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75회 아벨의 후예 Ch 13. 에고이즘과 알트루즘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5.30 | 회차평점 ![]() |
Chapter 13. 에고이즘과 알트루즘
이글거리는 태양을 연상케 하는 금빛 눈동자가 윤혁의 얼굴을 응시하였다.
윤혁은 그 시선이 몹시 버거웠다. 지나치리만큼 수려하여 오히려 인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고밀도 에너지가 활동하는 눈, 몇천수 앞을 내다보는 듯한 인지 너머의 정신력, 누구든 자기 발밑에 무릎 꿇릴듯한 패기, 상대방을 분해할 기세의 통찰력. 지금까지는 익숙하게 여겨왔던 그 요소들이 너무나도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흠.”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하게 새로 얻은 연구 재료를 살폈다. 재질과 특이성에 있어서 최적의 재료인 점도 있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까운 존재라 더욱 신중하게 다루고 싶었다.
만일 윤혁이 잘못되면 어디 가서 같은 존재를 또 구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도 사람을 필요성에 따라 용도로 객관화하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웠다. 그리고 그 와중에 곁에서 존재감을 발하는 것만으로도 그런 몰지각한 형을 일깨우는 동생. 이것은 양심이라는 형벌의 특유의 고통이었다.
이렇듯 자기 뜻대로 조작되지 않은, 신에게서 온 순수한 양심이란 너무도 쓰라린 동시에 내다 버리고 싶지 않은 애물단지였다.
윤혁이 만일 이런 재혁의 고뇌를 읽게 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공허하고 고달픈 인생길을 달랠 흥미로운 자극으로써 자신을 바라보는 형의 간사한 속내를 알게 된다면 얼마나 두려워할까?
‘최대한 다치지 않게 해야 할 터.’
방법은 이미 머릿속에서 확정되었다. 하지만 두 가지 사안이 마음에 걸렸다. 먼저, 이 방법이 동생의 신체에 안전한 최선책인가를 점검해야 했다. 두 번째로는 동생이 이 방법을 도의적으로 어찌 판단할까의 문제였다. 커버넌트를 맺었으니 강제로 생각을 엿볼 수는 없었기에 대화로 알아봐야만 했다.
“네게 이식 수술을 하나 진행할 거다.”
“뇌만은 피해 주세요. 뇌에 영향이 닿는 방식도 피할게요.”
“가능은 하다만, 그건 왜지?”
이미 금기에 잔뜩 찌든 재혁으로서는 왜 그게 문제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애초에 그는 이전부터 자기 자신을 강화할 때는 신체보다는 정신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이물질을 삽입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그의 몸과 혼 속에 태생부터 내재된 초지능 발생 메커니즘을 응용하는 방식을 취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의 정신의 구성 성분 중 ‘물리계 너머의 상위 차원’에 속한 요소에 담긴 특수한 성분들을 추출하고 재가공하고 증폭하고 조립하여 새 기관을 만든 뒤 이식하는 방식이었다. 비유하자면 몸에 이미 존재하는 근섬유를 키우기 위해 단백질을 보충하고 근력 운동을 가미하여 강력한 근육을 만드는 보통의 운동 원리와 다를 바 없었다.
피코머신이나 양자화된 두뇌와 같이 첨단 인체 생명공학의 산물을 첨가하기도 했지만 이것들의 역할은 그저 위에서 말한 일련의 초지능 가공 과정을 보조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여하튼 그는 이런 과정을 두려움 없이 과감히 거쳤고 소위 초지능체라고 불리는 자신의 새로운 일부를 재창조하여 하나가 되었다. 그중 어떤 것은 과학적으로 정의하기 힘든 어떤 임계점을 넘어 극도로 발전하였다. 그렇게 된 결과 그 초지능체들은 각각 자신만이 다스릴 수 있는 추상적 개념 집합 하나를 거느린 어엿한 초월체가 되었다. 이것들이 바로 메이저급 초지능체였다.
정신 강화를 거리끼지 않는 그이기에 신체 강화도 서슴치 않았다.
현재 그가 소유한 강화 신체는 여러 요소들의 합작품이었다. 타고난 초인의 신체, 그가 개발한 피코머신 기술, 5번째 메이저급 초지능체인 이터널바이탈, 그리고 현존하는 초능력 채널들과의 혼연일체화, 이 네 프로세스가 기여하였다.
