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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32회 [1부] 32화. 비밀 계엄령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8.30 | 회차평점 0 0

 

 

 

*

 

 

 

 

 

 

 

 

제라드 폴 매카서.

 

 

지난 세계 대전 때 원수급 직위를 역임했던 장군.

 

 

당시 전쟁의 동부 전선이었던 태평양 전역을 담당했었던 명장.

 

 

그는 3차 대전의 7영웅 중 하나로 막대한 네임벨류를 자랑했다.

 

 

 

 

 

뛰어난 지휘력만이 그의 저력의 전부는 아니었다.

 

 

정치적인 능력에 있어서도 그는 정점으로 칭해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종전 이후 몇 년 지나 군을 전역하여 정계에 진출한 그는 AOPA 최상위 등급답게 단기간에 온갖 경이로운 업적을 남겼다.

 

 

현재 그는 제국 내에서 손꼽히는 열두 명의 가장 유능한 통치자 중 하나로 인정받는 현역 정치인이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내내 브리튼의 구대륙 전진 기지 역할을 했던 일본 열도에 자리를 튼 채 총독 관리자로서 직임을 맡아 구 공산권의 반 브리튼 준동을 억제하고 관리하는 중이었다.

 

 

 

 

 

한편, 제라드는 병역 시절 알렉시스의 상관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다소간 상하관계 역전이 생기긴 했다만.

 

 

어쨌건 그때나 지금이나 둘은 서로에게 경의를 보이는 관계였다.

 

 

전우애에서 시작되어 형성된 친분과 신뢰, 그 깊이는 막역한 친우 이상이었다.

 

 

 

 

 

본격적인 비밀 계엄령 코드 블랙 발동에 앞서 알렉시스가 제일 먼저 논의를 나눌 협력자도 이 사람이었다.

 

 

 

 

 

“알렉, 정말 오랜만이구나.”

 

 

“몇 달만에 뵙게 되어 저도 기쁩니다.”

 

 

“그간 일하느라 고생이 많았겠구나. 헬쓱해진 것 같기도 하고.”

 

 

“건강은 열심히 관리하는 중이니 걱정 마세요. 옆 자리에 앉으시죠.”

 

 

 

 

 

예순여섯 살의 노장은 조카를 대하듯 상냥한 미소를 머금었다.

 

 

공석에서 황태자를 아들처럼 친근히 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어르신.

 

 

정치 스승인 양첸이 저 나름대로 잘 챙겨주면서도 은근 구박까지 겸해 주는 타입이라면, 제라드는 알렉시스에게 늘 진심어린 다정함을 보여왔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으레 그러듯 황태자라는 거물 앞에 비위를 맞추며 굽신거리는 식이 아닌, 그저 정성스레 인간 대 인간으로서 부하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일뿐이었다.

 

 

물론 지금이야 제라드가 알렉시스의 신하가 되었지만, 여전히 알렉시스는 그를 믿고 의지할 든든한 어른으로 여겼다.

 

 

항상 알렉시스는 옛 상관을 공경하였고 그의 말이라면 늘 존중하고 경청하였다.

 

 

 

 

 

“계엄령이라. 생각 이상으로 일이 확대되었구나.”

 

 

 

 

 

제라드는 나직이 한탄하며 나라의 미래를 우려하였다.

 

 

 

 

 

“부디 또 한 번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일이 두 번 다시 생기지 말아야 할터.”

 

 

 

 

 

브리튼이 배출한 전설적인 명장, 승리의 상징이자 역전의 용사.

 

 

철인 덜 든 대중은 그런 제라드를 그저 호전적인 전사로 여기며 제멋대로 추앙의 아이콘으로 삼는다.

 

 

좀 더 완악한 이들은 그를 구국이라는 미명하에 많은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냉혈한으로 바라본다.

 

 

조금 더 악랄하고 교활한 자들은 그의 위명 위에 학살자라는 프레임을 씌우기를 주저치 않는다.

 

 

 

 

 

허나 현존하는 인간 중 전쟁을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자를 다섯 손가락 안에 꼽으라면 제라드는 단연코 그 안에 제일 먼저 들어가고도 남을 인물이었다.

 

 

그 누구보다 피 흘림을 미워하는 평화주의자.

 

 

다툼과 분쟁을 뼛속까지 거부하고자 하는 반전주의자.

 

 

그런 주제에 전술과 전략이라면 물리적인 분야에 더해 언론, 정치, 정보전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급의 천재성을 보유한 기인.

 

 

여러모로 그의 모순적인 재능은 비극적이고도 희극적이었다.

