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12회 아벨의 후예 Ch 23. 핍박에 굴하지 말라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8.27 | 회차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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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영의 질문에 대해 리온은 공허한 말보다는 삶과 행동을 통해서 명쾌히 대답해주었다. 찬영의 깊은 의문과 회의를 풀어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열매로 입증해주어야 했다. 물론 잃어버린 자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진정한 주체는 신자가 아닌 성령님이긴 하지만, 그분이 직접적으로 쓰시는 수단은 신자의 삶과 언행임을.
이를 입증하려면 실제적이고 강력한 헌신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리온은 보다 더 깊은 신앙에 도달해야 했다. 먼저는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내려는 대신에 성령께 의지를 맡기고 그분께서 그분의 삶을 리온의 몸을 통해 살아내도록 허락해야 했다. 아울러 의무적으로 사역을 수행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진실된 사랑의 마음을 바탕으로 사역이 우러나오도록 해야 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고된 훈련이 필요했다.
리온 일행은 광야에서 고대 이스라엘이 불기둥의 인도를 받듯 정처 없이 은하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때때로 난해하고 곤욕스러운 임무가 맡겨졌다.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순종해야 하는 상황이 닥쳐왔다. 하지만 일꾼들이 미처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이들의 작은 헌신은 시나브로 아름다운 결실을 맺고 있었다.
마침 오늘날은 교역과 통신이 우주 전역에서 활발히 성행하는 대 교류의 시대. 과거 지구의 종교개혁도 인쇄술의 발명에 힘입어 급속도로 정신을 확산시켰듯, 지금의 지구 교회 사역팀의 가르침도 한 번 전해질 때마다 여러 현지 일꾼들의 도움에 힘입어 드넓은 우주 사방으로 번졌다. 단지 필요한 것은 그 가르침이 본격적인 영적 불길을 일으키기까지 요구되는 조금 더 긴 인내의 시간뿐이었다.
여행 개시 후 수개월이 지난 시점, 사역팀은 본격적으로 핍박 지대에 진입하게 되었다. Upol들은 외계행성과 비교해서는 인권과 자유가 비교적 잘 보장되는 땅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압적인 권세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인류연합은 표면상으로는 종교 탄압을 내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각 Upol의 자치 세력이 자발적으로 종교를 탄압하는 것까지는 막아주지 않았다. 그 탓에 적잖은 지역 자치권들이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놀랍게도 핍박이나 차별대우를 받는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은 규모는 작을지언정 성도 한 명 한 명의 영적 상태는 높은 각성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별달리 교훈을 전하거나 지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없었다. 그저 이미 뿌려져 있는 씨앗을 잘 일깨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당국의 위협이라는 시험만 통과해낸다면 그들에게서 거둬질 열매는 무궁무진했다.
이윽고 Upol-67,100,200,300 라는 곳에 당도했을 때 사역팀은 이전보다 더 높은 차원의 임무로의 인도를 받았다. 그곳 Upol-67,100,200,300은 하필 2등 시민들의 권역 가운데서도 후진국으로 분류되는 세계였던 것이다.
기술 수준이 뒤떨어져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시민 의식이나 자치 세력의 도덕 정신이 형편없었다. 통일시스템의 감시 통제 때문에 부정부패를 범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비도덕적인 정치의식이 횡행했다. 시민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정치가들보다는 권력을 탐하는 이들이 자치권 요직을 차지하였다.
자연히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 전반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가 강했다. 이것은 과연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던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리온은 고민했다. 왜 하필 주님께서는 자신을 이 지역으로 이끄셨을까?
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순회하며 성경 말씀을 전한다면 필시 많은 장애물이 뒤따를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리온이야 이전에도 갖은 곤경을 거쳐왔으니 거뜬히 버티틸 수 있겠지만, 아직 훈련이 덜 된 그의 동역자들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시련이 될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이 새내기들도 이번 기회에 배울 필요가 있었다. 핍박이란 것은 저주가 아니라 도리어 위장된 축복이라는 사실을.
리온과 동역자들은 자치 세력의 방해에 아랑곳않고 Upol-67,100,200,300의 외곽지역에 있는 어느 낡고 오래된 교회를 방문했다. 그곳에 들어가기 전, 리온은 동료들과 더불어 기도를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밟고 있는 이 땅에 성령의 역사를 풍성하게 부어주시기를 간구하며 절실하게 매달렸다. 그들은 심지어 해당 교회의 교인들까지 이 믿음의 기도에 참여시켰다.
반나절 간 꼬박 중보 기도를 나눈 결과 은총이 임하였다. 리온은 기도 응답을 믿고 강단에 올라섰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진리를 가르쳤다. 이번에는 지식보다는 마음에 초점을 두어 전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행하신 위대한 역사를 솔직하게 간증했다. 사도 베드로가 과거 오순절에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설교했던 것처럼 정성을 다해 외쳤다.
그러자 곧 사람들 사이에서 축복이 강물처럼 흘렀다. 심령에 찔림을 받은 이들이 너도나도 앞으로 나와서 죄를 고백하였다. 그들의 완고했던 마음은 산산이 깨어졌다. 그러자 그들이 죄에서 회개하는 모습을 목격한 다른 사람들도 같은 영향력에 휩싸였다. 그날 밤, 설교와 간증이 끊이지 않았다.
다음 날, 자치 세력은 강제로 교회를 해산시켰다. 그들은 리온 일행에게 이 지역을 곧장 떠날 것을 명령하였다. 이는 오히려 리온이 바라던 일이었다. 그는 곧바로 해당 Upol의 다른 지역들을 순회하며 똑같은 일을 담대하게 벌였다.
