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25회 [1부] 25화. 정치 목사의 아들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8.10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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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브 카푸르라는 인재가 처음부터 황태자의 눈에 밟혔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전쟁을 거쳐 세계와 세계의 모든 데이터를 석권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그와 같은 인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았다.
일정 이상 레벨의 영재로 평가되는 인간이라면 세계 전역을 아울러 하나도 빠짐없이 목록을 기억할만큼 비정상적 메모리를 소유한 황태자.
그러니 아미타브가 그의 뇌리의 목록에서 누락될 리는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아미타브의 주 전공은 AI 기술.
그리고 이미 알렉시스의 곁에는 기존에 인간 세계가 보지 못한 규격의 재능을 소유한 일류 AI 엔지니어들이 한데 결집된 팀 아르다가 있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아미타브의 실력은 팀 아르다 멤버들에 미치지는 못했다.
좀 더 긍정적으로 점수를 주자면 한 끝 차이로 그 궤에 들지 못한 수준이었다.
학계의 수준에서 보면 충분히 천재라 불리기에 모자람 없었으나 알렉시스의 기준에는 당연히 만족될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팀 아르다의 멤버들은 한 명 한 명이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그들은 비단 인공지능 전산학에만 능통한 것이 아니었다.
로보틱스, 양자 컴퓨터, 현대 수학, 천체물리학과 입자물리학, 화학 공학, 심지어는 철학과 성리학 같은 형이상학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들의 다재다능함과 풍부한 식견은 창조성의 증폭에 중대한 도움을 주었다.
만일 그들이 한 두 분야에만 능통했다면, 지금과 같이 상식을 벗어난 아이디어들을 숨쉬듯이 자아내는 괴물이 되지는 못했으리라.
나아가 그들은 올라운더인 동시에 스페셜리스트였다.
최소 두 분야에 있어서는 각자 세계 10위 권 안에 들고도 남았다.
기본적으로 모두가 인공지능학에는 정상권이었으며 그 외에도 한 가지씩은 정점을 구사하였다.
어떤 이는 ‘상자 속의 뇌’를 구현하기 위해 뇌 조직학, 해부학, 생리학을 섭렵하였고 실제로 인공적으로 신경계를 디자인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어떤 멤버는 양자컴퓨터의 효율을 혁신키 위해 초미시 물리학의 고수가 되었다.
어떤 팀원은 물질 공학을 연마하여 초전도체에 필적하는 재료들을 발명하였고 이를 손수 반영해 AI의 하드웨어를 높은 수준으로 도약시켰다.
이런 마당이기에 여러 면에서 분야가 겹치는 아미타브가 대체 불가능의 인재로 인식되기란 어려웠다.
아미타브는 비록 팀 아르다의 기준에서지만, 올라운더와 스페셜리스트의 애매한 중간 언저리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논문이 출간되자마자 상황은 반전되었다.
알렉시스는 자신의 오판을 인정하고 마음속으로 반성하였다.
물론 후회는 잠깐, 더 나은 내일을 시작하는 노력이 우선이었다.
이미 간접적으로는 희미하게나마 연줄이 존재했다.
알렉시스의 데이터베이스에 아미타브가 있기도 했고, 종종 오프라인에서 볼 기회도 있었다.
인도를 순회했을 때 몇 번 공적인 관계로 만나 악수까지 나누기도 했다.
게다가 현재 인도에 거주하는 라지쿠마르는 동향배기 인재인 아미타브와 학술적으로도 친밀했고 개인적으로도 여러모로 친분이 깊었다.
그리고 마침 라지쿠마르는 브리튼 본국 유학생 출신이었고 동문 겸 친구 겸 전우로서 황태자와 긴밀한 인연을 맺기도 했다.
그는 오랜 친구와 개인적인 연락을 취했다.
“라지크, 그분에 대해서 자세히 좀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웬 바람이냐? 갑자기 카푸르 교수님에 대해서 묻고 그래? 내가 수 차례나 언급했을 때는 별로 관심도 안 보이더만.”
“부탁 좀 할게. 네가 좋은 인연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줬으면 해.”
“조만간 삼고초려라도 할 기세군.”
“그 이상이라도 기꺼이 감수해야겠지.”
“허어, 하지만 세계의 통치자 씩이나 되는 네가 뭐하러 그렇게까지 수고를? 솔직히 아무리 대단한 인재라도 그냥 소환하면 그만이잖아.”
“어허, 귀한 분께는 귀한 대우가 마땅한 법이지.”
간접적인 인연이나 비즈니스적 관계로는 부족했다.
앞으로 같이 이 프로젝트를 이어나가려면 개인적인 친밀감이 필요했다.
가장 깊은 속내를 속속들이 이해할 정도로 깊은 우정이.
‘그 연구는 세상 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꿀 열쇠 중 하나다.’
