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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600회 아벨의 후예 Ch 45. 하르무트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4.20 | 회차평점 0 0

 

 

 

 

 

*

 

 

 

 

 

   끔찍한 참상. 이루 형언하지 못할 만큼 참혹한 현실이 직격했다.

   잠시 무언가에 침식되었고 이내 다른 인격체들의 무의식이 뇌리로 파고들었다. 게임이 시작하자마자 윤혁은 숨 막히는 역겨운 감각을 느꼈다. 그 악취의 본질은 죄악을 즐기는 흉측한 마음이었다. 윤혁의 영혼은 그 내용물을 가증한 것이라고 판단하며 경보음을 보내주었다.

   하지만 그 흉측한 생각들과 쾌락은 윤혁의 마음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주입된 외인물이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다른 존재가 느낀 죄악의 기억들, 그들의 감정과 이지가 정확한 원형 그대로 복제되어 오차 없이 흘러들어왔다.

   즉각 윤혁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고치려고 애썼다. 만일 이 주입물이 악하고 음란한 이 세대를 반영하는 단순한 영상 자료에 불과했다면 근처에 오자마자 끊어내었으리라. 그러나 이건 그런 류의 음란물과는 완전히 성질이 달랐다. 이것은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에 대한 진실의 기억이었다. 부정하거나 무마해도 되는 일이 아닌 확실한 범죄의 증거였다.

   무엇보다 이 고배의 잔은 중간에 끊는 것이 불가능한 강제성을 띠었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시기 전까지는 거래를 수락하기 이전으로 돌이키지 못한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본능적인 공포감에 허공 위의 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마음 속에서 본능적으로 이런 말이 솟구쳤다.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게 해줘. 하지만 그것은 금지되었다. 이 참상의 독배를 남김없이 눈으로 목격하며 고통을 마실 때까지는 출구는 열리지 않을 예정이었다.

   윤혁은 그제야 왜 자신의 본능이 경고를 했는지, 왜 여기 들어가기가 그토록 꺼려졌는지를 분명히 깨달았다. 이것은 몹시 익숙한 기억이었다. 알트루즘을 이식받던 수술 당시, 윤혁은 타인의 기억을 잠시나마 공유했었다. 에고이즘과 알트루즘의 연결성 때문인지, 아니면 수술 도중의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억은 분명 왜곡 한 점 없이 정확하고 생생한 누군가의 기억이었다.

   한참을 깊이 상고하고 나서야 윤혁은 내심 완강히 부인하고 싶었던 불편한 실체와 맞닥트리고 말았다. 지금 재생된 기억의 배경은 수술 때 보았던 기억과 완전히 동일한 모습이었다. 같은 상황, 좀 더 정확히는 같은 사건이라 해야겠다. 만화경을 한쪽에서 볼 때와 다른 쪽에서 볼 때 그림이 달라지듯, 구체적으로 인지 되는 외관상의 정보는 달랐지만, 두 그림의 공통분모를 확실히 짚어낼 수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바라보는 시선이 반대였다.

   수술 당시 체험적으로 공유한 기억은 피해자의 것이었다. 그 피해자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상황에 당했다. 그의 전신은 찢겨졌으며 수 시간 이상 가혹하게 유린당하였으며 최고 수준의 모욕감과 수치감에 매몰되었었다.

   비록 아주 찰나의 기억인지라 희미했으나, 이번 자극의 반사 작용을 통해 윤혁은 전에 공유했던 기억을 다시금 머릿속에서 기억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그 기억 속에서 그는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모욕과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조롱자와 학대자들이 배설하는 대소변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 굴욕을 당하고 있었다.

   되새겨보니 그들은 또 피해자의 몸에 흉기를 대었었다. 채찍, 면도칼, 인두, 바늘, 살을 파먹는 벌레, 뜨거운 물, 그 외에도 온갖 잔인한 것들을. 아무리 학대해도 재생 능력으로 버틸 걸 알았기에 그들은 더욱 마음 놓고 충분히 괴롭혔다. 온몸을 가차 없이 망가뜨렸고, 급기야 치부를 종이 찟듯 찢어놓았다. 두드리고 자르고 송곳과 바늘로 찌르고 쑤셔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게 했었다. 한 번의 타격이 들어올 때마다 혼절할 정도의 충격이 엄습했다. 그런 타격을 수초 간격으로 밤낮 맨 정신으로 견디며 반복적으로 고통을 체감했다.

   그렇다. 이번에 하르무트가 준 체험을 통해 수술 때 무의식 속으로 파묻혔던 모든 끔찍한 악몽들이 더욱 선명하고 뚜렷하게 수면 위로 올라왔다.

   거의 다 동일한 내용인데 이번에 새로이 추가된 정보가 있다면 가해자의 눈에서 본 시선이었다. 절망으로 점철되었던 피해자의 기억과는 반대로 쾌락의 감정이 묻어나왔다. 이것은 윤혁이 전에 공유했던 괴로움보다 훨씬 더 역겨웠다.

