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47회 [1부] 47화. 용병왕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0.09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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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세계 대전 당시의 군 복무자의 수는 지금의 열 배 이상, 전쟁 이전의 냉전 당시와 비교해도 세 배 이상이었다.
징집된 군인이 그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당시는 국경선뿐 아니라 사회 내부에도 갖가지 위험이 범람하였다.
물리적인 전투 외에도 첩보, 음모, 공작(工作), 정보전, 헤게모니 선동전, 심지어는 사람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제어하려는 금기의 전쟁도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던 시절이었다.
양국 모두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하는 아쉬운 처지였고 패배 시 뒤가 보장되지 않을 것이 자명했기에 전력을 아낄 이유도 없었다.
자연히 젊은 남성의 상당수가 군인 및 보조자로 투입되었고 각종 전문 인력도 총동원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젊은이가 억지로 끌려가듯, 부득이하게 준비 없이 투입된 건 아니었다.
그 시절의 정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면, 대전쟁 발발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었고 사전에 준비할 여유는 충분했었다.
전운이 감돌던 발발 전 7년, 그리고 전쟁이 실제로 진행되었던 3년, 도합 10년의 세월 내내 다양한 젊은이들이 전쟁의 스페셜리스트로 육성되었다.
훈련을 통해, 실전 경험을 통해 그들은 도살장의 양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기꺼이 세계와 인류를 수호할 전사로 키워졌다.
그들은 실제로 크게 활약하였고 다른 군인들보다 높은 생존률을 보였으며 자신에게 맡겨진 곳에서 영웅으로 명성을 드높였다.
기적적으로 인류 공멸을 면하고 전후 시대에 이르자 더 이상 많은 수의 젊은 인생을 군에 잡아둘 명분은 없게 되었다.
대다수의 징집병은 전역하였고 가족과 시민 사회의 품으로 귀환하였다.
전후 시대의 세계 질서 유지를 위해 군 체계 자체는 유지되었으나 자리의 수는 한정되었고 특화된 자질과 타고난 기질을 갖춘 선택받은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규군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당시의 군 전력 축소가 다소 성급한 결정이었노라는 의견도 일각에서 나오곤 한다.
한 쪽이 승리한 덕에 오대양 육대주의 통일은 이뤄졌으나 내분과 내전의 요소는 해소되지 않은채 한 체계 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부 안정을 명분으로 군 전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하자니, 그것은 그것대로 꺼림칙했다.
커뮤니스트 연방이 승자 측이었다면 힘의 논리에 입각한 내부 단속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택했겠지만, 브리튼 제국의 지도층인 황실은 도덕적인 명분이 걸림돌이 되었다.
또한 국가 체계가 자칫 강압적 전제 정부로 향하는 일은 국민들도 원치 않았고 황실도 바라지 않았다.
황실은 타락하여 무소불위의 세계단일의 리바이어던으로 변모하기를 스스로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였다.
시민들을 무력의 공포를 통해 단합시켜서는 평화의 시대가 무의미해진다.
비인간적인 체계로부터 인류를 지켜냈노라는 프라이드에도 금이 가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군의 전반적 축소는 당위성이 있었고 오랜 전쟁에 지쳐있던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 결정이 마냥 지혜롭기만 한 것은 또 아니었음이 전후 수년에 걸쳐 서서히 여러 증거로 드러났다.
아직 안정화되지 못한 세계 각지에는 분쟁의 씨앗들이 산재했고 크고 작은 반란의 발생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맹렬한 증오심을 나누던 적국이 자리했던 땅이 현 브리튼 영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이었다.
민족들의 부정적 정서와 사상의 폐해가 하루 아침에 청산될 리는 만무했다.
따라서 평화 유지를 위해 강요되는 최소한의 군사적 비용은 낙관적인 예상과 달리 매우 비쌌다.
화해와 데탕트의 시대를 맞이한 탓에 축소되어버린 브리튼 군만으로 그 수고를 감내해기란 상당히 버거웠다.
또한 급작스럽게 요행으로 얻은 평화를 보존하는 데 드는 응분의 비용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랜 기간 요구되었다.
자칫 제한된 인력만으로 감당하려 했다가는 번아웃을 맞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노선을 바꾸고 결정을 번복하여 군비를 증강하자니 체면이 서지 않았다.
군비 증강 자체가 국가 전체와 시민들에게 부담이 되기도 했고 다시금 전쟁의 부담감을 증가시키는 부작용도 있었기에 쉬이 선택할 수는 없었다.
물론 평화와 질서를 위한 치안 기능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전란의 두려움을 해소하는 대안책도 있긴 했다.
경제와 기술을 발전시키고 그 힘을 바탕으로 군을 첨단화하고 자동화하는 것.
그러나 이는 당장의 옵션은 아니었다.
