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9회 [1부] 9화. 천공성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6.20 | 회차평점 0 |
하늘 위를 움직이는 성.
대중에게는 이 요상한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 건물.
건물이라 불리기에는 사실 어폐가 꽤 있었다.
현재 세계 전체를 통틀어 몇 기밖에 제작에 성공 못한 범용 공중 항공모함.
전란의 시대가 종결된 오늘날 전쟁이 아닌 만 가지 용도로 쓰이기 위해 채택되어 재건된 전천후 만능기.
아이언 로드(IRON ROD).
제국인들, 아니 이제는 전 세계의 시민들에게 있어 이 날아다니는 권좌는 강력한 수호와 통치의 상징이요, 경외감과 안전감의 주춧돌이었다.
그러나 그 위용과 실용성에도 불구하고 아이언 로드는 어떤 병기나 보호 장치라기보다는 그저 황태자의 집무실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그 기능과 능력이 너무도 고스펙이어서 사실상의 병기로 불릴 뿐.
공용의 전략 자신이 되어야 마땅할 이 거체가 하필 한 인간의 애마가 되어버린 이유는 간단했다.
아이언 로드를 계획하고 설계하고 구축하고 개량하는 전 과정에 거쳐, 아이디어와 자원과 기술을 주도적으로 투입한 주체가 다름 아닌 황태자 자신이었으니까.
만일 그가 무거운 통치 책무를 지니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는 과학자나 공학자나 발명가로서도 전무후무한 이름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비행 모드와 부유(浮游) 모드를 자유자재로 전환하는 능력.
거체의 질량을 공중에 고정하기 위해 투입된 여러 물리적 원리와 이론.
비행선처럼 부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유사 풍선 역할의 배리어.
지구 자기장과 지상에서 생성된 인공 자기장을 활용하는 여러 기능들.
신소재들로 도배되어 가벼운 동시에 한없이 탄탄하며 유동적인 몸체.
사실상 인공위성의 수십 기의 역할을 감당하는 통신 제어력까지.
가히 다섯 번째 산업혁명의 위대한 추수 산물 중 대표주자 다웠다.
‘언제 봐도 무시무시한 스펙이라니까.’
오늘도 자유시간과 휴가를 다 희생한 채 시커먼 남정네 곁을 지키는 불쌍한 붉은 머리 청년은 하늘을 가르는 전경을 구경하며 감탄하였다.
몇 달째 근무하며 이곳은 이제 로빈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집이 되었다.
하지만 처음 주군의 손에 끌려 이곳에 왔을 때는 기겁을 멈추지 못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갑부 히어로의 돈 사용 스케일이 떠올랐다.
현실은 항상 픽션보다 더하다고 했던가.
이 모든 것의 건축 및 운용 비용이 국고가 아닌 그의 사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허나 지켜본 바에 따르면 저 황자는 사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풍요가 넘치다보니 일부러 궁색을 내지는 않았지만, 돈을 사랑한다기보다는 그 물질로 무엇을 행하느냐에 의미를 두는 자였다.
그가 각종 사업과 혁신과 산업혁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닌 하나의 수단.
제국, 아니 이제는 그가 책임져야 할 세계 전체를 올바른 균형으로 번영케 하는 것이 그가 재물을 모으는 기초 신념이었다.
실로 그는 축적하는 족족 거의 모든 부를 사회 각지에 투자하고 기부했다.
경제계 최대의 블랙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최대의 화이트홀인 셈이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세계 경제의 순환은 그 엄청난 영향력에 매몰되어 멈추거나 붕괴했을 터이다.
또 아무리 통 크게 과감히 환원하더라도 언제든 아무런 반칙도 없이 정당한 능력만으로 다시 그 이상을 모을 자신이 있던 그는 딱히 아까움을 느끼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대인배임은 사실이었다.
아이언 로드라는 축조물의 존재 역시 거함거포주의에 물든 젊은 지배자의 과시욕이나 사치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연히 인류 산업 발전의 미래를 감안한 장기적 계략의 일환이었다.
그 근거로서 먼저, 아이언 로드는 선체 자체가 막대한 유익을 지속적으로 낳는 인류 최대 규모의 연구 시설이었다.
전 세계에서 선출된 상위 0.1%의 인재 중 적잖은 수가 이곳에 상주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감당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국가 소속 연구원들도 있었고 알렉시스가 경영하는 그룹의 민간 연구원들도 존재했다.
연구 범위 역시 생물학, 생명 공학, 신소재 공학, 나노 공학, 현대물리학, 전자기학 등 다분야에 걸쳐 있었다.
또한 허울만을 내세우며 자본을 낭비하는 연구실들과 달리 성과물도 실용적이고 대단한 수준이었다.
두 번째로 아이언 로드는 전쟁의 시대를 평화의 시대로 전환한다는 기념비적 의미가 함축된 축조물이었다.
