전시켜도 자력으로는 닿지 못할 만큼 높아요. 가장 낮은 단계의 영적 세계마저도 말이죠.”
다시 말해 커버넌트 그 자체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금지하셨던 영과의 접촉 행위와는 무관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까지의 가설을 종합해보면 커버넌트는 외부 간섭 기전을 포함하지 않는다. 원료의 정체는 불명이나 아마 기술 자체는 순수하게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된다. 워낙 초월적 분야인지라 카이젤 혼자서만 이해하는 영역일뿐, 마법이 아닌 과학인 셈이다.
“하지만 약물이나 초능력도 악령의 간섭을 유발할 수는 있잖아요.”
“그것과는 많이 달라요. 커버넌트는 정신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오로지 육신과 생명과 혼을 연결해주는 접합부에만 유착됩니다. 뒤집어 말해서 계약을 위반하면 목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죠. 하지만 영이나 자유의지에는 아무 영향이 없습니다.”
정말로 안심해도 되는 게 맞는 걸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후로도 부연 설명이 이어졌지만, 윤혁의 두뇌로는 이해 불가였다. 아나스타샤는 자신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게 전부라면서 아주 대강만 설명해주고 넘어갔다.
“루디아씨.”
“네, 아나스타샤씨.”
“저는 이 계약을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저 미지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포기하면 기회를 잃고 나서는 후회하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몇 가지 당부드릴 말씀은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아나스타샤는 참고할 만한 다섯 가지 유의점을 지적했다.
첫 번째, 커버넌트 링보다는 일반 오브젝트를 계약 매개체로 채택하는 편이 낫다. 물론 카이젤은 틀림없이 자신 쪽 매개체를 링으로 제작할 테니 루디아가 링을 받지 않으면 계약 위반의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루디아가 링을 소유했을 때 발생할 ‘유혹’을 더 큰 위험성 요인으로 평가했다. 이 점은 이미 루디아도 동일하게 결정했기 때문에 별문제 없이 동의했다.
“두 번째 문제점은 커버넌트 체결로 인해 우리 측에 요구될 조항이 무엇이냐입니다. 원래대로라면 계약이란 양쪽이 내거는 게 있어야 정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국가가 최초로 형성되었을 때 이방 민족과의 계약을 금하셨죠.”
이것은 속 좁은 요구가 아니었다. 고대 시절 이방과의 계약은 단순한 국제 조약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만약 이방 민족과 계약을 맺는다면 그들의 악한 풍습에 동참하거나 우상 신을 같이 섬겨야 하는, 최소한 묵인과 인정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어떠한 형태로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자들을 옭아매어 제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상항은 피해야 하리라.
루디아가 생각하기에도 그런 일을 겪는 것은 사절이었다. 메시아닉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서 불의에 타협하도록 강요하는 언약에 묶여서는 곤란했다.
“천만다행으로 이런 경우에는 유대인들 측에서 내줘야 할 조건이 없습니다. 카이젤 대표를 이미 한 번 구해준 바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당신들은 절대 저자세로 나서서는 안됩니다. 일방적 조약 체결이 당신들의 권리임을 확실히 믿고 밀고 나가야 해요.”
이 같은 상황이 조성되었다는 점은 참으로 크나큰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 속임수만 개입되지 않는다면, 이번 계약은 일방적으로 카이젤이 유대인들에게 수혜를 베푸는 양식으로 체결될 것이다. 애초에 목숨을 빚진 것에 대해서 갚아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정작 더 중요한 부분은 세 번째 문제입니다. 루디아 씨와 유대인들이 무엇을 요구하느냐에 대한 문제이죠. 이거야말로 제 생각에는 최고의 난관일 것 같습니다. 저와 루디아 씨와 유대인 대표들이 깊게 상의해야겠지만, 저는 이 과정에서 신실한 자들이 혹 넘어질까 염려됩니다.”
무려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이자 최고의 권력자가 선뜻 모든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나선 격이다. 카이젤의 위세면 램프의 지니보다 더 엄청나면 엄청났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칫하면 유대인들이 탐욕에 휘말릴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제아무리 예슈아를 믿고 구원 받은 메시아닉 유대인들이라지만 원죄의 본성에 깃든 탐욕을 완벽히 억누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철저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받아 마땅한 것 이외는 욕심내어서도 요구해서도 안 됩니다. 탐욕 자체도 문제지만, 두고두고 여러분이 그 사람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될 미래가 저로서는 심히 염려됩니다.”
아나스타샤는 루디아에서 윤혁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려 힐긋 눈짓으로 의미심장한 신호를 보냈다. 그 의미를 알아차린 윤혁은 얼굴이 굳었다. 인류연합 수장이 어쩌면 최후의 적그리스도가 될지도 모르니 자칫 정이나 인연으로 얽혔다가 훗날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의 뜻이었다. 비록 아직은 윤혁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장래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경고였다.
“알겠어요 아나스나샤씨. 그러면 저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요?”
루디아는 참모의 조언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겸손한 태도로 되물었다.
“그 부분은 여러분들의 소원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제가 감히 간섭할 문제가 아니에요. 게다가 루디아씨 혼자서만 독단적으로 결정할 일도 아니죠. 하지만 굳이 조언을 드리자면…….”
아나스타샤는 뭔가를 골똘히 계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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