   가해자들은 진심으로 피해자를 파멸시키를 원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맹렬한 질투와 시기가 가득했다. 그들은 세상을 향한 비틀린 환멸과 증오심을 고문 당하는 피해자에게 모조리 투사하고 있었다.

   ‘지금껏 진흙탕과 시궁창에 박혀있었으니 저 하늘 높이 군림하던 자를 우리의 오물에 파묻히게 하자.’

   그들은 피해자의 수치를 즐거워했다. 비참하게 벗겨진 모습을 보며 통쾌한 노래를 불렀다. 처참히 파괴되는 남성성을 구경하며 희열에 불탔다. ‘우리가 멍에를 벗어던지지 못할 바에는 저놈을 죽기까지 망가뜨리자.’ 아니, 그들은 정말 그가 죽기를 바랐다. 실제로 죽이려고 수 차례나 시도했는데 정작 죽게 하지는 않았다. 이 이질적인 괴리를 감지한 윤혁은 혼란스러움 속에서 금세 이유를 찾았다.

   ‘여러 명이다.’

   지금 체험하는 이 기억은 수십만 명의 기억이 뒤섞인 혼합체였다. 엄밀히는 기억이 아니었다. 이드의 응집체였다. 사디스트적으로 뒤틀린 이드. 타인의 파괴와 고통을 즐거워하는 끔찍한 이드. 온갖 더럽고 추악한 인간의 내면이 낱낱이 드러나 응결된 무의식이었다.

   최소 수십만 명의 무의식, 그들 모두는 각각 자기 즐거움에 따라 행동했다.

   어떤 이는 그 피해자를 곧장 죽이려 했다. 실제로 여러 번 목구멍에 칼을 박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다른 이가 만류하며 그를 살려내었다. “우린 그를 정신적으로 무너뜨려서 정복한 뒤 우리 멍에를 풀어버려야 해.” “기분 내키는대로 그냥 죽여버리면 안 될까? 찢어버리고 싶어서 너무도 몸이 근질거리는데.” 수많은 사악한 의견이 뇌 속에서 엉켰다. 아마도 저들이 저들끼리 다투는 소리이리라.

   수십만 명 중 소극적으로 악행에 임하는 이는 없었다. 그들 모두가 공범이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적극적으로 참상을 저지른 주범이었다. 한 명 한 명의 마음속에 선명한 증오심과 저주와 맹렬한 폭력이 깃들어있었다.

   그들은 원형 경기장처럼 전시된 공간 한 가운데서 처참히 짓이겨지며 짓뭉개지는 피해자를 농락하며 자신들의 오물을 던지거나 발로 걷어차거나 침을 뱉는 짓을 벌였다. 그 죄악을 즐거워하는 마음은 너무도 극렬했다.

   ‘아, 아니야. 이런 게 인간의 감정일 리가 없어.’

   부정하고 싶었다. 죄악의 홍수가 그를 절망시켰다. 그러나 더욱 비참한 건 자신의 깊은 옛 본성이 이들의 무의식 덩어리에 공조를, 내지는 반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도 저들과 본질이 똑같구나. 내 안에도 저런 추악한 본질이 들어있었구나. 그 사실이 가까스로 버티던 내면을 붕괴시키고야 말았다.

   윤혁의 기억은 더 많은 정보를 말해줬다.

   그들은 원래 사형수들이었다. 혼돈의 시대, 치안마저 엉망진창이었던 그 어지러운 시기에 그들은 연쇄살인을 범하거나 테러에 참여했거나 생체 실험을 벌였거나 집단 강간에 동참한 악종들이었다. 일부는 혼돈의 시대 때 체포되었고 대다수는 신 인류연합이 재건된 뒤에 과거 역추적으로 범행이 고발되어 공소시효 없이 처벌되었다.

   혼돈의 시대 당시에는 이런 자들을 다루기 위해 혹독한 법들이 세워졌었다. 대표적으로 이들에게는 정신을 개조하고 속박하는 ‘족쇄’가 씌워졌다. 사형을 대체하는 형벌인데 실상은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처벌이었다. 대부분은 너무도 흉악해서 처벌을 받아 마땅한 자들에게만 내려졌다.

   그렇게 정신 족쇄를 찬 사형수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이들은 어떤 연유에서 벌어진 사건에 의해 독방 캡슐로부터 옮겨져 어떤 낯선 건물로 이동되었다. 죄수들을 탈취한 그 범행의 배후는 그들을 이런 말로 조종했다.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지. 너희 역량을 입증해 보여라. 그토록 족쇄에서 풀려나고 싶다면 그 간절함을 증명해라. 너희에게 선물을 던져주마.’ 이내 광기에 물든 사형수들은 기꺼이 응했고 그들 앞의 포로가 된 희생자를 난도질했다. 이는 오로지 그만이 모든 세계 시스템을 제어할 권한을 소유했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는 알지 못했던 장면들이 꽤 눈에 들어왔다. 이를 테면 그의 의식이 흐려진 이후의 장면도. 은밀한 신체 부위를 모욕적으로 파괴당하고 온 몸이 망가진 희생자는 정신이 무너져 손가락 하나 가누지조차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 이후로도 참상은 이어졌다.

