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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97회 아벨의 후예 Ch 44. 노화와 불로불사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4.13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다행히 하늘도시에서 초기 투입된 1세대 비시민은 그나마 지난 1회차에서의 일생을 과거로서 소유하고 있다. 그 추억에라도 잠길 수 있다면 좋았으련만. 현실 속에서는 당장 인간다움을 제한당한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이전 세상에서의 추억으로 버틸 수 있다면 조금은 나았으리라.

   문제는 이마저도 빼앗겨버림에 있었다. 기억의 강제적 상실 때문이었다.

   “우리 처음 ‘에고’와 마주했을 때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 기억하지?”

   윤혁이 루디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응, 나도 기억해.”

   “그들이 자신들을 가리켜 ‘인류 종족 단위’의 ‘자아 기제 처리’를 수행하는 수호자라고 했었지. 인간들의 기억을 개체 단위가 아닌 종족 단위로 재조정했다고 했었어. 그때 그 말 듣고는 사람들이 복음을 잊어버리는 부분만 걱정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이상의 문제였어.”

   윤혁은 에고가 남긴 말 속에서 또 하나의 위험성을 발견했다.

   어쩌면 ‘인류 단위 자아 처리 기제’를 시행하는 목적 가운데는 신세대와 구세대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포함되지 않았을까. 연륜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어른과 아이의 구별을 완전히 해체한 뒤 오로지 실력과 자질만으로 한 개체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무서운 계획. 그렇게 되면 가정이나 가족이라는 개념은 무의미해진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길인 동시에 가정을 없애는 지름길인 셈이다.

   “네 말이 맞아.”

   루디아는 어린 시절 마을 어른들이 자신들의 지난 추억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한 인간 속에 축적된 세월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바르게 깨우쳤다.

   분명히 외계행성들에 거하는 1세대 비시민들은 유대인 동포 어르신들보다도 훨씬 더 긴 시간을 존재해 온 자들이다. 그런 그들의 귀중한 기억과 체험 및 그 속에 축적된 정서, 곧 인간의 내면을 구성하는 퍼즐들을 ‘종족 경영’이라는 미명하에 ‘통합적인 정신체’가 제멋대로 처리한다는 게 합당한 말일까. 네트워크 프로그램이 각 컴퓨터의 데이터를 취합해서 조작하는 행태와 무엇이 다른가. 이것이 인간의 존엄을 다루는 태도라고 볼 수는 없으리라.

   “인생이 쌓아온 시간이란 결코 데이터 따위로 환원되지 않아.”

   루디아가 결연하게 말했다.

   “그래, 그리고 인간의 영혼 또한 ‘축적된 정보’ 따위가 아니지.”

   “그리고 우리의 본질은 우리의 의식이나 인지능력으로 국한되지도 않아.”

   그녀는 어르신 중에서 평생 예슈아를 신실히 섬기다가 몸을 다치거나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신앙생활조차 하지 못하게 된 분들도 더러는 보아왔다. 과연 그렇다고 해서 주님도 그들을 잊으셨을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순한 인지능력이나 의식을 넘어선 숭고한 무언가가 진정한 인간의 실체라고 믿었다. 즉 영혼의 존재와 그 가치를 믿었다.

   “외계행성들에도 비슷한 분들이 많겠지. 하늘도시에서 부흥이 일어났을 때 주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제법 많았을 거야. 그리고 우리 여행의 막바지에 벌어졌던 그 사건으로 인해서 동면 중에 주님을 알게 된 이들도 있겠지.

   그랬던 그들이 ‘인류 자아 처리 기제’로 인해 모조리 기억을 삭제당했어. 단순히 노화되었다가 급격히 회춘한 영향으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신 간섭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지는 건 분명해.”

   “만일 그렇다면 꼭 되찾아 줘야 해. 그분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었다면 설령 지금은 기억의 삭제로 주님을 잊어버렸다고 해도 반드시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기억을 되찾아 주실 거야.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을 잊지 않고 챙겨주실 거야.”

   루디아는 윤혁에게 위안의 말을 확고히 전해주었다.

   “그래, 그리고 비단 신앙적인 기억뿐만이 아니라 모든 게 중요해. 그들이 쌓아온 1회차 인생의 시간도, 후손들과 함께 나눠온 2회차의 시간도 모두 소중한 경험이야. 그런 기억들이 데이터마냥 중앙의 관리자에게 처리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돼. 각 사람이 자신이 쌓은 기억 가운데서 가치를 발견하고 충만한 감정을 느끼도록 회복시켜 줘야 해.”

   윤혁도 굳건한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결의하며 다짐했다.

 

   문득 그는 이 모든 사태의 근원인 누군가를 향해 생각이 옮겨졌다.

