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49회 아벨의 후예 Ch 32. 안내자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1.28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돌이켜보니 재혁은 이 곤란한 신체적 문제를 교정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어쩌면 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말 그대로 이런 초자연적인 일은 현대 의학의 지식을 초월한 현상이니까. 게다가 단순히 신체 조직이 옮겨지는 정도의 차원을 넘어서 초인의 리비도라는 근원적 실체가 일부나마 윤혁에게 이식되어 옮겨진 것이다. 그것도 시간이라는 고정틀을 탈피한 방식으로. 그렇게 생각해보면 당장 수술한다고 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했다.

   고민하던 윤혁의 눈에 태헌이 읽는 책의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전집이었다. 태헌은 동아리 시절부터 저 작품을 나름 좋아했었다. 처절한 인간 내면의 투쟁을 실존주의적인 관점에서 묘사한 작품. 높이 평가할 만했다.

   “아직도 좋아하시나 보네요.”

   “아무래도 청소년 시절에 보는 거랑 또 다른 감상이 들지. 너는 이것저것 안 가리고 잘 읽었던 것 같은데. 톨킨이나 C.S.루이스의 환상 소설처럼 기독교적 메시지를 담은 것들에도 제법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요새는 좀 관심이 줄었지만, 옛날엔 자세히 읽었었죠.”

   태헌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려 집중했다.

   윤혁은 어디선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라는 작가에 대해 들어본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사람은 여성 편력도 심하고 나름 준수한 외모에 강건한 체격으로 마초적인 성향이 강했다지. 노년에 이르러서는 깊은 공허감과 실존적 허무를 이기지 못하고 엽총으로 자살을 했다고 한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가 남성으로서의 기능에 콤플렉스가 있었고 그로 인해 시달렸다는 설도 언뜻 들었었다. 예전에는 그러든 말든 별 생각이 없어는데 지금은 이복형이 떠올라서인지 쓸데없이 짠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지금은 형이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한없이 강력해 보여도 마음은 여린 사람. 부유해 보여도 내면은 빈궁한 사람. 그런 삶을 산다는 건 피곤한 일이겠지.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거대한 실존적 공허감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윤혁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형도 그 사실을 인정할까. 그런다고 그가 그것을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만.

 

 

 

 

 

 

 

 

*

 

 

 

 

 

    실험 텀이 끝나자 겔다는 윤혁과 루디아를 저녁 자리에 초대했다. 아직 어색함에 익숙해지지 못한 윤혁은 멋쩍은 표정으로 루디아에게서 얼굴을 붉혔다.

   이드가 공격을 가했던 그 날 이후로 윤혁은 루디아가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이 단순한 동료애 이상임을 얼핏 느꼈다. 직접적으로 고백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때 전달된 감정의 색채는 짙고 선명했다. 그녀가 발산했던 분노도 친구를 보호하려는 감정과는 달랐다. 뒤늦게 그걸 의식하자 윤혁으로서도 그녀를 더는 예전과 똑같은 시선으로 볼 수 없었다. 그제야 그는 그녀를 향한 자신의 감정도 오랜 시간 동안 싹을 틔우며 자라왔음을 알아차렸다.

   “너무 어색해하지 마세요.”

   겔다가 쑥스러워하는 두 남녀 사이에 놓인 어색함의 벽을 깨트렸다.

   “같이 편안한 시간을 보내며 안락함을 즐기도록 해요.”

   식사 도중에 겔다는 윤혁에게서 ‘그’에게 받은 연락처를 요구했다.

   “저에게 주세요.”

   “전화 같은 게 아니었나 보네요.”

   겔다는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아뇨,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물건이에요.”

   그녀는 품에서 빛나는 녹색 구슬을 꺼냈다. 구슬은 공중에 둥둥 떠다녔다. 겔다는 윤혁이 받은 연락처를 구슬 위에 소환된 홀로그램 코드에 입력했다. 그러자 열쇠와 같은 형상이 나타났다. 겔다가 열쇠로 녹색 구슬을 열자 빛을 발생하였다. 곧 특수한 질의 에너지가 분출되더니 차원과 시공간에 간섭이 발생했다. 이후 불꽃이 응집되더니 사람 형체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멜카드제윈씨?” 