과거 최후의 적국을 제압한 직후 적들이 발명하고 축적한 모든 최첨단 대량살상 병기를 압수한 뒤, 본국의 전략 병기들마저 한 자리에 모은 브리튼 제국.
더는 상호확증파괴의 균형 질서가 필요없는 시대가 임박했기에 황실은 과거 공약한 대로 무기들을 정정당당히 폐기하였다.
물론 그 아까운 보화들을 그저 내다버린 것은 아니었다.
무기를 이루는 티끌 하나까지도 철저히 분해되어 연구의 재료가 되었다.
첨단 무기 제작에 투입된 공학 아이디어들을 역분석해 추출하는 것은 물론 원료까지도 모두 뽑아 차세대를 위한 실험과 개발에 재활용하였다.
그렇게 전 세계의 최상위 인재들이 투입되어 냉전 시대의 산물을 사골 국물까지 뽑아내어 알뜰하게 활용한 결과, 경이로운 성과물이 탄생하였다.
지식, 신규 이론, 설계도, 무수한 특허품들, 그리고 진일보한 테크놀로지.
새롭게 전환된 시대를 지탱하기 위한 필수품들이었다.
그 많은 추수 산물들 중 하나가 실용화된 핵융합 기술.
당시 혈기 넘치던 과학자들을 진두지휘했던 리더인 첫째 황자는 오늘날까지 이 성취를 요긴하게 활용하는 중이었다.
실제로 그간 무수한 전문가들의 비관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뉴클리어 퓨전 제너레이터 기술은 괄목할 진전을 당당히 선보였다.
현재 오지, 광야, 섬 등에 건설된 백여 개의 대형 발전소는 현재 방사성 물질의 축적이나 에너지 불안정화로 인한 폭발 위험 일절 없이 멀쩡히 가동중이었다.
여기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생산 효율은 덤.
단 하나의 발전소가 연당 전 세계 화석연료 총 매장량을 소모한 것을 능가하는 전력을 생산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이곳 아이언 로드의 주 동력원 또한 뉴클리어 퓨전 제너레이터.
그것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없이 소형화에 근접한 핵융합 엔진이었다.
자랑스러운 신세대 과학의 성취인 동시에 차세대 산업 혁명을 주도하는 주역이 누구인지를 명명백백히 드러내는 간판이기도 했다.
물론 아직 제너레이터의 완전한 상용 소형화나 상온(常溫) 기동은 시기상조.
하지만 알렉시스는 이미 낙관적인 미래를 내다보았다.
이론적인 기틀과 공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타개책은 이미 완비되었다.
5년 이내에 고무적인 성과의 완성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최첨단 플랜트 기술과 결부된 탓일까?
아니면 신식 에너지 개발을 향한 적극적인 행보를 상징하는 물건이 된 탓인가?
아이언 로드는 괴물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의 타겟이 되기도 했다.
아울러 그 소유자인 알렉시스도 함께 희생양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두려움에 쉬이 선동되는 법이죠.”
젊은 황태자는 지난 몇 년간 겪은 여정을 회상하였다.
그의 입가에 억울함이 깃든 옅은 조롱의 웃음기가 번졌다.
그 조소가 향하는 대상은 물론 일반 대중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의 발목을 사사건건 잡았던 선동 세력들.
진정으로 골치 아픈 적수들인 네 개의 구(舊) 세력의 영적 망령들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하찮은 잔챙이들이긴 했으나 방해물은 방해물이었다.
소위 안전주의니 환경제일주의라는 그럴 싸한 가면을 쓴 자들.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모순적인 행태와 결정으로 환경과 문명 모두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려 움직였던 우매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늘 한결 같았다.
세계 통일 이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레퍼토리로 떠들어댔다.
핵 에너지 그 자체를 정죄하며 악마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선한 방향을 잃은 발전이 아닌, 기술력의 성장 그 자체를 이단시했지.
방사능이니 폭발이니 하는, 무의식적 두려움을 일으키는 소재들을 무기로 삼아서 약간의 진실 몇 가지 위에 풍부한 거짓을 첨가하여 날조의 향연을 만들어냈다.
사실 세계 대전과 그 속에서 사용되었던 대량 살상무기의 참상이라는 경험을 통해 그 무서운 입자 에너지의 오남용이 얼마나 무서운 지 처절한 맛을 보았던 대중은 쉬이 두려움에 이끌려 선동될 수밖에 없었다.
무의식에 새겨진 공포를 어찌 만만히 여기겠는가.
그들의 사정과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허나 그 군중 심리를 이용하려는 악의적인 무리에게는 굴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악착 같은 실행력과 완벽한 성과로서 대응해 허튼 소리를 침묵시켜야 했다.
황태자는 그 오랜 선전 선동의 지탄을 열심히 홀로 맞으며 독박을 써 왔기에 그 지긋지긋함이 얼마나 끔찍한 지를 잘 알았다.