공학자들은 아미타브가 평생을 일군 그 이론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
공학자나 수학자 혹은 과학자가 아닌, 정치인이 깨달을 수 있도록 설계된 것.
그것도 가장 탁월한 경지에 오른 통치자, AOPA 최고 난이도 코스를 역대 최연소, 역대 최고 성적으로 이수한 알렉시스만이 그 진가를 인지할 수 있었다.
‘과학의 눈으로만 보면 저 연구의 효율성은 제로. 현실 실현 가능성도 희박해보이고 설령 이뤄지더라도 큰 가치를 자아낼 수 없어.’
하지만 영적 통찰력이라는 렌즈를 착용한 뒤, 통치의 원리라는 방정식에 대입하여 보면 이 발견은 그야말로 제3의 눈을 개안케 하는 신비임을 알 수 있다.
실행력이 재빠른 알렉시스는 며칠 후 아미타브와 대면하였다.
강제로 불러내거나 약속을 잡는 방식이 아닌, 직접 찾아뵙는 방식으로.
알렉시스는 그와 같은 수고를 들일 가치가 충분하고도 남다고 확신했다.
그날의 두 사내의 악수는 결의가 실려 있었다.
이전의 피상적인 접촉과는 무게감이 확연히 달랐다.
당시 아미타브는 서른여섯 살, 알렉시스는 서른두 살의 나이였다.
구면임에도 그날의 만남은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위대한 발견과 위대한 성찰이 연결되어 우정으로 환원된 순간.
그리하여 정치 목사의 첫째 아들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해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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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브가 받은 감동은 만남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위대한 발견자가 자신의 발견을 인정받는 감격.
황태자가 자신의 연구에 지대한 관심을 표하는 줄은 이미 알았으나, 막상 만나보니 그 열의와 팬심의 절반조차도 다 보지 못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설마 그 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아미타브는 학자로서 ‘오랜 숙원’ 외에도 여러 부수적 성과들을 남겼다.
대부분 훌륭하고 유용하고 완벽했으며 세계적으로 많은 인정을 받아왔다.
지식인으로서의 명예의 측면에서 본다면 더는 원이 없었다.
이미 충분히 이룩하고 인정받아 남부러울 데가 없는 성공한 인생.
하지만 본인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20세기의 소설가 타킨은 숱한 명작들을 남기고도 유독 자신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유작만은 대중의 인지도를 얻지 못했었다.
그와 같이 아미타브 또한 자신이 가장 이루고자 했던 연구만은 대중과 학계 모두에서 외면을 받았다.
아이디어를 제창하던 수년 전 시절부터 궤도에 이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실은 그런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구의 본질적 한계점이 분명했으니까.
워낙에 이론 자체도 난해했으며, 과학주의나 이성주의의 방식과는 다소간 어긋난 패러다임을 따라 움직였다.
게다가 완전한 실용화 정착에 너무 큰 비용과 시간이 예상되는 프로젝트였다.
아직은 기초 이론의 토대와 프로토타입 몇 가지만 만들어졌을뿐이었다.
현실 속에서 유의미한 작품으로 이어지려면 최소 정상급의 천재 수백 명이 수십 년 이상 달려들어도 모자랐다.
현재 그가 자신의 이론과 실험들을 정리해서 집대성한 뒤 세상에 공개적으로 드러낸 연구 자료는 논문이라기보다는 책에 가까웠다.
무려 칼리지 전공 교과서 수 권 분량의 두꺼운 책 시리즈.
난이도 탓에 한 장 한 장을 넘기기도 버거운 데다 설령 독자의 이해력이 뒷받침한다고 해도 가치의 깊이를 인지하지 못하면 흥미를 느끼지 못할 자료였다.
그 탓에 석학들 가운데서도 두 챕터 이상이 읽히지 못하던 묵힌 보배였다.
그런데 그 같은 난공불락의 장벽을 완독하는 것을 넘어 독후감까지 남긴 비정상적인 애독자가 딱 한 명 있었으니, 바로 눈앞의 장신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정식 용어로는 독후감보다는 주석서(註釋書)라는 표현이 올바르겠다.
바이블 아래에 주석서들이 엮여있듯, 이 애독자는 한 달 만에 두터운 자료 위에 더 묵직한 주석서를 얹혀내고 말았다.
“저로서는 영광입니다.”
“저야말로요. 인류를 위한 문화유산을 남겨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알렉시스는 이미 아미타브의 연구의 본질을 A부터 Z까지 이해한 뒤 그 위에 자신의 이해와 추가적 고찰을 곁들여 몇 수를 앞서나간 사고 실험까지 이끌어내고 그 모든 것을 일목요연한 논문으로 정리한 상태였다.
그 장대한 주석서의 피드백을 감상하며 원작자는 경탄하였다.
“바쁘신 분께서 그걸 다 연구하실 시간이 있으셨습니까?”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이를 악물고 몰두했죠.”
