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98회 아벨의 후예 Ch 45. 하르무트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4.15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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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5. Intergalactic : 하르무트
“드디어.”
아공간 너머의 허허벌판. 한 존재가 기뻐하며 희희낙락거렸다.
“기다리던 우리 손님이 오시겠구나.”
그녀는 잔뜩 고양된 기분으로 흥얼거렸다.
“우리의 계획이 최종 성취를 향해 다가가고 있어.”
그녀는 공간의 문을 열도록 승인했다.
{‘인과율의 보안벽’, ‘정보의 장벽’, ‘단절의 벽’을 15% 해제.}
{커버넌트 소유자들에게 고유 인증코드를 부과.}
“형제들아, 어서 준비해 둬라.”
이어서 그녀는 어딘가로 텔레파시를 방사했다.
“알트루즘이 드디어 미끼를 물었다.”
한편, 윤혁과 루디아를 태운 소형 우주선은 인터갤럭틱 호에서 사출된 뒤 텅 빈 공간에 당도했다. 보통 통상 우주 공간에서는 눈으로도 쉽게 관측되는, 빛나는 별조차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주선 관측 장비의 도움에 의존하여야 가까스로 빛나는 점들이 드문드문 관찰될 뿐이었다.
“저 점들은 별이 아니야.”
문득 윤혁은 낯선 위화감을 받은 어투로 중얼거렸다. 우주 속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면?”
루디아는 윤혁의 눈에 비친 정보가 무엇인지 불안해하며 궁금해했다.
“아마.”
루디아를 걱정시키고 싶진 않지만, 일단 동료로서 아는 건 모두 공유해야 한다.
“은하. 어쩌면 은하단일지도……?”
과연 윤혁의 초감각에 따르면 저 멀리에는 은하가 점처럼 관측되고 있었다. 별은 하나도 없이 말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 그들이 놓여있는 좌표는 별과 별 사이가 아닌, 은하와 은하 사이의 빈 공간, 그것도 보통의 빈 공간보다 훨씬 더 거대한 공허였다.
“보이드(Void). 통상 공간, 즉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구역인데 유독 은하의 밀도가 낮은 광역 구역을 의미해. 원래라면 근거리에 은하계가 하나는 있어야 하거든. 그런데 최소한 20억 광년 이상의 거리 내에 은하는커녕 가스마저도 없는 구역이 있어. 아마도 여기인 것 같네.”
광활한 공허. 별과 별 사이의 거리만 해도 인간에게는 한없이 널찍하게 느껴지기 마련이거늘, 보통의 은하 사이의 거리마저 아득히 뛰어넘는 텅 빈 공허라면 어떨까. 루디아는 1차 선교 여행 처음 출발 당시 체감했던 우주의 방대한 허무감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아니, 이번엔 윤혁마저도 난생처음 보는 자연의 거대함에 압도되었다.
‘그분께서는 북쪽을 빈 곳에 펴시며 (욥기 26:7)’
문득 성경 한 귀퉁이의 어떤 한 시구가 떠올랐다.
“어쩌면 여긴…….”
“응?”
“인류연합의 영토마저 벗어난 곳, 아니…….”
추론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
“가시우주(可視宇宙)의 경계, 빛으로 관측이 가능한 가장 먼 곳일지도?”
“빛으로도 닿지 않을 정도로 먼 곳인 거야? 그러면 우린 어떻게 여기에…….”
“자연적인 빛으로는 그렇다는 이야기지. 오늘날의 과학 기술은 이미 광속의 제약을 뛰어넘었거든.”
촤아아악.
대화하던 그 순간 눈앞에 있는 허공의 성질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윽고 물리적 성질이 통상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압축 공간이 전개됩니다.}
우주선의 인공지능 시스템이 현재 나타나는 현상을 관측하여 안내해 주었다. 이어서 이번에는 문이 열린 ‘압축 공간’ 쪽에서 어떤 음성이 들렸다.
