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74회 아벨의 후예 Ch 38. 배우,스토리,테마,세계관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2.09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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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관제탑에서 네크로-슈퍼휴먼들의 조종을 맡던 샤오 윤윤은 익숙한 기운을 느끼고는 재빨리 반사적으로 초능력을 발산하여 상대의 힘을 상쇄해내었다. 최상위 초인이라지만 샤오도 ‘커버넌트’에 관해서는 그리 아는 정보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낯선 속성의 힘인 커버넌트가 자신을 공략하려 하자 별안간 후퇴하게 되었다. 다행인지 이 손님은 U-society 출신에서 쫓겨난 인간인지라 초능력을 사용하지는 못했다. 샤오는 권능의 격차에 빌붙어 커버넌트의 기이한 힘을 상쇄해내었다.
“인사치고 너무 과격한 거 아냐, 우리 레리엔양.”
“오랜만이시네요, 샤오 여사님.”
레리엔은 금발의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인사하였다.
‘어떻게 들어왔지? 이번에는 저번처럼 아바타가 아니라 직접 왔다.’
관제탑으로의 외부인 침투. 간단한 일은 아니다만 최상위 초인 이상의 실력자라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아무래도 정황상 RS-월드가 온 지구에 덮이는 과정에서 벌어진 시공간 개념 개변을 틈탄 듯하다. 자기 보금자리를 떠나지 않기로 유명한 레이디께서 직접 걸어서 나왔을 리는 없고, 아마 초차원 전개의 틈새를 발견하여 해킹을 통해 차원 이동을 한 모양이다.
‘과연 제법이군.’
샤오는 신속히 상급 지휘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레리엔은 기다렸다는 듯이 텔레파시로 통신망마저 가로챘다.
“에녹, 나다, 레리엔.”
“레리엔, 네가 감히 위버멘쉬의 일을 방해하려는 건가.”
“카이의 충견 노릇은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나. 넌 원래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이잖아. 다짜고짜 징계를 내리기 전에 내 제안 좀 먼저 들어보는 게 어때?”
“허튼소리로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면 별로 성공적이진 못하군. 당장 제2 관제탑에서 나와라. 커버넌트의 권한만을 믿고 덤빈 거라면 네 오판이다.”
텔레파시를 통해 에녹의 묵직하고 냉정한 경고음이 전해졌다.
“알아, 너에게도 같은 계열의 커버넌트가 있으니 소용 없겠지.”
“무슨 목적으로 침투했지?”
“난 RS-월드에 훼방 놓을 생각은 없어. 오히려 반대야. 널 도와주러 왔어.”
미심쩍은 에녹은 레리엔의 의중을 간파하려 신중히 고심하였다.
“정직하게 네 의도를 밝혀라.”
“진심이야. 설마 내가 인류에게 위해라도 가할까? 난 단지 카이가 계산하지 못한 추가 변수를 올바르게 채워 넣어줌으로써 RS-월드에서 장차 파생될 현실 후폭풍을 좋은 방향으로 재조정하려는 것뿐이야. 나중엔 틀림없이 내게 감사할걸.”
짧은 찰나 동안 에녹과 레리엔 사이에서 수많은 토론이 오갔다. 방대한 대화가 두 사람의 텔레파시를 통해서 빛 이상의 속도로 순환하였다. 결국, 설득력에서 밀려난 에녹이 불평스러운 어투로 응수했다.
“계속 주시하겠다.”
“……고마워, 에녹.”
가까스로 통과한 레리엔은 아직도 대치 중이던 샤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의 권능이 관제탑 차원 내부에서 줄다리기 중이었다. 단 한 치의 계산 오차만으로도 밀려날 위험한 대립 구도. 두 사람의 초월적 연산 대결은 매우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지혜로는 레리엔이 우위이나 초월적 연산력으로는 초지능체 덕분에 샤오가 우위였다. 권능으로 보면 커버넌트와 초능력이 완전히 다른 속성이었기에 힘의 용량 차이는 큰 의미가 없었다. 양팔 저울은 얼추 균형을 이루었다.