   “반가워, 동생.”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며 반겨줬다. 저런 것도 가능하구나. 나름 상위 초인이라더니 초능력과 첨단 기술을 활용해 통신용 분신 같은 것을 만들어낸 모양이다.

   “앞으로는 이걸 써서 통신해. 언제든지 소환 가능하니까.”

   “아예 다른 은하에 떨어져 있어도 통신이 가능하나 보네요.”

   “물론이지. 최소 30억 광년 이상 거리는 무시차(無時差) 연락이 가능해.”

   다행이 멜카드제윈은 전처럼 건강하고 말끔해 보였다.

   “선생님, 윤혁 도련님에게 이상한 바람 불어넣으시지 마세요.”

   겔다가 멜카드제윈의 아바타에게 따끔하게 꿀밤을 먹였다.

   “너무하네. 그리고 예전처럼 오빠라고 불러주면 안 되나.”

   “징그러워요. 연세도 한참 많으신 분이 말이에요.”

   “나 피코머신 덕에 안 늙거든. 그게 없더라도 초인이라서 노화가 느리다고.”

   “네, 네, 그러시겠죠.”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소꿉친구였다.

   ‘전부터 느낀건데, 저분은 인위적으로 각성해서 그런가, 다른 초인과 다르네.’

   윤혁이 지금껏 만나온 초인은 거의 예외 없이 선민의식이 넘치는 오만한 작자들이었다. 아버지 성한이나 에드레이씨처럼 반쪽 초인인 경우를 제외하면. 그나마 일반인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보였던 사람은 레리엔이 전부였다.

   멜카드제윈의 겨우 그 정도까지 겸손한 건 아니었지만, 멜리안 할머님의 수양 손주로서 잘 양육받아서 그런지 아니면 각성 전에 고아 생활을 거치며 겸양을 배워서 그런지 일반인을 대하는 태도에 오만함이 별로 녹아있지 않았다.

   “잘 지냈어? 시간이 많이 흘렀네.”

   “네, 저번에 만난 행성을 떠난 뒤로도 최소 서른 곳 이상은 거쳐 간 것 같네요.”

   “진짜로? 여기서는 두 달도 안 지났는데?”

   멜카드제윈은 이상하다는 투로 말했다. 실제로 그의 말대로 우주 표준 시간으로는 그들이 헤어진 지 45일 남짓 지난 상태였다. 윤혁과 루디아가 그사이에 거쳐 간 행성은 무려 32개였다. 우주선에 탑승한 동안은 선체 내부의 타임필드 영향도 있고 테서렉트 아키텍쳐나 웜홀을 지나간 영향도 있기에 우주 표준 시간대로는 흐르지 않는다고 치자. 그래도 행성에서 보낸 시간을 합치면 최소 두세 달은 소요되어야 한다. 논리적으로 언뜻 보기에는 모순적이었다.

   “미약하게 타임필드가 작동하는 행성도 있다지만 좀 이상한데. 혹시라도…….”

   “의심 가는 부분이 있으세요?”

   “원거리 타임머신 효과 아닐까.”

   “아.”

   예전에 윤혁도 형과 함께 잠시 우주로 나갔을 때 은하와 은하 사이를 도약하며 원거리 타임머신 효과를 체험했던 적은 있었다. 사실상 시간을 거슬러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효과다.

   “하지만 시간 여행에는 인과율 위배 문제라는 제약 조건이 있잖아요. 예전의 미개발 시대의 은하들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은하들 전부가 실상 이미 인간들의 정보 시스템으로 촘촘이 연결되어 있잖아요. 시간 조작의 규율 상 같은 시간대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가능성이 있는 동일 개체가 여럿 존재할 수는 없을텐데요.”

   윤혁이 의문을 제기했다. 만일 자신이 탄 우주선이 정말로 시간 여행을 하며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라면 이 정보화된 좁은 우주에서 인과율 모순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건 그래. 그 문제는 앞으로도 인류가 극복하기에는 능력 밖일 거야.”

   멜카드제윈도 어느 정도 그 의구심에 수긍하였다.

   “다만, 최근에 몇 가지 편법이 개발되었어. Upol들과는 달리 외계행성들은 통신 체계 연결이 완비되어 있지는 않거든. 물론 대부분의 영역은 지금 우리가 대화하는 것처럼 통신할 수 있지만, 항상 개통된 상태로 있는 것은 아니지.”

