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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73회 아벨의 후예 Ch 12. 실험체 (5)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5.19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그는 다시 한 번 동생을 은은한 목소리로 책망하였다.

   “너는 왜 모순적인 판단을 하는지 모르겠군.”

   계속해서 카이젤의 칼 같은 무서운 질문들이 윤혁을 찔렀다.

   “……모순요?”

   “내가 원래 마땅히 죽었어야 할 사람들에게 소생과 회춘의 기회를 주자 나더러는 그들을 왜 끝까지 책임지지 않느냐고 따졌지. 그러나 정작 내가 모든 사람에게 불로불사와 완전한 적응력을 심어주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불쾌함을 표했다. 이래도 싫고 저래도 싫다는 건가?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뜻이지? 그게 너희 연약한 자들의 모순투성이인 실체다.”

   너희라는 카테고리가 어떤 집단을 의미하는지는 뻔했다.

   “너희는 인간의 자율적인 노력을 전면 부정하기 일색이지. 나로서는 인권을 보호하는 한도 내에서 생명공학적인 발전을 추구했건만, 너희는 신의 뜻으로부터 어긋나는 일이니 뭐니 하며 공염불에 가까운 일침을 가하기에 급급하지. 참 딱하군.”

   “형…….”

   “그렇게 허망하게 썩어 문드러지는 것이 진정 자연의 순리인가? 정작 본인들도 영생을 추구하는 걸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 듯한데 말이야.”

   당장 윤혁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반박의 단서는 ‘부작용’이라는 단어였다. 인간이 하나님 없이 자체적인 노력으로 유토피아를 이룩하려 할 때면 항상 부작용이 발생했다. 어쩌면 이 논리라면 저 무서운 카이젤의 말을 부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대를 만만히 본 판단이었다. 이내 그 생각도 훤히 읽혔다.

   “이미 임상시험은 수천 단계 이상 진행되었다. 우주 인류 2단계 프로젝트는 이미 상당량 진척되었다. 2등 시민의 수천 배에 달하는 수효의 하데스챔버 속 노인들이 완벽한 청년의 육체로 회춘하는 데 성공했다.

   또 그렇게 회춘한 이들을 타임필드가 작동하는 콜로니 시설에서 수백 년 이상 양성한 결과, 피코머신이 영속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증하였다. 지금은 이미 무한대에 가까운 검증 데이터가 쌓였고 기술도 충분히 발전했지.”

   피코머신은 윤혁의 예상을 심히 뛰어넘는 기술이었다. 어설픈 논증으로 우회하여 반박하기란 불가능했다. 그것은 생물학적인 진보와 물리학적 진보 두 가지를 모두 유발하도록 상정된 작품으로 허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생물학적으로 피코머신은 인간과 인류를 세 단계를 거쳐 발전시키도록 설계된 물품이었다. 일단계는 통상 환경에서의 불로불사 획득, 이단계는 범환경에서의 불로불사 획득, 삼단계는 열, 압력, 중력, 절단을 비롯한 모든 물리작용마저 극복하는 불사 능력 획득이었다. 말 그대로 그 어떤 데미지도 이겨낼 완벽한 불사신을 완성할 것을 염두에 둔 계획이었다.

   아울러 인간의 물리적인 차원의 승천도 피코머신 속에 내장된 목표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그 요소중 첫째는 모든 과학 기술에 대한 절대적 상성 우위 속성, 둘째는 모든 자연적 물리작용에 대한 절대 상성 우위 속성이었다. 말하자면 물질계 속 모든 요소가 인간의 의지대로, 인간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편파적인 재구축 계획이었다.

   나아가 피코머신은 앞으로 더욱더 진화하여 침투 병기가 될 예정이었다. 즉 기계와 이종족을 막론하고 그 육체에 침투하여 생사와 메커니즘을 제어할 지배 능력이 될 것이다. 그 어떤 단단한 장갑도 해체해 버리고, 그 어떤 화력도 견뎌낼, 그 어떤 높은 차원의 실체도 침식할 절대병기가 그것의 장래 모습이었다.