 

 

 

 

 

“바로 그것을 위해 시행하는 작전입니다. 수술적인 치료가 가능한 단계로 암이 약체화된 지금, 피 흘림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메스를 들어야 합니다. 만일 적기를 놓치면 훗날 우리는 네 번째 대전쟁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 결말은 최소 인류 문명의 석기시대화, 최악의 경우 멸종이 되겠죠.”

 

 

“그래, 네 말이 옳다만, 쉬운 일은 아니로구나.”

 

 

 

 

 

제라드는 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자신이 아님을 감사히 여겼다.

 

 

물론 이 부담스러운 폭탄이 자신에게 주어지더라도 끝내 그는 감정을 억누른 채 이성적으로 최선의 결론을 택했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자기 손에 피를 묻히는 악역이라 할지라도.

 

 

반전주의자인 것과 별개로,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숨고 피하고 달아나는 것이 아닌,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고야 마는 것이 그의 인생 지론이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 역이 젊고 싱싱한 다음 세대 주역에게로 넘어갔다.

 

 

게다가 제라드 자신은 더는 전쟁꾼도 아니며 장군도 아니다.

 

 

그저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명령에 정중히 복종하는 총독 중 하나일뿐.

 

 

 

 

 

“그나저나 여전히 알렉 너는 계산 밖이구나. 군권의 수령에 더해 비밀 계엄령까지 발동하다니. 한 달도 안 되어 그 절차들을 통과시킬 줄은 몰랐다.”

 

 

 

 

 

브리튼은 비록 공식적으로 제국이기는 하나 여러 면에서 법치, 헌법, 윤리, 시민 영향력으로부터의 제약을 받는다.

 

 

지난 세대 황제들은 자신을 비롯한 모든 인간 내면의 타락한 본성을 이해했기에 일부러 강한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자 스스로 족쇄를 입었다.

 

 

원래는 권력욕에 물들기 쉬운 것이 인간의 본질.

 

 

더욱이 최고의 자리에 앉은 상태로 그런 선택을 자발적으로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언약 위반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고자 기꺼이 절제를 택했다.

 

 

 

 

 

그 결과, 지금의 헌법 시스템은 번거로운 안전 장치들을 품게 되었다.

 

 

예컨대 황제나 그 후계자가 일정 이상의 권력 행사, 이를테면 계엄령 등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조건들을 여럿 클리어해야만 했다.

 

 

수십 가지의 조항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한 가지만 예로 들자면 의회와 사법 기관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것도 최고 단위 의회부터 일정 단위 이상의 지역 의회까지 전부 아울러서.

 

 

전쟁 같은 특수 상황이라면 그 허들이 대폭 완화되었겠지만, 종전 시대인 지금은 그 까다로운 조건들을 어느 것 하나 우회할 수 없었다.

 

 

 

 

 

알렉시스는 지난 한 달 손수 정석적인 방법으로 조건들을 모두 완수했다.

 

 

배후에서 많은 설득과 교섭을 시행하긴 했으나 부정적, 불법적 방법은 일체 손을 대지 않았다.

 

 

정치 역학에 바삭한 제라드로서는 그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소문처럼 저 아이에게 사람을 지배하는 마술이라도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의회를 컨트롤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지.’

 

 

 

 

 

엄연히 여러 정당이 존재하며 다양한 의견이 허락되는 정글.

 

 

최고 단위의 대의회부터 시작해 최소 열두 단계의 세부 의회들이 범국가 차원에서 존재하며 여기에 지역 단위의 의회들도 플레이어로서 작동한다.

 

 

이들이 서로를 견제하며 정책적인 균형을 이루는 것이 지금의 매커니즘.

 

 

황제라도 그 뒤엉킨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마음대로 칼로 끊지 못한다.

 

 

 

 

 

극에서부터 극에까지 이르는 복잡다단한 이념적 스펙트럼.

 

 

그 모두를 아우르는 의견의 홍수를 누가 온전히 컨트롤하겠는가.

 

 

오롯이 한 인간의 카리스마와 인품과 영향력만으로 그 모든 차이들을 무마시키고 통합의 장을 자아내는 일이 가능키나 한단 말인가.

 

 

 

 

 

‘물론 의회에는 젊고 강력한 루키들이 몇 있다.’

 

 

 

 

 

그 젊은 논객들이 대중적 인기와 타고난 언변, 압도적인 재능과 영리한 두뇌 등을 앞세워 나이든 의원들을 휘어잡으며 선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각기 포지션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며 공식적인 정파도 다르지만, 사실상 속내를 들여다보면 알렉시스의 수족들이다.

