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96회 아벨의 후예 Ch 44. 노화와 불로불사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4.10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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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모른 척 하긴 했지만, 윤혁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바라보는 눈에서 죄책감과 슬픔 비슷한 감정이 있음을 종종 발견해냈다. 성한은 부부 중 혼자서 나이를 먹지 않는 사실을 몹시 아쉬워했다. 물론 먹기야 하겠지만, 2세대 초인 기준으로 계산하면 최소 수천 살 이상의 수명은 예상되니 노화는 멈춘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다고 태생을 그렇게 난 것을 억지로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약 루디아와 결혼하게 된다면 윤혁도 성한과 비슷한 처지를 체험하리라.
‘루디아가 노화 억제를 유지하지 않는 경우라면 말이지.’
옵션이 있긴 했다. 지금의 보편 의술을 받아들이면 된다. 허나 정작 어머니나 루디아나 늙든 말든 별로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성도가 영광스런 부활의 몸을 입을 텐데 겉사람이 쇠퇴하는 게 무슨 상관이냐. 그런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자신은 늙어가면서 남편은 젊은 시절 그대로의 모습이라면 어색함이나 회한을 느끼지 않을까? 보통 사람이라면 그게 일반적인 반응일 텐데. 워낙 종말이 가깝게 다가온 시기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영적으로 시대 분별에 민감해서 그런지 루디아의 반응은 세상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윤혁이 너는 내가 늙어버리면 마음이 식을 거야?”
루디아는 장난스레 질문했다. 윤혁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 절대 아니야.”
“어머, 혹시 내가 너무 내 고집을 피운 건 아니지? 나도 만일 네가 원한다면.”
“아니야, 난 룻의 선택을 존중해.”
“으음, 그래도 분명 늙으면 지금보다는 못생겨지긴 하겠네.”
루디아는 쓸쓸한 목소리로,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넌 나이 먹어도 예쁠 거야.”
“에이, 농담도 참. 누구나 나이 들면 아름다움을 잃어가는걸. 나야 초인과는 달리 평범한 사람이니 외모에 대해서도 별로 아쉬워 할 게 없으려나. 아, 하긴 초인들이라면 아예 불로불사의 길을 택하겠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넌 세월과 무관하게 누구보다 훌륭한 모습일거야. 너는 아름다운 영을 소유한 사람이니까.”
그녀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기분은 좋은지 윤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나저나, 혹시 룻, 너도 혹시 그걸 걱정해본 적 있어?”
윤혁이 화제를 전환하였다.
“걱정이라니? 뭘 말이야?”
“그 뭐냐, ‘짐승의 표’인가 뭔가 하는 기괴한 거 말이야.”
“푸하하.”
루디아는 윤혁의 말을 이해하고는 크게 웃었다. 왜 대화의 맥락이 여기로 튀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현 시대에 노화 정복은 피코머신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도 분명 인간의 인위적인 테크놀로지이니 짐승의 표와 연관될 수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을 제기할 것일 테지.
사실 이상한 논리는 아니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는 익숙했다. 어느 시대건 종말에 관심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네 시대의 현대 기술을 ‘짐승의 표’와 연관 짓는 일을 습관처럼 해왔다. 어느 시대에는 백신을, 어느 시대에는 칩을, 어느 시대에는 바코드나 핸드폰을 짐승의 표로 지목하였지.
사실 윤혁도 마찬가지였다. 짐승의 표에 대해 상상해보라면 당장 떠오르는 후보가 대단히 많이 떠올랐다. 이를 테면 일곱 개의 표식, 피코머신, 정신 간섭 기술, 초능력 채널, 경제 시스템, 그 외에도 많았다.
“설마 피코머신이 짐승의 표이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거야? 으음, 그렇게 따지면 너에게도 이미 그 원천이 들어있잖아?”
“그건……. 그렇긴 하지만…….”
윤혁은 사실은 자신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짐승의 표가 상징인지 영적 실체인지 물리적 실체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루디아는 이렇게 자기 의견을 제기했다.
“그게 뭐든 이미 주님께서 선물하신 구원을 뒤집지는 못한다고 생각해. 그러니 강제로 외부에서 주입이 가능한 물체나 그리스도인이 무심코 받을 수 있는 건 짐승의 표의 후보가 되지 못하겠지. 심지어 너도 보았듯 그 ‘일곱 표식’마저도 주님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걸 차단하지는 못했잖아.”
“그래도 찝찝하잖아.”
“오히려 난 네가 그 기이한 물체를 심장 위에 이식 받은 덕에 피코머신이 짐승의 표로 개량될 ‘미연의 잠재력’이 옅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네가 그 가능성의 씨앗을 뽑아버리는 셈이지. 틀림없이 이 일로 사탄이 네게 크게 분노할걸.”
이 이야기는 아나스타샤가 전에 넌지시 해주었던 조언과도 비슷했다. 에드레이 어르신도 과학 기술을 대할 때 비슷한 식으로 접근하셨다고 했었지. 무조건 기술과 담을 쌓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악용될 가능성을 막고자 도리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방향성을 조절하는 방식.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았다.