   “우리 형은 네가 말했던 ‘늙어가는 것’의 가치가 싫었던 모양이야. 아마 그렇기 때문에 몸의 쇠퇴를 거부한 채 극복하려고 했겠지.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수십만 년은 젊게 살 인간이 구태여 불로불사의 몸을 쟁취한 걸 보면 말야.

   그 사람은 원래 강함의 결정체라 그런지 약함과는 거리가 멀어. 권력으로든 지력으로든 신체로든 외모로든. 그래서 본인도 더 강해지기만을 원할 뿐 약해짐의 요소는 배척하고 싶었겠지. 세월이 주는 ‘성장’이라는 선물만을 취한 채 다른 한 선물은 의도적으로 배제하였어.”

   나아가 그는 자기 자신만 불로불사가 되는 걸로 그치지 않고 만인에게도 그 기회를 베풀었다.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어쩌면 그는 인류를 우주를 좀 먹는 영원한 암세포로 만들고 싶었나 봐.”

   “…….”

   “너는 몰랐겠지만, 사실 그 사람, 타임필드 속에서 무려 수만 년을 살아왔대. 어느 순간부터는 시간을 세지도 않았다니까 어쩌면 수십만 년일지도 모르지. 태어난 연도를 기준으로는 30대이지만 그 영혼은 이미 고대의 오랜 존재처럼 되었어.

   그런데도 그 억겁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정말 조금도 늙지 않았어. 몸도, 외모도, 지능도, 오로지 성장하고 강해지며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기만 했지. 이건 마치 무엇과도 같냐면.”

윤혁은 차마 말하기가 무서웠는지 말끝을 흐렸다.

   “천사들……. 죽지도 않고 창세 때부터 살아온 그 존재들 같은 느낌이야. 형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 있지.”

   “윤혁아.”

   루디아가 보기에 윤혁은 매우 혼란스러워하는 모양새였다.

   “내가 처음 이 여정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 사람이 내민 질문에 답하지 못해서였어.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노화가 정말 주님의 선물이라면 그걸 극복해서는 안 되는 걸까. 노화를 극복할 기술, 그것도 부작용 없이 극복할 기술이 있다면 그걸 사용하는 게 맞는 걸까 금하는 게 맞는 걸까.”

   “너무 자책하지 마, 윤혁아. 이건 네 책임은 아니잖아.”

   “솔직히 난 조금 무서워. 형이 약해질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버림으로써 금지된 생명나무 열매를 제멋대로 먹어버린 격이 된 건 아닐지 하고 말이야. 이건 이미 선악과를 먹었는데 거기에 더해 생명나무를 먹은 격이지. 그랬다가 정말로 ‘마귀와 그의 천사들’처럼 운명이 확정된 길에 들어서는 건 아닐까?

   이게 형만의 문제라면 모를까, 나머지 인간들도 같은 길로 끌고 가는 격이잖아? 내가 이걸 가만히 지켜만 봐도 될까?”

   어느 순간부터 윤혁은 자신이 혹 억제자로서의 임무에 실패할까 봐 내심 두려움이 들곤 했다. 지금도 그러했다. 형을 올바르게 제어해야 하는 데 한 가지도 제대로 해낸 일이 없었다. 형이 계획하는 일을 막을 방도가 있기나 할까.

   “외로웠겠구나.”

   루디아의 관점에서 나온 질문은 조금 달랐다.

   “외롭다고?”

   “네 형 말이야. 몹시 외롭지 않았을까? 난 솔직히 상상이 안 가. 수만 년이라면 자기 정체성마저 잊어버리고도 남을 시간이잖아. 가상 세계를 전전한 시간까지 합하면 그보다 더 길 테지.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소중한 사람과 더불어 누려온 시간이라고는 고작 수년 남짓한 셈이잖아.”

   “소중한 사람이라면?”

   “바로 너와 네 가족과 함께해온 시간 말이야.”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에 말문이 막혔다. 윤혁이 아등바등 애를 태우며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의 해답을 구하던 와중에 루디아는 전혀 다른 식으로 한 인간의 삶을 묵상하고 있었다.

   “네 말대로 너무 늦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내봐. 그 사람과.”

   이유를 모르는 평안감에 위안을 받는 느낌이 들어 숙연해졌다.

 

 

 

 

 

 

 

*

 

 

 

 

 

   드디어 실험실에서도 마지막 일정을 끝내고 정리하게 되었다. 태헌은 윤혁에게 지금껏 정말 욕도 많이 보면서 고생해 왔다며 칭찬하고 위로해 주었다.

   윤혁과 태헌은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그간 터놓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거리낌 없이 나누었다. 현재 돌아가는 처지를 보건대 태헌은 지구로는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임이 분명했다.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우주의 인구 분포가 개편된 듯한데 하필 그 직전에 떠나온 대원들은 공중에 붕 뜬 애매한 신세가 된 것이다.

