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52회 [1부] 52화. 전후 수습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10.21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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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는 연신 근래의 중대 소식들이 보도되는 중이었다.
이슬람 세계가 일으킨 전쟁, 그로 인해 발생한 재산상의 피해와 인명 피해, 승전 소식, 전범들의 체포 소식, 각종 음모와 책략의 파훼까지.
더불어 새로이 도입된 법률안의 소식도 보도되었다.
전세계를 휩쓰는 이슬람 규탄 시위의 소식도 들려왔다.
이미 중동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유명 모스크들은 시민들의 분노에 허물어지는 수모를 겪고 있었다.
가까스로 폭력 시위로 이어지는 것은 당국에 의해 제지되었다.
그러나 어차피 대부분의 온건한 무슬림들은 거의 다 배교한 뒤라 모스크를 사용할 사람은 없었고 조만간 모든 건물이 다른 용도로 리모델링 처분될 예정이었다.
“만약에 저 아이의 치밀한 전략과 신속한 실행력의 칼날이 반대로 주님의 백성과 유대 민족을 향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생겼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중년 정도 외모의 건장한 백발 사내가 탄식하듯 내뱉었다.
나이가 들어 조금 주름이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려한 용모는 세월을 거뜬히 이겨내고 근엄한 위엄과 빛을 발하는 중이었다.
군살없이 단단한 근육으로 잘 잡힌 그 몸은 게으름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그의 성정을 잘 드러내주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미중년 사내는 올해로 여든 가까이 되는 나이를 바라보는 노장이었다.
신체 나이로는 청년들에 비해 그리 밀리지 않는 건강함을 자랑하긴 했지만.
“만일 그랬더라면, 묵시록에 기록된 그 짐승이 바로 저 아이였을테죠. 그러니까, 비유나 그림자로서가 아닌, 문자 그대로 말입니다.”
허름한 농부 차림의 한 노인이 허허 웃으며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농담을 던졌다.
숨기기 힘든 위엄과 카리스마로 무장한, 장신의 탄탄한 체격의 중년 사내와 달리 노인은 어딘가 모르게 허술해보였다.
영락 없이 시골 동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인상 좋고 푸근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노인 또한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다.
“허어, 틀린 말이 아니라 반박하지 못하겠구려.”
건장한 중년 사내는 자조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까지나 가정법일 따름입니다, 폐하.”
인상 좋은 노인은 심각한 분위기를 풀어주려고 허심탄회하게 웃어보였다.
“칼날에는 도덕성이 없는 법이죠. 그것을 휘두르는 자가 선하면 선한 도구가 되고 악한 방향으로 휘두르면 악한 무기가 됩니다. 제가 아는 황태자 전하는 스스로를 혹독하게 채찍질하는 불쌍한 아이일지언정, 괴물이 될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괴물들을, 이 세계에 존재하는 온갖 사상과 이념과 거짓말들의 ‘키메라’를 죽일 존재죠.”
“긍정적으로 해석해주어서 고맙구려, 자르바나 옹(翁).”
“별 말씀을요. 폐하께서도 전하를 신뢰하셨기에 이번 일을 전적으로 그분께 맡긴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야 그 아이의 능력과 올곧음을 확신했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결과를 낸 지금 돌아보니 다른 관점에서 두려워지네.”
그때 한 노파가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 위로 버터 케익과 벌꿀 과자, 생선 구이와 스프를 올려다놓았다.
첫인상으로만 본다면 누구든 몹시 깐깐한 외모의 마귀 할멈을 연상할만한 날카로운 외모에 깡마른 체형이었으나 외양과 달리 그녀는 성격이 싹싹하고 자상한 위인이었다.
“설마 폐하께서도 알렉이 당신의 자리를 위협할까 두려우신 겁니까?”
무례하게 느껴질수도 있는 언행.
그러나 원래 권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분방한 성격이 노파의 성정이었다.
항상 그녀의 일침이나 농담에는 일절의 악의도 담기지 않았다.
