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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70회 아벨의 후예 Ch 37. RS-월드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1.26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그녀는 알기 쉽게 지식 수준을 재조정해서 설명해주었다. 덕분에 청중은 시뮬레이션 우주와 홀로그래피 우주라는 복잡다단한 개념을 교양 수준으로나마 배우게 되었다. 초보자들도 이제 우주 위의 상위 차원이 ‘벌크-멤브레인 축(Bulk-membrane axis)’, ‘소스-홀로그래피 축’, ‘리얼리티-시뮬레이션 축’의 3축 개념으로 전개됨을 배웠다.

   “아직 시뮬레이션 우주에 직접 들어가 보신 분은 없으시겠죠.”

   이번에도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레리엔은 인류가 디자인한 각종 시뮬레이션 우주에 대해, 1세대부터 7세대까지 차례차례 정보를 알려주었다. 청중은 차차 정신이 멍해졌다. 판타지 소설을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들은 끝까지 경청하였다.

   “내일 일어날 일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레리엔은 이미 진에게서 카이젤이 꾸미고 있는 계획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들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는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도 어렴풋이 언젠가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고 이론상으로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일찍 다가올 줄은 아직 예측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하와이와 이스라엘의 경우 미리 커버넌트를 기반으로 결계를 쳐두었기에 카이젤의 장난질에 휘말리지 않으리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외의 땅들은 이제 제로원과 함께 완전히 다른 차원에 빨려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녀는 이 개념을 어떻게 해야 쉽게 설명할지 난감함을 느꼈다.

   “놀라지 말아주세요. 내일로 넘어가는 자정, 이 섬과 이스라엘을 제외한 지구 전체에 기괴한 상위 차원이 펼쳐질 것입니다. 말하자면 ‘8세대 시뮬레이션 우주’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회의석 곳곳에서 술렁거림과 웅성거림이 일었다.

   “사실 시뮬레이션 우주라는 말도 어폐가 있군요. S-unvs란 리얼리티-시뮬레이션 축에서 하위 좌표에 속한 계, 곧 현실보다 하위 차원에 속한 ‘환상계’를 가공해 만든 작품이니까요. 하지만 이번 8세대는 그 개념이 다릅니다.”

   청중은 숨을 죽인 채 레리엔의 다음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내일 지구 위에 펼쳐질 세계의 본질은 리얼리티(reality)와 소스(Source)입니다. 통상 공간, 즉 우리 우주보다 높은 곳. 우리 우주라는 홀로그래피를 발원한 근원인 소스, 그리고 통상 공간이라는 꿈을 생성한 생시(生時)인 리얼리티, 두 상위 계가 우리 눈 앞에 열릴 겁니다.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던 세상이 펼쳐지겠죠.”

   침묵이 일었다. 청중석 전체에 어떤 우주적 공포감(cosmic horror)이 확산되었다. 침착함을 유지한 레리엔과 아나스타샤를 제외하고는 그 자리의 모두가 실존적 두려움으로 인해 평정심을 잃었다.

 

 

 

 

 

 

 

*

 

 

 

 

 

   RS-월드(Reality&Source-World).

   환상계(喚想界)와는 정반대 개념으로 현실보다 상위계에 놓여있는 영역.

   근진계(根眞界)라고 불리는 곳.

   “과연 판도라의 상자는 위대한 해방이 될 수 있으려나.”

   카이젤은 자신의 계획이 펼쳐지는 것을 천천히 음미했다. 사실 인류는 나름대로 상위 차원 정복 사업을 이미 시작했다. 허나 어디까지나 대부분은 멤브레인에서 벌크 방향으로 나아가는 진출뿐이었다. 대략 99%가 벌크-멤브레인 축을 따라 이뤄진 상위계 진출이었고 리얼리티 축이나 소스 축을 따라 나아간 진출은 약 1%에 불과했다. 카이젤은 지금껏 이를 불만족스럽게 여겼다.

   “우리는 더 위대한 존재로 각성할 수 있다.”

   그가 이렇게 애를 쓰는 이유는 인간의 혼을 실체 그대로 개화하려는 계획과 관련이 깊었다.

