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50회 [1부] 50화. 전후 수습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0.30 | 회차평점 0 |
초승달을 추종하는 문명과의 마지막 전투가 종결되었다.
싸움은 위대한 고난을 기념하는 날인 목요일에 시작하였으며 더욱 위대한 부활을 알리는 일요일에 실질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그 뒤의 여드레는 그저 누가 진정으로 승리했는지를 확증하며 시민들의 마음속에서 의심을 지워내는 시간이었다.
여드레가 지나 새 주의 월요일이 돌아오자 2단계 작전도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테러와의 싸움에서 승전이 선포되었고 계엄령은 낮은 단계로 강하되었다.
돌이켜보건대 이 싸움은 전쟁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것이었다.
투입된 전력의 위력만 놓고 보면 세계 제3차 대전을 하루 안에 정리할 정도로 거대했으나 전력과 전략 상의 우열이 너무도 확연한 나머지 싸움은 일방적인 제압의 양상으로만 전개되었다.
거꾸로 해석하자면 바로 그렇게 격차가 큰 덕분에 희생자의 수가 최소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알렉시스의 꾐에 한 번 넘어가는 것도 모자라 두 번씩이나 넘어간 5백만 무슬림들은 혹독한 독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잡아둔 인질들의 중요성을 믿고 끝까지 항전하였으며 심지어는 공범들까지 죄다 싸움에 끌어들여 책임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하도록 넘어뜨렸다.
이것은 대단한 패착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잡아둔 인질들이 사실 진짜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 몸을 본뜬 아바타 로봇은 이것들을 만들기 위한 프로토타입이었다.’
알렉시스 같은 흔치 않은 위엄의 인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표정부터 습관까지, 어투부터 인품까지 완벽하게 모방하려면 반드시 라지쿠마르의 뇌파 연동과 앨리스의 기술에 더해 각종 첨단 공학이 총동원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반 시민의 모양을 적당히 본떠 적들을 속이기 위한 더미를 만드는 데는 그 같은 대규모 소비를 벌일 필요가 없었다.
뇌파 연동도 필요없으며 그저 인공지능 정도면 충분했고, 생체 공학도 적절한 생체 피부를 만들어 로봇 위에 덮을 정도면 넉넉했다.
아울러 가디언엔젤이라는 유용한 도구가 있었다.
그것들을 위조용 더미 속에 결합시켜 넣으면 능히 그럴 듯한 위장용 인간을 창작해내고도 남았다.
이렇게 저비용 고효율의 생산 프로토콜을 거쳐 오천여 기의 유사 인간 안드로이드가 양산되었다.
그들은 유대인 혹은 가디언엔젤 소유자의 신분을 모방하여 무슬림들의 목표물들 사이에 몰래 끼워넣어졌다.
결전의 날이 이르러 원리주의자들에 의한 대규모 납치 범죄가 성행하였을 때, 브리튼은 진짜 시민의 위기는 혼신을 다해 막아내었고 어쩌다 잡힌 이들도 온 힘을 다하여 구출해내었지만, 이 더미 로봇들은 구태여 보호에 힘써주지 않았다.
그렇게 소거법을 적용하다보니 자연히 최종적으로 사로잡힌 자들의 목록 가운데는 가짜 인간들만 남게 되었다.
알렉시스는 그 로봇들이 사로잡힌 가운데서도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게 하도록 8일 간 심혈을 기울였다.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무슬림들은 거의 싸움이 다 끝나가는 마당에도 자신들이 속임수에 넘어갔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브리튼 군도 마치 그 인질들이 반드시 구출해내야 하는 소중한 시민인양 대응함으로써 연기하였다.
그로 인해 무슬림들은 인질 체포에 성공한 세력을 중심으로 더더욱 결집하였다.
이것은 흩어진 노폐물들을 한 번에 빗자루로 쓸어담기 좋게 모아주는 효과를 낳았고 결국, 8일 만에 숨어있던 무슬림들은 한 명의 공범도 남기지 않고 군의 손아귀에 확보되었다.
싸움의 규모가 세계급이다보니 시민들 중 경중 부상자가 제법 나왔지만, 다행히 사망자는 기적적으로 두 자리 수 이내였다.
부상자들의 피해 또한 탁월한 의료 체계에 힘입어 어느 정도 회복과 복구가 가능했다.
지난 수년 간 의술 발전과 의학의 완성, 의료 시스템의 고도화와 보편화에 힘쓴 덕분에 브리튼의 의료는 대전쟁 이전의 수천 배에 달하는 역량에 도달한 상태였다.
더욱이 전쟁 시를 대비해 갖춰놓은 비상 의료 체계의 확립도 빛을 발하였다.
그 덕에 많은 부상자들이 제때 안전히 치료를 받았으며 큰 인명 피해가 상당 부분 예방되었다.