“난 음모론이나 자극적인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 없어. 내가 자연스레 나이 먹고 싶다고 말한 건 ‘피코머신을 절대 받아서는 안 되니’ 뭐니 하는 그런 음모론적 차원의 호들갑 떠는 이야기가 아니야.”
루디아가 계속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의 소견을 펼쳐나갔다.
“원래 사람은 말이야, 나이를 먹음으로써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이지 깨닫잖아. 어릴 때는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그러다 조금 나이 먹고 독립해서 강한 존재가 되는 줄 알았는데, 다시 늙어가는 과정에서 그 모든 것을 하나둘 내려놓잖아.”
“그야 그렇지?”
“그때서야 인간은 자신이 받은 달란트들이 원래부터 자기 것이 아닌 ‘누군가’가 잠시 맡긴 것임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깨닫게 돼.”
윤혁은 현숙하고 사려 깊은 연인의 모습에 감탄하였다. 저도 모르게 그는 자신의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줄도 모른 채 깊은 루디아의 영혼을 감상하였다.
“멋진 말이네.”
“늙어감이란 어떤 의미에선 축복이야. 잠언 기자도 노인의 백발이 그들의 영예라는 말씀을 하셨잖아. 노화는 우리에게 죽음을 상기시켜줘. 우리가 그저 잠시 피었다 내일 지는 꽃임을, 잠깐 있었다 사라지는 안개임을,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임을, 그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주잖아. 그리고 나이 드는 건 우리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남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는 존재임을 알려줘.”
지금처럼 완전히 달라져 버린 시스템 속에서는 다를지 몰라도, 원래 기존의 인류는 다 그렇게 살아왔다. 누구나 노인이 되면 뒷방으로 물러난다. 그리고 사회나 가족의 힘겨운 보살핌을 받으며 쓸쓸하게 늙는다.
“때로는 고상하지 못한 모습도 드러내겠지. 퇴행할지도 몰라. 기억을 잃고 인지능력을 잃어버리기도 하지. 바로 그렇게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야 하는 현실이기에 노화라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몰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 잘난 존재가 아님을, 우리의 실체가 그저 그분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생생하게 되새겨주잖아.”
“넌 정말이지 생각이 깊구나.”
“애늙은이처럼?”
“연세 드신 분이라고 다 너처럼 생각이 아름답지는 못할 걸.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마음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봐 줘서 고마워.”
루디아의 말이 옳았다. 우리 모두 연약함에 싸여 있다. 약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흙에서 시작했기에 흙으로 되돌아간다. 죄로 인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최악의 결과로 치닫기 전에 다시금 기회를 주는 각성의 선물이기도 하다. 윤혁은 하나님께서 노화를 허락하신 것을 깊이 감사했다. 그 덕분에 죽은 후 임할 심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예수님을 영접할 필요성을 느꼈으니까.
‘뭐, 고상하게 떠나시는 어르신도 있긴 하지만.’
오래전의 모세와 아론이 그런 고상한 모습으로 떠났다. 에드레이 테일란드 그 사람도, 21세기의 마지막 유산인 그 현자도 그랬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후세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못다 이룬 하나님의 소명을 전달한 뒤 미련 없이 의연한 모습으로 주님의 손을 붙들었다. 젊을 적 떠나보낸 그 사형수 친구와 그는 다시 재회했을까. 지금 그들은 보좌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으리라.
‘그 어르신은 노년의 몸으로도 남에게 의존하진 않았지.’
보통이라면 늙은 몸으로는 어쩔 수 없이 타인에게 의존하게 된다. 정서적으로든 의학적으로든. 왜 에드레이 씨는 자기 수양딸인 멜리안 여사와 끝까지 함께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카이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으리라. 에드레이는 다섯 명의 가장 강력한 초인들과 얽혀있었으니까. 자기 자녀가 그런 복잡한 정세에 얽혀 얽혀 무거운 과업을 잇도록 하고 싶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홀로 잠적하셨을까?’
멜리안이 키웠다던 의붓 손자인 멜카드제윈은 자기 증조부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다는 말은 에드레이는 어느 순간 세상에서 잊힌 존재가 되어 이전 인생의 가까운 인연이 주는 온기로부터 분리되었다는 뜻이 된다. 죽기 직전 그의 마지막 순간들은 적잖이 고독하였으리라.
‘자녀 대신에 우리에게 과업을 주셨지. 자신의 마지막 유산으로.’
성경책들도, 리온에게 남긴 부탁도, 윤혁에게 당부한 약속도, 그리고 아나스타샤를 통해서 전달된 지식들도, 그가 남긴 퍼즐 조각들은 모두 혈연을 초월한 영적인 인연을 통해 계승되었다.
윤혁은 자신도 그런 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소망이 들었다.
한편 윤혁의 생각은 이제 다른 곳으로 뻗었다. 그의 관심은 외계행성에 거주하는 비시민들에게 닿았다. 비시민, 이미 하늘도시들에서 일반적인 삶을 살다가 노화되었고 죽을 때쯤 되어 동면 된 후, 피코머신의 힘으로 회춘한 자들, 현재는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현재 외계행성 거주민들 중 그런 식으로 하늘도시에서 유래한 자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들은 첫 세대일뿐이고 그들이 생산한 후손들의 인구 비중이 훨씬 더 크다.
