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71회 아벨의 후예 Ch 37. RS-월드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1.30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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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과 진, 킴벨리아는 지구 전체가 관찰되는 이곳, 거대한 외(外)부 차원인 사령탑 안에 당도했다. 카이젤 직속 3대 비서관인 데미안, 싱클레어, 룬이 고개를 숙여 그들을 맞았다.
“초인들은 전부 다 지구 바깥으로 내보냈습니까?”
침착한 평소 성격답지 않게 다급한 목소리로 에녹이 비서관들에게 질문했다.
“물론입니다, 부대표님.”
“현재 ‘제1 관제탑’에서는 네크로-슈퍼휴먼들의 소프트웨어를 조율하실 제페토께서, ‘제2 관제탑’에서는 인형 조종을 맡은 퍼펫마스터가 주둔 중입니다. 두 분만 제외하면 모든 초인이 지구를 떠난 상태입니다.”
“고로 규격 이상 정신력이 RS-월드 내에서 충돌할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이번 일과 관련되지 않은 인간들은 하늘도시로 잠시 대피시켰습니다. 다만, 대표님의 친족인 두 부부만 레이디의 권역으로 대피하셨습니다.”
보고를 받던 에녹은 마지막 첨언에 잠시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설마 위버멘쉬는 이번에도 레리엔의 개입을 염두에 둔 걸까?’
하루 동안은 비상사태를 대비해 자신이 지휘를 맡아야 했기에 다소 신경이 날카로워진 에녹이었다.
“주연 배우들의 준비 상태는?”
“점검 완료. 히어로들과 폰들은 경기 시작 전 미리 RS-월드에 끌어들였습니다. 이제 지구 전역에 RS-월드를 전개할 때 이레귤러들과 인간들과 좀비 유닛(네크로-슈퍼휴먼)들을 끌어들일 겁니다.”
레반이 재빨리 응수하여 에녹에게 보고했다.
“위버멘쉬께서는 상태가 어떻죠?”
“현재 얕은 잠에 드셨습니다. 그분의 수면이 심도 3에 당도하시면 본격적으로 필드가 전개될 예정입니다.”
카이젤이 잠든 상태에서는 에녹이 비상사태를 대비해 진두지휘해야 했다. 현재 지구 위에 다른 초인은 없고 관제탑에서 지그문트와 샤오만 일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사람도 필요했다. 상관의 의중을 누구보다 정확히 간파하는 자, 가장 충성심 좋은 신하인 에녹만큼 적임자는 없었다.
“기술 자문을 부탁합니다, 진 라흐블뤼크.”
“염려 놓으시죠.”
진이 자신감 있게 대답하였다. 에녹은 진에게 실시간으로 RS-월드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오류를 모니터링하고 해결하도록 지시했다. 대부분의 문제는 카이젤이 스스로 잠든 상태에서 해결하겠지만, 그래도 기술 보조자를 두는 편이 안전할성싶었다.
“킴벨리아 씨는 ‘포스트 RS-월드 시대’를 대비하시죠. 후폭풍으로 현실 세계에 추후 투사될 흐름의 영향력을 예측해 주시죠. 혹시라도 역기능이 발생하면 안 되니까요. 우리는 이번에 철저히 순기능으로서의 후폭풍만을 정제해서 취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부대표님.”
킴벨리아는 이번에도 예언자 역할을 맡았다.
RS-월드는 현실보다 높은 차원이다. 그런 만큼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추후에 현실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뮬레이션 우주의 실체화는 우스울 정도로.
그 여파로 조만간 초인의 초능력 제약도 풀릴 것이고 인간들의 능력 진화 속도도 달라지리라. 심지어 기계 문명과 이종족의 진화 속도도 변곡점을 맞이할 것이다. 나아가 사회 발전의 패턴도 RS-월드의 혁명적 영향력을 직접 맞을 예정이다. 그런 만큼 아무래도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후폭풍을 조정하려면 정확한 분석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에녹은 우주 저편에 도사리는 거대한 물체를 응시했다.
‘저 괴물의 힘에 잘못 휘말리면 안된다.’
무려 QUASAR-II 한 기가 제로원과 사령탑을 잇는 직선 방향에 놓인 채 수억 광년 거리에 대기 중이었다. 에녹으로서는 아직 QUASAR-II의 권능이 너무도 부담되었다. Quasar-I 조차도 그 엄청난 출력 때문에 아직 현실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마당에 전작(前作)을 벌레 취급할 만한 괴물인 QUASAR-II라니.
‘카이가 이대로 무사히 잠들어 아자토스(Azathoth)로 현현하면 그의 환골탈태한 육신과 개화된 이데아가 함께 QUASAR-II와 공명하겠지. 그러면 지구 위에는 실제 상위 차원이 실체 그대로 펼쳐지겠지.’
문자 그대로 ‘무한의 세계’가 나타난다. 기대되면서도 무서운 일이었다.