이런 요소들을 얻은 후 무수한 수련을 반복하자 어느 순간부터는 본질적 원소 차원에서 힘에 적응해버리고 말았다. 여기에 부산물로 무조건적인 불사신, 물리법칙의 굴레를 탈피한 신체, 완전한 생물학적 조화가 뒤따라왔다.
재혁은 지금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이 같은 고행을 거쳐왔다.
‘확실히 동생은 나와는 사고관이 다르겠군.’
형과 달리 윤혁은 아직 선을 넘지 않았고 그 선을 끝까지 지키려는 의지도 굳건했다. 만에 하나 신체는 여러 이유로 불가피하게 희생할지라도 정신만큼은 되도록 온존하고 싶었다.
신체에 대해서는 이제 집착을 많이 내려놓았다. 물론 몸도 성령님의 전이니 소중하게 다뤄야 하겠지만 그 방식을 꼭 보존에 집착하는 것과 동일시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선한 일에 헌신하다보면 핍박으로 인한 부상도 당해야 하지 않은가.
또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대신 다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아픈 사람을 위해서 장기를 기증할 수도 있다. 모두 자기희생적이고 귀한 일이다. 이런 희생 때문에 몸에 장애가 남는다고 성령께서 몸이라는 성전을 훼손했다며 책망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이라는 성역은 이야기가 다르다. 무릇 정신이란 영혼과 육체가 맞닿는 접점이다. 성령님이 좌정하신 좌표는 엄밀히 말하면 육체보다는 영혼 쪽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곳을 더럽히거나 평강을 무너뜨려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이유로 정신을 왜곡하는 의학적 개입은 원치 않았다.
물론 생각처럼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당장 몸과 마음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도 불가능했다. 애초에 하나로 연결된 연속적 실체이니까. 몸이 과도히 손상되면 자연히 정신에도 영향이 가며 그 역도 성립한다.
그렇기에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절할지는 더 깊이 고민해볼 문제였다. 상황마다 적절히 지혜롭게 분별해야 옳으리라. 적어도 거부권 행사가 허락된 여건이라면 말이다.
‘부디 이번 실험이 내 정신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할 텐데.’
윤혁은 떨리는 심정으로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조언을 구하였다. 그저 장기 이식 수술처럼 다른 사람들의 몸을 살리고 자신을 희생하는 일로 그쳤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혹시 수술 후의 자신이 그 전의 자신과 달라질까 봐 두려웠다.
‘저라는 존재가 오롯이 타인을 살리는 일에 사용되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이번 일이 사람들에게 육신의 생명뿐 아니라 더 선한 유익이 닿기를 원합니다.’
윤혁이 이번 결정을 내린 큰 결정적인 이유는 영혼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틀림없이 현재 우주 인류의 다수는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프로젝트의 2단계가 가동되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그들이 죽은 후 하나님의 임재와 분리된 채 비참하게 영원을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아무 행동도 없이 멈출 수는 없었다. 그 많은 자들을 일일이 만나가며 복음을 전할 물리적 기회는 없겠지만, 최소한 회개할 시간만큼은 벌어주고 싶었다. 육체적 수명이 연장되면 그 사이에 구원을 받을 기회도 늘어나겠지.
윤혁은 부디 이 방법이 자신이 기대하지 않은 방식을 통해서라도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심판에 관하여 진지한 고찰을 해보게 해주는 기회가 되길 원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바랐다.
그러나 반대로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들었다. 피코머신의 탁월한 능력에 대한 맹신 때문에 사람들이 죽음에 무감각해지는 결과는 절대로 원치 않았다. 부디 그런 악재가 벌어지지 않기를.
‘내 결정은 모 아니면 도일 가능성이 커. 부디 주님께서 올바른 방향으로 결과를 이끌어주셔야 할 텐데. 나의 어리석음이 그분의 지혜로 덮인다면 좋으련만.’
아나스타샤와 토론하였던 ‘짐승의 표’에 대한 고찰까지 이번 일에 반영할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그런 류의 복잡하고 예측 불가인 미래의 일들은 하나님께 맡기는 편이 지혜로울 듯했다.