{코드 인식 완료.}
{통로 전개 시작.}
{코드네임 수여 : ‘알트루즘’, ‘오브젝트’}
오색찬란 형형색색의 그 ‘압축 공간’은 곧 자신의 형태를 변형해 냈다. 곧 기다란 터널이 생성되었다. 우주선의 동력원이 순간적으로 정지되었다. 강제로 해킹이라도 당했는지 인공지능마저도 작동을 멈추었다.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과 함께 우주선은 터널 쪽으로 끌려갔다. 마치 터널 그 자체가 에스컬레이터처럼 되어 우주선을 움직여주는 것 같았다. 터널은 GTX나 웜홀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이었다.
“걱정하지 마.”
“너도.”
윤혁과 루디아는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해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어떤 일이 생겨도 떨어지지 않도록. 터널의 이동 속도는 점점 가속되었다. 이내 고무줄이 길게 잡아당겨지는 것처럼 공간 전체가 늘어뜨려졌다.
*
눈을 떠보니 이미 우주선의 동력원은 원상복구 된 상태였다. 윤혁은 제일 먼저 관측 장비의 모니터부터 확인했다. 지금 놓인 공간은 조금 전 통과한 괴이한 터널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우주 공간에 가까웠다. 하지만 100% 똑같지는 않았다. 미묘한 물리 법칙의 어긋남이 조금씩 계기판 상에 관측되었다. 이곳 영역은 마치 무한 공간인 것처럼 드넓게 뻗어있었다.
‘여긴 대체 어디지?’
전에 이복형과 같이 했던 첫 우주여행의 악몽이 떠올랐다. 문명의 발자취가 닿지 않은 미지의 우주로의 도전, 그것은 꽤나 큰 우주적 공포를 유발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이곳은 미개발된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 문명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함정이라 해야겠다. 저 멀리서 별들이 관측되었다. 정확히는 흡사 별처럼 생긴 물체들이었다. 불길한 미시감이 느껴졌다.
“별들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어.”
“아니, 저건 별이 아니야.”
윤혁이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왜? 영락없이 모양새로는 별인데?”
“아냐. 공전 패턴과 자전 패턴이 너무 이상해.”
그것들은 일반적인 만유인력의 법칙대로라면 도무지 도출될 수 없는 기괴망측한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선보이고 있었다. 흡사 서커스 같았다. 일단 타원형 궤도가 아니었다. 부르르 진동하며 사인파(sine wave)를 그리며 궤도 방향을 비트는 별, 진동 주기가 점점 짧아지다가 다시 빨라지기를 반복하는 별, 직선형 궤도와 곡선 궤도를 아무런 패턴 없이 무작위적으로 뒤바꾸는 별, 갑자기 궤도가 확 꺾이는 별까지, 별의별 패턴들이 있었다.
‘정말 미쳤군.’
혹시라도 초능력이나 인공적인 장비 또는 엔진 따위가 간섭하는 건가? 윤혁은 우주선의 인공지능더러 혹 이 공간 안에 열원이나 에너지원이 있는지 관측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관측 자료에 따르면 그런 것들은 전혀 없었다. 별들은 아무런 특수 에너지도 단방향으로 방출하지 않은 채 일반적인 항성처럼 사방으로 빛을 발하며 균일하게 불탈 뿐이었다.
{이상(異常) 물체를 향해 좀 더 접근하겠습니다.}
우주선은 먼저 그중 하나의 행성, 아니 유사행성을 향해서 다가갔다. 그곳에서는 기이한 패턴의 중력이 감지되었다. 별의 중심 방향을 향해 당기는 중력이 아니었다. 역 제곱 규칙을 따르는 중력도 아니었다.
중력 이외의 힘들도 감지되었다. 상위 차원에나 존재하는 힘들. 기본 4대 힘이 아닌, 제5의 힘부터 시작해서 제10,000의 힘까지, 온갖 종류의 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했다.