   이러한 능력들을 총망라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전 경우의 수의 질병과 오류와 자연적 불화를 원천적으로 정복하여 존재치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피코머신이 바라보는 궁극의 단계이자 그것이 발명된 목적이었다.

   실제로 카이젤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해 피코머신을 지난 수년간 고도로 발전시켰다.새로운 기종이 끝없이 개량되었고 다양한 기능과 형태로 모델들이 분화되었다. 온갖 신기술이 첨가되었고 성능은 비상식적인 수준까지 강화되었다.

   그의 꿈들은 무리한 허상이 아니었다. 현재는 생물학적으로는 ‘범 환경적 불로불사’, 물리학적으로는 ‘모든 기술에 대한 절대 상성 우위’의 단계까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이 단계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임상시험과 시행착오가 요구되었다. 어떻게든 그것을 우회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현실적인 여건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 그 고비도 어느 정도 넘겼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금했었던가?”

   형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말에 윤혁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왜 주님은 인류 타락 후 에덴동산에 있던 생명나무 열매를 금하셨을까?’

   지금껏 선악과에 대해서만 생각하느라 생명나무에 대해서는 미처 충분히 사색해보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하여 원죄로 타락한 인간들에게 생명나무 열매가 금지되었을까? 그 근거는 무엇인가? 먹으면 영생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영생을 누리지 못하게끔 금하신 것일까? 죄에 대한 징계의 의미로써? 하지만 윤혁이 아닌 하나님은 단순히 징벌의 마음만 지닌 분은 아니었다.

   ‘만일 인류가 그것을 먹어버렸다면?’

   혹 생명나무 열매를 먹는 것이 도리어 더욱 비참하고 비가역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것을 아셨기에 그렇게 정하셨던 것은 아닐까? 인간의 무엄함을 벌하시려는 의도가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사람들이 더욱 비참한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지켜주시려는 의도가 그분의 마음속에 있지 않았을까?

   ‘만약 타락한 상태에서 육신적 불사를 획득하게 된다면, 인간은 타락한 천사들처럼 될까? 구제의 가능성이 없는 존재로 확정되어 나락으로 떨어질까?’

   명확한 성경적 근거가 없는 비약적인 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 충분한 일리는 있는 추론이었다. 불법적으로 육신적 불사를 획득한다고 해서 영혼이 지옥에서 구원 받을 일말의 가능성마저 소거될지는 윤혁도 장담할 수 없었다. 성경 기록은 그렇게까지 명료하게 단언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간이 육체적 죽음을 모른다면……, 영적 죽음이나 영원한 심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가 없었겠지.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 분명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게 주어진 ‘몸의 죽음’이라는 현실, 그 눈에 보이는 현실로서의 형벌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더욱 큰 형벌로부터 도망칠 일말의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생은 짧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절대적인 운명에 대해 진지하게 상고할 수 있었다. 그렇게 눈을 감은 채 벽을 더듬듯 영원을 생각하던 중 우연히 하나님이라는 존재에까지 생각이 다다른 이들도 있었으리라.

   ‘몸이 죽지 않으면 그런 기회를 영영 상실하는 것일까?’

   아마도 죽음이라는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겠지.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더욱더.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에게는 이런 말을 해도 전혀 와닿지 않을 것임은 잘 안다. 하지만 죽음은 그 자체만으로는 고난이요 악이지만, 한편으로는 더 큰 악을 회피하기 위한 위장된 축복이기도 하리라. 이 사실만은 분명했다.

   이럴진대, 인위적으로 불로불사를 이룩하려는 과학 기술은 대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단순히 순리에 어긋나니 나쁘다는 식으로 초등학생 수준의 답변을 내는 것은 비웃음거리가 될 지름길이다.

   또 그 기술로 인해 미래에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식의 전형적인 답변도 불완전한 논리에 불과하다. 카이젤은 과도하리만큼 신중한 사람이다. 그리고 유능하다. 그는 이미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불확실성을 배제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완벽한 불사신으로서의 인류, 그 미래는 허수가 아니다. 그러므로 윤혁은 그런 미래를 상정한 채 오로지 불로불사라는 현상 자체에서만 허점을 찾아 반박해야 한다.

