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601회 아벨의 후예 Ch 45. 하르무트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4.22 | 회차평점 0 0

 

 

 

 

 

 

*

 

 

 

 

 

 

   진실을 바르게 직면한 윤혁의 눈에서는 통제할 길 없이 고통스러운 눈물이 흘렀다. 그는 도무지 마음을 가누거나 몸을 제어할 기력이 없었다. 찢어질 듯한 슬픔과 비통한 괴로움이 그의 심령을 잠식하며 통증을 자아냈다. 그렇게 아픈 심정 가운데서도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게 인지되었다.

   ‘학대자들이…, 자신들의 죄를 징벌할 권한을 가진 사람을……, 자비를 선택하려 했던 왕을……, 자기 손으로 재판관을 죽이고 찢고 파괴했던 범죄자들이……, 오로지 증오와 질투심에 사로잡혀 죄악의 쾌락을 느끼며 범죄했던 자들이…….’

   그간 고정관념처럼 박혀온 선입견이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맞아, 사실 네가 구원하고 싶었던 그들, 곧 나를 포함한 우주 인류, 그 뿌리이자 씨앗이 된 존재들은 바로 그런 가증스러운 자들이다. 우주 인류를 낳은 그 십사만 사천 명의 남녀. 우린 모두 그들에게서 시작되었어. 72,000명의 남자, 72,000명의 여자, 그 악인들이 천 개의 최초 하늘도시에 심겨져 새로운 종족을 이룰 선조들이 되었지.”

   하르무트는 통쾌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윤혁에게 흥얼거렸다.

   “자, 기분이 어때?”

   “…….”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증오스럽지 않아? 그들은 살인자의 후손이자 사형수들의 후손이야. 심지어 다른 무죄한 자, 이를테면 지구 시민의 유전자도 전혀 섞이지 않았어. 현 우주 인류는 한 명의 예외 없이 그 144,000명의 순수한 후손이라고. 원래라면 사형으로 사라졌어야 마땅했을 자들의 씨들이지.”

   사라졌어야 할 범인들은 자손을 낳아 큰 종족으로 번창하였다. 반면에 피해자는 그 범행의 후유증으로 영원히 자손을 얻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것은 우스꽝스럽고도 잔학한 아이러니였다.

   “…….”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 친형이 그들에게 억울하게 희생당했지. 그는 한순간도 그 고통의 찰나도 잊은 적 없어. 지난 수만에서 수십만 년의 시간을 존재하는 동안 그는 생생한 의식 속에서 그 악몽과 트라우마에 시달렸단다. 그도 나름 벗어나려 노력하고 발버둥을 쳤지만, 도리어 더 깊은 수렁에 잠식될 뿐이었지.

   그래, 내 가증스러운 DNA 속에도 그 원죄가 깃들어 있어. 그래서 우린 그분을 위하여 정당한 복수를 이뤄주기로 택했지. 그래서 이름도 담기 부끄러운 내 동족인 우주 인류를 영원한 노예로 만드는 데 동참했어.

   아, 그러고 보니 한편으로는 그들이 네 원수도 되겠구나. 아이야, 그때 죽어버린 건 사실 네 아이들이란다. 파괴된 그분의 몸의 일부는 원래 네 유전자를 담고 있는 네 것이었으니까 말이야. 네 후손이 그때 영원히 끊어진 것이란다.”

   하르무트는 조롱하는 조로 계속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르무트와 세미온과 야르베스. 이 셋은 카이젤에게 발탁되기 직전에 그에게 충성하겠다는 의미로 위업을 하나 이뤄냈다. 사실 카이젤이 이들에게 주목하게 된 것도 그 위업이 계기였다. 그 위업이란 바로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인 초기 세대의 조상들, 곧 144,000명의 자아, 초자아, 이드를 모조리 흡수함으로써 그들을 죽여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아크삼형제는 카이젤의 복수를 일차적으로 이룩했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을 썩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들이 편안하게 죽어버리는 것을 그리 원치 않았다. 그러자 그때 아크삼형제는 이렇게 제안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의 후손들도 결국 똑같은 존재들임을 증명해 주면 시원해하시겠습니까?”

   하르무트는 그때 이런 획기적인 제안을 하였었다. 그 내용을 들은 윤혁은 공포감에 질렸다. 죄책감에 짓눌려 이미 용기를 잃은 그는 파르르 떨었다.

   “그, 그건……, 하지만, 후손들에까지 죄를 전이할 수는…….”

   그는 아직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여파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더듬거렸다. 직전에 느낀 슬픔, 절망, 수치심, 죄책감의 여파로 온전한 판단을 할 여력도, 대담하게 반박할 여력도 없었다. 구차하게 꺼낼 수 있는 변명이라고는 겨우 이것이 전부였다.

   “연좌제가 부당하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셈이겠지?”

   하르무트는 기다렸다는 듯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가로챘다.

   “강윤혁, 재밌는 사실을 하나 알려줄까?”

   “하, 하지마!”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이런, 아까의 체험보다 더 흥미로울 텐데.”