어떠한 무리는 그를 전쟁 놀이꾼, 불장난꾼으로 매도했었다.
실제와는 대단히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다른 무리는 그를 지구 생태계 오염을 가속화할 범인으로 지목했다.
역시나 현실은 반대였으니 산업 혁명 플랜이 성공한 이후 장기적으로 온실 가스 배출은 크게 격감했고 방사성 동위원소의 위협 역시 옛 이야기가 되었다.
“막상 비과학적인 이야기로 정치적 선동을 일삼던 무리는 이제 꽁무니를 뺀 채 자취를 감췄어요.”
알렉시스는 하늘을 가르는 선체 위에서 전망을 내다보며 투덜거렸다.
“자신들의 막되먹은 입으로 함부로 내뱉은 말들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아요. 잠시 꼬리를 내렸다가 다시 물고 늘어질 것이 생기면 그 즉시 이빨을 드러내며 발광하겠죠.”
고고하고 온화한 성품의 그답지 않게 다소간 거친 언변이 나왔다.
‘쌓인 게 많으시겠지.’
로빈은 상사의 소소한 분풀이를 들으면서 내색 없이 조용히 속으로 반성하였다.
자신 또한 올바르고 객관적인, 의도와 이데올로기가 섞이지 않은 순전한 과학을 알기 전에는 저런 류의 목소리에 쉬이 호도되었으니까.
황태자가 세상을 위기로 몰 과도한 프로젝트들을 주도하는 매드사이언티스트라는 날조된 소문에 저도 모르게 속았던 시절도 있었지.
어리고 부족했었던 때였다지만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것.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어차피 역사는 올바른 자의 편을 들어줄 겁니다.”
“부디 그러길 바래요.”
누군가는 이 강대한 권세와 힘의 상징물 안에서 마음껏 대륙들과 바다를 휘몰아치는 이 지위를 하염없이 부러워만 할테지.
하지만 창공을 가로지르는 이 궁극의 관사(官舍)는, 첨단 테크놀로지의 결정체인 아이언 로드는 그 주인을 가두는 철장이기도 했다.
모든 적성 세력의 표적이 되어야 하는 운명.
모든 이가 주시하며 평가하는 대상이 되어야 하는 처지.
황자의 고충을 여실히 반영하는 상징물이 바로 이 하늘 성이었다.
“미안합니다, 잠을 많이 못 잤더니 예민해졌네요.”
알렉시스는 늘 그러하듯 예민한 언사에 대해 사과하였다.
딱히 그 화살이 로빈을 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군가가 자신으로 인해 불편하는 것으로 인한 양심을 잘 못 견뎠다.
“일이라도 좀 줄이시는 편이 어떤지요?”
“그러고 싶지만, 완벽주의라는 게 쉬이 낫는 병은 아니라서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저 사람이 직접 처리하는 일만큼 확실하고 철두철미하고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일은 없으니까.
더욱이 그가 책임지는 임무는 하나 같이 국가의 중대한 축과 연루된 것들인지라 대행자를 찾기가 더더욱 어려웠다.
하지만.
“당신을 신뢰하고 따르는 훌륭한 인재들이 이미 많이 모였습니다. 조금은 그들을 신뢰하시는 편이 어떠신지?”
비서관의 충언에 알렉시스는 이렇게 답했다.
“신뢰하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제 몸과 정신 갈아넣을 수밖에요.”
“어떻게 그런 결론이 도출됩니까?”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도로 활용하여 이끌어내려면 제가 필요하니까요.”
일을 타인에게 맡겨두고 홀로 유유자적하는 건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도리어 좋은 인재들로 하여금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소임에 더욱 충실히 임하는 것.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전혀 만족하거나 안도하지 못하는 그였다.
그런 면에서 아이언 로드의 세 번째 유익은 업무 완벽주의자인 알렉시스에게 있어 필수적이었다.
그 장점이라 함은 바로 실용성의 극한 그 자체.
그 무시무시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막강한 기동력.
어느 위치에서건 이동하거나 머무르거나 방향을 틀 수 있는 유용성.
위성 궤도 가까운 천상에서부터 땅 위의 시민들을 장관(壯觀)으로 위압할 수 있는 저궤도에 이르기까지, 부유(浮游) 높낮이를 조절할 능력.
EMP 및 위성 제어 능력을 통한 통신 네트워크 지배력.
세상 각지의 문제들을 신속하게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지도자로서,
불가피하게 두려움과 위엄을 무기로 삼아야 하는 입장으로서,
각지의 수하들과 인재들에게 효율적으로 접촉해야 하는 처지로서,
신출귀몰하게 광활한 영토를 가로지르며 모든 범용성과 유용성을 최상의 상태로 갖춘 채 이동 가능한 하늘의 철옹성보다 적합한 도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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