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62회 아벨의 후예 Ch 10. 계약 성립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4.18 | 회차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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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식당 문이 열리면서 두 손님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강윤혁 씨.”
상냥한 어조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친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천재현 씨? 어서 오세요. 식사하러 오셨나요? 뭘로 준비해드릴까요?”
“고마워요. 메뉴는 볶음밥으로 부탁할게요.”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눈을 돌려보니 마침 재현 옆에는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또다른 청년이 서 있었다. 윤혁의 표정에 궁금증이 스쳐가자 기다렸다는 듯, 재현은 윤혁에게 그 청년을 소개해주었다.
“이쪽은 유지현군이에요. 지현아, 이쪽이 내가 말했던 강윤혁씨야.”
“안녕하세요, 유지현입니다.”
지현은 공손한 자세로 윤혁에게 인사했다. 윤혁은 그를 보고 지성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괜찮은 청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이는 자신보다 동생뻘로 보였는데 언뜻 느끼기에도 의젓함과 부드러운 인상, 그리고 생각이 깊어 보이는 눈이 꽤 호감을 주었다.
“저는 강윤혁입니다. 재현씨와 친하신 분인가보네요?”
“아, 저랑 같이 지구 교회를 출석하는데, 예배 중에 만났습니다.”
“우와! 그러면 지현씨도 예수님을 믿는 분인가요.”
“네, 한 사 년 전쯤에 우연히 전도지를 보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어요.”
“감사할 일이네요.”
지현은 윤혁에게 편하게 말을 터놓을 것을 요청했다. 윤혁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처음 만난 상대임에도 거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덕이었다. 아무래도 지구에 남은 그리스도인이 워낙 적다 보니 동질감이 생긴 모양이다. 만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셋은 한 번의 식사 자리만에 금세 친해졌다.
대화하는 와중에 윤혁은 이모저모의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현이가 유성운 회장님의 동생이라고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지현이 멋쩍게 헛기침을 하였다.
“사실 저랑 지현이는 지현이네 부모님 댁에서 처음 만났어요.”
재현이 어떤 사정과 인연이 있었는지 간략히 알려주었다.
“세상 참 신기하네요.”
지금 테이블에 모인 세 명에게는 우연이라 치부하기에는 오묘한 공통점이 여럿 있었다. 하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점, 다른 하나는 형제들 중에 초인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공통점은 모종의 동질감 비스무리한 감점을 불러일으켰다. 좋게 말하면 공감이고 나쁘게 말하면 동병상련이겠지.
“느낌이 좋네요. 좋은 인연이 될 것 같네요.”
“하하, 그런가?”
윤혁의 농담에 재현이 자연스레 웃으며 맞받아주었다.
지현은 그들 가운데 천천히 섞여들었다. 원래 그는 낯을 가리는 성격인지라 활발하게 먼저 다가가기는 어려웠다. 교회에서 재현을 만났을 때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용기가 솟구쳐 먼저 인사를 했었지만, 평상시의 그는 늘 조용했다. 물론 사람과의 친교에 아예 관심이 없지는 않았지만, 소극적이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현은 두 사람에게서 제법 좋은 인상을 받았기에 더 다가가고픈 마음이 들었다. 일단 같은 신자로서 마음을 나누며 교제하기에도 편했고 또한 도움을 주고받는 가운데 믿음의 활기를 증진하고 싶었다.
한편, 재현은 지현에게 윤혁이 겪었던 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윤혁과 동료들이 겪은 사건들, 나아가 그가 인류연합의 방해를 무릅쓰고 얼마나 멀리까지 선교 여행을 떠났는지도. 재현도 윤혁의 여행담은 크로스솔져들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탓에 자기 이야기처럼 생생히 들려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이런 중대한 일화들을 같이 공유하는 편이 지현 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쑥스러워서 일부러 감추려고 했던 윤혁은 손사래를 쳤다.
‘우와!’
반면, 지현은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는 윤혁에게 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랐다. 활약의 당사자로부터 생생한 모험담을 직접 듣고 싶었다. 어린 청년의 눈에는 선배의 활약이 참으로 멋있고 훌륭하게 느껴졌다. 하도 졸라대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윤혁은 1차 여행의 열다섯 개, 2차 여행의 스물아홉 개 하늘도시에서 감당했던 사역들과 그 과정에서 맞부딪힌 모험과 위기들을 들려주었다.
“존경스럽네요. 곤혹스럽고 힘겨운 시련들이었을 텐데.”
“나도 그때는 힘들었지만 그만큼 뒤따라온 감사와 보람이 컸지. 특히 마지막 여행지에 가서는 눈물이 날 뻔했더라. 여러 번 납치도 당하고 험한 꼴도 보았지만, 항상 기사회생으로 살아났었지. 지금 돌아보면 감사할 일뿐이야.”