   인간의 혼과 육체, 이 둘의 관계를 비유하자면 마치 거대한 공의 한 점에서 실 한 가닥이 뻗어나와 바닥 면의 자그마한 점에 맞닿은 모습과 비슷하다. 여기서 공은 혼(魂, soul)을 비유한 것이요, 가느다른 실은 상위 차원을 가로지르는 매질 채널로 혼과 육을 연결하는 고리다. 바닥의 자그마한 점은 우리 우주요, 그 점에 맞닿은 실의 접점은 인간의 육체를 빗댄 것이다.

   실상 인간의 본질적 능력의 대부분은 육체가 아닌, 저 위쪽 부분에 위치한 혼에 담겨 있다. 하지만 살아생전 물리계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그 거대한 잠재력의 티끌만큼의 부분도 다 사용하지 못한다. 그나마 초인쯤은 되어야 겨우 티끌만큼을 사용할 따름이다.

   핵심은 바로 혼과 육을 연결하는 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었다. 그런데 혼과 육을 연결하는 이 실의 주행 방향은 주목해볼만 했다. 이 방향 벡터는 물리계 내의 좌표학으로 해석하면 리얼리티-시뮬레이션 축이나 소스-홀로그래피 축과는 평행했다. 그러나 벌크-리얼리티 축과는 수직을 이루었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아무리 벌크-멤브레인 축을 따라 상위계로의 진출을 이룬다고 해도 그 개척은 인간의 혼이 위치한 차원으로 나아가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인간의 본질적 잠재력을 해방시키는 데는 유익이 없었다.

   그러므로 카이젤의 과제는 이것이었다. 어떻게든 소스-홀로그래피 축이나 리얼리티-시뮬레이션 축을 따라 상위계로 뻗어나가야 한다. 그래야 인간 본연의 능력에 걸린 리미터를 해제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태까지는 두 방향으로의 ‘위쪽 세계’ 접근이 어려웠다. 이 두 계열의 축을 따라서는 오직 아래쪽 방향 및 평행적인 이동만, 그나마도 제한적으로 허락되었다. 그 결과물이 S-unvs와 시블링 홀로그래피 차원의 개척이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유의미한 성취이긴 했다. 하지만.”

   카이젤의 야심은 고작 그 정도 수준의 발전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다. 그는 두 카테고리의 축들을 따라 위쪽 구역을 장악하기를 몹시 소원했다. 말하자면 그는 현실이라는 ‘이야깃속 세계’를 뚫고 나와 작가의 자리를 점령하고 싶었다. 또한 플라톤의 오랜 꿈처럼 그림자의 차원에서 튀어나와 음영을 자아내는 본체의 위치를 석권하고 싶었다.

   이는 비단 형이상학적인 야망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용적인 이유로도 그에게는 소스 계와 리얼리티 계로의 접근이 필요했다. 당장 인류가 최근 얻은 인공 권능인 초능력을 마음껏 사용하도록 그 근원적 제약을 깨부수려면 이 작업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했다.

   이 야심을 이루기 위해 각종 고난도의 연구가 수반되어야 했다. 대표적으로 쓰인 도구가 테서렉트 아키텍쳐였다. 이것은 개발된 뒤로도 거듭하여 더 높은 단계로 발전되고 개량되었다. 단순한 규모 확장이나 조직성의 개량뿐 아니라 본질적인 기술 혁명도 거쳤다.   

   카이젤은 테서렉트 아키텍쳐들을 수없이 건설하고 성장시켰다. 그의 숙원인 ‘바인(vine)’을 담아낼 합당한 그릇이 되도록 빚었다. 이 과정에서 카이젤은 리얼리티와 소스라는 본질계에 접근할 방도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그는 이 소득을 기초 삼아 숱한 연구를 수행하였고 머릿속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고실험을 거쳤다. 그리고 그 끈질긴 집념은 마침내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마침내 오늘 그는 ‘RS-월드’를 전개할 실질적 기술력을 획득했다.

 

   “첫 시연이 괜찮아야 할 텐데. 뭐든 첫 단추가 잘 맞아야 하니까.”

   욕조에서 몸을 늘어뜨린 그는 데이터 최종 점검을 마친 후, 잠깐 시선을 아래쪽으로 떨어뜨렸다. 그의 심장이 놓인 가슴 중앙부가 보였다. 탄탄한 근육질의 맨가슴 위에 빛을 발하는 무형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네 개의 원이 동서남북 방향에 하나씩 그려져 있었다. 각 원의 중앙에는 동서남북을 알리는 알파벳이 있었다. 그리고 인접한 원끼리는 겹쳐져 있었는데 북과 남, 동과 서 사이에만 연결이 없었다.