“이런, 나는 네가 지그문트 쪽으로 갈 줄 알았는데? 그분도 그렇게 말하셨고.”
샤오는 의외라는 어투로 레리엔에게 말했다.
“그래요? 역시 카이는 저를 잘 아네요. 원래 저도 그러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왜 느닷없이 이쪽으로 향방을 틀었지?”
“글쎄요. 당초와 계획이 조금 달라졌다고나 할까요.”
원래 레리엔은 제1 관제탑으로 가서 지그문트와 담판을 벌일 작정이었다. 카이젤의 RS-월드에서 발생할 후폭풍의 충격을 완화하려면 그편이 전략적으로 나았다. 하지만, 원탁에서 회의를 마친 후, 레리엔은 심경 변화를 겪었다. 바로 그 변화 때문에 레리엔은 전략을 바꾸는 변덕을 부렸다. RS-월드의 후폭풍을 줄이려는 무익한 시도를 관두고 대신에 그 후폭풍을 선한 방향으로 틀어보자.
사실 이번 사건이 있기 얼마 전, 성운은 레리엔에게 새로운 방향의 정치 철학인 ‘동파(東派)’의 잠재력을 넌지시 제시하였다. 성경적 기독교적 세계관. 티아라의 방식인 ‘종교적 화합과 인류애’가 아닌, 진짜배기 그리스도인들을 이용해 인류의 정치 철학을 재조정하고 수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녀는 성운의 실험 데이터를 보고 놀랐다. 레리엔의 혜안은 실험을 직접 해 본 당사자인 성운보다 더 먼 곳을 내다보는 것을 가능케 했다. 그녀는 전에도 기독교 철학을 모르지는 않았다. 애초에 레리엔은 이미 인류 역사상 존재하는 모든 학문에 통달해있었으니까. 텍스트로써의 성경도 모두 알았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권능을 체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아빠도, 강윤혁군도 그렇고, 루디도 그렇고, 섬에 계신 분들도……, 게다가 강성한씨가 거둬드린 그 히어로들과 이레귤러들까지……. 이번에는 Upol에서 벌어진 개혁 운동까지인가…….’
그녀는 진지하게 그 보이지 않는 권능의 가능성을 눈여겨보았다. 성운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열매를 기회주의적으로 이용하려는 속셈은 아니었다. 그녀는 진지하게 마음을 열고 그 가치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동파(東派), 곧 기존 세계관과 완전히 다른 원리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 인류의 존속과 발전, 나아가 더 위대한 선을 이룩하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했다.
그때부터 레리엔은 북남서 세 방향과 안정적인 균형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Upol 전역에서 벌어지는 종교개혁과 부흥 운동을 현재진행형으로 정확히 분석했다. 또한 스스로 경전과 서적들도 탐구했다. 그리고 현지에서 활약 중인 크로스솔져들과 이레귤러들의 준동을 주시했다.
하지만 RS-월드의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그녀는 내심 자포자기하였다. RS-월드는 시뮬레이션 우주와는 달리 장차 현실 그 자체에 대격변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는 북파, 서파, 남파의 철학은 이미 세팅되어 있다. 세 권능은 경쟁을 벌이면서 최적의 타협점을 찾게 되리라. 그리고 RS-월드 안에서 벌어진 변화들은 ‘후폭풍’이라는 방식으로 현실 속에 반영되어 그대로 융합하리라.
‘그러면 동쪽 세계관은 아예 발을 디딜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안타깝지만 그녀로서도 그 흐름을 막을만한 뚜렷한 방도는 생각나지 않았다. 사실 그랬기에 그녀로서는 그저 못 먹는 감에 심술부리는 의미로 카이젤의 계획에 약간의 흠집만 내고 적당히 물러설 작정이었다.
