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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30회 아벨의 후예 Ch 27. 반셈족주의의 종말 (5)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0.13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카이는 끝내 모습을 안 드러내는군요.”

   레리엔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그는 저 멀리 제로원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허, 이보세요. 일개 당신 따위 하나 상대하려고 마스터께서 귀하신 몸을 행차하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런 3D 업종은 저 혼자로도 충분합니다.”

   “뭐, 자신감은 넘치시는군요. 그렇게 말한 것 치고는 변증에 애를 먹던 것 같았습니다만.”

   초인은 자존심을 긁는 레리엔의 공격에 잠시 움찔했으나 곧 태연히 굴었다.

   “하하, 설마요. 그것도 다 변수들을 감안한 연출이었습니다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레리엔은 혼자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래, 카이, 과연 넌 대단한 친구야. 내가 감히 올려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카이젤의 탁월한 정치적 감각에는 그녀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짧은 순간에 모든 흐름이 온전히 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집중되었다. 단지 가시적인 상황만이 아니었다. 카이젤은 도대체 몇 수 앞까지 내다보고 이런 판을 짰단 말인가. 레리엔은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찬찬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판단해보았다.

   ‘이제 지구의 새 거주자가 될 자들에게는 이번 일이 강한 본보기가 되겠지.’

   가정법으로, 만약 경합 같은 이벤트 없이 원주민들을 그냥 내쫓고 그 뒤에 우주 인류를 경쟁시켜서 시민을 채워넣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승리자들은 자신들에게 지구 인류라는 경쟁자가 있는 줄을 몰랐으리라.

   지구까지 가는 길목에서 이겨야 할 경쟁 대상이 징검다리 권역 속의 같은 우주 인류들 뿐이었다면, 최종 후보 발탁자들은 주치자 측을 향해 감사의 마음을 거의 품지 않았으리라. 자기가 잘나서 지구라는 보상을 쟁취한 줄 알고 우쭐하리라. 인류연합의 은혜는 생각지 않고 제 잘난 맛과 주인의식에 취해서 살았으리라.

   하지만 지금처럼 지구 원주민을 내쫓는 절차를 매우 복잡하게 만든다면? 새로운 지구 시민이 되려는 후보생들은 새로운 국면 속에 던져진다. 쉽게 말해서 아쉬워 할 일이 더 많아진다. 당장에라도 떡을 먹고 싶어 안달인데 그것을 먹기 힘들도록 높은 곳에 올려놓는 격이 된다. 원주민을 쫒아내지 않으면 새로운 지구의 주민이 되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게다가 경합의 규율이 복잡한 탓에 원주민은 생각보다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다.

   이런 애가 타는 조건 속에서는 자연히 인류연합 측에 의존하려는 마음이 강해진다. 정부의 은혜에 더욱 감사하고 충성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정부가 은총 베푸는 신의 자리에 오르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어쨌건 우주 인류와 인류연합 사이에서는 이 같은 관계가 구축되고 있었다.

   한편, 새 지구 시민 후보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진입을 방해하려는, 정확히는 지구 원주민들의 축출을 늦추려는 레리엔이나 후보자들은 훼방거리로 느껴지리라. 아마 그들을 막아주는 인류연합은 정당한 권리를 보호해주는 올바른 심판관으로 여겨지겠지.

   사실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그렇게 악역과 선역이 나뉘어지기 쉬운데, 여기에 더해 통일시스템은 불을 지펴주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감정을 교묘하게 조작하였다. 또한 정보의 흐름 속에서 특정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조작하여 전달해주는 프로세스를 벌였다. 이 바람에 우주 인류 사이에서의 군중심리는 더욱 강화되었으리라.

   아울러 지구 원주민이 자신들이 낳은 지구 출신 초인에게마저 버림받고 퇴출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주 인류도 느끼는 바가 많으리라. 나무에서 원 가지마저 아낌없이 잘렸으니 이식 받은 나뭇가지인 자신들도 자칫 언제든 내쳐질 수 있으리라는 교훈을 체감했겠지.