설령 군을 자동화하고 첨단화한다고 해도 최소 십 년 이상의 긴 호흡의 준비를 고려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빈 공백을 메우려는 번외의 노력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는 건전한 방식도 있었고, 사회적으로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형태의 노력도 있었다.
마침 전쟁 이후 민간인으로 복귀하기로 되어있던 이들 가운데는 법 체계의 공백을 틈 타서 교묘한 형태로 신분을 변모한 이들이 적잖이 존재했다.
주로 신대륙쪽 본국 시민들보다는 세계 제1차, 제2차 대전 당시에 편입된 영토의 주민들이 그러하였다.
제3차 대전 당시, 시대에 떠밀려 골수 군인으로 양육되었으나 실력이나 전문성은 애매한 수준으로 높고 충성심의 깊이와 사상적 건전함도 애매한 탓에 정식으로 평화유지군에 말뚝을 박지는 못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정규군에 머무르자니 쉬이 통제되기 어려운 성향이었고 그렇다고 민간으로 돌아가자니 사회에 안착하기도 어려운 불편한 자들이었다.
또한 당시 그들의 출신지는 막 브리튼령에 편입된 탓에 융화가 잘 되지 못한 상태였다.
더욱이 전쟁을 막 겪은 직후인지라 사회적 기반도 기초부터 쌓아야 할 판국이었다.
그러므로 그들 입장에서는 허허벌판뿐인 땅에 가서 막노동을 하며 기약 없는 수십년 후를 힘겹게 기다리느니 당장의 자극적이고 편리한 선택지를 취하는 편이 끌릴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이런 이들 가운데 적잖은 이가 용병이 되었다.
지금이야 무력 운용이나 사병 관련하여 법적으로 규제가 갖춰져 안정화되었다지만, 막 연방이 무너진 직후에는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총기나 무기 관련 규제도 완비되지 못했고 설령 갖췄다 해도 그것을 전 브리튼령에 일관되게 강요하기에는 여력이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지난날 대적이었던 국가나 지역들에서 크고 작은 잔당이 모여 여러 불법 무장 세력을 이루었다.
그 반작용으로 반발 또한 일어났다.
민간 세계와 새로 편입된 행정 구역들도 혼란의 정세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했다.
지금처럼 브리튼이 지구 전 지역의 치안을 통제할 여력을 갖추기 이전인 그 시절, 빈 공백을 메우고자 새로운 ‘안보의 수요’가 창출되었고 용병들은 그 자리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일부 채워주었다.
용병들은 다양한 형태로 우후죽순 조직되었다.
개인 단위로 활동하는 이도 있었고 소규모로 무리지어 다니는 이들도 있었으며, 일종의 단체 내지는 기업의 형태로 조직된 그룹도 있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질서를 나름 지켜가며 행동하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다소 위험할 정도로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이는 이도 있었다.
유용성도 분명 존재했으나 그만큼 그림자도 짙었다.
브리튼 본국 출신의 젊은이들 가운데서도 가난, 고립, 전과 등의 이유로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안착하지 못한 이들중 전쟁 참여경험이 있던 이들은 정규군에 남지 못하면 용병 노릇을 택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아프리카, 중동, 동유럽 출신 가운데는 더욱 그런 이들이 많았다.
커뮤니스트 연방 출신이었으나 대전쟁 때 브리튼의 편에 섰거나 연방을 향해 반란을 벌였던 무리도 전후에는 용병 쪽으로 나아간 전례가 수두룩했다.
자연히 세계의 치안이 안정화되는 과도기인 15년 동안에는 춘추전국 시대를 연상케하는 크고 작은 무리의 활보가 안보와 질서가 취약한 여러 제국령에서 범람하였다.
각종 반군, 혁명군, 범죄 조직, 연방의 잔당, 도적들.
이러한 불법적 무리에 더하여 불법과 합법 사이를 줄타기하는 용병들과 용병 단체들이 주요 플레이어로 추가되었다.
아직 법의 지배에 온존히 복속되지 못한 사람들, 주민들, 행정 조직들은 이러한 위험 요소들을 조심성 없이 활용하였다.
기꺼이 의뢰를 맡겼고 자신들의 사적 유익을 위해 이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각종 부작용과 소란과 혼란이 발생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처음에는 나름 절박한 이유로, 혹은 의협심 가득한 이유로 용병의 길에 들어선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반군을 사냥하였고 의뢰자들에게 무력이나 보호를 제공하였고 그 대가로 유익을 취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변질이 발생했고 인간들의 이기심이 이 복잡한 시장 속에 끼여들었다.
또한 점령지 출신의 주민 중 브리튼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심이 없거나 사실상 없다시피한 불순분자들이 용병 시장 속에 많이 섞여들었다.
그런 이들과 교류하고 교전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풀은 서서히 오염되었다.
차츰 지저분한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용병들은 어느덧 반군에 버금갈 정도로 사회에 골칫거리 내지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결국, 항변들에 힘입어 대대적인 규제가 형성되었다.