   가증스럽고 구토를 유발하는 죄악상이었다. 남자 죄수들은 바퀴벌레 떼처럼 달려들더니 무력화된 포로를 향해 소돔의 죄악을 흉악스럽게 범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렇게 하였다. 늙은 자도, 젊은 자도, 어린 자도. 그들은 앞다투어 달려가 ‘내가 먼저야’라고 외치며 그 몸을 범하기를 열심히 경쟁하였다.

   집단 무의식, 이드.

   흉측한 고배를 남김없이 마신 뒤 눈에서는 절망스러운 눈물이 흘렀다. 피해자의 감정에 이입되어 그런 것인지, 가해자의 쾌락을 체험한 죄책감 때문인지, 인간의 더러운 영혼의 실상 때문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다만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동시에 전에 수술 때 공유하였던 기억이 더욱 선명히 되살아났다. 피해자의 기억에서 얻은 체험과 가해자의 기억에서 얻은 시선이 다각적으로 조합되자 그제야 당시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올바른 그림이 그려졌다.

 

   피해자의 기억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그 사건이 있기 몇 년 전 일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이런 제안하긴 좀 미안하지만…….”

   아직 그 사건을 당하기 전, 그는 부하들과 상의하였다. 아주 중대한 정치적 이슈는 아니었다. 사형수 처리에 관한 인권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혼돈의 시대 당시 규정된 족쇄 제도와 생체 실험의 가혹함에 대해 나름대로 문제의식과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흉악범들이니 그렇게 당해도 싼 자들이고 결국 사형은 불가피하겠지만 적어도 ‘인류의 존엄성’에 대한 고찰이 그로 하여금 최소한의 자비를 베풀도록 요구했다.

   “우리도, 선대들도 그들을 희생시켜 많은 발전과 지식을 얻었지. 하지만 이제는 이런 옛 방식을 폐지하고 존엄성을 갖춘 방식으로 개선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나 역시도 사형수들을 내 뜻대로 다룬 데는 책임이 있어. 하지만 이제 혼돈의 시대는 끝이다. 인류도 질서를 회복했으니 이 정도 선에서 끝내자.”

   당시에는 일곱 명의 책사와 푸른 눈의 동료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도 그의 제안을 흔쾌히, 혹은 마지못해 수락했다. 어차피 그들로서는 가장 높은 분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없긴 했다.

   “뜻대로 하시기를. 우리는 따르겠습니다.”

   “그러면 족쇄 제도는 폐지하면 되겠습니까?”

   “아쉽군요. 징벌과 함께 유익을 낼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이었는데.”

   “어쩔 수 없죠. 당신께서 자비를 베푸실 뜻을 결정하셨는데.”

   “엄벌의 끈을 느슨하게 하면 기강이 헤이해질텐데, 조금은 염려되는군요.”

   “걱정하지 마, 우리의 시스템은 완전해.”

   그들은 합의하였다. 일단은 정신 지배의 족쇄를 풀고 범죄자들을 교육시켜보기로 했다. 다만 갑작스레 풀어 버리면 그들의 내면에 잠재된 거대한 악성(惡性)이 분출하여 어떤 급작스러운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또한 오랫동안 족쇄에서 눌렸다가 풀려난 그 악성이 주변으로 전염될 위험도 있다. 감옥 내부를 넘어 그 너머로의 전염도 우려되었다. 심지어 최악의 상황에는 그들이 자신들의 혼의 잠재력을 사악한 형태로 발현해내거나 초자연계와의 접속에 성공할 위험성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모든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회의를 나눈 지 정확히 한 달 뒤, 기대를 배반하는 그 사건이 벌어졌다. 인류는 자신들의 능력을 너무도 자신했고 악마는 그 틈을 파고 들어 기회를 노렸다.

희생자은 비참한 나락 속에서 후회하였다. 어디서부터 잘못 택했는가.

   <<인류는 자비로운 군주를 필요로 하지 않아. 그자들에겐 징벌이 필요해. 그러려면 무한대의 권력을 지닌 지배자가 필요하지. 이번 일로 너도 확실히 깨달았지?>>

   고문으로 파괴된 비참한 마음속으로 달콤한 유혹의 음성이 속삭였다.

   <<살아 돌아가게 해줄게. 대신 내 도움을 받아줘.>>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소리를 끝까지 듣지는 못하고 쓰러졌다. 어두운 목소리는 그 후로도 꿈 속에서 수차례 속삭였다. 만약 비몽사몽 하며 신음하던 고통의 상태에서 한 이름 없는 소녀의 따스함에서 비롯된 구조의 손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언젠가는 그 유혹을 수락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얼마 후 사필귀정은 이뤄졌고, 가해자들은 체포되었다. 또한 그들이 가장 벗어던지고 싶었던 것, 곧 존엄성을 폐하는 영원한 족쇄, 그 이상의 무시무시한 운명이 선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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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저 같아도 실드를 못 쳐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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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회 아벨의 후예 Ch 45. 하르무트 (2)
등록일 2026-04-17 | 조회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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