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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74회 아벨의 후예 Ch 12. 실험체 (6)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5.16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논의를 이어가던 아나스타샤는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을 지적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이 문제를 논하기 전에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를 잊어서는 안되겠죠.”

   “전제라면요?”

   “짐승의 표라는 개념을 논하려면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표가 있기 전에 우선은 ‘짐승’이 존재해야 해요. 그 존재가 등장하지도 않았다면 제아무리 기술력이 발달했다고 해도 짐승의 표도 없어요. 훗날 도래할 짐승의 표를 만드는 데 쓰일 프로토타입이나 재료는 존재할 수 있어도.”

   듣고 보니 그런대로 만족할만한 대답이었다. 돌이켜보면 지금껏 짐승의 후보로써 거론되었던 자들, 곧 초인의 왕인 1세대의 위버멘쉬 칼튼이나 2세대의 이벨리아를 보면 분명 역사에 적그리스도를 능가할 발자취를 남기긴 했으나, 그렇다고 짐승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현시대로 치면 카이젤이 그나마 유력 후보이지만, 그 역시도 마지막 모습이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저로서는 형의 타락을 예방하는 일이 시급하겠네요.”

   “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짐승의 표의 재료나 프로토타입으로 쓰일 기술들을 눈여겨보는 일도 필요해요. 될 수 있다면 예방하면 더 좋고요. 표가 정말 상징일지 실체일지는 몰라도 미리 대비해둬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요.”

   물론 아나스타샤도 그런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건 결코 아니었다.

   “결국, 언젠가 그 표가 출현하는 운명은 못 막겠지만, 각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은 최선을 다해서 자기 시대와 맞서 싸울 의무가 있어요. 적어도 자기 세대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만큼은 책임을 져야하죠.”

   이어서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은사였던 에드레이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현재 사용되는 경제시스템, 그 최초 아이디어는 초대째 위버멘쉬인 칼튼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칼튼은 지금같이 만인이 자유로이 이용하는 생명 유착형이 아니라 시민권 기반의 시스템을 고안했었다. 그것을 반전시켜 생명 유착형으로 교정해준 사람이 에드레이였다.

   그는 마냥 기술 그 자체를 두려워하여 과학과 담을 쌓고 지내지 않았다. 도리어 자기 소매를 걷어부치고 자기 발로 직접 뛰어들어 그 흐름을 바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그 행동의 결실은 마냥 무의미하지 않았다.

   “만약 경제 시스템이 초대째 위버멘쉬의 기존 구상대로 흘러갔다면 어떤 역사로 흘러갔을까요?”

   “사람들이 경제 거래를 하는 것 정도는 정부가 쉽게 제어할 수 있었겠죠.”

   마치 짐승의 표처럼.

   “생각만으로도 섬뜩하네요.”

   하지만 지금은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통째로 경제 시스템을 갈아엎지 않는 한에야 만인이 경제에 자유로이 참여하는 현실을 뒤바꾸진 못한다. 아마 송두리째 갈아엎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교체에 드는 사회적 비용도 상당하겠고 무엇보다 현 시스템이 너무도 편리하니까.

   생명을 소유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하자. 지극히 성경적인 사고관으로부터 도출된 에드레이의 이 아이디어는 결과적으로 미래의 흐름을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

   “강윤혁씨도 비슷한 일을 해낼 수 있어요.”

   아나스타샤는 윤혁을 응원해주었다.

   “제가요? 하지만 저는 어르신처럼 영리하지 못한걸요.”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거예요.”

   아나스타샤는 그때 이런 아리송한 말을 남기며 궁금증을 자아냈었다.

 

 

 

 

 

 

 

 

 

*

 

 

 

 

   회상을 마치고 생각을 정리한 윤혁. 잠잠히 기다려주던 형이 먼저 손을 건네었다. 카이젤은 주저앉아 있던 동생을 일으켜 세워줬다. 냉담하게 몰긴 했지만 내심 거칠게 대한 건 아닌지 그로서도 걱정하던 차였다. 다치지 않았는지 눈으로 확인한 그는 이내 안도하였다.

   “그래, 네 대답은 뭐지?”

   “…….”