전 지구 범위에 걸친 무기에 대한 규제 법률이 점차 체계화되었다.
그것을 실질적으로 시행할 역량도 점차 완비되었다.
개인의 자율적 자기보호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무장 소지를 아예 금하지는 않았으나 차차 허용되는 무장의 종류, 허용되는 상황과 장소 등에 대한 엄격한 규율이 집행되었고 이로 인해 사고와 사태는 급격히 감소하였다.
아울러 용병들도 조직 편성 및 활동과 관련해 규제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기 시작했다.
많은 용병들이 무력을 내려놓고 민간인으로 돌아갔으며, 적잖은 수의 조직이 해산되었다.
불법적인 노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단체들은 반군 진압이 이뤄질 때 함께 철퇴를 맞아 강제로 해체되었다.
다양한 사회부적응자들이 체포되었고 훈육과 더불어 엄한 정신 교육을 받았다.
시간이 약이라고, 어느덧 군비 투자의 딜레마는 해결되는 추세를 보였다.
브리튼은 과거 냉전 시절의 십분지 일 미만의 경제적 부담 만으로도 군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자동화 초고도 시스템, AI, 위성, 최첨단 정밀 병기, 정보화 시대에 어울리는 양자 기기 등에 힘입어 인력의 부족을 거뜬히 메꾸었다.
더는 살상 병기에 의존하지 않고도 치안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용병들은 더는 필요악도 뭣도 아닌, 지난날의 흑역사요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용병 문제를 백퍼센트 깔끔하게 해결하기에는 현실적인 여건상 장애물들이 여럿 남아있었다.
여전히 많은 용병 단체가 존재했고 반군 역시 그러하였으며 그들 사이의 분쟁, 의기투합, 거래, 배반도 엄연히 실존하는 골칫거리였다.
규제를 초고도로 강화하여 모든 인간의 무력을 박탈하고 통제 아래에 놓으면 간단하겠지만, 그런 단순한 판단의 결말은 필연적으로 국가 위력의 지나친 비대화로 이어진다.
영원토록 황가와 그들의 선한 언약이 유지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황가가 사라지고 그 후임 체계가 이 ‘리바이어던 국가’를 송두리째 이어받는다면, 국가는 신처럼 될 것이고 개개인의 결정과 자유의지는 권력 아래 파묻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제국은 이 문제를 긴 호흡으로 인내하며 천천히 해결하는 방도를 택했고 그와 동시에 이중 트렉으로 다른 종류의 유화책(宥和冊)도 겸하였다.
그 유화책이란 바로 의도적으로 용병 시장 내에 영향력을 심어 그들의 컨트롤 권한과 흐름을 취해오는 것이었다.
브리튼 군은 용병들 사이에 정규군을 심었다.
이 강력한 스파이들은 뛰어난 실력, 통솔력, 전략을 바탕으로 용병 시장 내에서 우위를 점하였고 더 나아가 영향력과 권력의 주도권을 확보하였다.
이 과정에서 불순한 용병 세력의 상당수가 반군과 함께 청소되었고 남은 용병은 모종의 네트워크에 엮여 브리튼 제국의 은밀한 통제력 아래 목줄이 채워지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통제력은 공식적인 군사 시스템에 속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여전히 용병들의 사회는 브리튼 당국이 마음껏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카드라기보다는,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에 가까운 맹견들의 모임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당장의 시간벌이는 되었다.
적어도 용병들이 결정적인 상황에 국가 안보를 어지럽히지만 않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용병들의 세계를 장악하는 데 성공한 브리튼 정규군 출신의 인물들 가운데 제일 유명한 자가 바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용병왕었다.
각종 악명과 위명으로 점철된 그는 얼굴부터 출신까지 거의 모든 정보가 은폐된, 신비주의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은 랜슨 제블런.
칭호는 용병(傭兵)들 사이에서는 용병왕(勇兵王), 제국군 사이에서는 용병왕(用兵王), 반군들이나 테러리스트들이나 범죄 조직이나 공산주의 혁명대 사이에서는 멸칭으로 용병왕(傭兵王).
그리고 동료들 사이에서의 그는 랜슨 대령(大領)이라고 불렸다.
무슬림 원리주의 지하디스트들이 음지에서 올라와 브리튼 제국에 궐기하여 정면으로 반기를 든 그 주, 부활절 주간이자 무교절 주간인 그 기간, 그간 자신의 출신지인 제국군 측에도 반응하지 않고 용병들과 반군들의 어리석은 행보에도 상관하지 않고 관망하던 그 위인이 움직임을 개시했다.
교묘하게, 그러나 대대적으로, 그리고 무시무시한 보폭으로, 그는 아무도 감히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모두의 허를 찔렀다.
신대륙에 주둔하던 무슬림들은 알렉시스라는 ‘장인(匠人)의 명검’을 회피하려다 랜슨 대령이라는 뜻밖의 단도(短刀)에 찔리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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