   고로 철저한 실력 제일주의와 성과 우선주의적인 가치관을 다시금 영혼과 뼛속 깊숙이 되새김질하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그러니 어떻게든 인류연합 정부에게 잘 보이고 좋은 성과를 인정받아 끝까지 지구의 시민으로 남으리라 결심했으리라.

   ‘카이는 신약성경에 기록된 비유를 제멋대로 교정하여 모방했구나.’

   레리엔은 모든 종교 교리에 해박했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신약성경의 로마서에도 분명 비슷한 비유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나스타샤는 이 사건이 있기 전, 분명 그 해당 구절이 인류연합의 손아귀에서 악용될 것을 예고했었다. 그녀의 말이 옳았음을 확인한 레리엔은 내심 깊이 놀랐다.

   참고로 이번 사건은 ‘감람나무의 비유’를 교묘히 비틀어 이용한 것이었다.

   감람나무의 비유. 내용은 이러하다. 1세기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을 완악하게 굴었다. 이에 신께서는 그들을 잠시 언약의 효력에서 보류해두셨고 대신 이방인들을 나무에 접붙여 교회로서 받아들인 뒤 신앙을 주셨다. 말하자면 원 가지인 언약 민족이 잠시 가지로서 잘려나가고 새로운 가지들이 나무의 혜택을 받게 된 셈이다.

   이는 실제적인 축복과 형벌이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AD 70년 경에 국가를 잃고 뿔뿔이 흩어졌으며 이후로도 수천 년간 여러 민족으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방인 신자들에게도 경고했다. “하나님께서 나무의 원 가지였던 이스라엘도 아끼시지 않았듯, 접붙임을 받은 너희 이방인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면 얼마든 내치시리라.”

   사실 원 맥락과는 떨어져 있지만, 가소롭게도 인류연합은 이런 신적 섭리를 모방할 작정인지 지구인과 우주인을 비슷한 역할극 속에 집어넣었다. 말하자면 인류의 원 가지라 볼 수 있는 지구 인류에게는 지구 해체를 선언하고, 반대로 지구에서 파생된 우주 인류에게는 그 땅의 차지를 허락해주었다. 아울러 새로이 선택받은 그자들에게는 ‘말을 잘 듣지 않거나 훌륭한 성과를 보이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너희도 쫓아내겠다’라며 경고하였다. 이런 화려한 이벤트를 벌여가면서까지.

   그 시각, 아나스타샤는 조용히 현 사태가 돌아가는 흐름을 지켜보며 궁리했다.

   ‘인류연합은 나름대로 똑똑하게 일을 벌였으나 어쩌면 그들도 주님의 더 큰 섭리 아래 도구로 전락했을지도.’

   지구인, 정확히는 유대인을 제외한 이방 민족들은 지난 수천 년간 유대인들을 미워하고 배척하고 저주했었다. 자기 땅에 온 메시아를 죽인 어리석고 완악한 민족이라고 맹렬한 비난을 퍼부으면서.

   그랬는데 이제는 그랬던 이방인들이 총체적 배교와 함께 그리스도를 잊어버렸고 신을 경외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그들이 과거 1세기 유대 민족이 겪었던 디아스포라 이상의 벌을 겪는다고 해도 달리 무슨 변명의 말이 있겠는가.

   해학스럽게도 1세기의 유대인과 이방인의 상황은 현재의 지구인과 우주인의 상황과 꽤 유사했다. 그때는 유대인들이 복음을 저버렸고 이방인들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은 지구인들이 배교했고 우주 인류는 영적 부흥을 맞았다. 과연 이 평행성은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인류연합마저 컨트롤하는 하나님의 권능에서 비롯된 경고의 사인인가.

   “두렵고 떨리는 일이군. 이런 패턴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확대될 것인지.”

 

 

 

 

 

 

 

 

*

 

 

 

 

 

 

   “그런데 말입니다, 레이디 레리엔.”