지현으로서는 최종적인 승리의 결실이 감탄스러웠는데 의외로 윤혁은 그 부분에 관하여는 담담했다. 아무리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그 결실과 열매는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일까? 지현은 상대가 철저히 겸손이 몸에 밴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다른 한편, 재현은 윤혁 앞에서 지현에 관한 자랑도 늘여놓았다. 그가 지구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대학에 조기입학으로 들어가 수석을 놓치지 않은 이야기, 여러 분야의 올림피아드에서 수상을 거둔 이야기도. 워낙 초인들을 자주 만난 탓에 기준치가 높아진 윤혁이었지만, 어쨌건 크게 놀라며 칭찬해주었다.
‘태헌 선배만큼이나 똑똑한 친구였구나. 정말 대단하다.’
문득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태헌의 근황도 궁금해졌다. 선교 여행을 떠나기 몇 달 전에 보고는 통 못 봤던 터였다. 지금쯤이면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의사나 의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한 번쯤 얼굴을 봤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들었다.
‘그나저나 저 둘이 팀을 이루면 환상적이겠는걸?’
윤혁은 곰곰이 고민해보았다. 재현은 마음씨 착하고 상냥한 대신에 무시무시한 물리적 파워를 소유하였다. 지현은 다방면에 출중한 두뇌와 지식을 지녔으며 신중한 성격이다. 재현은 경영 실무 경험도 있고 전투 경험도 풍부하다. 지현은 법학도로서 윤리 의식에 특화되었고 공정한 판단력이 장점이다.
‘어라?’
바로 그 순간 윤혁의 머릿속에 몇 시간 전에 떠올린 엉뚱한 생각이 다시 스쳐 지나갔다. 그는 어처구니없어 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지현이 윤혁에게 무슨 고민이라도 있냐며 질문하였다. 곧 재현까지 질문에 가세하였다.
“음, 그게 말이지…….”
들킨 윤혁은 다 털어놓았다. 자신의 옛 동료인 리온이 조만간 종교개혁 운동을 위해 Upol 지역들로 파견될 예정임을. 또한 지난 선교 때의 경험으로 비추어보아 상당한 크나큰 위협과 핍박이 리온 앞에 기다리고 있음도 말해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마술을 남용하는 이단 종파에게 피살당할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우린 실제로 그런 경험도 자주 겪었거든요. 인류연합이 직접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그 지경이었는데, 지금처럼 교회가 만방에 공개된 시대에 저들이 일을 벌이면 얼마나 위험하겠어요.”
지현과 재현은 그들이 단순한 목회자로만 알았던 리온 마흐무드라는 사람에 대하여, 그의 진가와 진면목에 대하여 듣고는 한층 더 깊이 감탄했다. 가뜩이나 둘은 리온의 설교를 통해 온갖 권면과 영적 깨우침을 체험했던 참이었다. 하나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젊은 목사, 그런 그가 현장에서 주님을 위해 투신했던 우주 선교의 주역이었을 줄이야. 솟구치는 존경심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아하, 그러고 보니 지구 교회에서도 새롭게 우주로 나갈 사역팀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들었는데, 설마하니 그게 이런 목적이었을 줄이야……. 강윤혁씨가 아니었으면 그 중대함을 몰랐을 뻔했네요.”
재현은 잠시 깊이 고민하더니 조심스럽게 발언하였다.
“만약 제가 동참한다면 어떨까요?”
“네?”
“재현이형?”
윤혁과 지현이 깜짝 놀라 동시에 외쳤다. 하지만 재현의 어조에는 농담이라고는 전혀 깃들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재현은 이미 생사가 오고 가는 전장에서 수차례 이상 역전승을 이끌어낸 전사였기에 우주의 위험 요소들을 별로 무서워할 이유가 없었다.
“괜찮으시겠어요?”
윤혁이 염려 가득한 얼굴로 되물었다.
“현실적인 위험 요소들 때문에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저는 이미 물리적인 위협에는 익숙해요. 목사님은 취약하시죠. 그렇다면 제가 목사님 곁에서 보디가드로서 동역을 한다면 조금이라도 염려를 덜 수 있지 않을까요?”
확실히 솔깃한 제안이었다. 초인이라도 침략하지 않는 이상, 웬만해서는 천재현이라는 괴물급 유닛을 뚫고 리온을 공격하려는 간 큰 인간은 없을 것이다. 이종족이나 기계가 있기는 하나 그것들은 카이젤의 권능 때문에 인간에게 복종해야 하는 입장이다. 게다가 리온은 앞으로 사람이 많은 도심 지역을 위주로 다닐 테니 전략 병기와 맞설 이유도 없다.
기껏해야 힘으로 맞붙을 상대라면 초능력 부스러기나 주워서 설치는 광신도 집단이나 이단 교파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한 가지 염려되는 점은.”
“알아요, 제 폭주가 염려되시는 거죠?”