 

 

그래, 그 가운데는 심지어 황자도 한 명 있었지.

 

 

맏형이라면 죽고 못 사는 브라더 콤플렉스의 왕자님.

 

 

 

 

 

황태자가 천수관음마냥 다양한 팔들을 사용해 서로 다른 입장의 파벌들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바다.

 

 

그들이 배후에서 도운다면 신속한 의견 조율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설명이다.’

 

 

 

 

 

그렇다면 역시나 마인드 퓨리파이어 때문인가?

 

 

 

 

 

그 기기의 이중 모듈 발동은 이슬람 신도에게만 국한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의심할 만한 정황은 충분했다.

 

 

마인드 퓨리파이어가 전 세계에 대중화된 이후 무슬림의 종교 탈주 현상뿐 아니라 반이슬람 정서의 급속 팽창도 발생했으니 말이다.

 

 

 

 

 

그 이유라면 의회가 알렉시스의 설득에 단박에 넘어간 것도 일부는 설명된다.

 

 

 

 

 

‘예나 지금이나 참 치밀하고 무시무시한 아이로구나. 상식의 틀에 묶이지 않으면서도 도덕의 선만은 절묘하게 넘어서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안쓰러우면서도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그 파릇한 나이에 그 고통을 겪었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전쟁이라는 상흔이 알렉시스의 마음을 어떻게 마모시켰는지를 옛 상관으로서 곁에서 목격했던 제라드는 아이의 응어리를 공감하였다.

 

 

 

 

 

계엄령 플랜을 전반적으로 토의한 뒤 제라드는 조언하였다.

 

 

 

 

 

“반드시 피해는 최소화되어야 한다. 피 흘림은 지난 시대로 이미 충분해. 선량한 이의 생명이 최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하지만, 그 조건이 만족된다면 보복의 폭도 제한해야 한다.”

 

 

 

 

 

알렉시스는 이에 안심시키며 장담했다.

 

 

 

 

 

“제가 존경하는 분이라 그런지 생각이 통했군요. 동일한 의견입니다. 우선순위는 승리와 성공, 공의 집행이지만, 목표 원칙을 지키는 한도내에서는 불살(不殺)을 적용할 예정입니다. 그래야만 다음 단계도 가능하겠지요.”

 

 

“다음 단계라고?”

 

 

 

 

 

여기에 대해서는 알렉시스도 묵비권을 행사했다.

 

 

제라드는 마인드 퓨리파이어나 그 소문의 ‘기괴 인공지능’들의 파급 외에 알렉시스에게 다른 카드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섬뜩함을 느꼈다.

 

 

 

 

 

‘나 같은 범부야 장군일 때는 장군의 역할만을, 총독일 때는 총독의 역할만 할 수 있지만, 알렉은 다르다.’

 

 

 

 

 

기업가도 될 수 있으며 발명가도 될 수 있다.

 

 

동시에 정치인도 되고 전략가도 될 수 있다.

 

 

신학자, 더 나아가 예언자가 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간파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역할들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여 서로의 효율을 상식선 너머까지 극도로 드높인다.

 

 

만 가지 얼굴을 지닌 카멜레온, 천 개의 머리를 소유한 히드라.

 

 

치밀하게 뒤엉켜 능수능란하게 협력하는 팔들을 가진 천수관음.

 

 

 

 

 

‘이슬람 다음의 사냥감은 아무래도 내가 줄곧 맡아온 쪽이겠지.’

 

 

 

 

 

은퇴하여 편히 여생을 즐겨도 되리라는 기대감과 더불어 저 예측 너머의 철인이 빚어낼 예상 불가의 세상이 두려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도 두 상반된 기류는 꾸준히 민족들을 휩쓰는 중이었다.

 

 

하나는 배반, 거부감, 배신감, 그리고 노골적인 거절.

 

 

다른 하나는 그 반동으로 발생한 극도의 복수심.

 

 

 

 

 

배역한 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처단하고 심판하도록 설계된 종속 시스템은 이제 도리어 서서히 코너에 몰릴 처지에 놓였다.

 

 

맹목적으로 지지했던 자들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이끌던 세뇌된 무리도 양 떼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위상, 명예, 명분 역시 땅바닥으로 떨어진 상태.

 

 

이 순간, 더는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초조해진 이들은 서서히 어떤 광기의 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합리적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충동적 소욕.

 

 

이미 과거에도 그 망령은 역사했으나 지금처럼 극도로 첨예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단말마를 지르는 도살장의 짐승처럼, 절제의 끈을 잃은 무언가가 떠나지 않고 남은 그들의 혼을 신속하게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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