‘더는 신의(神醫) 같은 요행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사실 알렉시스는 싸움 전 자신의 주치의를 제외한 신의(神醫)의 대다수를 싸움을 거칠게 벌어질 구대륙 각지에 파견하여 비상 의료 체계의 마지노선을 구축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막상 내전이 터졌을 때 그들의 손이 바쁘게 돌아갈 기회는 많이 찾아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피해는 각 지역의 병원 내에서 해결되었고 극도로 큰 피해를 입어 수습이 불가능한 소수의 부상자만이 신의들에게 전달되었다.
당연히 이런 피해자 중 시민은 없었고, 전부 자살 테러범들뿐이었다.
이번 싸움에서 신의들이 감당한 역할이라고는 주로 선량하고 무고한 시민이 아닌, 가장 악독한 범죄자들을 어떻게든 살려내어 목숨을 붙여놓는 일이었다.
참고로 이자들의 목숨도 조만간 있을 알렉시스의 계획에는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었다.
어쨌건 이로써 브리튼 제국은 시스템 자체의 효율성과 완전성이 소수의 불세출 천재의 존재보다 배 이상 중요함을 증명해낸 셈이었다.
긍정적인 성과로써 그 증명을 이뤄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만일 고통스러운 실패로써 그 명제를 입증해냈다면 너무도 많은 시민을 잃고 눈물을 흘렸어야 했을테니까.
*
하인츠 벡스터 교수는 근 열흘 간 유례없이 정신없고 피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피로를 하소연하는 것도 사치였다.
프로 중의 프로인 그는 잠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까지 헌납해가며 기꺼이 자발적 의지로 과로의 고난속으로 투신하였다.
후배들과 동료들과 제자들은 힘겨워하며 가끔씩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이 젊고 열정 넘치는 교수는 그들을 삶의 본보기로 말없이 책망하며 부끄럽게 만들었다.
절대적인 수준의 재능과 노력만이 그를 신의(神醫)에 반열에 올려놓은 유일한 요인은 아니었다.
그는 태생 참 의사였다.
“전란이 휘몰아친 때에 환자가 기껏해야 이 정도밖에 안 나온 걸 하늘에 감사히 여겨라, 이 투덜쟁이 게으름뱅이들아!”
입이 거칠고 자기 줏대와 성격이 까다로운 벡스터 교수였지만, 지금 그가 하는 이 말은 맞는 소리인지라 듣는 이들은 함구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힘들다고 맘 놓고 불평할 수 있는 이 현실 자체가 감사해야 할 상황이었다.
정말 전란이 제대로 사회 시스템에 유효타를 주었다면 지금 그가 일하는 이곳을 포함해 모든 의료 기관이 인세지옥을 경험했을 것이다.
사실상 지금은 전쟁이 선포된 상황이었다.
브리튼 국가 의료 체계는 비상 대비 모드로 전환되었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세 번의 대전쟁에 호되게 데이고 배운 덕분일까?
지난 몇 년간의 준비가 과할 정도로 철저했음이 효과를 통해 증명되었다.
만약에 이같은 튼튼한 대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재난적인 의료 수요 폭주가 이뤄졌을 것이다.
그 전에 병원 자체가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면?
그런 현실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고맙게도 여러 시설들이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휘말린 와중에도 유독 의료 계열 시설들만은 전 세계적으로 어느 곳도 위협의 사정 거리 밖에 존재했다.
대형병원이나 의과대학급 시설들뿐 아니라 심지어 보건소급의 작은 기관들까지도.
무슬림 광신자들이 사정을 봐줘가면서 싸울 사람들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에게 최고 효율의 피해를 줄 수 있는 지점을 놓칠 얼간이들도 아님을 생각할 때 이것은 기적적인 하늘의 은택이었다.
동시에 철두철미하게 닦아놓은 안보 체계의 열매이기도 했다.
계엄령 발동 같은 상황을 대비해 제국은 지난날 온갖 첨단 기술과 인프라, 방어 시설과 대피 시설 등을 의료 기관들을 감쌀 생명싸개로서 완비해놓았다.
오늘에 이르러 의료인들은 그 혜택을 톡톡히 보았고 덕분에 각종 재난이 그들을 해할 염려를 내려놓은 채 오롯이 환자들을 구하는 일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의외로 환자의 수와 피해의 심각도가 사태의 폭과 규모에 비교했을 때 양호한 편인지라 의료인들의 몸은 지옥 같은 처지에 짓눌리지 않고 적당히 버틸만한 노역에만 처해졌다.
덕분에 그들의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발휘되었다.
또한 필요 시설과 물자들도 충분했기에 궁색한 방식으로 상황을 돌파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전쟁 상황에서는 감히 축복이라 말해도 좋은 처지였다.
하인츠 벡스터는 신의 급으로 불리는 의사 중 유일하게 제국 본토인 신대륙에 배치된 인력이었다.
각 세부 분과별 최상위 능력자 스무 명씩은, 곧 소위 신의라는 칭호로 불리는 거물들은 전부 황제 명령에 의해 구대륙 지대로 골고루 흩어져 파견되었다.
그들은 현재 각 대륙, 각 지역의 교통 요충지에 머무르며 각지에서 호송되어 오는 ‘회생 불가’ 급의 환자들을 담당하는 중이었다.