하늘도시의 하데스 챔버에서 동면되었다가 꺼내진 사람들은 다음의 프로세스를 따른다. 우선 외계행성으로 호송되어 그곳의 콜로니 건물로 옮겨진다. 그 안에는 타임필드가 흐른다. 그 속에서 그들은 약 인간 기준 20세대 정도의 기간을 지내며 자녀를 낳는다. 물론 자녀는 또 후손을 거듭 낳는다. 이렇게 큰 규모로 불어나 존속하다가 첫 세대와 자녀 세대 모두가 함께 바깥으로 나간다. 이 콜로니 기간은 외계행성에 본격적으로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준비 단계이다.
위 과정을 시작할 때 한 외계행성 당 약 1천만 ~ 1억의 초기 인구가 하데스 챔버에서 공급되어 씨앗으로 주어진다. 이후 정상적인 불림 과정을 지나면 행성당 최대 100억의 인구수를 채우게 된다. 이들이 타임필드 밖으로 나와 한 행성의 인구 체계를 이루는 것이다.
현 외계행성들은 이러한 공통된 과정을 거쳐 주민을 구성했기에 인구 구조 특성이 비슷했다. 즉 전체 인구 중 1%가량은 초기 투입 1세대이고 나머지가 그 자손들이었다. 1세대는 전혀 다른 세상인 하늘도시에서 이미 한 번 생을 살아온 사람이며 회춘의 기회를 얻어 현재는 2회차 인생을 사는 자들이다. 이미 수백 년을 살아온지라 마음과 영혼이 닳고 닳은 사람들이다.
‘그렇게 오래 살다 보면 기분이 어떨까.’
따지고 보면 그들은 노화 차단 프로젝트의 효과를 실제로 입증한 첫 모르모트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이미 희로애락의 출생에서 노화까지의 사이클을 한 차례 거쳤다. 이러한 경험이 2회 차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줬을까? 아니면 그저 회한과 공허함만 더하였을까? 그들은 자신 눈 앞에서 자녀 세대가 끝없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모든 백성들의 끝이 없으며 심지어 그들 전에 있던 모든 자들의 끝도 없도다. 뒤에 오는 자들도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분명히 이것도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 (전도서 4:16)
오랜 지혜자의 한 말씀 한 구가 떠올랐다.
‘자녀들이라.’
첫 세대 1%를 제외한 나머지 후손들은 살면서 노화라는 개념을 배운 적이 없다. 그들은 애초에 성장하거나 경험 축적을 누렸을 뿐 늙거나 쇠퇴하는 체험을 한 적은 없다. 이런 신개념의 족속이 한 행성에서 모여 산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직접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만일 그랬더라면 그들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가족에 대한 개념이 이런 식으로 바뀌는 구나.’
전통적인 지구 인류는 가족이라는 기본 개념을 갖고 있었다. 한 가정 안에는 인간의 사이클이 고스란히 요약되어 담겨 있다. 누군가가 태어나고 자라는가 하면 다른 누군가는 늙어가고 죽음을 맞는다.
가정은 그 순환을 지탱하는 물레바퀴가 되었다. 앞선 세대는 뒤에 오는 세대를 바라보며 그들을 이끌어주는 동시에 그들이 자신들을 대체하리라는 불편한 진실을 직면한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 가운데서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결국은 자신들도 같은 길을 걸어가리라는 것을 알기에 상대를 불쌍히 여기게 된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기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라고 선언하신 것일 테지.
반면에 지금 인류연합이 외계행성들 속에 생성해낸 신개념 인구 구조는 전혀 다르다. 그 속에는 가족이란 개념이 굳이 요구되지 않는다. 늙음이라는 현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구성원에게 오로지 독립성만이 요구된다. 의존이란 개념은 퇴색되었다. 개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로지 사회에의 기여, 그것만이 강조되며 돌봄과 자비는 없다. 필요성이 상실된 구성원은 존재의의를 인정받기 어렵다.
새로 등장한 세대와 기존 세대의 관계도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바뀌었다. 기존 세대는 오랜 시간 동안 신체적 쇠퇴 없이 경험만 쌓아왔기에 ‘존재해온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신세대를 얕잡아본다. 반면에 신세대는 ‘유전적으로 덜 진화한’ 기성세대를 무시한다. 즉 세대 간에는 긴장감만 흐르며 오로지 경쟁 관계만 존재할 뿐, 의존이나 배려는 없다. 오로지 인류라는 종족 개념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노화란 결국 없어지겠지. 아마도 곧.’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과연 인류는 어른답게 성장했을까.
그렇지는 못한 듯하다. 어른이 됨이란 단순히 머리가 똑똑해지고 지식의 축적량이 많아지는 것과는 다르다. 연륜이 쌓이는 건 판단력의 향상과는 다르다. 외계행성의 비시민들은 몇백 년을 살았건 몇십 년을 살았건 똑같이 미성숙한 모습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가족이 되는 법을 몰랐고, 인간이 되는 법도 온전히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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