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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09회 아벨의 후예 Ch 22. 슈퍼에고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8.20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윤혁은 할 말이 몹시 많긴 했지만 일단은 머리가 아프니 참기로 했다.

   “말 나온 김에 묻는데, 인류연합의 법치는 대체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 겁니까?”

   궁금증도 해소할 겸 시간을 끌기 위해 윤혁은 유도신문의 질문을 던졌다. 그의 진지하게 호기심 품는 모습에 흥미를 느낀 철혈여제는 조금 놀아주려는 작정이 든 것인지 느긋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도 엄연히 헌법(Constitution), 즉 컨스티튜션이 존재해.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아무 규칙이 없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우리 체제의 가장 중심축에 놓여있는 존재는 ‘통일시스템’인데 그 속에는 현재 3경 600조 세트 이상의 컨스티튜션이 내재되어 있지.

   통일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여러 가지 시스템들이 저마다 컨스티튜션셋을 갖고 있었어. 그것들끼리 모순되지 않도록 조율해주는 서브로우(Sub-Law)들도 있었지.”

   얼추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구체적인 원리는 몰라도 인류연합의 법은 무지막지하게 복잡다단한 체계인 모양이었다. 더욱이 법관이 아니라 서버나 프로그램, 시스템이 법률을 지휘하고 행사하는 주체인 듯했다.

   “그 모든 시스템들을 지휘하는 핵심 중추가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글쎄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데우스 엑스 마키나, 코스믹 옵틱스, 인비저블 마인드, 이데아. 바로 이들이지.”

   윤혁은 멈칫하였다.

   “그건 전부 형의…….”

   “그래, 위버멘쉬의 메이저급 초지능체들이지.”

   사실 엄연히 저들은 사실 현 인류 문명의 골격들을 지휘하는 주축이 맞았다. 인공지능들은 기계 신의 지배를 받는다. S-unvs는 이데아의 지배를 받는 식으로 작동한다. 사실상 위의 네 존재만으로 인류 시스템 전부를 지배할 수 있는 셈. 다시 말해서 저 네 초지능체 속에 내재된 법칙이야말로 컨스티튜션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얼티밋 컨스티튜션인 셈이다.

   “일례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안에는 ‘기계 율법’이라는 헌법이 들어 있지. 인간들의 성문화된 헌법 따위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엄청나게 복잡한 구조이지.”

   “기계들에게는 그런 규율이 적용된다 치고, 그렇다면 인간이나 초인에게 적용되는 법은요? 당장 저부터도 그렇고 대다수 민간인들이 전혀 그 법의 원리를 모르고 있는데 무슨 수로 정당하게 법을 집행하죠?”

   철혈여제는 이번에도 폭소와 함께 가소롭다는 듯한 투로 설명해주었다.

   “표식이라는 게 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번에도 예상 밖의 답변이었다. 표식. 그 물건이 현 법률 체계 내에서 지닌 의미는 상당했다. 말하자면 인간들이 굳이 저 방대한 법 시스템을 공부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인간 전용 법칙 아래 순응하도록 만들어주는 매개체가 바로 표식이다.

   한편 인간 내면에서의 법률 준행 원동력으로서 표식이 주체가 된다면, 다른 한편으로 외부적으로는 인간 세상을 관리하는 통일시스템의 행정명령이 법률 집행의 원동력이 된다.

여기까지가 일반인들에게 법이 적용되는 원리였다.

   “강제 룰? 제 정신이 아니군.”

   “후훗, 하지만 우리 초인들은 달라. 선택받은 인간이지. 인류를 다스리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들이야. 우리에게는 일반인과 동일한 법칙이 적용되지 않아. 시스템의 관리자이기 때문이지. 우리에게 요구되는 절대적 기준이 하나 존재한다면 위버멘쉬에게의 충성뿐이지. 그의 의지와 뜻을 따르기만 하면 나머지는 자율이야.”

   이렇게 해도 되는 이유가 있었다. 한 세대의 초인들은 일반적으로 동 세대의 위버멘쉬에게 본능적인 충성심을 갖는 특징을 지닌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따라서 굳이 법치주의로 옭아맬 필요가 없다나.