하인츠 혼자서 남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신대륙이 제국의 홈그라운드이고 치안이 강력하다 보니 적들이 위축되어 격한 싸움 없이 제압된 탓이었다.
자연히 신의 같은 최후의 의학적 마지노선도 굳이 여럿 필요치 않았다.
둘째 이유는 눈속임이었는데, 이는 그가 이미 대외적으로 황태자의 친우 겸 전속 주치의로도 잘 알려진 탓이었다.
벡스터 교수는 북부 신대륙 특별시에 위치한 특수계엄령 전략 본부 건물의 바로 옆에 붙어있는 초대형 병원에 근무하도록 배치되었다.
외부에는 이 전략 본부에 총사령관인 황태자가 거처를 둔 채 작전을 지휘하는 중이라고 알려진 상태였다.
부속 병원 역시 브리튼 전체를 통틀어 2위 내지는 3위권에 드는 규모였고 전시 대비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이었다.
황태자의 주치의이자 세계 최고의 외상외과의인 사람이 그곳에서 일하는 중이라는 관측 정보는 자연스럽게 황태자의 현 위치가 그쪽이라는 논리적 추론에 근거를 실어주었다.
하지만 하인츠는 황태자의 몸을 살필 기회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알렉시스의 본체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중 요새 안에 있었고 아바타용 단말기도 가끔 한번씩 연락 수단용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아바타는 얼굴을 비출 겸 한번씩만 작동하였고 그마저도 대부분의 움직임과 행동은 AI의 판단에 맡겨졌다.
알렉시스의 대역 로봇은 간간히 주치의와 접촉하며 본체와의 통화를 매개해주었다.
그 덕분에 하인츠는 뉴스와 언론보다 한발 앞서 중요 소식들을 전해들을 수 있었고 내전이라는 불확실성 앞에 움츠러들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였다.
그런 그도 2단계 오퍼레이션이 가동된 이후 전쟁 10일차 무렵에는 혹독한 시련을 마주해야만 했다.
신대륙 쪽은 다행히도 전란이 잠잠한 편이라 안심했건만, 구대륙 쪽 상황을 잘 마무리한 제국 본군이 본토쪽을 정리하려 합류하기 직전에 하필이면 누군가가 일을 벌이고 말았다.
열 개의 도시에 테러리스트들이 결집해 대규모 난전과 교전을 벌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브리튼의 대학병원들은 비상이 걸렸음을 직감했다.
하인츠 또한 마찬가지였다.
‘죽어나가겠군.’
예상대로 신대륙의 주요 병원들로 엄청난 수의 부상자들이 호송되어 왔다.
특별히 신의가 있는 병원으로는 가장 험악한 일을 당한 이들이 배달되었다.
그들 모두 원리주의 테러리스트들이었는데, 거르고 걸러 해결이 불가능한 처지의 작자들만 모인 탓인지 정말 심각한 몰골들이었다.
그들이 범죄자라는 사실마저 잊고 측은함이 들 지경이었다.
‘이런 스타일은 전하의 방식은 아니다.’
능수능란하게 여러 수술을 집도하는 와중에 그는 속으로 탄식하며 혀를 내둘렀다.
악당들이 순간 불쌍하게 느껴질만큼 처참하게 다루되 동시에 교묘하게 생명만은 취하지 않는 악랄한 솜씨.
아마추어가 보일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악동의 악의와 프로의 절묘함이 동시에 엿보였다.
황태자와 지금의 제국 정규군이라면 굳이 이런 고통을 주지 않고 오직 최소한의 공격만으로 적을 무력화했겠지.
곤란하기 짝이 없는 악동에게 걸려든 적들에게 애도를 표하는 심정이었다.
동시에 최소 몇 달은 고역에 시달려야 할 자신의 처지도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래도 환자는 환자다.’
실력도 실력이겠지만, 그가 세계의 존경을 받는 진짜 이유 중 하나는 상대가 누구이건 관계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살려내는 집념이었다.
그를 제대로 아는 이들은 그는 자기 부모를 살해한 사람조차도 살려낼 부류의 사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환자가 아무리 악랄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의 신념에 예외는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훌륭한 의사들이 지금의 알렉시스에게는 절실히 필요했다.
테러리스트들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쳐줄 중대한 교훈이 남아있기에.
모든 일이 잘 정리된 뒤 알렉시스는 과연 자신의 주치의를 비롯한 신실한 신의들에게 고생했다며 큰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이 값은 이자까지 쳐서 확실하게 받아낼 겁니다, 전하.’
황태자에게서 약속받은 최첨단 연구 시설의 선진형 의과대학의 건립.
그 약속을 기대하며 벡스터 교수는 지금의 고생을 꾹 참았다.
의학계의 건전한 혁신을 한 발자국 앞당길 희망찬 내일을 생각하면서.
그래도 사태를 키워서 이런 고역을 만들어준 건에 대한 책임은 물어야지.
그것에 추가하여 그자의 아우들이 벌인 난장판에 대해서도 엄히 꾸중하리라.
아마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을테니 하는 수 없이 부탁하는대로 다 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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