*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암전하게 이야기를 듣던 성한은 화들짝 놀라며 언성을 높였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레리엔은 그의 격양된 반응을 통해 얼마나 크로스솔져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깊은지를 엿볼 수 있었다. 친자식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의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성한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녀가 바꿔줄 수 있는 건 없었다.
“히어로들은 지금 이미 모두 RS-월드에 흡수당했습니다.”
“무슨 목적으로요?”
“잘 모릅니다. 이것도 그나마 제 제자가 몰래 귀띔해 주었기에 알게 된 겁니다.”
“그럴 수가!”
성한은 순간 자신이 부지 중에 하나님께 큰 죄를 지어 징계라도 받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자신이 낳은 아이가 세계를 뒤집어엎는 것도 모자라서 자신이 거둬드린 아이들을 폭풍 속에 집어넣다니. 지금까지는 크로스솔져들이 위험한 임무에 나서더라도 안전히 돌아오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괜찮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자칫 아이들이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과 염려가 밀려왔다.
이 와중에 홀로 침착한 아나스타샤는 레리엔에게 질문했다.
“히어로, 크로스솔져, 지구의 새 주민들, 이들 말고는 주연 배우가 더 없습니까?”
“내 생각에는 뭔가가 더 숨어있습니다. 카이는 꽤 오래전부터 초인들과 더불어 많은 프로젝트를 계획해 왔거든요. 나도 그걸 속속들이 파악하지는 못해요. 한 가지 추측하는 바를 말해주자면, 1차 경합 때 등장했던 그 의문의 보조인원들……,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바로 카이가 만들어낸 회심의 역작이 아닐까 싶군요.”
“그것들은 클론입니까? 혹은 인공생명체입니까?”
“단순 클론이었으면 굳이 카이가 만들 필요도 없었겠죠. 뭔가가 더 있어요.”
아나스타샤는 또 한 가지 꺼림직한 부분을 짚었다.
“초인들이 개입하지는 않을까요?”
“이미 그들은 지금 이 행성을 떠났어요. 남아있는 자는 두 심판관뿐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자들이에요. 이벨리아와 자웅을 겨루었던 2세대 초인 비공식 최강자, 샤오 여사님, 그리고 신국을 멸망시키고 에우로페 제국을 세웠던 지그문트 씨입니다. 둘 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아나스타샤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물었다.
“하지만 레이디께서라면 가능하시겠죠.”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달라요. 솔직히 이번에는 저도 자신하지 못하겠군요.”
조용히 듣기만 하던 레우벤이 끼어들었다.
“얘야, 혹시라도 이곳 주민들이 도움을 보탤 일은 없겠니?”
“불가능해요, 아빠. 이번 RS-월드는 각 종류의 배우를 입장시키는 방법이 각기 달라요. 히어로, 카이의 인공 작품들, 경합 후보자들이 제각기 다른 경로로 입장할 예정이죠. 나머지 일반인이 들어가려면 새로운 지구 주민들과 함께 들어와야 하는데 그 경로는 준-초인급의 정신력이 없으면 견디지 못해요.”
이것이 바로 초인들이 굳이 자기 가족을 RS-월드 권역 밖의 외부로 대피시킨 이유였다.
“막을 방도는 없어요. 후보자와 보조인원들의 운명은 카이 손에 달려있어요.”
레리엔은 부질없는 거짓 희망을 깨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모두가 낙담하던 중, 아나스타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초인에 준하는 급이라면 들어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그 순간 자리에 모인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
시간이 흘러 지구의 자전은 예정된 배열에 이르렀다. 하와이는 태양에서 가장 먼 쪽을 바라보아 자정이 되었고, 그 반대 경도에 놓인 이스라엘은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정오가 되었다. 이 두 땅은 커버넌트의 결계 작용으로 인해 RS-월드에 휘말리지 않을 예정이었다.
참고로 현재 두 땅이 지구의 정반대 쪽에 놓이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원래는 완전한 반대 축은 아니었지만, 카이젤이 제로원을 건축하여 아엘브론과 레뮬로스를 바다에 세우면서 지각 재배열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하와이가 원래 위치에서 살짝 이동하는 바람에 이스라엘과는 양극단을 이루게 된 것이다.
여하튼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였고 준비는 완료되었다. 태양을 개조해서 만든 요새인 아폴로(Apollo)와 그 속에 봉인된 태양의 천체혼. 지구를 개조해서 만든 요새인 제로원과 그 속에 담긴 지구혼. 커버넌트로 인한 면제 지역인 이스라엘과 중립지대. 에녹과 초인들이 대기 중인 초차원 사령탑. 제페토와 퍼펫마스터가 머무는 두 관제탑. 에너지 공급원인 저 너머의 QUASAR-II. 그리고 꿈으로 세상을 생성해 내는 존재 아자토스, 곧 카이젤 라흐블뤼크. 퍼즐들이 정방향으로 배열되자 시계 침은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데아(IDEA), 1차 개화(改化) 100% 완료.}
카이젤의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가 꽃봉오리를 틔웠다.