또한 기본적으로 상대를 위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었고 상대를 가려가며 차별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녀를 아는 이들이 그녀를 겉과 속이 똑같은, 믿을만한 이로 여기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럴 리가. 그 아이가 나보다 두 배 이상 탁월하고 훌륭한 인물로 태어난 것은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셨다는 증거일세. 자랑스럽지 않을 리가 있나. 위협이라니.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기쁘게 황위를 양도할 준비가 되어 있다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아올레아 켈리온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다만, 염려되는 건 어쩔 수 없군. 자기 자신을 고행으로 몰아넣는 저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우려가 생긴다네. 지금의 일들만 봐도 그렇지. 강철로 된 인간 같아도 의외로 여린 면이 많은 소년이라네. 동생들에게도 그렇고, 시민들에게도 그렇고, 쉬이 정을 이기지 못하지. 아마 상대가 저 극악의 범죄자들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일걸세.”
황제 알폰스는 안타까움 가득한 표정으로 한탄의 한숨을 내뱉었다.
황제의 오랜 친구인 켈리온 부부는 그 옆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소리 없는 푸념을 그저 묵묵히 들어주었다.
자식이 잘나도 저렇게 고민이 생길 수 있구나.
자신들은 자녀도 없으며 세계라는 짐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니 참 다행이라는 감상이 들었다.
황제가 그 생각을 엿보면 몹시 얄밉게 여길 테지.
“그래도 아들의 길을 몰래 응원하시는 건 여전하시군요, 폐하.”
자르바나가 맥주를 홀짝이며 말했다.
“저희를 부추겨 ‘그 일’을 도우실 정도니 말입니다.”
이에 부부와 황제 사이에서 의미심장한 눈짓이 오갔다.
황제는 몇 번의 헛기침과 함께 포커페이스를 갈무리했다.
사실 주변에 이야기를 엿들을 이라고는 한 명뿐이고 그에게는 과학에 대한 전문성도, 관심도 없는지라 큰 상관은 없긴 했다.
애초에 이슬람의 소멸을 매우 반가워할 사람이기도 하고.
“내 계획과 조언에 따라 개입해줘서 고맙네, 자르바나, 아올레아.”
지금 대화가 이뤄지는 이 장소는 신대륙 온대 지역의 어느 인적 드문 시골에 자리한 오두막집.
한때 공학의 정점으로 불리웠던 유명한 두 부부가 부와 명예를 뒤로 한 채 전원(田園) 생활을 즐기는 은둔 공간이었다.
이곳을 아는 이라고는 둘의 친우인 황제 정도.
황제의 배려 덕택에 둘을 초빙하려던 알렉시스조차도 이곳을 알지 못했다.
이곳에서 머무르며 첨단 기술에 대해 손을 내려놓은 부부였지만, 최근 황제에게서 어떤 부탁을 받은 뒤로는 오랜만에 다시금 탁월한 두뇌에 재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팀 아르다의 모든 신세대 멤버들이 우상시하고 목표로 삼았던 그 전설적 솜씨를 가감없이 발휘하면서 말이다.
전원 주택 내에 숨겨진 지하실은 연구하기에는 너무도 낙후된 시설이었지만 황제의 비밀 지원이 이를 커버해주었다.
그들이 뛰어든 작업은 다름아닌 ‘가디언엔젤의 최종 진화’였다.
이들은 알렉시스가 살포한 가디언엔젤 개체 중 일부를 나포하였고 그것들을 황제의 지원에 힘입어 연구하고 재해석하여 한 층 더 개량하였다.
닥터 실버피스트나 그 동료들이 해내지 못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부부는 가디언엔젤 속의 ‘마지막 한 줄기의 잠재력’을 온전히 개화시켰다.
그리고 그 개화된 강화 특성은 가디언엔젤 고유의 상호작용 능력을 통해 전세계의 가디언엔젤들에게로 감염되었다.
부부는 이러한 개량 프로세스를 대략 다섯 번 정도 시행하였고 이는 기획자인 황태자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던 사이에 상당량의 변수가 되었다.