기이한 중력과 다른 힘들은 하나로 엮여 우주선의 궤도를 특이한 방향으로 틀었다. 일정 속도 이상으로 가속되자 공간의 성질이 변형되면서 아까처럼 터널 형태의 공간이 형성되었다. 중력 렌즈에 의해 새총이 쏜 돌처럼 내던져진 우주선은 어느덧 다른 별들 근처에 다다랐다.
이 별도 자신만의 개성을 자랑하는 기이한 천체였다. 그것은 자신이 내뿜는 변형 중력과 상위 차원의 물리력을 적절히 조화해 우주선을 다시 내던졌다. 그렇게 핑퐁처럼 별들이 우주선을 주고받는 작업이 빠르게 수차례 일어났다. 얼마나 정교한지 하나의 오케스트라 협주곡을 감상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몇 차례, 우주 비행인지 차원 도약인지 모를 이상 궤도를 질주한 뒤, 윤혁과 루디아는 큰 구체 앞에 당도했다. 흡사 지구와 유사한 형태의 행성체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송곳처럼 생긴 거대한 구조물이 땅에서부터 하늘 높이 치솟아있었다. 그 송곳들이 구체의 말끔한 모양새를 깨트리는 바람에 흉측한 바이러스 알갱이 같은 모습이 되고 말았다. 돔처럼 생긴 거대한 산이 구형(球形)의 균형을 깨트릴 만큼 두드러지게 튀어나오는 바람에 정말로 기괴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위장 모드 10% 해제. 균열을 형성합니다.}
갑자기 통일시스템 메시지가 텔레파시 방식으로 전송되었다. 이윽고 눈앞에 보이는 이상한 별이 쪼개어지기 시작했다. 흡사 달걀을 까먹기 위해 한쪽 면을 딱딱한 바닥 면에 대고 두드릴 때 껍질에 균열이 생기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러나 물리적인 진동이나 음성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지면과 더불어 그것을 덮는 공간 자체가 송두리째 균열을 일으키는 듯했다. 균열에서는 희미한 섬광이 솟구쳤다.
“윤혁아.”
루디아의 손이 약하게 떨려왔다.
“내 뒤에서 잠자코 기다리고 있어.”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랐기에 윤혁은 루디아를 얼른 자신의 등 뒤로 물렸다.
콰과과과광.
균열과 섬광은 점점 확대되었다. 이윽고 깨진 껍질 안에서 내용물이 튀어나오듯 기이한 물질과 에너지가 새어 나와 공간을 뒤덮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물질이라고 정의하기도 에너지라고 정의하기도 애매했다. 흡사 마법 같았다. 초능력을 제법 여러 차례 목격한 윤혁이 느끼기에도 이질적이었다. 뒤이어 소름 끼치는 진동음과 함께 뭔가가 솟구쳤다. 그것은 유령처럼 자연스럽게 균열의 장벽을 통과해 왔다. 행성 내부에 봉인되어 있던 뭔가가 우주선 쪽으로 접근했다.
이어서 그 물체로부터 갖가지 색깔을 띤 각종 속성의 에너지장들이 방출되었다. 그 여파로 국소 범위 내에서 물리 법칙이 뒤흔들렸다. 최소 100km는 넘는 크기의 물체였다. 탄환처럼 솟구쳐 우주선을 박살 낼 듯 다가오던 그 물체는 놀랍게도 아무런 충격파도 주지 않고 일행 눈앞에서 멈췄다.
이윽고 퍼즐이 해체되듯이 물체가 산산이 흐드러졌다. 이내 안에서 현란한 섬광이 분출되어 주변 모든 공간을 잠식했다.
“크윽.”
“이건 뭐지?”
잠시 후, 섬광으로부터 눈을 가리던 윤혁과 루디아는 빛이 잦아든 것을 느끼고 조심히 시선을 다시 앞으로 두었다. 우주선 앞에 놓인 거대한 빛의 마수(魔獸)가 보였다. 행성과 거의 맞먹는 크기에 머리, 꼬리, 날개 전부 헤아릴 수 없이 개수가 많았다. 놈은 물질이 아닌 순수한 빛으로 이뤄진 것만 같았다.