“네, 아무래도 재현 씨의 힘이 계속 안정적이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재현도 그 점은 납득하였다. 나름 용기를 냈건만 자신의 한계점이 걸림돌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금세 풀이 죽었다. 강아지가 꼬리를 내린 것마냥 푹 고개를 숙이고 시무룩해지는 재현을 보고 윤혁은 몹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 무조건 포기하진 말고 방도를 찾아볼까요?”
절충안으로 윤혁이 이렇게 제안했다. 재현의 표정이 아주 조금 밝아졌다. 그는 약간의 심사숙고 후 이내 한가지 해답을 찾아냈는지 눈을 반짝거렸다.
“아하, 이렇게 접근해보면 어떨까요?”
“어떤 식으로요?”
“찬영이가 저랑 가장 가까운 동료인 건 아시죠?”
“찬영이형이야 저도 잘 알죠.”
“그는 원래 저랑 상성이 좋아요. 같이 붙어있으면 서로의 힘을 더 잘 제어할 수 있거든요. 원래 유성운 회장님이 이능력을 설계할 때 두 사람의 힘이 짝이 되도록설계해놨거든요. 저는 텔레포트라서 공격이나 폭주 쪽에 가깝다면, 찬영이는 에너지를 상쇄시키는 쪽이잖아요.”
그런 원리였구나. 실마리가 조금씩 잡히자 기분이 상쾌해졌다.
“성운 형님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그럼 저도 같이하면 어떨까요?”
이번에는 별안 간 지현이 개입했다. 두 사람은 지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저도 윤혁이형을 보고 반성을 했어요. 늘 편안한 환경에 안주하느라 정작 중요한 가치를 위해 희생적으로 싸워본 적은 없었죠. 기회만 주신다면 저도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보고 싶어요. 뭐든 맡기시면 열심히 해볼게요.”
나름 겸손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지현이 지닌 달란트의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가 동참한다면 여러모로 유용한 동역자가 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아직은 큰일을 맡을 만큼 정신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성숙을 이룩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마냥 그걸 이유로 포기할 필요도 없었다. 부딪히면서 성장할 수도 있으니까.
한편 지현에게는 다른 의도도 하나 있었다. 자기 자신의 신앙적 성숙에 겸하여 성운으로 하여금 반성하도록 이끌 생각도 있었다. 그는 큰형이 재현을 상대로 저지른 인체실험 행위에 대해서 상당한 의협심과 분개를 품고 있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큰형이라지만 그런 공의에 어긋난 행동을 아무런 책임도 없이 저지르는 꼴은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아무리 재현이형을 살리기 위해서였다지만, 거의 도박에 가까운 방법으로 살려놓고는 이상 물리 현상을 치료해주지도 않고 도리어 이능력으로 개화시켰어. 그것도 12년 간이나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 실험해서.’
윤혁이 당당히 자기 이복형에게 경종을 울렸던 것처럼 자신도 가족들로 하여금 의로운 기준을 깨닫게 하고 싶었다. 아울러 세상과 선을 그음으로써 자신이 그리스도의 편에 서 있음을 선포하고 싶었다. 매번 이도저도 아닌 채로 끌려다니다간 큰형의 그림자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번에는 자신이 그의 예상반경에서 벗어나자.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또한 성운을 향해 적절한 복수가 되리라.
“음, 그런데 이건 제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에요.”
윤혁은 혈기로 들뜬 두 사람에게 냉정하게 현실을 들려주었다.
“동료를 선택할 사람은 리온입니다. 천재현씨, 그리고 유지현. 두 사람은 리온에게 인정받아야 해요. 그가 당신들이 적합한 일꾼인지 판단할 것입니다. 그는 엄격할 거예요. 결코 세상의 기준으로 외적 요소만 보고 판단하지 않을 거예요.”
윤혁은 잘 알았다. 리온은 예수님과 동일한 기준으로 자기 동료를 선택하리라는 점을.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주님께서 선언하신 이 기준에 부합한 삶을 살지 않는 자는 주님의 길을 걸을 수 없다. 리온은 분명히 이 말씀을 거울삼아 자신과 타인 모두를 공정하게, 냉혹하게 평가할 것이다.
‘어쩌면 부자 관원 청년처럼 일언지하에 거절당할지도 모르지.’
더욱이 재현과 지현은 둘 다 집안이 부유하다. 더욱이 둘에게는 극도로 부유한 형제가 있다. 유성운과 천수현은 무려 인류를 지배하는 백만 명의 괴물급 기득권층에 속하며, 권력의 집산지인 U-society의 일원이다. 즉 눈앞의 두 사람은 다이아몬드 수저라는 뜻. 오히려 이 점은 그들에게 약점으로 작동할 것이다. 주님을 따르려면 재물과 안락에 대한 미련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니까.
‘잘 할 수 있으려나?’
그래도 윤혁은 내심 잘 풀렸으면 하는 바람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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