아울러 흥미로운 일이 그들 모르는 곳에서 펼쳐졌다. 일행이 이 Upol에서 처음 방문했던 그 교회, 해산되었던 그 교회의 성도들이 마음속에 북받치는 그 놀라운 은혜를 도무지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온갖 매체와 수단을 총동원해서 자신이 겪은 은혜와 회심의 역사를 널리 공포했다. 그러자 곧 바이러스가 번져나가듯 Upol-67,100,200,300은 성령님의 영향에 침식되기 시작했다.
사역팀은 이후로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한 지역 한 지역을 온전한 사랑으로 섬기며 주님의 뜻이 채워질 때까지 진득히 버텼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핍박이나 해산 명령이 도래하면 기쁜 뜻으로 받아들이며 다른 곳으로 황급히 이동했다.
이런 이들의 행태는 자치 세력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골치 아픈 두더지와 다를 바 없었다. 두더지 게임에서 아무리 두더지의 머리를 때려도 땅굴로 도망쳐 다른 구멍으로 튀어나오듯, 리온 일행은 비폭력적인 방식의 복음 전파 운동을 쉴 새 없이 이어나가며 도미노처럼 물결을 번지게 했다.
은혜의 강물은 한 통로에서 다른 통로로 번지며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었다. 곳곳에서 죄를 회개하고 눈물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너무도 기이한 광경이라 그 몰골을 구경하겠노라고 교회 밖의 사람들까지 기웃거렸다. 그렇게 조롱하려고 찾아갔는데 오히려 은혜를 받고 변화되어 나온 이들도 있었다.
몇몇 죄인들은 “어찌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을꼬?”라고 외치며 탄식했다. 그들보다 먼저 회개한 사람들은 “주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시오. 그리하면 그분은 당신을 죄의 형벌, 죄의 권세로부터 건져주실 것이며 후에는 죄의 존재로부터 완벽하게 구원해주실 것입니다.”라고 간증했다. 이 간증은 교리 설교가 아닌, 숨 쉬듯이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영혼의 고백이었다.
회심의 물결이 이어지자 뒤이어 영적 각성이 이뤄졌다. 이제 냉혹한 박해는 더 이상 교회에게 방해 거리가 되지 못했다. 강제로 흩어 놓아도 가정 교회, 소규모 공동체라는 방식으로 더 빠르게 물밑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어찌 보면 핍박이야말로 복음을 활성화한 진정한 일등 공신이었다. 만일 그저 편히 신앙생활을 하도록 허락 받았더라면 쉬이 현대문물의 편리함에 찌들어 나태해졌을 테니까.
어떤 의미에서 이 같은 역사는 사람이 이뤄낼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모든 Upol들에서는 현재 전반적으로 믿음이 식는 현상이 팽배해있었기 때문이다. 현대문물의 발전과 동시에 지구에서 신앙심이 소멸하였던 것과 같은 원리였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 흐름마저 역행하는 현상이 Upol-67,100,200,300에서 발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찬영은 이 진귀한 경험을 통해서 차차 깨달았다.
‘그래, 분명 사람의 영혼을 구원해주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이번만 해도 성령님을 통해 충격적인 부흥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하지만 우리가 그 도구로 기꺼이 자신을 내놓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유보되었겠지.’
찬영은 전도야말로 성령께서 일하는 진정한 통로임을 절실히 느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할 때 환각이나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먼저 믿고 구원받은 자의 정직한 순종을 이용하신다. 이 사실을 깨닫자 기쁨에 북받쳐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고픈 소원에 깊이 잠겼다.
“순종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부가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실제로 그렇게 말씀해주셨죠.”
리온은 찬영의 깨달음을 요한복음의 기록을 통해서 확증해주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하늘 아버지의 뜻에 합하여 기도하고 남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면 우리는 주님의 일을 성취하는 도구가 됩니다. 마치 신경 전달 회로에서 전기 신호가 전달되는 통로가 되어주는 ‘중간단계 뉴런(inter-neuron)’처럼 말이죠.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도 기꺼이 사용하십니다.”
이후로도 여러 지역의 교회들이 편지를 보내왔다. 그들은 리온의 사역팀을 초청하기도 했고 혹은 그들의 영향으로 회심한 무리를 초청했다. 말씀에 대한 강해와 신앙간증을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시나브로 부흥의 물결은 홍수처럼 하나의 세계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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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악한 영의 뜻을 실천하는 이도 있었다.
갈트론은 어떻게 하면 손쉽게 복음의 불씨를 꺼트릴 수 있을지 고민하며 여러 가지 알고리즘을 검토하였다. 힌트를 얻기 위해 그는 특히 지구의 역사쪽에 관심을 기울였다. 한창 부흥하던 지구의 기독교를 삽시간에 휘청이게 만들었던 사상 체계가 하나 있었다. 형태는 다양할지언정 그 본질과 뿌리는 같았다.
“유물론(唯物論, materialism).”
신 없이 만물을 오로지 물질로만 환원해서 생각하는 이론.
인간의 정신을 무신론적으로 이해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사회와 경제 체제를 유물론적으로 해석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철학, 그리고 자연 만물의 등장을 오로지 우연과 물질의 상호작용만으로 이해한 다윈의 진화론.
이후 등장한 온갖 변주곡들은 이 세 가지의 변형에 지나지 않았다. 참 흥미롭게도 이것들이 등장한 이후로 지구의 기독교는 급속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정작 세 이론의 결점이 수두룩하게 밝혀진 이후로도 사람들은 이미 유물론 사상에 젖어 헤어나오지 못했다. 오히려 어떻게든 유물론을 고수하고픈 마음에 기존의 낡은 이론들 위에 덕지덕지 새 요소를 덧대었다. 끊임없이 신을 거절하고픈 인간 본연의 발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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