   그녀는 저항하는 윤혁을 무시한 채 억지로 그의 내면에 텔레파시를 주입하였다.

   “자, 표식이 어떻게 유전적으로 전승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알려줄게.”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진실이었다. 이후 윤혁은 진실을 들어버린 귀를 저주했다. 부디 바라건대 그것을 알기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소원했다.

   일곱 표식에 담긴 비밀이란 참으로 애통할 만한 것이었다. 삼형제에 의해 업그레이드되어 완성된 표식, 그것은 ‘혼의 공명’이라는 원리를 통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이되는 특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과정에서 세미온, 야르베스, 하르무트가 추출해낸 자아, 초자아, 이드의 표본이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 원리란 성경에서 말하는 ‘원죄’의 원리와 같았다.

   우주 인류 속에서 한 아이가 잉태될 때, 정확히 말하면 한 수정란이 생성되는 그 순간, 부모의 표식은 아크삼형제가 ‘추출’로 뽑아낸 조상들의 범죄의 기억과 유사한 내용물을 수정란 속에 전이해 준다. 그때 수정란이 지닌 ‘혼’은 자유의지로 선택할 권한을 얻는다. 이 무서운 집단 무의식에 기쁘게 동참할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거절하고 반발해 낼 것인지를.

   범죄자들의 집단 무의식의 기쁨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그들의 혼은 어떤 원리로 타임머신을 타고 시대를 거슬러 모든 일의 발단이 된 ‘그 범죄 사건’에 참여하게 된다. 이는 시간 축마저 초월한 상위 차원에 거하는 ‘혼’이라는 실체의 성질 덕택이었다. 아울러 그 혼에 결합된 ‘표식’의 기묘한 성질 덕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여하튼 수정란의 혼은 그 사건에 실제적으로 참여하게 되며 그 순간, 새 수정란의 존재 확률은 삭제되지 않고 남는다. 즉 물리계와 시간축 내에서 존재를 얻는 일이 허락된다.

   사실 아크삼형제는 수정란의 혼이 죄악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경우의 수, 곧 그들이 원치 않는 상황을 염려했다. 그래서 그들은 수정란의 혼의 ‘범죄 참여 여부 결정’을 미리 내다보도록, 즉 수정이 이뤄지기도 전에 미래 관측 작용을 통해 부모의 표식이 인식하도록 설정했다.

   그리하여 만일 그 수정란이 결백한 선택을 하게 될 예정이라면, 부모의 표식이 수정 현상 자체를 수정되기도 전에 미리 막아버릴 수 있도록 했다. 기술적으로만 본다면 낙태가 아닌 피임 작용인 셈이다. 이런 복잡한 길을 감수하면서까지 얻고자 한 바는 이것이었다. 오로지 범죄에 참여한 수정란들만이 살아남고, 타락의 잔에 참여한 대가로 일곱 표식을 원죄처럼 물려받은 존재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두 번째 안배는 기우였음이 밝혀졌다. 결백한 선택을 막기 위한 ‘사전 수정 방지’가 발생하는 경우는 한 번도 발생치 않았다. 놀랍게도 하늘도시에서 태어나거나 태어날 예정인 모든 아기들의 혼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집단 무의식에 참여하기를 선택하였다. 즉 다 같이 그날의 범죄 사건에 동참하여 기꺼이 희생자를 학대하고 고문하기를 택하고 기뻐했다.

   아기들이 결백하고 무죄한 존재라는 환상이 완벽히 깨지는 순간이며, 동시에 인간은 누구나 죄악 중에 출생하였다는 오랜 가르침이 증거를 얻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모든 우주 인류는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144,000명의 사악한 사형수 속에 들어가 같이 죄를 즐긴 당사자들이었다. 마치 아담 안에서 인류의 후손 전체가 다 같이 선악과를 따먹은 죄에 동참한 것처럼. 이렇듯 원죄는 강력했다. 한 번의 원죄는 제2의, 제3의 원죄를 얼마든지 손쉽게 창조할 수 있었다.

 

 

 

 

 

 

 

*

 

 

 

 

 

   “크큭.”

   승리감에 젖어 자만심에 충만해진 하르무트.

   “그래, 얼간이 같은 녀석. 이제는 좀 깨달았니?”

   소스라치게 떠는 와중에도 윤혁은 고통스럽게 귀를 막았다.

   “그 후손들도 직접 그 죄에 함께 참여했어. 예외는 없지. 뭐, 기억의 표식 때문에 그들은 그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겠지만. 하지만 기억을 잃었다고 해서 범죄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안 그래?”

   “헉, 허억! 헉!”

   극심한 충격으로 거의 공황 발작이 발생한 윤혁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너라면 누구보다도 잘 알 테지. 어떤 사람이 어떤 죄를 직접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어도, 마음속에서 그 행동을 원하며 주체적으로 벌인다면 이미 똑같은 범죄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야.”