마수는 우주선을 앞발 하나로 쥐었다. 신기하게도 물리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놈은 초광속으로 질주하더니 행성 건너편에 있는 거대한 기계 덩어리 구체 표면에 착륙했다. 윤혁과 루디아를 태운 우주선은 아무런 열기도 없이 입자 단위로 흩어져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둘은 마수의 이마 부위에 놓여있었다.
‘마수의 몸체 안에서는 마음대로 순간이동이 가능한 건가?’
그 영역은 의외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호흡도 허락되었다. 정확히는 마수의 몸을 이루는 빛처럼 생긴 특수 물질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생명체 한정으로 적절한 기체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 같았다. 덕분에 우주복 헬멧 없이도 멀쩡했다.
“반가워, 강윤혁.”
별안간 들려온 소리에 둘은 두리번거렸다. 곧 부질없는 시도임을 알았다.
‘텔레파시인가?’
바로 그때 어떤 사념파가 둘의 몸을 조종하여 강제로 움직였다. 몸이 홱 돌아가더니, 빛 덩어리 마수의 가장 큰 머리 위에 솟구친, 가장 크고 두드러지는 뿔 쪽으로 눈이 저절로 움직였다. 이번에도 윤혁의 초 감지 능력이 제멋대로 발동되었다. 저 멀리에서 점처럼 작게 보여야 할 대상이 코앞에서 보듯 뚜렷하게 확대되어 보였다.
“당신은?”
상대는 마수 위에 올라타 요염한 자세로 다리를 꼰 채 와인을 마시고 있는 여인의 형상이었다. 검은 머리에 자줏빛 눈동자. 곱슬곱슬한 머리칼로 한쪽 눈을 가리고 있어서인지 몹시 몽환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그녀는 키가 매우 컸으며 농염한 카리스마와 육감적 육체미를 자랑하는 절세 미녀였다.
“내 이름은 하르무트.”
그녀의 텔레파시가 윤혁에게 전해졌다. 루디아는 못 듣는 모양이었다.
“누구야? 윤혁아?”
“저기 저곳을 봐. 저 존재가 내게 텔레파시로 말하는 중이야.”
하르무트를 보자마자 즉시 떠오른 장면은 바로 계시록 18장에 기록된 한 음녀였다. 거대한 짐승 위에 올라탄 채 성도들의 피를 탐닉하던 음탕한 흡혈귀. 하르무트도 비슷해 보였다. 그 두 눈에는 본능적이고 직감적인 음욕이 녹아있었다. 자애로운 척하던 세미온과도, 무자비하게 엄격한 공포감을 휘두르던 야르베스와도 느낌이 달랐다.
“이드가 준 선물은 어땠어?”
“…….”
“아, 원래부터 네 거였지. 이드는 그저 네 속의 성욕을 일깨운 것뿐이니.”
하르무트가 키득거리며 조소하였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네 소유는 아니겠군. 다른 분의 것이었으니.”
윤혁은 부르르 이를 갈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에고가 세미온의, 슈퍼에고가 야르베스의 의식을 많이 담고 있듯, 이드는 하르무트의 의식을 주성분으로 삼은 존재였다. 그때 이드에게 비참히 희롱당한 기억이 떠오르자 역겨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윤혁은 상대의 조종에 휘말리지 않도록 찬찬히 이성적 의지력을 갈무리했다.
“요건이 뭐죠?”
“조급한 친구네? 난 너를 오래전부터 만나고 싶었는데 말이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오붓하게 서로를 알아가보는 시간을 갖지 그래?”
“그런 장난이나 치려고 온 건 아닙니다만.”
윤혁이 날카롭게 반응하자 하르무트는 몽환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윤혁의 시야에서 하르무트가 돌연 사라졌다. 정확히는 윤혁과 루디아가 있는 자리 바로 앞으로 텔레포트를 해서 불쑥 나타났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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