   윤혁과 루디아를 태운 우주선은 현재 교통 통신의 오지에 해당하는 영역 위주로 행로를 잡았으리라. 그렇기에 시간축을 비집고 거슬러 올라가도, 그렇게 함으로써 동일시간대에 존재하는 동일 개체가 생기더라도 정보 교류를 할 가능성이 없으니 규율에 위배되지 않을 것이다. 멜카드제윈은 자신의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인터갤럭틱 호가 현재 미개척 상태의 막힌 교통로를 사용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잘 닦인 회로가 아니라?”

   “그럴 거야. 카이 그 친구가 하려는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겠다만, 최대한의 효율을 내려면 그런 방식으로 행로를 설정해야 한다는 뜻이겠지.”

   타임머신 개념까지 고려해서 생각하려니 머리가 핑핑 도는 듯 복잡했다. 윤혁은 멜카드제윈의 추론들을 이해하기 위해 힘겹게 상상력과 추리력을 동원해야 했다. 정말로 동일시간대에 두 명 이상의 윤혁, 루디아가 존재하는 걸까.

   만일 그렇다면 동일개체간의 연합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가. 한 영혼을 공유하긴 하겠지? 그러면 영혼이란 존재는 시간축 바깥의 위치에 존재하는 걸까.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그 동일개체들이 하나의 개체처럼 보이려나? 그렇다면 카이젤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만약 동일시간대에 두 개체의 윤혁이 존재한다면, 그 두 개의 알트루즘 중 하나만이 인식되는 걸까. 아니면 둘 다일까?

   양자 역학보다도 복잡한 질문이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에라, 모르겠다.’

   한편 멜카드제윈은 자신의 근황을 알려주었다.

   “참고로 이쪽은 잘 지내고 있어.”

   그도 지난 번 헤어진 이후 거주지 행성을 여러 차례 옮겼다고 한다. 참고로 그의 특성을 활용해 행성혼을 변환시키는 프로젝트가 상당한 진척을 보인 덕에 인공적으로 지구혼 유사품을 구현하는 알고리즘이 80% 이상 완성되었단다. 멜카드제윈의 도움이 없이도, 이제는 초인이 아닌 우주 인류 출신 일반인만으로도 유사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단다.

   “덕분에 조만간 의무의 속박에서 벗어날 것 같아.”

   “잘됐네요.”

   “다 네 덕분이야.” 

   “제가요?”

   윤혁은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거렸고 루디아도 영문을 몰라 눈을 껌뻑거렸다.

   “아직 못 들었구나. 너희가 거쳐가는 행성마다 엄청나게 번창하고 있잖아. 카이가 나한테 자랑하던데. 심지어 동생 네가 밟은 행성뿐 아니라 그 인근 은하들로도 온갖 행운이 확산되고 있어.”

   “행운이요?”

   “행성 환경의 안정화는 물론 주민들의 의학적 상태, 경제적인 안정도, 문명의 안정적인 정착, 이종족들과의 평화 등 별의별 영역에서 운이 따른다나. 미신으로 생각하기에는 확률론적으로 말이 안 된단 말이지.”

   윤혁은 전에 그가 했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되새겼다. 그가 머무는 곳마다 축복이 스쳐 지나가리라는 계시를 들었던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그때는 의식하지 않고 넘어갔었는데 정말 사실이었다. 사소한 것 하나 약속을 어기시지 않는 주님의 신실함을 저도 모르게 간과하고 있음에 부끄러웠다.

   “나도 그 덕에 여유가 많이 생겼어. 나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줘.”

   “고마워요.”  

   연락이 끊기자마자 분신은 연기처럼 흩어졌다. 겔다는 윤혁과 루디아에게 멜카드제윈의 분신을 소환하는 녹색 구체를 양도하였다. 자기보다는 두 사람에 더 필요할 것이라면서.

   “충분히 부려 먹으세요. 그는 제법 유능한 사람이니까요.”

 

 

 

 

 

 

 

(다음 회차에서 계속)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
이전회

548회 아벨의 후예 Ch 32. 안내자 (1)
등록일 2025-11-26 | 조회수 10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등록일 | 조회수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