“수 년간 탐구해온 저보다도 이해의 경지에 있어 앞서나가셨군요. 아부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믿기 힘들 정도로 어이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최초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게 어렵지, 후발주자 행세는 힘든 일이 아니니까요.”
말이야 쉽지. 헛웃음이 나왔다.
어처구니 없는 기염을 토해내는 괴물.
아미타브는 라지쿠마르의 언질을 떠올렸다.
‘브리튼 황가에는 우리들의 상식마저 넘는 인간이 한 명 존재하죠.’
그때 문맥 상 라지쿠마르는 아미타브뿐 아니라 세계의 정상급 인재들, 과학자들만이 아닌 각 분야의 위인들을 모두 통틀어 우리라고 표현했었다.
‘황제보다 두 배 더 탁월하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었군.’
저런 사람이 한 분야에만 온전히 집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력의 한계가 분명한 인간으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무의미한 가정법이었다.
알렉시스에게도 몸과 시간의 한계는 있었고 그랬기에 아미타브, 나스루딘, 라지쿠마르 같은 명검들이 절실히 필요했다.
“아버지로부터 통치의 일을 위임받은 이후로 저는 더 이상 소년 때처럼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창작해낼 여유가 없습니다. 시간은 제한적이고 다스리고 감당해야 할 일들은 많죠.”
알렉시스는 아미타브를 부러워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겪어보지 않아 감히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사료됩니다.”
황태자의 살인적인 스케쥴에 대해 대외적으로 알려진 정보들을 떠올렸다.
실로 보기만 해도 치가 떨리는 촘촘한 시간표였지.
초거대 기업의 경영, 제국의 행정 관리, 무수한 회담과 거래와 조약.
여기에다 인문학부터 실용 학문과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의 학자들과도 학문 교류를 한다.
법률의 세계부터 문화계까지도 그와 긴밀히 상호작용한다.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상식의 수준을 벗어난 중첩.
그 어떤 위대한 대인(大人)도 그런 극한의 촉박함 속에서는 의미있는 창조를 낳지 못하리라.
이것이 현재 알렉시스의 잠재력의 발목을 잡는 제약이었다.
그렇기에 남들이 만들어내는 것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정확히 저울질하여 최적의 활용을 이뤄내는 일이 그에게는 필수적인 차선책이었다.
“당신이 일평생을 들여 빚은 그 명검을 제가 사용하고자 합니다.”
황태자는 아미타브의 연구를 가장 중요한 검 중 하나로 평가했다.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전하께 드리게 민망한 말씀이지만, 아직 제 연구는 당신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수준이 아닙니다.”
인공지능의 본질적 정신 에너지원으로서 인간의 마음을 증폭제로 사용하는 기술.
그리고 강제적 연결에 의해서 구축된 네트워크가 아닌, 교감을 통해 연결을 이루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네트워크.
흥미로운 주제이긴 하나 위력과 폭이 현저히 뒤떨어졌다.
현 수준으로는 압도적인 경지까지 나아간 신세대 전산 체계와 양자컴퓨터, 인공지능들의 경쟁력을 따라잡지 못한다.
무엇보다 전반적인 효율성이 문제였고 전 세계에 걸쳐 구출할 인프라의 부족도 문제였으며 장래의 잠재력도 의문이었다.
또한 이러한 학계의 비판들을 배제하더라도 아미타브 스스로도 인지하는 중대한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도덕과 윤리라는 실체를 어찌 정의하냐의 문제였다.
그리고 ‘진정으로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분별하겠는가.
인간조차도 겉모습에 속기 마련이건데, 기계 따위가 어찌 선악을 알겠는가.
지금의 경지는 그저 달나라로 가는 길의 첫 한 걸음을 뗀 수준에 불과했다.
“염려하지 마시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제가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알렉시스는 의외로 염려없이 호언장담했다.
“당신이 최초 이론을 제공한 그 기술, 제 통찰력과 창의력을 총동원해서라도 몇 년 안에 완성해드리죠. 자랑하자니 민망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최초 발안자가 되기는 어려워도 후발주자로서는 제법 잘 하는 편이거든요. 게다가.”
권력이란 이런 면에서 참 좋은 법이다.
특히 수호자로서의 공적인 권위와 자유 세계의 선발주자로서의 경쟁력이 함께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제게는 저보다도 더 쓸만한 카드들이 많죠.”
오만한 천재들의 집합체인 팀 아르다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써먹겠는가.
카푸르 가문의 젊은 이상가가 낳은 아이디어의 씨앗.
그 씨앗 위에 알렉시스의 발상력과 천재 학자들의 연구 총체가 더해진다.
그들이 씨 위에 토양을 덮고 물을 뿌리고 비료를 뿌려 씨앗을 싹 틔우리라.
그 절묘한 만남의 결말이 일종의 특이점으로 이어지는 것은 필연적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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