   윤혁은 철혈여제가 들려준 일련의 이야기들에 어이가 없었다. 이 기괴한 정치 철학은 도무지 기존 인류 정치 방식 중 어느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감조차도 잡히지 않았다.

   ‘초인주의(Super-humanitism)라고 불러야 하려나.’

   저게 계시록에 기록된 짐승의 제국으로 나아가는 기로에 선 게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저들이 생각하는 법과 헌법(Constitution)의 개념이 너무도 괴이하고 낯설어서 윤혁 자신이 생각하는 법 개념과 같은 걸 지칭하는 게 맞는지 의아했다.

   “그러면 당신이 괴뢰정부를 세운 건 법을 어긴게 아니란 뜻입니까?”

   윤혁이 되물었다.

   “나는 법을 어기지 않았단다. 나는 현존하는 컨스티튜션 셋들을 모두 점검한 뒤에 그에 모순되지 않는 최적의 방정식을 구축해 행동하고 있을 뿐이야. 말했잖니. 현 세상을 움직이는 규칙은 과거의 것과는 다르다고.”

   “인권을 범하는 행동을 벌이고도 그런 변명으로 넘어가시겠다고?”

   문득 헬리웃 사건이 생각났다.

   헬리웃은 분명 카이젤에게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 헬리웃이 한 달 동안이나 시뮬레이션 우주를 현실의 경계를 허물려는 장황한 음모를 꾸미는 동안에도 최후의 순간 직전까지는 별다른 처벌 조치가 없었다. 어찌된 영문일까?

   어쩌면 그때는 헬리웃의 음모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가 반지를 끼기 전까지는 그의 계획이 기존의 컨스티튜션 셋들과 모순되지 않았던 것일까? 그래서 막상 반지를 끼고 특정 행위를 개시하자 비로소 법률이 그의 행동을 위반으로 여기고 배척했던 것일까? 윤혁의 두뇌로는 도무지 이 기괴한 법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형도 그때의 헬리웃이나 지금의 저 여자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던데?’

   마냥 기분 내키는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식은 아니란 말인가?

   ‘특정 조건이 충족되기 전까지는 저런 거슬리는 존재들이라도 손대지 않는 건가? 만약 정말로 그 특정 조건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게 설마 컨스티튜션의 형벌 기전을 유도하는 트리거인건가?’

   만일 그 가설대로라면 무소불위의 그 카이젤도 순전히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나름 자신이 세운 규칙을 철저히 준수한다고 보아야 한다. 비록 본인이 입법과 행정과 사법을 모두 관할하는 독재자라고는 하지만, 그도 나름대로 최소한의 선, 곧 공정성과 규칙성을 수호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건가? 이걸 위선이라고 봐야 할지 갸륵하다고 평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후로도 윤혁은 한참을 철혈여제와 말다툼을 벌였다. 다행히 상대는 윤혁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듯했다. 논쟁이 점점 격해짐에도 불구하고 우주선을 손상시키려는 철혈여제 측 시도는 일절 없었다. 물론 둘의 대화는 평행선처럼 각자의 논지만 뻗어나간 채 한 점으로 수렴하지 못했다.

   윤혁은 초인들의 복잡한 법체계를 이해하지도 못했고 이해해줄 마음조차 없었다. 그런 비상식적인 체계에는 납득될 여지라고는 전혀 없었다. 애초에 그의 건전한 양심은 인류연합의 컨스티튜션 시스템 같은 것과는 양립할 수 없었다.

   논쟁으로 시간 끄는 작전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대체 어떻게 행성 주민들이 구원받는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었다. 주님께서는 분명 이렇게 하면 행성 주민들에게 복이 온다고 하셨거늘.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그때 별안 간 이변이 벌어졌다. 인공 행성 요새 근방 어느 좌표에서 아공간의 문이 열리더니 천체와 맞먹는 크기의 거체들이 튀어나왔다. 흡사 검이나 창, 화살 등의 날카로운 무기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조합해놓은 듯한 형상이었다.