   짧은 시간 수많은 고민이 교차하였다. 윤혁은 과연 어떤 선택을 취하는 것이 올바를지를 숙고하고 또 숙고하였다. 어떤 대답이 하나님의 명령에 가장 부합하는 것일까? 설령 답을 내린다고 해도 그게 진정한 정답일지 확신할 길이 있을까. 현재로서는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마냥 우물쭈물 멈춰 있을 수도 없었다. 용기를 내어 그는 깊게 고민한 결과물을 꺼냈다.

   “만일……, 저 또한 희생을 감수하겠다면 받아주실 생각이신가요?”

   “희생?”

   의문감에 카이젤의 눈썹이 불편한 듯 일그러졌다.

   “2단계 우주 인류 프로젝트……, 그게 진행된다면 틀림없이 많은 희생자가 나오겠죠? 그러던 말건 형은 언젠가 궁극의 불사신 체계를 완성할 테고요. 인류를 시공간적, 환경적 제약에서 해방한다는 명목으로요.”

   윤혁은 일목요연하게 자신이 정리해본 바를 말했다.

   “그 단계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희생은 불가피할 겁니다. 수억 개의 은하, 거기다 은하 하나당 최소 수백만의 행성이 테라포밍 될 테니 거기서 나올 희생자의 수는 상상을 초월하겠죠? 거기 심겨질 이들은 대부분 이미 천수를 다했던 우주 인류 출신일테니 죽음을 막아야 할 명분도 불분명하겠고요.”

   차분하게 현실을 이해하는 동생이 태도가 영 심상치 않았다.

   “그동안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제가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겠죠. 여전히 순리를 이유로 그들을 죽음에 내버려둬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어요.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살려낼 의무를 형에게 부과할 생각도 없고요.”

   도덕관의 기초가 다른 이에게 자신의 기준을 요구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했다.

   “너…….”

   “그러니까 저부터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려고요. 그 사람들을 살려내는 데 보탬이 되도록요.”

   윤혁은 자기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툭툭 쳤다.

   “필요하시면 실험체로 사용하세요.”

   “뭐라고?”

   “피코머신 기술의 최초 실험체는 형 본인이었죠. 그래서 그 기술은 형의 육체에 가장 최적화되어있죠. 하지만 가장 우수한 초인의 육체와 일반인의 몸 사이에는 과학적으로도 상당한 간극이 있잖아요. 당장 모든 우주 인류를 불사신으로 만들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겠죠? 일반화 적용을 위해 넘을 산이 많을테니까요.”

   확실히 그 말은 옳았다. 현재의 카이젤은 이미 ‘물리작용을 넘어선 불사’에 도달했다. 지금 그의 몸에 융화된 피코머신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자가 보충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체적인 진화도 일으킨다. 그와 동시에 본체와 불협화음을 절대 일으키지 않는다. 이미 분자 레벨에서의 완벽한 융화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카이젤의 신체를 구성하는 원소 또한 이미 하나하나가 피코머신의 속성을 답습하여 내재화한 상태였다. 이제 피코머신과 그의 신체는 서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물아일체의 상태였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는 데는 이터널바이탈이 크게 도움을 주었다.

반면에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당장 일반인에게는 형의 경지의 반만큼도 적용하지 못할 테죠.”

   “하려는 말의 저의가 뭐지?”

   “저는 형과 유전적인 공통분모가 있잖아요. 그리고 마침 고맙게도 초인의 신체를 쇼유하지 않은, 없는 평범한 일반인이고요. 미싱링크로 사용하기에는 최적이죠. 그러니 저를 활용한다면 사람들을 살리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죠?”

   잠깐의 정적 후 다시금 낮고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순수한 네 아이디어는 아니군.”

   “…….”

   “알레프 어르신의 방식인가?”

   “…….”

   어딘가 모르게 날이 선 듯한 냉철한 책망과 취조의 어조.

   “너를 도와준 책사가 있었겠군. 그자는 어떤 사람이지?”

   진실에 근접한 감에 윤혁은 잠시 멈칫하였다. 섬뜩할 정도로 눈치 하나는 빠르구나. 그러나 윤혁은 묵묵부답으로 응수했다. 카이젤은 침묵하는 동생의 어깨를 터뜨릴 듯 센 악력으로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통증이 엄습하였다.