   ‘생명을 살려낼 기술이 있는데 사용하지 않는 게 더 악할까, 아니면 인류가 죽음에 대해 숙고할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 더 악한 일일까.’

   명쾌한 답이 나올 리 없었다. 윤리적, 신학적 딜레마로 머리가 터질 듯 했다. 윤혁은 형에게 어떤 대답을 주어야 할지 갈등되어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무책임하게 비판만 던져놓는 위선자가 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때 불현듯, 최근 아나스타샤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두 사람은 그때 나름 중대하고 심각한 주제를 놓고 토론을 나눴었다. 토론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아나스타샤가 윤혁을 가르쳐준 쪽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주제는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짐승의 표’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것이 상징이라는 해석도 있고 실체가 존재한다는 해석도 있어요.”

   아나스타샤는 뚜렷하지 않은 입장을 내비쳤다.

   “아직은 성취의 방식이 불투명한 모양이네요.”

   “네, 만약에 물리적인 짐승의 표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선 강제적인 이식이 불가능한 것이여야만 해요. 만일 강제로 몸에 심어 넣을 수 있다면 성경 말씀과 모순되기 때문이예요.”

분명 계시록에 따르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성도들은 누구든 짐승의 표를 이식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신자를 연행하여 강제로 심어 넣을 수 있는 류의 물체라면 그 명제에 어긋난다.

   “게다가 그 표를 받으면 구원의 가능성이 원천 봉쇄된다던데, 그 말은 성령님마저 차단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어요. 그런 엄청난 영적 현상을 현실화할 물리적 요소가 지상에 과연 존재키나 할까요? 아니,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일개 물리적 물질이 성령의 권능에 대항할 방도는 거의 없죠.”

   “흠, 그래서 짐승의 표가 실체보다는 상징적 의미라는 해석이 나온 거군요. 말하자면 짐승의 시스템을 경배하겠다는 자발적 의지라던가. 무리한 해석을 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안전할지도요.”

   윤혁은 솔직히 이쪽이건 저쪽이건 크게 개의치 않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아나스타샤는 생각보다 더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다른 가능성도 고려하였다.

   “상징으로만 국한하는 해석이 타당할까요? 이 또한 확실치는 않아요. 현시대 인류의 기술력이라면 사람의 정신, 운명, 생명을 조작할 역량은 충분하거든요. 아마도 강윤혁씨가 이 방면은 겪어봐서 더 잘 아시겠죠.”

   “음, 맞아요.”

   당장 떠오르는 후보만 해도 여럿이었다. 우주 인류 속의 일곱 세트의 표식, 마인드컨트롤 기술, 시스템으로써 정립된 경제 시스템, 인공적 초능력 등. 다만, 그 어느 것도 현재까지는 짐승의 표가 아님이 분명했다. 일단 한 영혼의 구원과 회심을 원천봉쇄하지는 못했다. 그 모든 기술의 영향을 받은 집단 가운데도 예수님을 믿고 되살아난 자가 여럿 있었다. 심지어 지난 여행에서 증명되었듯, 우주 인류의 표식마저도 성령님의 회개를 유발하는 능력 앞에서는 무력했다.

   “아나스타샤씨의 개인적은 의견은 어떤가요?”

   “물리적인 짐승의 표, 즉 문자 그대로 구원을 취소하고 구원을 원천봉쇄하는 효력의 실체가 만들어지려면 최소한 현존하는 전 기술이 접목되어 융합되지 않는 한 불가능이겠죠. 아니, 정정할게요. 설령 지금보다 몇천 년은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의 기술만으로는 부족할 거예요.”

   “그러면 뭐가 더 필요하죠?”

   “영적 존재의 권능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의 핵심 권능이죠. 물론 그걸로도 부족해요. 사탄은 주님 앞에서 먼지만도 못하니까요. 인간의 기술과 마왕의 힘, 그 모든 요소가 하나로 융합되어 제곱되어도 될까 말까이겠군요.”

   이 주제에 관해서는 윤혁도 나름대로 고민을 오래 해왔지만 해석을 또 듣고보니 더 아리송하게만 느껴졌다. 역시 최후 환란기를 직접 살아보기 전에는 신비의 영역이라고 치부하고 덮어둬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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