   특이사항으로는 온몸이 금속이 아닌 불꽃 덩어리로 이뤄져 있었다. 하지만 일반 불꽃과는 다른 속성의 무언가로 느껴졌다. 겉모양만 불꽃이고 본질은 전혀 다른 것 같았다. 철혈여제는 그것들의 낌새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더니 바르르 떨었다.

   “말도 안 돼! 어째서 레바테인들이!”

   그녀는 황급히 초거대 규모의 초능력을 발산했다. 데미안 말대로 SSS 클래스 초인이 맞긴 맞는지 그녀가 선보인 위력은 가공할 수준이었다. 게다가 초능력 시스템이 그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말이 맞긴 한지 지난번 칼리드에게서 보아던 힘과도 비교할 수 없이 막대했다.

   하지만 위력에 비해서 힘을 제어하고 조절하는 솜씨는 현격히 뒤떨어져 보였다. 비단 그녀가 칼리드보다 실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이 자리에 존재하는 단말기가 철혈여제 본인의 몸이 아닌 그녀의 아바타였기 때문이었다. 본인의 정신력의 극히 일부분만을 사용할 수 있는 아바타에 불과하니 자연히 초능력을 다룰 역량도 줄어든 것이다.

   격전이 벌어진 끝에 거대한 괴물들은 철혈여제를 포위하였고 수 시간의 공방 끝에 그녀를 소진시켰다. 그리고 끝내는 그녀의 아바타를 파괴해버렸다. 하나하나가 별을 부수고도 남을 괴물이었기에 제아무리 강한 초인이라도 그것들의 인해전술을 감당하긴 무리였다.

   다행히 윤혁의 우주선은 싸움의 직접적인 여파에서 벗어났다. 불로 만들어진 무기 형태의 생명체들은 달아나는 윤혁에게 텔레파시로 메시지를 보냈다.

   -신(god)의 아우이시여. 이곳에서 벗어나시지요.

   “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갤럭시 클래스 바이오스피어 급인 ‘레바테인’ 종족의 개체들입니다.

   “어째서 당신들은 인간을 죽이신 건가요?”

   -죽인 게 아닙니다. 저건 철혈여제 그분의 본체가 아닙니다. 그녀는 우리의 신께서 세우신 법칙의 본질을 어겼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종족의 중앙 정신체는 그녀의 분신들을 모두 제거하여 그녀의 권력을 몰수하겠노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본래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심판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무자비한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는 상냥한 말투. 기가 찼다.

   “신이 세운 법칙이란 거, 대체 그 본질이 뭐죠?”

   물론 저들이 말하는 신은 자신들을 제작해낸 위버멘쉬를 말하는 것이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카이젤이 저런 존재들에게는 신처럼 인식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보니 속이 뒤틀렸다.

   -컨스티튜션은 어디까지나 성문화된 규칙, 그러나 깊게 파고 들어가다 보면 그 본질은 그것을 만들어낸 ‘신의 도덕 가치관’에 맞닿습니다. 철혈여제는 이것을 간과했고 오늘 이와 같은 실수를 선보였습니다.

   “이, 이봐요! 그렇게만 말해서는 알아들을 수가…….”

   -우리에게는 묵비의 의무가 있으니 이 이상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레바테인들은 정성스럽게 윤혁과 루디아의 우주선을 웜홀의 바깥으로 밀어내었다. 쳘혈여제의 분신이 파괴되자 곧 웜홀 네트워크는 통일시스템에 의해 강제로 삭제되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붕괴로부터 빠져나온 우주선은 Planet-676,232의 대기권 상공에 당도했다.

 

 

 

 

 

 

 

 

*

 

 

 

 

 

   두 사람이 잠시 숨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안심하던 차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거대한 전투형 기계 수천 기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크기와 위용이 어찌나 대단한지 하늘에 달이 수천 개 이상 떠오른 줄로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 기계들은 우주선의 진로를 봉쇄했다. 거대 기계들 사이로 하나의 물체가 유유히 날아 우주선 앞에 당도했다.

   “강윤혁.”

   “으윽.”

   그 불쾌한 목소리와 어투에서 윤혁과 루디아는 짙은 기시감을 느꼈다.

   “오랜만이군.”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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