   “크윽!”

   “네 말은 분명 옳다. 너야 누군가의 조언으로 상상하던 중 대충 넘겨짚었겠지만, 확실히 피코머신의 표적 대상을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일반화시키려면 너만 한 좋은 중간 단계 실험체는 없지.”

   사실 윤혁도 알지 못하는 형제 사이에는 연접은 제법 많았다. 유전적인 공통점이 전부가 아니었다. 둘 사이에는 해부학적 신체 부위와 관련된 기이한 연접이 있었다. 또한 커버넌트를 형성했으므로 혼의 차원에서도 연결고리가 있다. 심지어 두 형제의 영 또한 제법 인접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영의 연결성은 형에게 있어서 고통으로 작용했다. 차원을 초월한 인식 능력을 얻은 이후로 카이젤은 연결 탓인지 동생의 내부에 임재한 초자연적 기운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윤혁은 실험체로 쓰기에 장점이 수두룩했다. 허나.

   “그런데 괘씸하군……, 나더러 가족을 실험체로 사용하라고?”

   그는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며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요? 그들과 저는 존엄성이 다른가요?”

   “…….”

   “여럿을 괴롭힐 바에야 차라리 저 혼자 희생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마침 잘 됐다. 자신이 괴로움으로써 형이 마음의 찔림과 징책을 받게 된다면 이 또한 카이젤에게는 훈계가 될테니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너는 유독 자기 몸을 아까지 않았지.”

   “죄송해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 결정을 바꿀 수 없어요.”

   화가 났는지 카이젤은 신경질적으로 손을 놓았다. 윤혁은 욱씬거리는 자신의 어깨를 살살 어루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형은 동생의 표정에서 짙은 결의를 발견하고는 몹시 당황했다. 복수? 그래, 복수도 하필 저 아이다운 방식이구나. 자신으로 하여금 자신의 기준이 잘못되었음을 일깨워주는 매서운 항변. 자신을 아는 동생으로서는 지혜로운 선택이었을테지.

   “넌 특별하니 함부로 다룰 수 없다. 아니, 그러기를 내가 원치 않는다.”

   “…….”

   “하지만 정 원한다면 소원을 들어주지. 대신 후회는 하지 말아라.”

   후회가 전혀 없을 수 있을까? 그럴 리가. 마음속에서는 지금 이 순간도 후회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과 내적 갈등이 솟구치고 있었다. 일단 길을 선택하기는 했다만, 과연 좋은 결론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미래를 알지 못하는 한 인간으로서 불안했다. 더욱이 주님께서도 명료하게 옳고 그름을 알려주시지 않고 침묵하신 사항이기에 영적으로도 선악을 단정짓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어.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모든 이슈에 대해서 일일이 강제적인 명령을 내리시지 않으니까. 자유의지를 주셨으니 허락되는 한도 내에서 쓰는 수밖에.’

   카이젤도 깊이 고민했다.

   ‘잔혹한 결정이군.’

   제 동생의 몸을 이용한다면 ‘범 환경적 불사신’이라는 생물학적 목표와 ‘기술에 대한 절대 상성 우위’라는 물리학적 목표에 좀 더 쉽고 빠르게 도달하리라. 피해자의 고통도 많이 줄일 수 있고 시행착오도 없앨 수 있다. 아마 10년 내에는 그 목표치가 인간계 전체에서 이뤄지겠지. 어쩌면 그보다 빠를 수도 있고.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아이가 겪어야 할 고초의 연속을 생각하려니 안에서부터 이유 모를 억울함과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접근해야 최대한 건설적인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동시에 아이의 안전도 보장할 수 있을까. 여러 시뮬레이션을 가동한 끝에 그가 한 답을 생각해냈다.

   ‘나의 일부를 넘겨주는 방법. 그것 밖에 없으려나.’

   정말 이 아이디어가 좋을지 궁리에 빠진 그는 잠시 길게 사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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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티격태격하긴 해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끈끈한 운명(?)으로 진하게 엮인 형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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