   여러 우주 인류 출신 지인들이 윤혁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가족들과 친하게 지냈던 크로스솔져들, 신해 형, 선교 여행 때 만났던 수많은 새 형제자매들, 그리고 스테판까지. 그런데 그들까지도 사실은 죽임당해 마땅했던 범죄자들의 후손들이자 그 죄악의 식탁에 수태되는 순간부터 참여했던 자들이라니. 이것이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영적 나침반이 선명하게 작동하며 가리키고 있었다. 이게 고통스럽지만, 진실이라는 것을.

   제2의 원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윤혁 본인도 할 말이 없었다. 방금 체험에서 그의 내면에도 분명 하르무트가 준 집단의식체에 반응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물며 아직 중생하기 이전의 자연인이라면 누구라도 그 집단 무의식에 흡수되었을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니 더는 형의 방식에 비난을 던질 염치조차 없었다. 아니, 진실을 알아버린 이후, 자신 안에서도 그자들을 죽이고픈 분노가 들었다. 형의 감정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향한 깊은 원망도 공감하게 된 것이다. 그들에게 단지 ‘표식’만을 채운 건 지나칠 정도로 온건한 자비의 처사였다. 목숨을 거두고 끊어버리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아니, 감정적인 차원을 떠나서 공정한 시각에서 판단해도 그 144,000명에게 합당한 유일한 대우는 가장 처참한 사형밖에는 고려되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의 집단이 국가의 최고 지도자를 수백 번도 넘게 찌르고 파괴하고 학대하고 강간했다. 그들은 국가 반역자요, 한 개인의 철천지원수요, 나아가 인류를 위협할 ‘멸망의 씨앗’을 일깨워낸 대역죄인이다.

   냉혹한 직면에 윤혁의 마음은 슬픔으로 안에서부터 부서지고야 말았다.

 

   찢어지는 듯한 심장을 부여잡으며 괴로워하던 사이에 절망스러운 두 줄기의 섬광이 강림했다.

   “어서 와, 나의 형제자매들.”

   하르무트가 반갑게 인사했다. 세미온과 야르베스의 강림이었다. 둘 모두 하르무트처럼 아름다운 성인 여성의 외양을 띤 인형 몸체를 단말기로 쓰고 있었다. 세미온은 현숙하고 자애롭게 생긴 미녀 현자의 외양이었다. 야르베스는 반면 양팔 저울과 검을 든 채 뭔가를 냉정히 베어낼 듯한 기세였다. 한없이 냉랭하고 혹독하리만큼 아름다운 정의의 여신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눈물을 쏟으며 무릎을 꿇고 있는 윤혁을 가소롭게 내려다보았다.

   “이거 원. 어린애한테 너무 가혹한 거 아닐까?”

   세미온이 가엽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완전히 무너졌군. 그래도 뭐, 대단하군. 그 집단 무의식을 주입받고도 동참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경이로워. 인간이라면 백이면 백, 천이면 천, 그것의 유혹에 넘어가 버리기 마련인데 말이야. 과연 파파가 저자를 ‘양심’으로 삼을만해.”

   야르베스는 의외로 윤혁에게 후한 호평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 엄청난 집단 무의식의 압박감을 거절하는 바람에 정신이 붕괴하고 말았군. 하기야 초인도 아니니 그걸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좀 안타깝군.”

   이렇게 덧붙이면서 야르베스는 다 끝났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낄낄, 준비는 다 마련되었어.” 

   하르무트는 강윤혁이란 잘 요리된 음식을 형제들 앞에서 선심 쓰듯 대접했다.

   “이런, 넌 여전히 잔인하구나, 하르무트.”

   “아니야, 하르무트가 잘해줬다. 저자도 주제에 파파의 혈육이라면 마땅히 깨달아야지.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들이 얼마나 헛되게 판단했는지를 뼈저리게, 처절히 깨달아야 해.”

세미온과 야르베스가 감상평을 쏟아내었다.

   “윤혁아.”

   루디아는 저 멀리서 윤혁을 쳐다보며 아련히 입술을 움직였다. 애통해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지니 그녀에게서도 눈물이 흘렀다. 공간 권역이 분리된 채 봉쇄당한지라 곁에 다가가 위로의 온기를 나눠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혁의 깊은 슬픔은 선명히 체감되었다.

   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갑갑함, 형을 향한 미안함과 불쌍함, 죄악을 바라보는 괴로움, 도덕적 혼란이 그의 속에 혼재되어 응어리 맺혀 있었다. 자신이 저 고통의 자리를 같이 짊어져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둘이 슬픔에 잠기든 말든 시곗바늘은 움직였다.

   “자, 드디어 파티 시작이다!”

   “드디어 3단계 우주 인류 프로젝트의 향방을 가를 결정의 시간이로군.”

   “버러지들에게 합당한 새 양육 제도를, 아니 새 양식(養殖) 제도를 선사하자.”

   아크삼형제의 선포와 동시에 윤혁의 심장이 제멋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윤혁은 순간 왼쪽 가슴을 부여잡으며 고통으로 숨을 헐떡였다. 알트루즘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기 시작했다.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
이전회

600회 아벨의 후예 Ch 45. 하르무트 (3)
등록일 2026-04-20 | 조회수 8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등록일 | 조회수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