어제 회의 전까지는. 이제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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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 레리엔이 RS-월드의 진짜 중요한 의의인 ‘후폭풍’ 현상에 대해서 알려주었을 때, 아나스타샤는 한 가지 방책을 제시했다. 그녀는 자신도 지구의 1등 시민들과 함께 RS-월드 안으로 들어가보겠노라고 말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그 돌발적인 선언에 당황했으나 아나스타샤는 침착하게 해명했다.
“현재의 지구 시민, 즉 ‘1등 시민’으로 선발되는 조건, 그 조건은 ‘초인은 아니되 그에 근접한 수준의 일반인’입니다. 만일 그 조건이 RS-월드 입장 조건과 동일한 것이라면 제게도 해당 사항이 있습니다. 저는 3세대의 반쪽 초인이니까요.”
그러자 누군가가 그 안에 들어가서 무엇을 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간단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의무가 이미 있잖습니까.”
“의무라면요?”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의 임무(마 5:13-17)’ 말입니다.”
누구에게도 잘 알려진 가르침이었다. 다들 일제히 눈을 크게 뜨고 주목하였다.
“레이디의 말씀대로라면, RS-월드란 ‘더 높은 현실’이자 ‘더 높은 근원’입니다. 즉 그곳에서 발원한 멀티버스, 패러렐 월드들의 내부에 심어진 ‘세계관’과 ‘테마’와 ‘스토리’는 곧 장차 현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 말인즉 RS-월드에서 공의와 사랑의 가치가 무너진다면 이곳도 비슷한 영향을 받겠죠. 그렇기에 빛과 소금의 임무를 맡은 자들이 나서서 RS-월드에 침투해 타락을 막아야 합니다.”
아나스타샤는 빛과 소금의 의미를 자세히 일러주었다.
빛이란 생명의 근원이자 원천, 곧 진리이다. 이는 복음을 통한 개인과 공동체의 영혼 구원을 상징한다. 한 영혼이 성령님의 간섭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죄악에서 놓여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 시민이 되는 일. 이것이 빛의 권능이다. 그렇게 빛을 머금은 영혼은 자기 자신을 반사체로 삼아 주의 영광을 반사해 다른 영혼에게도 복음의 빛을 심어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한편 소금이란 부패를 막는 원천이다. 인간 세계와 사회에 횡행하는 그릇됨, 악, 반역, 하나님을 향한 대적, 타락의 풍조를 제어하고 책망하는 장치이다. 나아가 하나님께 대적하는 세상과 권세자들을 향해 엄중한 경종을 울리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른바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발생하는 잘못들을 바로잡는 성경적 개혁이다.
“하지만 우리가 개혁을 시도한들 세상이 바뀌기나 하겠습니까?”
누군가는 정의 추구가 과연 이 땅에서 가능키나 하냐면서 반문했다.
“물론 그렇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세상을 질책해도 그들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희가 가만히 앉아서 포기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공의를 바로잡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합니다. 그것이 소금의 사명입니다.”
그녀는 ‘복음의 전파’와 ‘개혁’은 반드시 동전의 양면처럼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나아가 이런 원리는 RS-월드에서도 마찬가지이리라고 설명했다. RS-월드 안에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여기는 ‘십자가의 도(고전 1:18)’를 드러내어 그곳에 성령님의 권능으로 거대한 대폭발을 일으킬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저희는 그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잖습니까?”
유대인 지도자 중 하나가 질문했다.
“네, 그래서 RS-월드에 입장하는 프로세스는 제가 책임을 짊어지겠습니다. 하지만 저 혼자서 복음 사역을 감당하기 무리입니다. 제게 동지들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여러분들 같은 이들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어떻게 도우면 되겠습니까?”
“한 가지 수가 있습니다.”
아나스타샤는 레리엔에게 살짝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부탁드립니다.”
“설마 당신!”
“제 생각에는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레이디시여.”
“설마 이런 무모한 계략을 도와주리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겠죠? 그 방법을 쓰면 저 사람들이 받아야 할 부담까지 당신에게 돌아갑니다. 고작 그런 일에 이런 수고를 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군요.”
레리엔은 고개를 내저으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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