   태양을 삼킨 늑대가 조용히 화제를 바꾸었다. 레리엔의 영민한 지각이 불길함의 미래를 직감했다. 분명 상대는 은밀한 내용을 말하려는 기색이었다. 그런데 통일시스템은 아직 대화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모드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지구 인류나 우주 인류에게 발설을 드러났을 때 어떤 충격이 임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적장의 입에서 무슨 폭탄 발언이 나올지 모르는 레리엔은 불안해했다.

   “하시려는 말씀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이런, 별것 아닙니다. 그저 궁금해서요. 왜 어떤 민족은 이런 엄격함 속에서 특혜를 받았는지, 그걸 잘 몰라서 말입니다. 그들에게 뭐 그리 잘난 면이 있다고 보상을 받았으려나요?”

순간 적막이 흘렀다. 지구 원주민들 전체는 그 발언을 듣고 동요하였다. 뭐라고? 어떤 한 민족이 이번 해체에서 면제를 받았다? 금시초문이었다.

   “하긴 레이디께서는 유독 그들을 감싸고 돌았죠.”

   의도를 직감한 레리엔은 다급히 외쳤다.

   “당신 설마!”

   승기를 잡았다고 믿은 태양을 삼킨 늑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떳떳하지 못하군요. 그래, 분명 그들이 면제받은 배후에는 당신이 있었겠죠?”

   레리엔은 묵묵부답으로 응수하였다.

   “해명할 생각이 없군요. 그렇게 침묵하시겠다면 뭐, 제가 대신해드리죠.”

   태양을 삼킨 늑대는 지구인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그렇다, 이 땅의 옛 거주자들이여. 너희 중 하나, 곧 유대인들만은 이 지구에서 떨어져나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류연합과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중매해준 인물이 바로 내 눈앞에 나타난 이 여인이다.

   기뻐하라. 너희가 그토록 수천 년간 외면하고 핍박해온 자들은 이제 공짜로 영주권을 유지하게 되었구나. 반면, 너희 우매한 민족들은 흔적도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구나.”

   레리엔은 의분에 찬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하필이면 지금 이때!’

   상황이 좋지 않았다. 현재 지구촌 곳곳에는 아나스타샤의 제안대로 복음을 전파하고자 나선 수만 명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들은 레리엔이 자비로 제공한 고속 이동 용 바이크를 타고 이곳저곳을 순회하는 중이었다.

   마침 지구 해체와 천지합일 프로세스가 진행되면서 국가 간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메시아닉 유대인들을 지구 원주민들이 쫓겨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명에게라도 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직전까지만 해도 전도자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흐름이 열렸다. 혼란과 동요에 휩싸인 지구 사람들의 마음의 문은 손쉽게 허물어졌다. 원래 두려움과 낙심이란 역으로 마음을 새로이 할 반전의 기회이기도 하니까.

   정든 땅을 떠나 외지로 나가야 하는 상황을 맞닥트리자 많은 이들이 붙잡고 의지할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일부는 이제껏 난민들을 돌보지 않았던 자신들의 무심함을 참회하며 돌아보았다. 여기에 얼마 전까지 난민 신세였던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전도의 말을 전하자 많은 이들이 흔들렸다. 평온한 평상시 같았으면 듣는 척도 하지 않았을 이들이.

   그런데 태양을 삼킨 늑대가 별안 간 내던진 폭탄선언 한마디에 상황이 반전되었다. 지난 2천 년간 이방인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외면하고 괴롭히고 배척해왔다. 그랬던 이방인들이 이제는 똑같이 고향에서 쫓겨날 신세에 처했다. 반대로 유대인들은 약속받은 이스라엘 땅에서 영영 남아있을 권한을 얻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방인들의 박탈감은 한없이 커져갔다. 올바른 영성을 갖춘 인간이 그 중 하나라도 있었다면 자신들의 완악함과 죄악됨을 돌아보고 신의 섭리를 직면하고서 회개했겠지만, 대다수는 고집불통이었다. 반셈족주의(anti-semitism)를 회개하고 불신에서 돌이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으려 하기는커녕 유대인들을 향한 저주의 깃발을 더욱 내세웠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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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회 아벨의 후예 Ch 27. 반셈족주의의 종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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