   게다가 인터갤럭틱 호는 그 이용 가치가 다했다. 지구는 이제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1등 시민과 초인들만의 세계가 되었으니, 상부의 허락 없이는 접근하지 못한다. 아마 태헌의 가족들도 Upol 쪽으로 이주했으리라.

   게다가 태헌의 경우 알트루즘에 대한 실험 데이터에 너무도 깊숙이 관여한 사람이기에 우주선 밖으로 나가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그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하리라.

   “내 장래? 아마도 영영 이 우주선에서 생활하며 우주를 배회하거나.”

   다행히 우주선에 머무를 정도의 자비는 베풀어진 모양이다. 비시민들처럼 인위적으로 삶을 조작 당하거나 어딘가에 이송당하는 건 아니니 최악은 아닌 셈이다.

   “만약 밖으로 나가서 자율적으로 새 삶을 시작하려면 시스템의 ‘기억 조작’ 절차를 수용해야겠지. 그 과정을 거치면 어쩌면 예전의 일생을 잃은 채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안고 살게 되겠지.”

   듣는 입장에서도 기분이 짠했다.

   “……태헌이 형.”

   “아냐, 후회는 없어. 난 지난 정체성을 계속 간직하고 싶어. 그러니 기약 없이 갇히는 생활이라도 이 우주선 안에 잔류할 생각이야. 나라는 존재를 네가 언제라도 기억해 줄 테니 그 부분은 안심이네.”

   태헌은 씁쓸해하면서도 아련한 표정으로 윤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항상 건강하세요.”

   “너야말로.”

   “혹시 마지막으로 남길 말씀은 없으세요?”

   의사 선생은 잠시 고심하더니 자신이 맡은 환자에게 깊은 고민을 공유하였다.

   “알겠지만, 나는 원래 신을 믿지 않았어. 신이라는 존재를 싫어하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관심은 없었지. 늘 현세에만 관심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지내는 너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자주 들었어. 내가 알던 과거의 강윤혁과 지금의 강윤혁, 둘 사이에서 느껴지는 커다란 격차, 그 비밀이 뭘지 궁금했지. 고심 끝에 난 그것이 초자연적인 힘으로부터 비롯된 위대함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어.”

   윤혁은 묵묵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가 갈망하던 중요한 질문, 정말 반드시 함께 나눠야 할 중대한 문제에 둘의 대화가 이르게 된 것 같아 두근거렸다.

   “사람은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돌아본다고 했었지. 난 과거의 내 소속으로부터 분리되었어. 이제 떠돌이의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지. 그래서인지 비로소 진짜 현실을 직면하게 된 것 같아.”

   “그러면.”

   “네가 믿는 신께서, 주님께서 정말 살아계시는지 보고 듣고 마음으로 증명을 얻고 싶어. 만일 정말 그분이 계신다면 이 거대한 우주 속의 하찮은 먼지와도 같은 나란 존재에게도 굽어살펴보심을 베풀어줄까?”

   “분명 그럴 거예요. 그렇게 믿어요”

   “그렇구나……. 그러면 마음을 준비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네. 이젠 미루지 않고 싶어. 네가 내가 할 말이 있다면 모두 말해주었으면 좋겠어. 너와도 영영 헤어질 텐데 더는 회피해서는 안 되겠지.”

   그는 질문했다. 참된 신의 모습을 알아볼 방법을. 그분이 혹시 자신이라는 인간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그것을 확인해 볼 방법을. 늘 열심히 탐구하던 그의 삶에서 언제나 차순위로 미뤄지고 소외되었던 질문. 인생의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야 궁금증이 도졌다.

   “신께서 내게 어떤 약속을 답해주셨는지 가르쳐줘.”

   “물론이죠.”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직전, 윤혁은 태헌에게 ‘계시를 통해 전달된 진리’를 고백하였다. 마지막 한 조각 퍼즐까지 전부. 이야기를 마친 순간의 그의 표정의 복잡함은 참으로 해석하기 어려웠다. 그의 마음속에 과연 어떠한 반응이 일어날까. 변화가 일어난다면, 언제쯤 싹을 틔우게 될까. 임무를 마친 윤혁으로서는 그저 짐을 내려놓고 조용히 믿는 것 이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간 고마웠어.”

   “저도요.”

 

   그리고 다음 날, 윤혁과 루디아 둘만을 태운 소형 우주선이 인터갤럭틱 호에서 방출되었다. 둘은 이번 여행의 최후 단계가 기다리는 곳, 곧 ‘그들’이 장만한 시험장으로 향하였다.

   ‘잘 있어. 인터갤럭틱 호. 그동안 수고했다.’

   우주선을 그들을 남긴 채 무한한 우주 너머로 유유이 워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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