“아들 녀석이 잘나고 똑똑하긴 해도 아직은 혈기가 너무 앞서니 이 못난 아비가 뒷바라지를 해주는 수밖에.”
감사하게도 켈리온 부부의 비밀스러운 개입은 좋은 방향으로의 변수를 낳았으며 이는 당초 예상보다 시민의 피해가 급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울러 가디언엔젤의 잠재력이 생각보다 더 크게 개화되는 바람에 추가적인 사회적 유익도 발생했다.
이를테면 부의 건전한 재분배라던가, 정보 교류 및 선전 체계의 정화라던가.
어쩌면 알렉시스와 아미타브의 처음 염려와 달리 장기적인 한계점 또한 적잖이 해결될지도 모르는 판이었다.
“자, 이제 그대가 나설 차례일세, 무스타파.”
황제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정원에서 초목들을 돌보던 한 사람이 거실로 들어왔다.
영락없는 농부 차림의 중년 남자였다.
무스타파라고 불리운 그 남자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화초들이 마음에 듭니다. 나중에 은퇴하면 이곳에 와서 살고 싶군요.”
“안타깝지만, 그 소원은 들어주기 힘들 것 같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무스타파는 황제의 불길한 선언에 잠시 멈칫하였다.
“그대를 좀 더 오랫동안 굴려먹겠다는 뜻일세.”
“어허, 지금껏 폐하의 충실한 도구로써 잘 굴러왔지 않았습니까?”
“그에 대한 고마움으로 더 큰 일을 맡기는 것일세.”
“저는 안식을 누리는 것을 보상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이번에는 그 예측이 틀렸다네.”
한가로이 은퇴 타령을 하는 이 허름하고 털털한 무스타파의 정체는 제국 내에서 최상급 정치 능력을 자랑하는 열두 지도자 중 하나.
소아시아 튀르키예 태생인 그는 여러모로 특이한 이력과 성정을 자랑하는 남자였다.
한 가지 극단적인 예로 그는 과거 세계 2차대전 당시 브리튼과 맞섰던 세 세력 중 하나인 오토만 칼리프 제국의 후손, 그것도 무려 최후의 칼리프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이슬람이라는 속박의 영을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증오하는 인물이었다.
어쩌면 황태자 알렉시스보다도 더.
동시에 무스타파는 자신의 민족과 그 주변 이웃 민족들을 몹시 사랑했다.
그랬기에 그들을 신정 체계의 악몽으로부터 건져내어 민주적인 시스템 아래로 인도해주기를 원했다.
실제로 과거 커뮤니스트 연방과 브리튼 제국이 대립하던 시절, 그는 양방 세력으로부터 중립을 취하여 유사 독립국을 세웠고 이슬람 체계를 배격하고 민주적 질서로 나라를 경영하여 크나큰 성취도 거둔 바 있었다.
정작 자신이 사랑으로 이끌었던 조국로부터 배신을 당해 내부 강경파 이슬람 세력에 밀려나 추방자 신세가 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적어도 이 세상에 이슬람이라는 권세가 존재하는 한, 무스타파가 정식으로 정계로 귀환할 가능성은 요원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가능성을 포기한 채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자네 심정은 이해한다만, 이제는 기회의 문이 열렸다네. 소아시아는 물론 중동도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네.”
“허어, 그렇게 말씀하셔봤자…….”
“황태자는 자네의 조력을 필요로 한다네.”
무스타파는 골치 아픈 일에 휘말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졌군 졌어.
저런 식으로 부탁해대니 어찌 사양할 도리가 있겠는가.
게다가 젊을 적에 꺾여버린 소망을 저렇게 들먹여주니 올무에 빠지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폐하는 참 곤란하신 분이군요.”
“제대로 보았네. 이건 부탁이 아닌 명령일세. 알렉시스를 도와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중동을 재건하게나. 브리튼 못지 않은 풍성한 지역으로 거듭나게 하게. 이슬람이라는 망령만 없었더라면 자네의 고향도 사람 사는 향기 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리라고 확신했었지? 그 신념을 한 번 마음껏 증명해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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