{이데아(IDEA)가 상위 차원으로 도약할 예정입니다.}
잠든 카이젤은 이제 RS-월드라는 이름의 세계 그 자체가 되었다. 그의 혼과 정신은 거대한 힘을 내뿜으면서 지구혼 본체와 하나로 융합하였다.
{소스-홀로그래피 축 동기화.}
그의 정신은 통상 공간보다 위 단계에 있는 영역, ‘소스’에 접속했다. 그러자 해당 소스에서 파생된 모든 홀로그래피 차원들이 파노라마처럼 한꺼번에 현실 곧 통상 공간과 겹쳐졌다.
지금껏 인류가 발견한 홀로그래피 시블링들은 기껏해야 좌표축 상의 몇 개의 좌표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스가 만들어낸 모든 자녀들이 새겨진 좌표축이 통째로 활성화되었다. 전에는 한두 개의 좌표에만 닿았다면 이번에는 축 위의 모든 실수(實數)가 닿았다. 그 반응으로 무수히 많은 특수 세계들이 현실 위로 발현되었다. 물리 법칙도, 인과율도 현실과는 상이한 각종 세계들이.
{이어서 리얼리티-시뮬레이션 축도 동기화.}
이번에는 더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 아자토스의 정신체가 현실보다 더 높은 현실에서 깨어났다. 그는 다시금 그보다 더 높은 현실에서 깨어났다. 이 과정을 무수히 반복했다. 자물쇠로 잠금 되었던 몽중몽(夢中夢)의 연쇄를 차례로 깨부수는 듯 앞으로 전진했다.
그가 한 단계씩 깨어날 때마다 원래 그가 놓여있던 세계는 액자 속의 작은 세계로 전락하였다. 액자들의 나열은 상위에서 하위로 이어지는 직렬연결 패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액자 옆에 동등한 단계의 액자가 평행적으로 무수히 진열된 병렬연결도 공존하였다. 말하자면 상위 현실 안에 수많은 평행 하위 현실들이 공존하는 식이었다. 그 많은 평행체들이 서로 겹치고 일체화되었다.
{RS-월드, 전면 전개.}
관제탑에 앉은 지그문트는 격변하는 지구의 모습을 냉담히 지켜보았다.
“슬슬 시작이군. 이 몸도 움직여야겠어.”
그는 수백 기의 네크로-슈퍼휴먼들에게 명령어를 전송했다.
“입장해라.”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인조인간들이 일제히 진격했다. 그들은 연기가 흐드러지듯 스며들어 상위 차원에 흡수되었다.
{네크로-슈퍼휴먼 전 기체, 퍼펫마스터와 정신을 연결합니다.}
{혼 공명 시작.}
다른 관제탑에 좌정한 샤오 윤윤은 네크로-슈퍼휴먼들에게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실을 연결하여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그녀의 맹렬한 악의가 실을 타고 인형들에게 흘러 들어갔다. 이내 상위 차원에 당도한 인형들은 무수히 많은 화신들로 분지되어 각 세계의 일부로 스며들었다 되었다.
{지구 인간들이여, 그대들의 역량을 평가받을 때가 되었다. 그대들이 선택받은 우수한 존재임을 증명하라. 끝없이 진화하는 인외의 존재들과 경쟁을 펼쳐 인간의 존엄성과 위대함을 증명하라. 아울러 인간의 근원적 한계를 뛰어넘어 과거의 망령들을 뛰어넘어라. 전 인류의 초인화가 가능함을 입증하라.}
통일시스템은 1등 시민들의 뇌리에 일제히 텔레파시를 주입했다. 이미 그들도 여러 차례 사전 공지를 받았고 충분히 마음을 준비해 왔기에 누구도 당황하는 이가 없었다. 1등 시민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초현실 시나리오 속으로 다이빙했다.
{70인의 생존 후보자들을 RS-월드의 중심축인 ‘엘리베이터’로 이동시킵니다.}
스테판을 비롯한 1차 경합에 합격한 이레귤러들은 시스템의 메시지를 듣고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런 폭탄을 던지다니. 과연 인류연합답다는 감상이 들었다. 잠시 후, 그들이 경합을 벌이는 데 필요한 여러 기초 지식과 정보들이 뇌리로 이식되었다.
-{“다들 반가워.”}
눈을 떴을 때 칠십 명은 정체불명의 공간 위에 새겨진 다차원 원 안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원의 둘레에는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840명의 갑주 입은 괴한들이 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인지 체계가 달라진 바람에 현실의 3차원 공간에서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물론 후보자들 자신의 실존 양식도 달라져 있음을 발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폰이다.”}
-{“왕의 게임에 참여한 걸 환영한다, 인간들아.”}
-{“자, 그럼 본 게임을 시작하지, 이레귤러들아.”}
-{“부디 우릴 즐겁게 해줘.”}
-{“너희도, 우리도, 각자 맡겨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자고.”}
-{“한 번 너희의 능력과 자격을 증명해 봐.”}
폰들의 조소 가득한 선전포고, 수백 종류 색채의 음색을 입은 굉음들이 차원과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RS-월드 내부에서 메아리치며 시끄럽고 거친 공명음의 교향곡을 자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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