 

 


 

 

   네 원은 인류연합이 구분해놓은 네 가지 형태의 정치 철학, 곧 북파, 서파, 동파, 남파를 의미했다. 이들은 오늘 모두 RS-월드라는 무대에서 철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되리라. 그리고 각 모서리와 원 안에는 RS-월드 첫 시연판에서 활약할 주연 배우들의 모형이 배치되었다.

   먼저, 카이젤은 북쪽 원의 중앙부에 자신의 클론솔져인 폰들을 비치하였다. 그가 문신 부위를 지그시 누르자 그 자리에 840명의 폰 각각을 상징하는 문양이 세밀히 새겨졌다. 이어서 이번에는 북쪽과 ‘동쪽’이 만나는 교집합 영역의 두 곡선 모서리를 슬며시 손톱으로 쓸었다.     그러자 북쪽에 가까운 모서리에 일반 히어로들을 나타내는 기호가 배치되었다. 반면 동쪽에 더 가까운 모서리에는 다른 히어로들과 구분되는 크로스솔져들의 기호가 배치되었다.

   이번에는 ‘서쪽’ 원과 북쪽 원이 겹치는 교집합 영역 차례였다. 이 자리에는 현 지구의 새 거주자로 승격된 ‘선택받은 우주 인류 출신’이 놓였다. 이들은 크게 ‘능력과 지력’을 중시하는 무리와 ‘화합과 인류애’를 중시하는 무리로 둘로 나뉘었다. 전자는 북쪽에 가까운 모서리에, 후자는 서쪽에 가까운 모서리에 배치되었다.

   이제는 ‘남쪽’ 차례였다. 남쪽과 서쪽, 남쪽과 동쪽이 만나는 영역의 네 개의 모서리는 이번 경합의 후보자들 차지였다. 본래 혼돈과 변수와 불확실성을 상징하는 남파인 만큼, 엘 피어슨의 영향이 묻은 이레귤러들에게는 딱 걸맞는 위치였다.

   카이젤은 지난번 1차 경합 때 관찰했던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레귤러들을 대략적으로 네 부류로 나누었다. 그는 자기 동생 윤혁을 관찰했던 것처럼 후보자들을 볼 때도 자신의 초자연적인 인식 능력을 발휘해 영적 속성을 정확히 분류해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쪽 원의 중앙부에는 지그문트와 자신이 준비해놓은 네크로-슈퍼휴먼들이 놓였다. 이들은 RS-월드에 진입하면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것이다. 한 가지 역할은 준-초인 급으로 성장한 일반인들과 경합을 벌일 맞수로서 2세대 초인의 노릇을 해주는 역할극. 다른 한 역할은 인류와 경쟁할 인외(人外)의 존재 노릇을 해주는 것. 네크로-슈퍼휴먼도 인공물이라 인간보다는 결여된 면이 분명 있긴 하겠지만, 샤오의 조종 솜씨가 이런 한계를 보완해주리라.

   가슴팍에 새겨진 빛의 문신 위에 이번 촌극에 참여할 배우들의 암호 코드가 일일이 새겨졌다. 프로젝트 진행을 확인한 카이젤은 몸의 긴장감을 이완한 채 물속에 몸을 맡겼다. 따스한 목욕물이 몸을 휘감자 잠이 몰려왔다. 그는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그 시점과 동시에 그가 있던 공간부터 시작해 제로원의 차원 재질이 개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곳은 휴식터가 아닌, 프로젝트 개시를 위한 그라운드 제로였던 것이다.

   {코드네임 수여 : 아자토스(Azathoth)}

   통일시스템이 주인인 카이젤에게 미리 준비해둔 코드네임을 이식해드렸다.

   {3대째 위버멘쉬를 ‘아자토스’로 인식.}

   {현재 특수 수면 심도 1에 도달. 준비 단계 동안 1시간 당 1단계씩 증량 예정.}

   {이데아의 제 1차 개화(改化), 개시. 현 진행률 30%.}

   {12시간 후 RS-월드를 전면 전개합니다.}

   이내 카이젤의 무시무시할 정도로 거대한 정신력이 제로원부터 시작해서 지구를 서서히 침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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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진짜 적그리스도가 등장하더라도 쟤(주인공)보다는 덜 미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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