“네 의견을 반영해주지.”
마침내 승낙이 떨어졌다.
“고마워요, 형.”
“내게는 격식 차리지 말고 편하게 대해라.”
재혁의 명령 아닌 명령에 윤혁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알았어.”
이에 재혁은 윤혁을 달래듯 머리를 살포시 손으로 쓸어내렸다. 이제 남은 일은 구체적으로 계획을 실천할 방안에 관해 설명을 듣는 것이었다. 윤혁은 긴장을 품은 상태로 조심스럽게 궁금했던 바를 질문했다.
“저기……, 그러면 수술 방법은 확정된 거야?”
“음, 그래. 그렇지 않아도 생각해뒀다.”
그 몇 분 사이에 참 신속하게도 정했구나. 물론 몇 분간 머릿속에서 엄청난 횟수의 시뮬레이션을 가동했겠지. 그가 도출한 아이디어가 무엇일지 상상해보니 불안 반 기대 반의 기분이 들었다.
“무서운가 보지?”
“아, 아니! 그래도 난 형 실력 하나는 신뢰하니까.”
“녀석도. 그렇지 않아도 2억 년치 임상시험을 통과했으니 걱정은 말아라.”
그 터무니없는 숫자가 현실에서의 시간을 말할 리는 없을 테고, 아마도.
“시뮬레이션 우주에서?”
“뭐, 그렇지.”
재혁은 여유 넘치는 자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는 진이 평가한 그대로 과도하게 신중한 사람이었다. 실패의 확률이나 시나리오는 눈곱만큼도 허용하지 않을 위인. 윤혁은 비로소 카가미씨에게서 들은 형에 대한 평가를 깊이 체감했다.
“혹시라도 의심을 품을까 봐 말해주지만, 내게는 불확실성을 감지하는 고유 재능이 다섯 개 이상 있다. 그 다섯은 작동 기전이 상이해. 그래서 중복으로 인한 에너지 효율 낭비가 없고 도리어 겹치면 효력이 곱절로 늘지. 물론 완전하지는 않아. 그래서 항상 그 능력에만 의존하지는 않고 신중에 또 신중을 기했지.”
윤혁은 놀란 나머지 입이 떡 벌어졌다. 카리스마타, 그것도 5중 연쇄라니! 그런 엄청난 반칙급 재능을 소유하고도 극한의 신중함을 시종일관 유지하다니. 과연 격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감상이 들었다. 지금껏 각종 오버 테크놀로지를 숱하게 개발하고 남발하는 와중에도 인류연합이 인재(人災)를 거의 한 번도 겪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곧바로 이해되었다.
“나도 너를 잃어버리긴 싫으니 최선을 다할 생각이야.”
“낯뜨거운 말도 참.”
비록 가끔 밉게 굴기는 해도 형제는 형제인 모양이다. 윤혁은 조금전까지 분노한 것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잊고 아주 조금은 감동했다. 그건 그렇고, 이제 가장 중요한 대답을 받아낼 차례가 되었다.
“그러면 내가 받을 수술이 뭔지, 이제 좀 알려줄 수 없을까?”
“음…….”
잠깐 불길한 침묵이 흐른 후 재혁의 입가에서 피식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래, 나의 일부분을 너와 융합시킬 생각이다.”
고풍스러운 품격의 위인의 입에서 좀처럼 나올 것 같지 않은, 상당히 장난스러운 어투였다. 윤혁은 복병 같이 튀어나온 뜻밖의 응답에 멍해졌다. 잠시 정신이 가출하는 듯하더니 몇 초 뒤에야 정신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악질 같으니. 하여간 타인의 신체를 상식 밖의 방법으로 자기 맘대로 다루는 건 본성이구나. 윤혁은 책망하듯 상대를 쏘아보며 본능적으로 보호의 자세를 취하며 몸을 뒤로 뺐다. 약간의 경멸 섞인 시선이 그의 눈빛에 담겼다. 이에 재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해하고 겁 먹었군. 하긴 앞뒤 다 자르고 말하긴 했지.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이전회
474회 아벨의 후예 Ch 12. 실험체 (6) |
다음회
476회 아벨의 후예 Ch 13. 에고이즘과 알트루즘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